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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계시록

666? 616?



'짐승의 수'는 666? 616?



요즘 신약성경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나온 짐승의 수가 666인지 아니면 '616'인지를 놓고 웹 사회에서 씨름들 하고 있네요. 대개의 경우 666으로 널리 알고들 있는데, '616'설은 최근 특히 많이 대두되고 있죠. 그 이유는 글 나중에 설명됩니다. 그런데 뭘 한 가지 새로 더 알고 나면, 그거 하나 붙들고 나머지는 쉽게 부정하려 드는 '난 체' 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616 쪽을 붙든 사람들은 심지어 666을 싸탄이 만들어낸 숫자인 양 떠들기도 하네요. 참..경박한 성향이지요.

 

자, 둘 중 어느 것이 맞는지 답하기 전, 먼저 616 설이 과연 어디서 비롯됐는지부터 규명해 보죠. 

학계의 발견에 따르면, 가장 오래된 사본 하나에 짐승의 수가 '616'으로 기재했다고들 하네요. 그런데 가장 고대의 또는 더 오랜 것이라고 해서 다 맞느냐..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령 일부 정경 사본보다 더 오래 된 '나그 함마디'는 영지주의 문서로서, 정경에 비하면 내용이 거의 황당합니다. 역시 고대의 것인 '사해사본'(DSS)들 중 일부는 정경에 없는 것으로, 우리가 받기 곤란한 내용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신약사본들과 영어성경은 짐승의 수를 666으로 기재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일부는 616으로 돼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2세기경 스뮈르나(서머나) 출신으로 고대 로마의 갈리아(고울)의 룩두눔(현 프랑스 리용) 주교였다는 이레니우스는 사도 요한의 제자/순교자, 폴리카르푸스의 한 제자였다고 합니다. 그는 666임을 확인하고, 다른 몇몇은 "기재상 착오가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는 '616'로 읽는 사본도 있음을 알았지만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소수 신학자들은 4대 언셜자체(uncial) 코덱스중 하나인 에프레미 레스크맆투스, 튀코니우스의 라틴어 버전(DCXVI), 그리고 고대 아르메니아 버전 등이 616으로 표기한 사실을 주목했습니다. 특히 히에로니무스(제롬)는 신약성경의 기존 라틴어판(베투스 라티나)을 정정하면서 '616'을 그냥 남겨두었습니다. 


그러던 2005년 무렵, '파피루스 사본 115(P115)'의 한 조각이 바로 요한계시록 이 부분의 것이라는 사실과 함께 옥스퍼드대학교 애슈몰리언 미술고고학 박물관에서 발견됐는데, 거기 요한계시록에 짐승 수를 616으로 표시해 둔 것입니다. 

이 파피루스는 이미 퍽 오래 전 19세기말로부터 20세기초에 영국의 에짚트학 학자, 버나드 파인 그렌펠과 아터 서리지 헌트 등이 이짚트 옥시린쿠스의 폐기장에서 발견한 문서들의 일부로 이곳에 소장돼 왔습니다. 그래서 '옥시린쿠스 파피리(파피루스의 복수)'의 하나로 불립니다. 당시 발견된 옥시린쿠스 문서들 가운데는 성경신학적 문서들과 함께, 고대의 레즈비언 시인인 사포의 글 등 세속문서도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옥시린쿠스 문서들은 영국과 미국 등 세계 곳곳에 흩어져 소장돼 있습니다. 


신학적 문서들 가운데는 비정경 '복음서'들의 파편인 옥시린쿠스 840, 옥시린쿠스 1224 등과 정경의 복사본인 일부분도 있습니다. 또 구약을 그리스어로 옮긴 '70인경(LXX)'중 정경이 아닌 가경도 포함돼 있고요. 이 잡다한 파피루스 문서들의 필사 추정연대는 50~550년간의, 총5세기에 걸쳐 있습니다. 이중 시편 90편은 고대 에짚트의 부적까지 곁들여진 문서이지요. 그러니까 이런 잡다한 문서 속에 이 성경 파편도 발견된 것입니다. 


아무튼 이 P115가 본래 코덱스(파피루스 묶음집)의 일부로서 이 파편에 현재까지 남아있는 계시록 본문 부분은 약 30군데 곧 2~3장, 5~6장, 8~15장 부분 등입니다. 이 파편(플러스 코덱스)의 필사연대는 225~275년쯤, 그러니까 3세기로 추정됩니다. 여태 발견된 신약 사본들중 가장 오래 전 것인 셈이지요.

