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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영화&드라마

'오두막'과 프랙탈

자신이 창조했다는 프랰탈 동산을 돌보는 '성령', 사라유.  -영화 '오두막(the Shack)'에서




오두막과 프랰탈



'오두막' 나름의 "다빈치코드" 하나는 프랙탈(fractal)이다. 


뉴에이지 비평가, 워런 스밑(워렌 스미스)은 자신의 뉴에이지 비평 책자에서, 윌리엄 폴 영의 소설 '오두막'에 '프랙탈(fractal)'이란 어휘가 나타나는 데 주목한다. 그렇게 되기까지 여성 연구가, 제니퍼 페킼의 도움이 컸다고도 밝혔다. 


'오두막'에서 이 낱말이 사용된 대목은 제 9 장(=머나먼 한 동산에서 아주 옛날에)에서, 주인공 맼이 오두막에서 자칭 "성령"이라는 아시아계 여성, '사라유'를 만났을 당시다. 여기서 사라유가 어떻게 이 동산을 창조했는지[각주:1] 설명되는데, 그 동산은 프랰탈이다! 


정원사, 동산지기이자 '성령'인 사라유는 맼에게 "프랰탈이란...단순하고 정연한 것으로 간주되는 무엇이다. 아무리 확대를 해 봐도 실상은 계속 반복되는 패턴으로 구성된 것이다. 프랰탈은 거의 무한히 복잡하다. 나는 프랰탈을 좋아하기에, 그것들을 어디에나 (뿌려)둔다."라고 설명한다. 


[ 즉 사라유는 여기서 자신이 창조주로서 만물 창조에 프랰탈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사라유(내지 저자)는 모순된 듯한 말을 한다. 즉 서두에서 "단순한 것으로 간주된다'고 해놓고 다시 "거의 무한히 복잡하다"고 말했다. 단순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사람들일 뿐, 창조주(?)인 사라유로서는 무한히 복잡하게 해 놓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 보기에 단순한 것도 창조주에겐 복잡해 뵌다는 뜻인가? 





'오두막'에서는 파파/예수/사라유를 성삼위로 설정했기에, 사라유가 창조주로서 참여한 것으로 나온다. 또 자신이 창조한 정원을 가꾸는 존재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것은 성경 속의 성령님의 개념과 전혀 다르다! 태초의 창조 때 성부 하나님이 창조의 주역이셨고, 성자님은 로고스, 창조의 말씀이셨으며, 성령께서는 수면의 깊음 위에 운행하고 계셨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프랰탈의 반복 개념도, 용어도 쓰실 필요 없이 그냥 전체 창조물을 말씀으로 지으셨다! 

이래서 오두막은 성경이 아니며, 성경과는 전혀 다르다. 즉 비성경적이고 뉴에이지적이라는 뜻이다. ]    


참고: https://www.wikiwand.com/en/Fractal

[* '프랰탈'이라는 말 자체는 프랑스 연구가/정치인인 브누아 망델브로가 1975년에 처음 쓴 말이다. '조각'이라는 뜻인 라틴어 프랔투스에서 파생시켰다. 그런데 그 개념은 수 백년 전부터 생각되고 논의돼 온 것이다. 그것을 훗날 뉴에이저들이 자기네 것으로 삼게 된다. ]


프랰탈은 사실 기하학이나 수학, 지리학, 미술, 패션, 컴퓨터, 디지털 그래픽.. 기타 다양한 분야에서 폭넓게 인식되고 활용돼온 개념이다. 그것은 단위라는 의미에서 세포 같은 개념이기도 하고, 무한반복과도 통한다. 프랙탈을 예시하는 대표적인 도형 하나가 시에르핀스키 삼각형(아래 그래픽)이다. 



한편, 페킼은 '오두막' 외에도 '탐구자(the Seeker)'라는 뉴에이지성 영화[각주:2]에서도, 오랜 시대에 걸쳐 감춰졌던 징표, 곧 침투해 들어오는 어둠과의 싸움을 도와줄 징표를 찾도록 선택된 사람인 소년이 찾는 그것이 실제로는 하나 하나 프랰탈이란 것을 발견하고, 이내 '오두막'에서 같은 용어가 사용됐음을 상기하게 된다. 즉 페킼은 '탐구자'와 '오두막'-두 소설의 공통점 하나가 프랙탈이며..결국 뉴에이지임을 발견한 것이다. 


