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이슈/물음과 답(Q.A)

행 13'20과 왕상 6'1의 모순?(Q/A)





행13'20과 왕상 6'1은 서로 모순?




물음: (사도)행전 13'20과 열왕기상서 6'1은 연대상으로 서로 모순되어 보입니다. 이 의문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답: 


신약성경 행전 13'20은 연대상으로, 그러니까 숫자상으로 '문제시'되는 성구의 하나입니다. 그래서 많은 주석가들과 성경 학도들이 난감해 하곤 합니다. 



개인적인 얘기부터 좀 합니다. 

저로서는 오히려 이 '난감현상'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수학적/과학적으로 이해해야 성경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성경 진리를 받아들인 후에는, '왜?' 보다는 '어떻게?'의 시각으로 성경을 보게 되며 그렇게 보아야 합니다. 

성경 갖고 너무 시시비비 가리며 따지다가 자칫 시험에 빠져 오히려 기독교에서 떠난 사람들이 드물지 않지요. 철학자, 버트런드 러슬 경은 그런 대표적 사례입니다. 그의 책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보면, 러슬이 기독교를 떠난 이유 한 가지는 크리스토(그리스도)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무자비하게" 저주했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성경의 '모순'을 지적하면서 의혹스러워 하다가 급기야 성경과 기독교를 비웃는 사람은 자신이 성경의 실저자이신 성령님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을 성경 기자로 쓰셨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서로 달라도 성령의 영감 아래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성경을 따지기보다는 바로 깨닫도록, 그들을 감동하신 같은 성령님의 영감을 구해야 할 터입니다. 



이 구절의 주된 문제는 사본들의 차이에서 오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구절의 알렉산드리아 사본 문장과 비잔틴 사본+수용원문(TR=Textus Receptus) 사이에 상당한 차이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 행 13'20에 대한, 두 계열의 대표적인 (최신편집판) 원문을 서로 대조해 봅니다: 


   ὡς ἔτεσι τετρακοσίοις καὶ πεντήκοντα. καὶ μετὰ ταῦτα ἔδωκεν κριτὰς ἕως Σαμουὴλ τοῦ προφήτου. (SBL 그리스어 신약, 2010)

직역: "(그러니까) 450년 동안 그러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 분은 예언자 슈무엘(사무엘)때까지 판관(사사)들을 주셨습니다."  


   Καὶ μετὰ ταῦτα, ὡς ἔτεσιν τετρακοσίοις καὶ πεντήκοντα, ἔδωκεν κριτὰς ἕως Σαμουὴλ τοῦ προφήτου. (RP 비잔틴 다수사본, 2005)

 직역: "그리고 그 후에 그 분은 450년에 걸쳐 판관들을 주셨으니, 예언자 슈무엘 때까지 그러셨습니다." 



위 두 가지 원문의 상당한 차이를 보십니까?

여기서부터 벌써 심대한 연대차가 나는 것입니다. 위 두 가지 번역중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요?

왜 TR이나 비잔틴 사본은 이럴까요? 본디 비잔틴 사본은 소위 '다수 사본', 에라스무스의 TR은 '수용원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 전자인 알렉산드리아 사본은 더 초기의 사본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이것만 갖고는 서로 차이가 난다는 것 밖에는 아직 이렇다 할 문제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참고: 판관들(삿) 11'26를 보면, 예프타(입다) 판관 당시 이스라엘이 카나안에 거주한 지가 약 300년이었다. 판관들 1~10장의 기록으로 보다 정확하게 따지면 319년, 암몬 족의 지배기간(18년)을 빼면, 301년이다. 곧 카나안 정복초기에 예슈아가 28년, (초대 판관) 옽니엘 40년, 에후드 80년, 데보라 40년, 기데온 40년, 아비멜렠 3년, 톨라 23년, 야이르 22년, 암몬 족의 지배 18년, 예프타(입다) 제6년 등 모두 약300년이 된다. 성경상으로 예프타 이후 슈무엘까지의 연대는 분명치가 않다. 



그러나 "모순된" 연대차는 본절과의 관련 구절인 왕들A서(열왕기상) 6'1과 비교해 볼 때 비로소 두드러지게 드러나 보입니다. 

슐로모 성전 건축 기공을 기점으로 이스라엘 역사를 소급하여 간, 이 구절을 직역해 보죠: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쯔라임(아이귚트=에짚트)에서 나온 지 480년, 슐로모의 이스라엘 통치 4년차인 해의 둘쨋달인 지브 월에 그가 예호봐님의 전 건축을 시작하였다."(왕들A=왕상 6'1)

 


이 구절은, 판관 통치기만도 '450년'이라고 한, 행 13'20의 비잔틴-TR 원문과는 확실히 차이가 납니다. TR의 행 13'20에 따르면, 판관 기(期) 말고도, 대언자/판관 슈무엘의 돌봄 기간과 왕국기의 샤울 통치(40년)-다뷔드 통치(40년) 기간만 해도 최소 100년이 되기 때문이죠. 

그러니 TR의 이 구절 자체만도 모순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독자의 눈에는, 이 연대의 '모순'이 사본 필사자의 잘못이든지, 파울의 잘못이든지 그의 말을 적은 루카의 잘못이든가, 또는 구약 때의 슈무엘의 잘못, 심지어는 더 나아가 이들에게 영감을 주신 성령님의 잘못이라고도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초기 문서인 알렉산드리아 사본에 따르면, 별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판관시대가 아니라, 미쯔라임 출국 후 판관시대까지 모두가 450년이라고 했으니까요.

 


여기서 잠시 생각해 둘 것은, 고대 사람들은 관습상으로 연대 기재의 감각이 과학적 정밀성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당대 관습으로는 숫자적 정확성보다 ("적당히"가 아니라) '대강'이라는 감각으로 적는 것일 수도 있었다는 역사적 흔적이 있습니다. 예컨대 40년 등 '-0'으로 끝나는 수가 성경 곳곳에 많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또 족보/계보상의 대수가 과학적으로 정확하다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현대인인 우리의 과학적 또는 컴퓨터/디지털적인 감각으로 꼼꼼히, 꼬치꼬치 따질 성격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집대성한 자료가 없이 산발적이던 고대의 연대 추정/산출의 근거가 일정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정도를 갖고 일대 모순으로 여겨 혹 성경의 진리성까지 믿지 않게 된다면, 그런 사람 자신의 의심과 불신과 실족 탓이지, 성령님이나 성경 탓은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선지,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이 부분을 하나의 '모순'으로 다루거나, 별 언급이 없이 넘어갑니다. 심지어 유명 주석가인 요한 랑게나 카일-델리취도 대강 넘어갔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성의나 실력이 없다거나, 비양심적 내지 위선적이라고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부분을 꼼꼼히 짚고 넘어간 자상한 학자들도 물론 많습니다. 양쪽 다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위 둘째 구절의 '480'년에 관해서는 주석가 매튜 헨리가 간단히 정리해 줍니다. 


즉 모쉐의 광야 인도 40년, 예슈아(여호수아) 17년, 판관시대 299년, 최후 판관/사제 엘리 40년, 슈무엘-샤울 40년, 다뷔드 40년, 슐로모 4년 등을 모두 합하면 딱 480년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본대로 판관들(삿) 11'26에 따르면, 예프타 당대까지만 해도 300년이 넘으므로, 예슈아의 지도 기간이나 암몬 지배기 등을 줄이면 이럭저럭 맞을 수도 있습니다.  



이 구절들을 학적으로 일일이 따진다면, 논단이 거의 무한대로 길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이쯤 간단히 맺어두고, 향후 필요하다면 몇 가지 논증을 추가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