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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오트밀과 관상

 

오트밀과 관상

미국인들의 오트밀(귀리죽) 사랑은 한 마디로 "끝내준다." [참고로, oatmeal을 간편히 '오트밀'이라고 통일하여 표기하지만, 더 정확한 영어 발음은 '오웃 미을/미일'로 들린다. 오트 끝의 't'(ㅌ) 발음이 묵음화되어 들리지 않으며, t와 m이 '트밀'처럼 연음되지 않고 일단 살짝 끊긴다.]  

특히 아침에 그렇다. 미국의 오트밀은, 아마도 한국인들의 아침 쌀밥 정도로 거의 주식(主食)이 아닐까 한다. 사족이지만, 적어도 우리의 오랜 전통인 아침 쌀밥의 주식 위치의 운명은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다. 한국농촌경제원의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의 거의 딱 절반이 아침에 쌀밥을 먹는다.(*성인들의 51.9%, 청소년의 50.1%). 나머지는 빵과 샌드위치, 시리얼 등의 순위라고 한다. 조만간 쌀밥의 모종의 우수성과 필수성을 강력 인식시키기 전에는 이미 흐릿해진 우리 민족의 주식 개념이 더 흐려질 법도 하다. 

미국인들은 아침에 빵과 함께, 또는 빵을 빼고 오트밀만 먹는다. 끓는 물에다 적당량의 귀리를 잘 풀어 크림처럼 걸쭉해진 이 귀리죽에다 약간의 열매(딸기 등 베리 종류)와 견과류를 얹어 먹곤 하는 일품의 맛은 즐기는 사람들만 안다. 
요즘은 시리얼(cereal) 하면 박스화된 잡다한 대형 상품들을 떠올리지만, 옛날엔 주로 귀리를 맷돌에 타 만든 전통적인 오트 죽을 가리켰다. 그러다 산업혁명이 발달한 19세기 말 귀리가 상품화 공정을 거치면서, 기계로 통귀리의 껍질을 벗겨 증기에 찐 다음 롤러로 납짝하게 눌러 만든 '납짝귀리'나 강철 날로 쪼개어 분쇄하여 만든 형태로 나오게 된다. 이것을 보통 옛날식 귀리(old-fashioned oats) 또는 보통 귀리(regular oats)라고 한다. 강철 날로 손질한 것은 주로 영국식이다. 

이 공정을 좀 더 세고 길게 하여 더 부드럽게 만든 것이 '큌 오츠'(quick oats)이고, 그보다 더 공정을 늘려서 달콤한 맛과 향 등을 가미해 즉각 타 먹을 수 있게 내 놓은 것이 이를 테면 즉석귀리(instant oats)다. 즉 전자는 달랑 오트밀만으로 약간의 조리가 필요하고, 후자는 각종 향미를 더한 것으로 뜨거운 물에 타면 거의 즉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모두가 오트밀로 불린다. 

언제나 따끈따끈하게 먹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1월의 곡물'로 꼽히기도 한다. [참고로, 미국 통곡물협회(WGC) 등은 다달이 적당한 통곡물을 하나씩 지정하여 '그달의 곡식'으로 권장한다. 예를 들면, 2월의 통곡물은 보리, 3월은 퀴노아, 4월은 싹튼 곡물, 5월은 애머랜트=아마란스, 6월은 수수, 7월은 밀, 8월은 호밀과 라이밀(triticale), 9월은 쌀과 줄(들쌀/야생미), 10월은 옥수수, 11월은 기장과 테프(teff=북아프리카 원산의 곡초), 12월은 메밀)

새뮤얼 존슨(Samuel Johnson)의 1755년 사전에는, 귀리는 "곡류의 하나로 영국에서는 보통 말의 사료로 쓰이지만, 스코틀런드에서는 사람들의 먹거리로 쓰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돼 있다. 이것만 얼핏 보면, 귀리 사용도의 국가적 차별(?)로 보이는 듯한 정의이기도 하다. 이에 대하여, 스코틀런드 사람은 "바로 그래서 영국은 좋은 말들을 갖고 있고, 스코틀런드는 멋진 남성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기가 찬 대꾸를 했다.

통귀리는 식감이 거칠다. 귀리는 당대 유럽권의 대표적인 서민 음식이었는데, 기후가 거센 스코틀런드는 밀 지배가 힘들어 귀리를 주식으로 삼았다. 특히 농업이 덜 발달한 중세 때는 소작인들이 밀 대부분을 영주들에게 세금으로 바치고 나면, 남은 밀로 겨우살이가 힘들어 대신 우유에다 귀리를 타 먹곤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세계 귀리의 95%는 사료용, 그것도 주로 말 먹이로 쓰이고, 나머지 5%만 식용으로 쓰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시대 때부터 재배했을 정도로 역사는 퍽 오래지만원나라 군대의 말 먹이를 조달하기 위해서였단다워낙 쌀과 보리, 밀가루 등에 치여, 그동안 '내동댕이' 신세를 면치 못했다(ㅠㅠ). 

