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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기타

조너턴 칸과 '더 하빈저'(1)





조너턴 칸과 '더 하빈저'





[글 도중, 등댓길연구회(LHR) 돔브로스키 대표 등의 통찰을 일부 인용함 ] 



조너턴 칸(Jonathan Cahn 요나단 칸 / 조나단 칸 / 조너던 칸 / 조너선 칸 등으로 호칭됨)은 검은 털북숭이 얼굴로 유명한 미국의 유대교 라삐(선생/교사 영어: 래바이) 겸 일종의 예언자로, 예슈아 하 모쉬앟(예수 크리스토)를 참 메시아로 믿는 '메시아닠 유대계' 지도자의 한 명입니다. 그의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인 소설 '더 하빈저(the Harbinger : 선구자 또는 전조라는 뜻)'는 미국의 미래에 관한 긴박한 경고를 담은 핔션입니다. 


왜 긴박한 경고를 하필 넌핔션이 아닌 핔션에 담았을까요? 주 재료인 성경을 작가가 좀 더 맘껏, 자유분방하게 "예언적으로" 해석하기 위함이 아닌가(?) 싶네요. 베스트셀러 덕분인지, 칸은 미국 교계, 특히 복음주의권에서 상당히 인기가 높아서, 여기저기 자주 초청 받아 다니는 인물입니다. '기독교 시리즈' 핔션물 '뒤에 남다(Left Behind)'처럼 내용상 예언적이거나 종말론적인 이야기를 풀어감에 있어, 퍀트도 아니면서 퍀트를 믹스해서 리앨리티를 최대한 구현하는 방식으로 핔션이 활용되고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현재 비평중인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네요.  


칸은 예샤야후(이사야)서 9'10에 근거하여, 미국을 고대의 이스라엘에 빗대어, 9.11 테러 참사와 잇따른 사건들을 미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그에 따른 멸망 정도로 해석합니다. 그는 "하나님은 한 나라를 심판하시기 전, 경고를 보내신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회개로 응하지 않고 외려 반항으로 응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예샤야후 9장에서 9가지 '징조'(harbingers)를 도출해 냅니다. 그것들을 다 나열하고 싶진 않네요. 



성구 예샤야후(이) 9'10 


여기서 핵심 구절이라는 9'10을 좀 보죠. 


"(에프라임과 쇼므론[각주:1]이 대표하는 이스라엘이 말하길) '벽돌들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들로 되쌓고, 뽕나무들이 찍(혀 넘어지)히면, 우리는 백향목으로 대신하리' 하네"(사역)


칸이 이 구절을 굳이 붙잡은 이유는 한 가지. 소설에서도 밝혀지는 대로, 9.11 테러 다음 날인 12일, 탐 대슐 연방의회 공화당 원내총무가 이 성구를 인용하면서 "(WTC, 곧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을) 재건립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실제 인물이 실제로 한 말입니다. 

그런데 실수(?)인지, 고의(?)인지, 대슐은 이 구절을 오해했습니다. 저 성구는, 하나님이 죄 많은 이스라엘-에프라임과 쇼므론(사마리아)의 오만한 행동이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한 말씀인데, 대슐은 착각(?)하여 바로 오만한 행동을 "뉘우치겠다"가 아니라 "재건하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닌 게 아니라 세계무역센터가 무너진 현장에는 2018년 완공예정으로 '프리덤 타워'가 건립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옛 쌍둥이 건물은 완공에 3년 남짓 걸렸지만, 그보다 28층 낮은 프리덤 타워는 설계하는 데만 무려 5년 걸렸습니다. 결국 예샤야후의 예언대로 돼 가는 셈일까요? 


지금 칸이 이 성구를 물고 늘어지는 이유는, 무너지고 찍혀 쓰러진다는 대목과 9.11 테러참사로 무너져 내린 '11형'의 WTC 건물을 빗대려는 의도일 터입니다. 그런데 왠지 제 느낌으로는, 칸이 이 9들을 "9멍 뚫린 9슬"처럼 다 한데 꿰어 999라고 나열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또 비록 대슐에게 힌트를 빌리긴 했지만, 9.11에 대비해 굳이 성구 9'10을 갖다 대는 것도 그렇습니다. 칸 라삐는 혹시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에 밝은 오컬티스트는 아닐까요?[각주:2] 


아무튼 칸은 이런 소설 배경을 갖고 미스터리의 가상인물인 '예언자'가 주인공인 제자 '누리엘'에게 다양한 '섭리'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줄거리를 이끌어갑니다. 칸은 대슐 의원이 "우리는 재건할 것입니다."라고 다짐한 말을 '오만한 서원'이라고 단죄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칸은 또 "우리는 재건할 것이다"라는 이 세 낱말을 입에 담는 사람들은-오바마와 언론을 비롯-누구나 "오만한 서원"의 죄를 지었다고 주장합니다. 



