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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제임즈왕역(KJV) 성경

죽여 매달았나 매달아 죽였나?(KJV 졸역2)

    제임즈 1세에게 KJV를 바치는 번역팀



죽여 매달았나, 매달아 죽였나?

-KJV의 졸역 사례: 행 5'30; 10'39  




김삼



  "The God of our fathers raised up Jesus, whom ye slew and hanged on a tree."(Act. 5:30)


제임즈 왕 성경(KJV)은 신약 (사도)행전 5'30을 위와 같이 번역해 놓았다. 

이 문장을 현대 영어식으로 번역한다면, 이런 뜻이 된다:


   "우리 선조들의 하나님은 예수님 곧, 여러분이 죽여 나무에 매단 그 분을 일으키셨습니다."   


독자는 위 문장의 문제점을 보는가? 죽여서 나무에 매달았다고 함으로써, 자칫, 먼저 죽인 뒤에 비로소 나무(형주/십자가) 위에 매달았다는 뜻이 되어버린다. 

물론 친 KJV파 진영에서는 이에 대한 적극적인 변호를 시도한다: 

본래 그런(즉 시간적 선후 관계의) 뜻으로 접속사 and를 넣은 게 아니라고. 

다만 예수님의 죽음과 십자가 처형이 거의 동시적 사건이었기 때문에 and로 표시한 것이라고. 

그래서 [and...then...]과는 구분해야 한다고..말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그들 주장에 따르면, 결국 이대로의 KJV가 완전한 것인가? KJV은 전혀 고치지 않고도(하나라도 고치면 그들 말마따나 '변개'가 될 것이다. 실제로 초판 이후 여러 번 변개돼왔지만..) 1611년 초판 그대로 영원히 완전한가? 아마 그들은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고치지 않고 이대로라면, KJV는 결코 완전하지 않다! (최초원문 외에) 다른 모든 성경과 마찬가지로 불완전하다! 도토리 키재기인 것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특히 다른 수많은 현대역 성경들이 훨씬 보기에 더 낫다. 오해도 없고. 

그 이유를 말하련다. 우선 신약 그리스어 원문엔 'and'에 해당하는 접속사 '카이'가 없다. 그들이 KJV와 함께 "완전하다"고 상찬해온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 로테르다무스의 TR(수용원문)의 이 구절은 다음과 같다:


   ὁ θεὸς τῶν πατέρων ἡμῶν ἤγειρεν Ἰησοῦν ὃν ὑμεῖς διεχειρίσασθε κρεμάσαντες ἐπὶ ξύλου·  

  (호 테오스 톤 파테론 헤몬 에게이렌 예순 혼 휘메이스 디에케이리사스테 크레마산테스 에피 크쉴루)


여기 '카이'라는 접속사가 보이는가? 없다! 그러므로 당초 말도 안 되는 'and'를 넣어 가운데를 띄울 것이 아니라 '크레마산테스'(매달아서)라는 과거분사(!)를 직설법 과거인 '죽였던'과 직접 연계시켜, 분사구문으로 만들면서 옮겼어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The God of our fathers raised up Jesus, whom ye slew, hanging him on a tree. (2000 Jubilee Bible)

   The God of our fathers raised up Jesus, whom ye slew, hanging him on a tree. (English Revised Version)



그런데.. KJV는 후반이 거의 똑 같은 구절인 행 10'39b에서도 똑 같이 번역했음을 본다. 


   And we are witnesses of all things which he did both in the land of the Jews, and in Jerusalem; whom they slew and hanged on a tree:


역시 내적/시간적으로 혼동된 순서이다. 이 역시 시간차보다 원문의 어순을 따른 셈이다. 


   καὶ ἡμεῖς ἐσμεν μάρτυρες πάντων ὧν ἐποίησεν ἔν τε τῇ χώρᾳ τῶν Ἰουδαίων καὶ ἐν Ἰερουσαλήμ ὃν ἀνεῖλον κρεμάσαντες ἐπὶ ξύλου.


그런 반면 KJV의 행 2'23은 이렇게 되어 있다. 


   Him, being delivered by the determinate counsel and foreknowledge of God, ye have taken, and by wicked hands have crucified and slain:


   "...여러분이 데려가서 악한 손길들을 통해 못박아 죽였으나..." 


즉 순서가 제대로 되어 있다. 원문의 어순도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상을 보면, KJV 번역팀은 시간적 순서보다 원문의 어순을 더 중시하여 곧이 곧대로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런 직역이 원문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방법은 원문의 어순도 살리고 시간적 선후관계도 살린 다른 번역들보다 훨씬 혼동스럽고 실감도 덜한, 부족한 옮김이다! 


KJV 역자들은 그리스 낱말의 어순대로 옮겨 버리면서 사이에 본디 없던 접속사까지 넣어버렸다![각주:1] 단순과거(aorist)와 과거분사(aorist particle)라는 차이를 보지 않고 말이다. 과거분사를 보면, 내적/시간적인 앞뒤 곧 전후순서도 봐야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번역팀은 왜 그러지 않았을까? 

제대로 (시간적) 선행 순서를 따진다면 오히려 "whom ye slew and hanged on a tree." 대신 "whom ye hanged on a tree and slew"가 되어야 맞을 것이다. [바로 국제표준역/ISB, 아람어일반영역(ABPE), 하나님의말씀역(GWT)이 그런 식으로 했다: 


   "They hung him on a tree and killed him"(ISB). 

