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편집위 코너/Faith의 믿음묵상

깊은 수렁에서 건져주셨네 (Faith님 간증)




저는 아주 어릴 때(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고, 공허하고, 회색빛이라고 생각하며 자라났습니다.
그 이유는 제 성향에 그런 면이 원래 있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끊임 없는 부모님의 불화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난 너희 아빠를 단 한 순간도 사랑한 적 없다"면서, '사랑 없는 결혼'이었다는 고백과 부당한 아버지에 대한 험담을 들으며 살았습니다. 또 아버지가 저를 자기 자식이 아닌 것으로 10년간 의심하셨기에 (막내동생이 제가 10살 때 태어났는데, 제 아기때 사진과 똑같았습니다. 그제야 아버지의 의심이 풀리셨습니다), 난 사랑의 결실이 아니라 육욕의 결실일 뿐이고, 따라서 나는 사랑 받을 자격이 없다는 부정적인 마음이 확고하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식칼을 배에 대어 보기도 하고…. 고통 없이 죽는 방법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칼을 쥐고 제 손목을 노려봤던 시기도 꽤 많았습니다. 그러한 때에 제가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지옥에 가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였습니다. 인생이 이번 한 번뿐이고 천국이나 지옥이 없다는 확신만 있었다면, 저는 죽을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도 분명 즐거웠던 시간이 있긴 했지만, 뭐랄까, 가장 기쁘게 웃는 그 순간에도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서는 그저 죽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되었습니다. 매일의 기도는 빨리 죽여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사고사나 병사로 죽기를 소원했습니다. 왜 나를 태어나게 하셨냐고… 어미 태에서 죽어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 걸 하고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대학생 때는 부끄럽지만 그 상태로 리더까지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심을 알고 믿었지만, 정말 내가 구원 받았는지에 대한 확신은 계속 없었습니다. 구원받았다고 믿었다가도, 금방 하나님이 나 같은 걸 사랑하실 리 없다는 마음에 계속 굴복했던 것 같습니다. 영접기도만 몇 십 번은 했을 겁니다. 혼자 있을 때도 불안해진다 하면 하고, 어느 새신자 초대 집회 가서 강단의 목사님이 새로 영접한 분 손 들라 하면 손 들고 영접기도 따라 하고…

교회에서, 혹은 섬기는 CCC 패러처치에서 내적치유 특강이 있다거나 하면, 언제나 달려가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의 뿌리 깊은 공허와 외로움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뿐이었습니다. 열심히 부모님을 용서하고,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내 억울하고 분했던 마음을 토로해 봐도… 울부짖는 그때 잠깐 마음이 시원해질 뿐, 다시 1, 2주 아니 며칠만 지나면 원 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학교에서 신입생 전체를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했었는데, 제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위험군에 속해서 비싼 상담료를 물지 않고 무료로 심리치료까지 받았지만… 결과는 똑같았습니다. 

그러다가 신랑을 만났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임을 알았지만…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해 언제나 허덕거리며 자기비하를 일삼던 제게 인간은 원래 그걸 할 수 없다고, 그걸 인정하라는 신랑의 말이 오히려 큰 힘이 되었습니다. 또 당시 이혼 준비를 하시다 결국 이혼하신 부모님 때문에 힘들어 하던 저에게 부모님의 삶과 네 삶은 분리되어 있고 별개의 것이라는 점을 말해 준 사람도 신랑이었습니다. 결혼으로 당시 지옥 같았던 집에서 탈출할 수 있어서 참 기뻤습니다.  큰 딸로서, 큰 언니로서의 역할을 외면하고 도망쳤던 것입니다. 

결혼하고 얼마간은 교회는 다니는 흉내만 내게 되었을 정도로 열심을 잃었지만,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처음 들 만큼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언제나 그 행복이 곧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다가 남편 마음이 떠나면 쿨하게 보내주고 죽어버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공부하는 남편을 따라 미국에 오게 되었습니다. 첫애를 출산하고 우울증이 깊어졌던 것 같습니다. 평상시에 괜찮다가도 주기적으로 어느 순간 갑자기 모든 것이 다운되면서 아이는 팽개쳐 둔채 방에 들어가 꺽꺽거리며 죽고 싶다고 기도하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를 통제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소리지르거나, 심지어 손찌검까지 했습니다. 아이가 보는 앞이니 나중에 얘기하자는 남편 말을 무시하고 정말 미친 사람처럼 소리지르면서 남편에게 달려 들고 물건을 집어던졌습니다. 이렇게 쓰니 정말 미친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다른 외부사람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미국에서 한인교회도 정상적으로 다니고 구역예배도 즐겁게 드리고 …평상시에는 정말 괜찮았거든요. 