시대착오적 예언


데이비드 오워나 여타 아프리카 교계 '예언가'들처럼 칸도 '회개'를 많이 강조하고, 미국을 상대로 집단 회개 메시지와 경고를 뿌리곤 합니다. 그러나 오워 비평에서도 비쳤듯, 나라에 대한 집단회개 메시지 같은 것은 구약적 상황 아래의 신국(神國/theocracy)이 아닌 이상, 이젠 더 적용되지를 않지요. 현대 미국에 대한 '회개'를 외친다고 비신자들이 거기 응하여 물밀 듯 회개해 올까요? 과거 이스라엘 때는 통할 수 있었지만요. 사실 역사를 보면, 수많은 선지자들을 모셨던 이스라엘-유다 사람들조차도 끝내 좀체 회개를 하지 않았지요. 그래서 나라가 망했던 게 아닙니까.


칸이 회개를 외친다고 회개할 미국이 아니라는 거죠. 시대착오적 발상입니다. 미국이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신국도 아닌데 말입니다. 미국을 '지상의 하나님 나라', '기독교국가'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날이 더 심각하게 타락해 가는 미국의 상황을 좀 면밀히 살펴보고난 연후에야 입을 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특히 (고) C. P. 왝너가 이끌던 신사도개혁운동권(NAR)에 속한 소위 '신사도'들은 구약성경의 다양한 부분을 곁들여가며 '예언'이라는 것을 남발하는데, 영 신약적/복음적이 못 됩니다. 과거에도 오순절교의 지미 스왜걽, (고)데이빋 윌커슨 등이 대의적인 내용의 예언인가를 하곤 했는데, 과연 그런 구약적 예언이 오늘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네요. 


사도 서신서에 따르면, 신약시대인 현대 교회를 포함한 온 교회를 향한 예언들이 주된 내용이며, 세상을 향한 미래적 예언은 이미 성경에 차고 넘치지요. 세상을 향해 아무리 '예언'이란 걸 해 봤자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예언할 게 아니라, 성경의 명령 그대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세상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황당한 미래 종말 예언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님과 화해시켜 잃은 영혼들을 살릴 그 복음인 것이죠.


칸은 유대인답게 숫자에 집착합니다. 그래서 7이란 수에 연연하다가 2008년 9월의 증권시장의 7% 폭락이 정확하게 9.11 사태 7년 후임을 발견하고 777이란 수를 나열합니다. 이런 게 예언일까요, 예언분석일까요, 영적인 통찰일까요, 미신일까요, 오컬트에 관련된 수비학일까요, 아니면 숫자놀음일까요? 


그래도 일부 '복음주의자'들은 칸을 우습게 봐선 "안 된다"고 경고합니다. 메시아닠 라삐인 그가 성경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갖고 있다는 주장과 함께. 따라서 그를 함부로 비판하면 거의 신모독 수준 또는 반셈주의(반유대주의)로 취급받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칸이 분별과 검증을 초월할 순 없죠. 그 누구도, 그 어떤 영도 분별의 대상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사탄과 그의 졸개인 악령들은 빛난 천사, 심지어 '예수'의 모습으로도 위장하고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죠. 


과연 9.11 사건이 미국에 대한 심판일까요? 그렇다면 그 전후에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 역시 모두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 수 있지 않나요? 유독 9.11만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증거가 어디 있나요. 그렇다면 6.25 한국 전쟁도 한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데이빋 돔브로스키(등댓길연구회/LHR 대표)가 지적했듯, 1970년대에 데이빋 윌커슨은 미국에 임박한 '심판' 경고를 한 대표적인 종말 예언자였죠. 그의 책 '그대 입에 나팔을 대라'에서 그는 러시아가 북극 하늘로 미국에 미사일을 계속 발사하리라고 내다봤습니다만, 그런 사건은 미래에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가능태의 하나일 뿐이지요. 지금 북한은 미국을 염두에 두고 연신 거대 미사일 실험을 반복하고 있지 않나요. 