페킼의 연구에 따르면, 뉴에이지 철학에서 '프랰털 이론' 또는 '카오스 이론'이라고 알려진 폭 넓게 보급된 신념이 있다. 뉴에이저들이 흔히 인용하는 말들 중 '위에서처럼 아래서도'(As above, so below)라는 유명한 오컬트 문구가 있다. (관상영성가) 유진 피터슨이 그의 '더 메시지' 성경에서 '주기도문' 부분에 수상쩍게 슬쩍 끼워넣은 문구이기도 하다.[각주:3] 


뉴에이지 운동(NAM)에서 이 문구와 '프랰털 이론'은 소우주와 대우주가 같다는 뜻으로 쓰인다. 우주는 신과 같다는 둥, 신은 사람과 같다는 둥, 사람은 세포와 같으며, 세포는 분자와 같다는 식이다. 

뉴에이저들은 또 '프랰털 이론' 또는 '위에서처럼..' 문구가 '에메럴드 태블맅(이하 에메랄드 판)'에서 왔다며, 이것은 전통적 마법과 현대적 마법 전체를 다 아우른다고 주장한다. 뉴에이지 철학에서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는 사람이 '위에서처럼 아래서도'를 에메럴드 판에다 비밀문자로 새겼다고 주장한다. 이 에메랄드 판은 서구 오컬트 세계에서 가장 높임받는 매직 문서의 하나이다. 트리스메기스투스의 말은 이랬다고 한다: "위에서처럼 아래서도. 밖에서처럼 안에서도. 우주에서처럼 영혼에도." 



유진 피터슨은 마치 '위에서처럼' 문구가 하늘에서 온 것인 양 거짓 주장을 한다. 그는 '주기도문'의 일부인 마태복음서 6'10에서 원문의 다음 부분을 나름 사역(邪譯!) 했다. 


원문: ..γενηθήτω τὸ θέλημά σου, ὡς ἐν οὐρανῷ καὶ ἐπὶ γῆς·

(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필자 私譯)


피터슨의 번안:


Do what’s best—

as above, so below.


가장 좋은 것을 행하소서 

위에서처럼 아래서도.


원문을 깡그리 무시한 점이나 지금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명령하는 것 같은 문구는 그렇다 치고, 위에서처럼 문구는 오컬티스트, 뉴에이저나 비밀집단 단원 등 웬만한 세속인들은 아는, 전형적인 오컬트 문구인데, 이것을 끌어다 쓴 심보는 과연 뭘까? 피터슨의 경건함은커녕 사특함을 여실히 드러낸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결국 피터슨은 참 크리스천도, 참 사역자도 아닌, 뉴에이저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뉴에이저들은 '위에서처럼 아래서도' 원리를 통해 신화적 인간들을 창출해내려고 한다. 그리고 오두막은 그 신화의 현주소의 하나이다. 


자, 이 문구가 얼마나 오컬팈하게 쓰이는지 실례를 보자.



'위에서처럼 아래서도' 개념이 쓰인 타로 카드이다. 타로카드는 오컬트 개념을 응용한 카드 게임이기도 하지만, 타로 점술에도 쓰인다. 양쪽 끝은 타로의 마귀 카드와 마법사 카드이다. 가운데는 같은 포즈를 취한 비틀즈 멤버 링고 스타. 




마돈나와 조지 워싱턴(프리메이슨) 조각상의 포즈




바포맽 그림. 오클라호마 사탄숭배자들이 그곳 주청사에 세우려고 했던 루키페르(루시퍼) 상





카빨라의 6각별은 '위에서처럼' 사상과 밀접한 연계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런 문구를 피터슨이 자기 '성경'인 '더 메시지'에 갖다 쓴 것이다. 



다음은 '영지주의 전사'라는 웹사이트에서 빌린 내용이다: 


오컬티스트에다 프리메이슨 사상가로 유명했던 맨리 홀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분자들의 신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우주의 구성분자인 신들의 분자들이기도 하다." [ 말장난 같지만, '위에서처럼 아래도'를 적용한 말이다.] 파파켈수스는 인간의 영은 우주에서, 혼은 행성에서, 몸은 구성분자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우주학자이자 오컬티스트였던 칼 세이건은 "우리는 별 같은 것들로 만들어졌다"고 말한 바 있다. 즉 불멸의 영혼은 하늘의 별들처럼 (뉴에이지적) 창조자에게 속했다는 뜻이다. 



