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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우린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




요즘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보면 차세대니까 희망도 가지만, 실망도 역시 간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자꾸 적어져가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만, 교회 사람들까지 그러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렇다고 나 자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다고 특별히 자부할 처지는 아니다. 그러기엔 부끄럽다. 그러나 경험으로 보아 나이 50대 정도 이상은 그래도 뭔가 다르다고 생각된다. 

남을 배려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자기중심적이거나 이기적일 터이다. 굳이 연령별로 따질 것은 없으나, 대체로 배려심 부족 내지 결핍의 문제는 3, 40대 이하에 분포된 것으로 보인다.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대다수 젊은이들은 많이 이기적이다. 이타적이지 못하다. 자기..자기..자기만 찾고..자신과 활동, 주변 모두가 자신을 위한 것일 뿐이다.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면 존재 가치조차 없어 뵌다!

 

과거와 달리 지하철을 타면 자리를 양보하는 젊은이들이 극소수이다. 노약자들이 타면, 놀랍게도 결코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대.다.수.이다! "아니 저쪽 끝에 노약자석이 있는데 거기 가서 앉지, 왜 하필 여기서 어른거려? 쳇, 재수 없어~" 하는 표정이다. 요즘은 심지어 장애인이나 부상자가 앞에 서 있어도 그냥 모른 체 하며 책을 읽거나 휴대폰을 보는 젊은이들이 많다. 그 상태로 자기가 내리는 역까지 끝내 자리를 고수한다. 옆에서 보는 어른들의 볼이 붉어지고, 선 사람이 그저 딱하게만 여겨진다. 


한국이 '동방예의지국'? 그런 말은 이젠 아득한 옛말이 되어 간다. 

미국조차도 아직 이렇지는 않다. 내가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본 미국인들은, 노인은 몰라도 장애인이나 숙녀, 어린이 등에게는 성큼 자리를 양보할 줄 안다. 


한국이 왜 이럴까. 왜 인심이 과거와 달라져 갈까? 세태가 나날이 악해져서일 것이다. 이건 근본적으로 우선 기존 세대의 잘못이다. 기존 세대가 뭔가 잘못 가르치고 있고, 젊은이들은 뭔가 잘못 배우고 있는 것이다. 기 살리기, 뭔 살리기 식의 교육이 이런 결과를 낳는다. 이런 식으로 계속 '기'를 살리다간 세계 속의 대한민국이 마냥 일그러져 갈 것이다.  



더 아픈 것은 교회 속. 

교회 젊은이들이야 달라도 뭔가 다르지 해 보지만, 역시 아쉽다. 주일 친교 시간 때 보면, 교회 부엌에서 중노년들이 모든 상차림과 상치레를 하고 설거지까지 몽땅 끝낼 동안, 젊은이들은 먹고 이야기하고 폰 들여다보는 것으로 일과를 소화한다. 바라볼수록 한심한 정경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에서 이번 초봄에 교회당 내부의 높은 천정과 벽의 거미줄을 시간을 내어 좀 치우고 회중석 의자 등받이 천을 좀 청소하자고 젊은이들에게 권했으나,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우리가...왜요? (그런 건 어른들이나 전문 청소부가 해야 하지 않나?)"라는 식의 표정으로 머쓱하게 대답만 하더니, 몇 달이 지나도록 아무도 전혀 손짓 까딱하지 않고 지내고들 있다. 세 번 정도 얘기하다 포기하고, 나 혼자 조금씩 치우고 있다. 물론 그들은 친구와 폰으로 채팅하는 등 자기네 일과 시간에는 관대하다. 


우리네 기성 세대가 잘못 가르친 탓이다. 교훈과 훈련의 부족 탓이다. 아니 부족 정도가 아니라 결핍이다!