그건 그렇다 치고, 칸은 책 '하빈저'에서 하나님이 고대 이스라엘처럼 미국과도 '언약'을 맺으셨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언약 말인가요? 여기서 우리는 칸이 수많은 신사도식 예언가와 별 차이 없는 얘기를 하고 있음을 간파하게 됩니다. 


돔브로스키의 말마따나, 우리는 하나님이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신 것 같은 사건을 미국 역사 속에서 발견할 수 없습니다. 본 필자인 블로거도 미국사를 연구해 봤지만, 하나님은 히브리 민족과 맺은 언약 같은 언약을 미국 건국 선조들과 맺은 적이 없습니다. 칸이나 미국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해석하든 말입니다. 


칸은 미 건국 선조인 필그림들을 은근히 히브리 민족 같은 존재로 부각시키면서 곧장 조지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이 됐을 때, 실제적인 '언약'이 이뤄졌다고 유추합니다.   

칸의 발상에 따른다면, 프리메이슨 주요 명사인 조지 워싱턴이, 프리메이슨 라지의 성경에 손을 얹은 채, 프리메이슨인 롸벑 리빙스턴이 메이슨 식 의례를 진행했을 때, '언약'이 봉인돼 굳혀졌다(sealed)는 얘기가 됩니다. 그게 어떻게 성경적인 언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상한 미 건국사


미국 역사의 뒤안길을 들여다 보면 묘한 얘기들이 많습니다. 예컨대, 1776년 7월 4일 독립선언서에 서명을 할 당시, 자칫하다간 영국왕의 서슬 시퍼런 칼날을 목에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탓에 모두들 서명을 망서리고 있는데, 거기 배석해 있던 '교수'(the Professor)라는 사람이 일어나 명연설을 한 뒤 모두들 감동받아 서명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실제 역사로는 이렇다 할, 남은 기록이 없습니다. 

 

일각에서 "미 건국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그 '교수'는 유렆의 이름난 자유사상가이자 자유여행가인 생제르멩 백작(Comte de Saint Germain)이었답니다. 세계 곳곳을 싸돌아다니며 '신출귀몰'하는 홍길동 같은 이 남자는 일종의 마술사인 오컬트의 대가로 연금술사/작곡가이기도 했지만, 프리메이슨과 장미십자단 같은 비밀집단과도 과히 멀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생제르멩은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및 셰익스피어가 환생한 존재라는 설도 있습니다. 생제르멩은 메이슨 사상가인 마담 블라바츠키, 앨리스 베일리, 맨리 홀 등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특히 홀은 그의 책을 골고루 읽고, 그를 자신의 정신적 멘토로 삼았습니다. 아무튼 생제르멩은 출생해 살아있다가 죽은, 실존 인물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각주:3]


하나님이 건국 당대의 미국과 언약을 맺으셨다면, 이런 자들도 언약의 일부였다는 말일까요? 

하나님이 왜 이런 부정한 자들과 언약을 맺으려고 하실까요?



워싱턴에 관한 많은 일화와 야담도 많지만, 그가 한 겨울에 미 독립군을 이끌고 종주국인 영국군과 격전을 치르던 차, 밸리 포지에서 머물던 중 홀로 기도를 하면서 예언적 환상을 봤다는 설이 있어왔지요. 이 예언적 환상은 모두 구전과 낭설에 근거한 것일 뿐,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문서로 입증된 바가 없습니다. 설령 그가 실제로 이 환상을 봤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님이 그 분의 천사를 통해 주신 그런 계시적 환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묘하게도 워싱턴이 이 비전 속에서 가장 먼저 "본" 대상은 너무나 예쁜 여성 천사였다네요. 여지없이 비성경적이죠! 그런데도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가 "봤다"는 이 비전을 미국에 관해 성령께서 주신 참된 계시인 양 믿고 있으니, 참 안타깝네요. 


이런 요소들이 하나님과 미국 사이의 영적, 계시적 언약의 배경이 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하기엔 정말 이상하죠. 다만 1620년 필그림들이 타고 가던 '메이플라워'에서 신자들과 비신자 사이에 체결된, 향후 상륙할 신대륙에서 어떻게 나라를 이러갈지에 대한 일종의 언약(Mayflower Compact)은 있었다지만. 

그러므로 '더 하빈저'에서 칸이 주장한 신(神)계약설은 그의 착각이거나 거짓말입니다. 