여기서..이번엔 에메럴드 판이 뭔지 설명하고 지나가도록 하자. 에메랄드 판은 '타불라 스마라그디나'라고도 불린다. 실제 에메랄드 판이었다기보다 상징적인 개념이었을 것이다. 연금술에서 말하는 가장 처음 물질과 그것의 변질(transmutation)을 포함하는 것으로, 2~3세기 에짚트-그리스 지혜 문서의 하나로 추정되는 '헤르메티카'에 기록돼 있는데, 이 문서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Hermes Trismegistus)가 자기 제자를 깨우치려고 내용이란다. 바로 여기서 오컬트 비학의 일부인 헤르메틱스가 나왔다. 


관련 위키 자료에 따르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라는 인물/이름 자체가 그리스신 헤르메스와 에짚트 신 톹의 혼합개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헬레니즘 시대의 이짚트에 살았던 그리스인들은 헤르메스와 톹의 공통점을 느꼈다. 결국 두 신을 함께 숭배했는데, 그리스인들이 헤르모폴리스라고 부르던 켐누의 톹 신전에서 그렇게 했다.  


헤르메스와 톹 신 둘 다 기록의 신, 마법의 신들이다. 헤르메스는 해석과 통신의 신, 톹은 지혜의 신으로 둘이 함해서 점성술과 연금술의 수호신이 된다. 또한 둘 다 내세로 이끄는 '영혼 이끔이'(ψυχοπομπός=프쉬코폼포스) 신들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당대 이짚트인들이 헤르메스에 의한 42개의 "신성한 필수문서:가 있다는 주장을 했다. 


신플라톤주의 필자들은 바로 이 개념을 승계했다. 이 필수문서 속에는 헤르메스 종교신앙과 인생철학 등이 담겨있다고 하나 밀서로 알려져 있다. 20세기 오컬트 예언가인 에드거 케이시는 헤르메스/톹이 해저에 잠긴 아틀란티스 대륙의 공학자로, 이짚트 피라믿의 설계, 건축, 공사 감독을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헤르메티카에는 주문과 비학 가입 절차 등이 있고, 그중 '아스클레피우스'라는 대화에는 귀신들이나 천사의 영들을 조각상 속에 가두는 방법으로서 약초, 보석, 향 등을 썼다고 한다.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가 마지막 화신 후 이짚트를 여행한 시기는 이짚트의 최고 왕조 초기로 설정해 놓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일부 유대 마법 전통에서는 아브라함이 헤르메스의 신비학 일부를 획득했다는 황당설을 주장하기도 한다.   

카톨맄 신학의 대부로 알려지고, 칼뱅도 주권주의의 선구자로 열렬히 숭모한,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를 기독교의 도래를 내다본 이교도 현인이라고 추정한 바 있다. 글쎄다. 


고대문서라는 주장과 달리 내용은 아랍어로 쓰여져, 대부분 훨씬 후대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다. 이 14개 아랍어 문장은 훗날 영어, 라틴어 등으로 번역됐다. 만유인력설을 발표한 아이쟄 뉴턴은 이 문서를 번역해 자신의 연금술 문서에 삽입했다. 뉴턴은 과학자이기도 했으나 오컬티스트였다. 이 14개 문장에도 '위에서처럼 아래서도' 문구가 포함돼 있다. 

 

뉴에이지 사상에서 프랙탈론과 '위에서처럼 아래서도' 문구는 동의어이다. 둘 다 우주의 기원과 의미를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프랙탈론에서는, 우리가 자연의 큰 그림을 들여다 볼 때 작은 의식(consciousness)구조로부터 점점 더 크고 더 복잡한 의식구조로의, 의식 진화 과정을 겪게 된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의식하는 존재들은 계속 더 큰 스케일의 영역으로 진화하는 프랙탈과도 같다.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는 똑 같은 기본 패턴을 따르게 되는데, 의식의 각 단계에서 진화과정의 독특한 변화를 찾게 된다. 이 변화들은 바탕에 깔린 패턴 또는 프랙탈을 알지 못할할 경우 무한혼돈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 프랙탈이 기본 법칙이기 때문이다. 