그러는 와중에도 항상 신앙의 갈급함은 있어서 성경도 꾸준히 읽었고, 여성 성경공부에도 꾸준히 참석하였습니다. 방언(이하 영언/靈言)에 대한 갈망도 막연하게나마 있어서 영언하시는 예수전도단 선교사님께 기도를 부탁하여 기도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영언은 나오지 않았는데, 선교사님은 제가 이미 받았다며 집에서 혼자 해 보라고 하셨죠. 집에서 혼자 해 봤지만 역시 안되어서 포기했습니다. 그 후에 우연치 않게 김우현 감독의 '하늘의 언어'를 읽고 열망이 완전히 커져서 그 책에 나온 대로 기도하고 영언을 시도했습니다. 그 책에 써진 대로 영어로 기도도 해 보고, 할렐루야도 반복해 보고 하다가 그냥 쭉 기도했는데, 랄랄라 하고 영언이 처음 나왔습니다. 그냥 난 원래 기도하던 대로 한국말로 기도하는데, 내 입술은 그냥 랄랄라라고 말이 계속 나왔습니다. 

처음엔 신기해서 계속했지만, 할수록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냥 내가 말을 지어 내고 있다는 인상이 너무 강했습니다. 그래서 방언기도 처음 해 주셨던 선교사님을 만나서 방언이 맞는지 확인 기도를 받고 또 우연히 영언해석 은사자 한 분이 교회를 방문하셔서 그 분께 제 영언이 진짜 영언 맞냐고 여쭤보고 해석까지 받았습니다. 만나게 되는 영언자들마다 찾아가 '이게 진짜 방언인가요?' 하고 여쭤 보았는데 다들 맞다고 대답하셨지만 도저히 제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몇 달 하면 영언이 언어로 바뀐다길래 몇 달을 인내심을 갖고 해 봤지만 중국어나 영어나 불어나 러시아어 등의 어떤 나라의 '언어'가 나올 리 만무했지요. (저는 그때까지도 영언은 외국 말로 나오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으니까요. 세계지도를 펴고 이 나라를 보면서 기도하면 그 나라의 방언으로, 저 나라를 보며 기도하면 그 나라의 방언으로 바뀐다는 식의 간증이 많았으니까요.) 그래서 처음엔 뭔가 헛구역질이라던가 어떤 증상을 기대하면서 영언을 열심히 했지만 아무 것도 바뀌는 것이 없는 것 같아 조금은 시들해졌었습니다. 그렇게 영언을 일 년여를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친구랑 이메일로 성경공부를 하기로 했습니다. 누가 누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둘 다 똑 같은 본문을 하루 하루 보고 깨달은 것을 나누자는 수준이었죠. 큐티 식으로 억지로 말씀을 적용하는 것에 염증과 한계를 둘 다 똑같이 느끼고 있었던 터라, 그저 순수하게 말씀을 공부하자는 의도였습니다. 

처음 정한 책이 로마서였습니다. 로마서에서 계속 반복되는 구절 "(NLT) made right with God"의 의미와 믿음에 관해 생각하고 그에 관해 계속 친구와 얘기를 주고 받다가… 그 순간이 왔습니다. 
정말 내가 하나님 앞에 의인이라는 것이 믿어지는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정말 나를 위해 흘리셨음이 믿어지던 그 순간. - 그 다음 순간 회개가 터져나왔습니다. 그것도 그동안 계속 쓰지 않고 있던 영언으로. 항상 속에 부모님께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기에 용서한다는 기도만 했던 저였는데,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겼던 저를 회개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을 부끄러워하고, 학력이 낮으신 어머니를 부끄러워 하고, 이혼 후 산후 도우미를 하시는 어머니를, 파산하신 아버지를 부끄러워하는 제 모습이 얼마나 얼마나 회개가 되던지요. 영언이 정말 터져나왔습니다. 의심이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정말 정신 없이 영언기도를 했습니다. 

그 날 이후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란 말이 진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의례적으로 쓰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판에 박힌 말이라고 생각했던 그 단어를 제 입으로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그 기쁨과 감격 때문에 이젠 전에 좋아하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봐도 시시하고, 그 좋아 했던 만화를 봐도 재미가 없었습니다. 오직 성경말씀만이 재미있어서, 몇 날 며칠이고 성경책만 들여다 보았습니다. 제 일생을 지배하던 마음의 공허감과 허무, 외로움까지 싹 없어졌습니다. 정말 며칠동안 방방 뛰며 만나는 사람마다 구원의 기쁨에 대해, 그 감사와 감격에 대해 말하고 다녔습니다. "기쁨에 겹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그 때 처음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 후 약 3년이 지났습니다만, 이제는 감정적으로 다운되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쁩니다. 나를 태어나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게 주신 하루 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나를 여전히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매일 매일 새롭습니다. 이 말들… 이 고백들…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사실 언제 구원받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래도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했던 어릴 때였는지, 회개가 동반되었던 그 기쁨과 감격의 순간이었는지… 

하지만 이제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 간증을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구원의 확신이 없어서 불안해지지는 않습니다. 정말 3년동안 단 한 번도 구원의 확신을 빼앗긴 적이 없습니다. 또 이전에는 천국에 딱히 가고 싶다기보다는 지옥에 갈까 봐 무서워 두려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었었는데, 이제는 상급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부활의 그 날을 소망하며 믿고 있습니다. 두려움의 신앙에서 부활 신앙으로 싹 바뀌었지요. 

제 간증은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