칸은 또 예샤야후 9'10에 근거하여 앞날에 (자기 같은 '예언자'의 말을 듣고?) 미국 전체의 회개가 있을 것처럼 주장하지만, 사실 이 성구 앞뒤의 문맥을 보면(예샤=이 9'1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진정 회개한 적도 없고, 앞으로 회개하지도 않을 것으로 아신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이 또한 맞아들지 않는 요소입니다. 



회개하라? 


칸이나 오워 같은 사람은 늘 거국적 차원의 회개와 한 나라 교계 차원의 회개를 외치곤 하는데, 물론 누구나 회개는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 분의 보혈과 의를 믿고 회개하는 것 아닌가요? 사실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로서는 그 누구에게 회개하라고 외치기보다 자기 자신부터 매일 매 순간 회개해야 함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보좌를 바라본 예샤야후에게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먼저 하신 일은 그의 입술을 제단의 숯불로 태워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신약시대에 구약적인 회개 메시지를 설파하는 사람들 자신이 그 누구보다 먼저 죄를 뉘우쳐야 할 사람들이라는 말이죠. 남에게 회개를 요구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마냥 거룩하다고 하기가 어려울 터입니다. 걸핏하면 남에게 회개를 요구해 놓고 자신이 회개하지 않는 것보다 더 큰 위선과 죄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남의 눈의 티보다 내 눈의 들보를 찾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회개하라"고 선포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누구, 남의 죄를 찾기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봐야 할 일입니다.  


교계 검증가 베리트 키오스에 따르면, 칸은 (몰몬교도인 언론인) 글렌 베크에게 말하기를 '하빈저'에서 이 9가지 징조들이 지난 2500년간 모든 것 배후에 숨은 미스터리라고 말했답니다. 모든 것 뒤에 숨은 미스터리? 여기서 우리는 칸이 일종의 미스팈 즉 신비주의자임을 느끼게 됩니다. 

칸은 2016년 4월 미연방의회의 한 기도모임에서 행한 연설에서 인류역사상 오직 두 문명만 하나님의 부르심과 목적이라는 유일한 토대 위에 존재하게 됐다며 그 이스라엘과 미국(헐~!)이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미국이 정말 하나님의 부르심과 목적이라는 유일한 토대 위에 존재하게 된 나라일까요? 


미연방 대법원의 동성혼 합법화 판결과 백악관이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갯빛 조명으로 축하하며 화답한 데 대해 "당신네는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이 세우신 결혼법에 도전했는가?"라는 식으로 돌직구를 날린 칸의 그날 연설은 매우 용감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언덕 위의 도시'(산 위의 동네)라는 주장은 예수님이 하신 순수한 말씀을 왜곡하여 끼어 맞춘 것입니다. 청교도들이 건국에 관여하긴 했지만, 동시에 오컬트와 비밀집단이 추구해온 바 사라진 고대 '아틀란티스' 대륙의 부활체로서 일어나려고 한 미국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그 언덕 위의 빛난 도시일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칸이 10명의 연사중 한 명으로 초청받아 연설한 그날 행사는 '워싱턴-기도의 사람'(Washington, Man of Prayer)이라는 모임이었습니다. 연방의사당 안의, 역대 대통령의 조상(彫像)들이 즐비하게 놓인 스태추에리 홀에서 열리는 이 모임은 4년 전부터 시작된 연방의회 연례 행사로, 2016년의 경우,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취임 227주년을 기념하는 이벤트였습니다. 1789년 4월 30일 워싱턴이 세인트폴 채플에서 하나님께 미국을 대표하여 헌정하는 행사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저라면, 그런 초청에 응하지도 않을 뿐더러 참석하지도 않을 터입니다. 아니, 자타가 다 공인한 프리메이슨이었던 워싱턴이 어떻게 참 기도의 사람일 수가 있는지요? 설령 그가 기도를 한 사람이었다고 해도, 그 기도는 절대로 성경의 그 하나님께 한 기도일 수가 없고 또한 당연히 상달(上達)되지도, 응답되지도 않을 기도입니다. 만약 그가 정녕 기도의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면, 프리메이슨리도 기독교요, 메이슨도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전설 아닌 실제의 워싱턴


당대인들[각주:4]의 증언에 따르면, 워싱턴은 성찬에도 전혀 참여치 않을 뿐더러 무릎 꿇기를 늘 거부했고, 무릎을 꿇느니 차라리 뻣뻣이 선 채로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기도의 사람이라면 무릎 꿇기는 기본입니다. 기도의 기본이 안 된 사람이 어떻게 기도의 사람입니까? 따라서 워싱턴이 밸리 포지의 숲속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의 옛적 그림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고 인상을 남기기 위한 상상화에 불과합니다.