뉴에이저들은, 각자가 찾을 대상-곧 기본 프랙탈 구조들-만 바로 안다면, 수많은 각각의 나무들 저 너머 바라보는 것과 실상 현재 바라보고 있는 게 곧 숲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결국 닮은꼴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것이 자연의 위대한 다양성 너머의 연합이란다. 

이상을 간추리면 '하느님/신'은 우리의 기원이자 우리의 목표물이고, 따라서 우리는 재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뉴에이지 운동의 핵심 신앙은 바로 "우리는 모두 신들이다"라는 사상이다.  

[ 이 프랙탈 개념은 에크핥 톨, 바브라 맑스 허버드, 앨리스 베일리 등 인기 높은 뉴에이저들이 모두 연관돼 있기도 하다.] 프랙탈 및 프랙탈론은 뉴에이지 사상의 중심 신념일 뿐더러 뉴에이지를 정의해주는 밑바탕이기도 하다. 뉴에이지에서는 우리가, 혼돈으로 대표되는 '물고기자리'*) 시대에서 "우리는 다 신들이다"라는 프랙탈 또는 자기실현으로 대표되는 물병자리 시대로 진화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  


'오두막'(영문판 138쪽)을 보면, 사라유가 맼에게, 맼이 '엉망(mess)'이라고 한 동산이 맼 자신의 영혼이라고 말해 주는 대목이 나온다. 사라유는 맼에게 말한다:

 "이 엉망상태가 바로 너야! 너와 나-우리 함께 네 맘 속의 목적을 갖고 일해 온 거지. 그건 와일드하고도 아름답고 (진화)과정도 완전해. 네게 이것은 엉망이지만 내겐 하나의 완전한 패턴이 살아서 떠오르고 자라는-리빙 프랙탈이야."  


'위에서처럼 아래서도'는 이 프랙탈과 본질상 같은 것이다. 그래서 '더 메시지'의 주기도 부분에서 이 문구를 쓴 피터슨은 '오두막'표지의  '오두막에 대한 님들의 언질'에다 이렇게 썼다. "한 작가의 상상과 한 신학자의 열정이 '교합'된 결과가 오두막이라는 소설이다." 그러나 사실은 성경적 세계관과 뉴에이지 세계관이 짬뽕된 결과일 터이다. 


제니퍼 페킼이 롸널드 밀러의 '위에서처럼 아래서도' 등의 책을 검토한 결과 확고히 내린 그녀의 총결론은 '오두막'이 뉴에이지 사상과 동양신비교로 가득차 있다는 사실이었다! 작가 윌리엄 폴 영이 분명 뉴에이지 사상에 깊이 영향을 받았다는 것. 


페킼의 그 다음 물음은 윌리엄 폴 영이 뉴에이지인가, 속임 당한 크리스천인가?라는 것이었다. 이에 관해 페킼은 영이 마리너 교회에서 행한 강연을 듣고 오두막을 읽은 결과 그의 메시지는 성경적인 정통 가르침이 아니라 기독교 용어로 덧씌운 뉴에이지 사상과 동양 신비주의임을 간파했다. 


변증가이자 이단비평가였던 (고)월터 마틴 박사의 주된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아서 가짜들을 솎아내라"는 것이었다. 마틴은 교회가 너무나 분별이 없음에 대해 한탄하며 가슴앓이를 하다시피 했다. 마틴이 고심하던 1980년대에 이미 뉴에이지는 우리 사회 속에 깊이 침투하여 도서와 세미나, 비지니스철학 등등을 거쳐, 필경은 교회에까지 침식해 들어올 것이라고 그는 예견했는데, 25년 뒤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요즘은 정통 기독교와 뉴에이지 철학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해져가고 있다. 

독자들은 아니라고 부인하고 싶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윌리엄 폴 영은 그 피해자이자 동조자의 한 명인 것이다. 



히브리서는 말한다(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 사라유 혼자서? 여기서 우리는 마치 성부/성자/성령이 제각기 서로 다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처럼.. 꼭 신화 같은 느낌을 받는다. [본문으로]
  2. 원작은 수전 쿠퍼의 책, '어둠이 치솟고 있다'. 이 책 역시 크리스천들 상대로 팔리고 있다. [본문으로]
  3. 흥미롭게도 '오두막' 앞 표지엔 유진 피터슨의 추천사가 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