   "...hanged him on a tree and murdered him".(ABPE)

   "...hung him on a cross and killed him"(GWT)



그런데 KJV는 앞서 왜 미리 이렇게 안 했을까? 전례를 따랐기 때문이다! KJV보다 한참 앞서 출판된 틴데일 역(1534년)과, 1540년의 '대(大)성경'(GB)도 위 두 절을 이와 같이 번역했다. 또 루터의 독일어 성경 역시 (and에 해당하는 독일어 und를 넣어) 그렇게 옮겼다. 그런데 (칼뱅의 영어권 추종자들이 만든) 제네바 바이블(GB)의 경우는 5'30은 KJV처럼 했으나, 10'39은 "whom they slew, hanging him on a tree"로 했다. KJV는 왜 이왕이면, 이 후자를 따르지 않았을까? 역시 5'30처럼 원문 어순을 따르는 게 더 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주교성경(BB, 1568)은 5'30은 KJV처럼 하고도, 10'39은 "whome they slue, when they had hanged him on a tree"로 했다. 


즉 KJV는 이 모든 성경의 전철을 밟으면서(?), 유독 GB와 BB의 10'39 해석을 따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뜨는 물음은 GB나 BB는 왜 똑 같은 원문을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하여 서로 다르게 번역했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연대적으로는 같은 날 사건이었어도 시간적으로는 죽음과 나무에 매닮의 순서를 달리 하는 것이 혼동을 피하고 훨씬 더 나을 수도 있다고 한 켠으로 느꼈음을 가리킨다! 그래서 필자는 이 두 성경의 행 5'30과 10'39의 역자가 각각 서로 달랐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KJV의 이 혼동스런 전철을 그 후의 다른 여러 후배 성경이 아직까지 줄기차게 꾸준히 따르고 있다! 그러면서도 행 2'32는 시간적인 내적 순서를 그대로 따랐다. 이것은 이 역본 역자들이 전철을 따르기만 할 뿐, 유연성과 융통성이 없다는 뜻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일종의 권위주의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노아 웹스터가 펴낸 1833년판 KJV도 초기와 바뀌지 않았고, 현대역인 King James 2000 Bible과 American King James Version 등 KJV 계열이 모두 바꾸지 않고 "whom they slew and hanged on a tree"로 했다. 

왜 현대인들의 혼동을 자아내면서까지 꼭 이래야 하는 것일까? KJV의 전철을 밟는 것이 '완전한 성경'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해서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번역판 성경들은 시간적 선후행에 혼동이 없도록 다들 더 잘 번역되었다. 심지어 여호와의증인들이 만든 '신세계역'(NWT)이나 소위 '지방교회(TLC)'가 만든 '회복역'(RV) 등 문제집단들의 성경도 이 두 구절이 KJV보다는 더 낫게 되어 있다. 


그만큼 KJV는 혼동을 자아낸다. 아무리 친 KJV 진영이 그런 혼동이 '없다'고 주장해도 말이다. 현대인들에게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KJV 계열 성경들은 현대인들의 어법과 문화를 존중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겐, 현대인에 대한 친근감보다 권위가 더 중요한 모양이다. 



KJV가 고집한 어순을 따르지 않은 한글판 KJV 


흥미로운 것은 한글판 KJV들의 경우이다.

정동수, 이송오 씨의 한글판 KJV들은 각각 이렇게 되어 있다: 


   "너희가 나무 위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께서 일으키시고"(킹제임스 흠정역 개정판)

   "너희가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살리셨느니라"(한글 킹제임스)


이 두 성경 다 TR과 KJV의 어순을 따르지 않고 있다! 내적인 시간상 선후를 고려하여 다른 성경과 다름없이 옮긴 것이다. 그래서 한글개역, 개정판 등과 거의 다름없이 되어 있다. 


만약 이들이 자기네 오리지널인 KJV의 어순을 더 존중한다면 이렇게 옮겼어야 했다. 


   "너희가 죽였던(,) 또한 나무에 매달았던.." 


TR의 어순을 존중한 KJV의 어순이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두 한글판 KJV는 영어 원문에 그다지 충실하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들 나름의 해명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일종의 위선마저도 느껴진다. 말투나 어휘까지도 너무나 한글개역, 한글개정판과 비슷하면서도(사실 본떴다!) 짐짓 차별화를 하고 있는 품이 그렇다는 것이다. 속으로는 '마귀의 성경'인 양 철저히 단죄하면서도 말이다.   


간추린다. KJV가 아무리 우수하고 우월하고 심지어 완전하다고까지 주장들 하지만, 행전 5'30, 10'39의 번역은 과거와 과거분사와를 구분하지 않아 시간적/내적으로 선후행이 혼동스러운, 오히려 시간적 차서가 도치된 듯한 번역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KJV 한글판들은 여타 번역처럼 혼동을 피하느라고 했다. 


아마도 KJV 옹호 진영은 "아니 KJV 번역팀이 그래도 대학자들인데, 아무렴 당신만 못했겠소?" 할 지도 모른다. 실은.. 나도 바로 그 점이 이상하다는 것이다! 


KJV의 이런 모순된 번역이 이밖에도 너무나 많아(!), 앞으로도 계속 조금씩 다룰 생각이다.  



  1. 이렇게 말하면, KJV 옹호측은 NASB나 NIV 등 일부 딴 번역들은 왜 원문에도 없는 'by'를 넣었냐고 응수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영어에서 그 정도는 자연스런 것이다. KJV의 부자연스런 'and'보다는 훨씬 낫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