지금이라도 젊은이들을 바로 가르치고 교훈하지 않으면 앞으로 웬만한 나이의 부모조차도 기껏 정신적인 '고려장'의 대상 정도로 여기는 자녀들이 나날이 늘어갈 것이다. 어릴 때는 부모의 젖줄에, 커서는 부모의 돈줄에 매달려 열심히 빨아대며 부대끼다가, 부모가 늙으면 정말 빨대 버리듯 내버릴지 모른다. 

바로 지금 제대로 안 가르치면 말이다! 



어떻게 자녀들, 우리 다음 세대를 제대로 가르치고 훈육할 것인가?

성경 말씀대로 해야 한다! 성경 속에 모든 비결이 숨어 있다. 

차세대 지도에 관하여 성경 속에서 얻을 교훈이 너무나 많으므로, 여기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고, 지금 크게 생각나는 한 가지만 말하련다. 



한 마디로, 우리 신자는 결코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누가 "무슨 소리?! 아니 내가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면 누가 대신 날 위해 살아주나?"라고 대뜸 물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을 좀 넓게 뜨고, 생각을 좀 키워 보자. 바로 주님께서 날 대신하여 죽으시어 날 살려주셨기에, 나도 지금 살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분이 살려 주시기 전, 우리는 과거에 죄로 인해 죽었던 존재, 마귀의 노예였던 인생들이었다.


그러기에 사도 파울은 "사실 우리 가운데 아무도 자신을 위해 사는 사람, 자신을 위해 죽는 사람은 없습니다"라고 하였다(로마서 14'7. 사역). 세상 사람들이 아니라 신자들 말이다. 

그렇다면 결과는 자명하다. 우리는 주님과 이웃을 위해 살고 죽어야 하는 법이다! 그것도 사랑으로 말이다. 


그래야 하는 이유는 뭔가? 그렇게까지 해야 할 까닭은?

앞에서 비쳤듯, 주님이 우리 모두를 위해 자신을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그 분이 모두를 위해 죽으셨음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이제 더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위해 죽으시고 되살아나신 분을 위해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코린토B서 5'15)


우리가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님이 이처럼 분명하면, 우리는 주님과 남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주님 자신이 남을 섬기러 오시지 않았는가? 스스로 낮추어 가며 그러시지 않았는가? 주님이야말로 온통 남을(!), 우리를(!) 배려하는 마음이 아니던가? 어려운 가운데 있는 남을 배려하여 참 이웃이 된 착한 쇼므론(사마리아) 사람이야말로 그 누구보다 주님을 가리킨다(루카복음서=눅 10'30-37)! 

우리는 과연 착한 쇼므론 사람처럼 되고자 하는가?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주님을 본 받고 있는 게 아니다. 말로는 맨날 그 분을 본받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주님은, 형제들 가운데 가장 작은 한 사람을 섬기는 사람이 곧 주님을 섬긴 사람이요, 따라서 하늘나라에 합당한 양 무리요,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에서 제외될 '염소 떼'라고 하신다(마태복음 25'45). 

정말 두려운 말씀이 아닌가? 남을 섬김이 그처럼 중요한 것이다. 

이 진리를 우리 다음 세대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섬기는 자가 되지 못하여 결국 염소 무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무섭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 다음 세대를 살릴 길은 그들을 바로 가르치는 길이다! 어떻게 말인가?

자신을 위하여 살지 말고, 주님과 남을 위하는 사람, 자신이 아닌 이웃을 섬길 줄 아는 사람으로 길러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유감되게도 그들에게는..참 희망이 없다.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 이름만의 형제자매들, 이웃을 생각하지 않는 신자의 삶, 서로를 섬기지 않는 교회--그것은 참으로 끔찍한 재앙이고, 재난일 것이다. 

몸은 교회에 있어도, 지옥 같은 생활에 다름 아니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성경이 말해 주는 진리다. 

이 진리대로 가르치지 않으면 결국 우리 자신에게도 화가 미칠 것이다. 

Please make no mistake abou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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