바로 그래서 짐승의 수는 '616'이 "오리지널"일 것이라는 설이 나돌아왔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연대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인가요? 이 P115에 대해선 아직 모든 것이 밝혀져 있지 않아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고 저는 봅니다.


그런데 '616'이라고 기재된 사본은 극소수입니다. 바꿔 말하면 666은 대다수 사본들의 것이라는 말이죠. 이 점이 단순히 연대 갖고 오리지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P115 필사연대보다 훨씬 앞서, 2세기(!)의 '교부'요 신학자인 이레니우스(130~202)가 666을 채택하고 616은 부정한 사실은 중요합니다. 

즉 666을 채택한 이레니우스가 616을 고집한 P115보다 훨씬 앞서 존재해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연대로 보면, 누가, 어느 쪽이 더 오리지널입니까? 연대로 친다면, 이레니우스가 P115 필사자보다 훨씬 옛날 사람이니까 666이 오리지널이죠! 


그런데도 섣불리 P115의 '616'은 성령님의 영감에서 왔고, 기타 다수 사본들의 '666'은 마치 싸탄에게서 온 양 떠드는 사람들의 발언은 섣부르고 성마른, 졸속 언행이라고밖에 뵈질 않네요. 



그런데 왜 666과 616이라는 서로 다른 두 숫자가 공존하느냐라는, 잠재적인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에 대해 위키피디어 같은 곳은 당대 로마 황제의 이름 및 명칭인 네로 황제 또는 네론(Neron) 황제의 이름 숫자풀이 때문일 것이라는 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설은 데일 마틴 교수가 그의 책 '신약사문학개론'의 제 23강 '종말론과 저항'에서 제기한 것입니다. 즉 와디 무라바트에서 발견된 어떤 아람어 문서에, "네로 황제 (통치기) 제2년에"라는 말이 나오는데, '네로 황제' 부분을 그리스어 식으로 네론 카이사르(가이사)로 할 것이냐, 라틴어 식으로 네로 카이사르로 하느냐에 따라 이 이름 글자의 해당 히브리어 알퐈벹의 수가가 각각 666과 616이 된다는 설입니다. 

영국의 피트 와츠 강사가 나오는 다음 동영상을 보면, 그런 설을 잠시 다루고 있습니다. (>)  


흥미롭게도, 네로 카이사르를 그리스어로 쓰면 그리스어 알퐈벹 수가로 총 1,332가 나오는데 아다시피 1,332는 666의 2배입니다. 이에 대한 제 생각은 "So(그래서)?"라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우연의 일치일 뿐입니다. 네로는 결코 계시록의 그 '짐승'이 아니니까요! 만약 네로가 짐승이라면, 이 요한계시록, 특히 13장은 거의 요한 당대로 성취돼버렸다는 말이 됩니다. 

이런 설이 사실이라면, 결국 666과 616의 차이는 아무 것도 없다는 얘기가 되고 말죠. 네론이나 네로나 같은 이름이니까요. 별 의미없는 토론입니다. 



네로를 666 또는 616으로 푸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크리스토인들을 박해하던 로마 황제의 하나로 당대 최악의 적 크리스토라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초기의 강력박해자인 네로를 그런 시각과 대상으로 여기던 사람들이나 신자들이 666이란 숫자를 어떻게든 네로의 이름과 끼어 맞춰 보려고 했을 터입니다 .


그러나 [네로=짐승]이라는 등식을 내기엔 많은 문제가 제기되죠. 더욱이 이 요한계시록 13장이 후대가 아닌 바로 당대에만 성취/적용됐다는 얘기가 되고 말며..네로가 당대에 제국 신민들에게 경배를 받고 '666'표를 찍어 준 역사도 없기에 아예 말이 안 되는 얘기입니다. 또 네로 개인을 과연 문제의 '짐승'으로 볼 수 있냐는 데도 여러 가지 복잡한 견해가 첨가될 수 있지요.   


어떻든, 네로의 이름을 구태여 숫자로 풀려고 하는, 바로 여기에 게마트리아(gematria)가 개입되는 것이죠. 게마트리아는 고대 아슈르(앗수르)와 바벨론에서 유행하던 관습으로, 이름을 숫자로 풀거나 숫자를 이름으로 푸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후대에는 유대식 오컬트인 카빨라(카발라)에서 많이 쓰여온 관행입니다. 