워싱턴이 하루 두 시간 성경책을 놓고 기도했다는 말을 워싱턴의 조카이자 개인비서였던 롸벑 루이스가 편지에 썼다고 하나, 전혀 객관적이지 못합니다. 퀘이커 교도인 농부, 아이쟄 파츠라는 사람이 워싱턴이 밸리 포지 숲에서 무릎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봤다는 야담도 있어왔으나 워싱턴이 거기 있던 1777년 겨울, 파츠는 그 근처에 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싱턴이 "무릎 꿇고" 기도했다는 '미국판 겥세마네'의 밸리 포지 전설과 그가 봤다는 밸리 포지 '비전'은 모두 역사적 사실인 양 미화되어 이 영웅의 신격화에 쓰이고 있으니, 실로 김일성의 백두산 영웅담과 뭐가 그리 크게 다를 바 있는지요? 


워싱턴은 미국 메이슨들에겐 건국신과 같은 존재입니다. 미국을 기독교국가 또는 절반 기독교국가처럼 보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그네들 나름의 '건국 신화'를 우리가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안 될 터입니다. 애버크롬비 신부는 워싱턴이 의식적으로 성찬식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사람들이 워싱턴이 크리스천이지 않냐는 물음에 그는 "워싱턴님은 자연신론자(deist)이십니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워싱턴의 목회자가 직접 전한 말입니다. 

성찬예식에 참여치 않는데 어찌 크리스천이라고 하겠습니까. 어떻게 신자가 동시에 자연신론자일 수 있나요?   



워싱턴을 훌륭한 애국가, 장군, 정치가로 묘사하는 것과 성자로 받드는 것과는 별개의 사안입니다. 워싱턴이 어릴 때 자신이 도끼로 나무를 찍은 것을 아버지께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다는 '정직한 조지(honest George)' 야화도 어디까지나 누군가 꾸며낸 야화일 뿐 객관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퓰리처 상 역사부문에 선정된 미국역사가인 포레스트 맼다널드는 그가 역사적 근거에 의해 객관적으로 정확하게 본 조지 워싱턴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군인으로서 그는 곧 잘 실수가 많고, 경솔했으며 오판이 잦았다. 그는 도박중독자였고, 명백히 젊은 여성들과의 '계집질'에 상당히 능했으며, 부의 축적에 탐닉하는가 하면, 무시무시한 저주의 욕쟁이였고, 신 모독질도 일삼았다." 


조지 워싱턴 예찬론자들은 엉뚱한 필자를 미워하지 말길! 다름 아닌 미국 역사가들의 이야기이니까요. 워싱턴 당대 측근인들의 진술에 따르면, 워싱턴은 허영에 들떠 있어 허풍쟁이로 허세를 부리기 일쑤였고, 극단적으로 혈기를 부리는 타잎이었답니다. 공적으로는 완벽한 젠틀맨이었지만, 사생활에서는 실로 '도둑고양이' 같은 존재였다네요. 전쟁 중 무죄한 사람을 목 매달아 죽이거나 본인이 원한다 하여 사살하기도 했답니다. 


이래서 사람은 장단점을 봐야 하는 법이지요. 주님께서도 사람의 열매를 보고 그를 알라고 하셨지 않나요. 

그러므로 이런 행사에 신자라는 칸이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입니다. 또 거기서 한 연설은 사람 앞에는 어떤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상식적으로도, 참 크리스천과 거짓 크리스천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리 세상에 대고 경고를 하고 예언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1. 사마리아 [본문으로]
  2. 놀랍게도, 필자의 이 소견이 '억측' 아닌 "가능한 추정"이었음이 시리즈 2편에서 밝혀진다. [본문으로]
  3. 그가 작곡한 수많은 기악/성악 악곡들이 남아 있다. [본문으로]
  4. 그의 의붓손녀 일리노어(넬리) 파크 커스티스 루이스, 미국 성공회 펜실베이니어 대교구 초대 주교를 지낸 윌리엄 화이트 신부, 워싱턴의 목회자로 불리던 또 다른 당대의 성공회 사제, 제임즈 애버크롬비 박사 등.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