한 마디로, 게마트리아는 성경적 근거가 없습니다. 물론 히브리어나 그리스어의 알퐈벹은 수가(數價. numeric value)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령 히브리어의 첫 글자 알렢과 그리스어의 알퐈는 모두 '1'의 수가를 갖습니다. 이를 카피한 라틴어도 마찬가지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서 이름을 일일이 숫자로 풀거나 숫자를 글자로 푸는  게마트리아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전례가 성경엔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고대 이방인들의 관행을 왜 성경이 채택하겠습니까?! 뭐가 모자라서..??

 

게마트리아를 계시록 13'17,18에다 억지 적용하려는 사람들은 흔히 14'11및 15'2과 연계시키려고 듭니다. 그러나 대표적인 게마트리아 시범 사례라 할 수 있는 '네로 카이사르'가 이미 계시록의 '짐승'이 아니라는 결판이 난 지가 2천년 가까이 돼 옵니다!


따라서 숫자를 코드화하여 이름에 적용하는 게마트리아는 단지 유대교 카빨라 등 오컬트 또는 수비학(數秘學)을 중시하는 비밀집단에서나 사용하는 오컬트 관행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이런 카빨라 유대인들은 또 본래 성경은 암호로 되어 있다는 둥 흡사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 같은 이상한 '썰'들을 많이 주장합니다.   

그런데도 오컬티스트뿐 아니라 이제는 대학교수들 심지어 성경학 교수들까지 게마트리아를 갖고 논하면서 666 또는 616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참 한심한 일로 보여집니다. (예: > )


그렇다면 짐승의 이름의 수는 뭘까요? 오직 성령의 영감으로만 알 수 있는, 신비에 붙일 문제라고 생각됩니다. 요계 13'18a의 '지혜'는 게마트리아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다보니, 이 이야기에 순전히 개인적으로 좀 보태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666이란 수가 성경상으로 어떻게 쓰였냐는 것이죠.  

 

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이 666 곧 육백 육십 육을 '사람의 수'라고 말했습니다. 이 666은 본디 육백 육십 육이지만 6 세 개를 나란히 늘어놓은 것과도 같이 보이지요. 흔히 성경의 3을 하나님을 상징하는 수로 보는 신학적 견해가 있어왔습니다. 반면 6은 사람의 수라는 것입니다. 6을 사람의 수로 보는 견해는 하나님이 천지를 지으실 때 여섯 째날 동물들과 사람을 만드시고 제 7일에 쉬신 것 때문인 듯합니다. 이에 근거하여 사람은 엿새동안 열심히 일하고 이레 째에는 하나님과 함께 안식을 합니다. 7은 흔히 완전수의 하나로 보는데 6은 7에서 하나 모자라는 수이죠. 즉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암시가 됩니다. 

그렇다면 666은 불완전의 나열이요 집합 같은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결집해 봐야 불완전에 그친다는 암시이기도 하죠. 


구약성경에는 666이라는 수가 또 나옵니다(왕들A서=열왕상 10'14; 연대기B서=역대하 9'13). 바로 슐로모(솔로몬) 왕이 이스라엘 국민에게서 매년 거둬들인 금(金)의 정량(定量)이 666 키카르(번역어: '탈란트')였다는 것이죠.이거, 얼마나 인간적인 숫자입니까?! 이 징수금의 정량과 요한계시록의 짐승의 수가 내적인 연계가 전혀 없을까요? 저는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아마도 요한은 계시록의 이 부분을 쓸 때 필시 슐로모의 징수 금 정량을 연상했을지 모릅니다. 둘 다 사람의 수이고 인간적인 숫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616의 경우는 딱히 사람의 수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단지 666에서 50을 뺀 수일 뿐입니다. 


이상으로 볼 때, 616은 666을 대체해야 할 정도로 그다지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666은 악마가 요한 또는 후대의 필사자를 시켜서 쓴 숫자가 아닙니다. 

616은 성령께서 또는 천사가 필사자를 시켜 쓴 숫자라고도 할 수 없습니다. 


이래서, 제가 '짐승'의 수라고 믿는 쪽은 현재의 성경 그대로 666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