그러던 차, 콜레스테롤과 인슐린 분비를 줄여주고, 풍부한 섬유질이 변비를 완화시킬 뿐더러 뼈도 튼튼하게 해 주며, 심지어 암까지 예방해 준다는 귀리의 다양하고 놀라운 효능이 밝혀지자유레카~!시사 매거진 '타임'이 귀리를 10대 슈퍼푸드로 꼽는 등 그 가치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젠 한국에서도 안 파는 곳이 없을 정도로 부쩍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참고로, 2017년 현재 귀리 수입량이 연간 25,941톤. 
말하자면 과학 내지 영양학이 과히 발달하지 못했던 지난 날 사료로 괄시 받던 곡물이 현대에 조명을 받아 "귀하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는 말이겠다. 

귀리에 관한 말을 좀 더 보탠다면, 학명 '아붸나 사티바(Avena sativa)로 불리는 귀리는 쌀과는 달리, 그 어떤 웬만한 공정을 거치든 귀리눈(배아)과 영양성분이 거의 다 살아있기로 유명하다. 한 마디로 찌고 볶고, 찧고 빻고, 누르든 자르든, 박살을 내어 가루로 만들든, 변함없는 특성을 간직한다는 얘기다. 실로 놀라운 곡물이 아닐 수 없다. 

필자한데 아침에 쌀밥과 귀리죽을 내놓고 하나를 고르라 한다면, 물론 후자를 택하련다. '말 사료'를 먹다 설령 히히힝~! 말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 좋은 귀리에도 부작용이 있단다. 복부팽만감, 통풍이나 신장결석등에 좋지 않은 퓨린 성분, 글루튼(글루텐) 알러지 등이 올 수 있고, 임신 초기에 과다 섭취하면 유산의 위험도 있다고 한다. 

 퀘이커의 정적주의(靜寂主義) 

제목에 대한 설명을 이제 해 보련다. 

오트밀이라면, 거의 빼 놓을 수 없는 것 하나가 퀘이커(Quaker) 얘기다. 미국의 대표적인 오트밀 브랜드로 으레 퀘이커 제품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옛 퓨리턴(청교도) 시대와 같은 옷차림에 홍조와 미소를 띤 남자를 그린, 둥근 종이통 속의 귀리 제품이다. 오트밀 브랜드가 퀘이커와 직접 관련은 "없다"곤 하는데, 덩달아 퀘이커 선전도 되는 모양새다.  

초기 퀘이커들은 미 건국 시대에 뉴잉글랜드를 중심한 동부에 와서 한 가닥 했던 사람들로, 후예들도 선조들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같은 동부인 뉴욕에도 퀘이커들의 초기 건물이나 기념물 등이 오랜 세월 후에도 여기저기 남아 있다. 퀘이커들은 침묵/정적주의를 핵심 교조로 삼고 있고, 모든 인류가 다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설을 믿는다. 한 마디로 기독교 절대 진리를 벗어난 종교이다. 모든 인류가 다 구원받는다면, 굳이 퀘이커교를 믿을 필요가 있겠는가?! 퀘이커들에 관한 자세한 것은 본 블로그 검색난에서 찾아볼 수 있다.  

퀘이커 교도의 정적주의는 거의 침묵으로 일관하는 관상기도(觀想祈禱/contemplative prayer)와도 통한다. 그래서 (관상영성가) 이동원 목사 같은 이는 퀘이커인 리처드 포스터가 하는 '레노바레'라는 것과 관상에 심취하여 한국 지부를 만들기도 했다. 

포스터의 책을 보면, 다른 관상가들처럼 종교다원주의자임을 즉각 알 수 있다! 현대 관상기도 재생의 선구적 역할을 한 한 명인 토머스 멀튼 수사도 장자나 노자의 도교 사상을 섭렵한 데다, 티벹 불교의 법사들과 자유롭게 교류할 정도로 다원종교적이었다. 또 그의 정신적 제자인 헨리 나웬도 그랬다. 
나웬의 제자 가운데는 그의 집회를 따라다니며 일본 불교피리인 샤쿠하치를 불기도 한 롸벑 조너스 박사가 있다. 아내는 성공회 사제, 자신은 루터교 평신도로, 불교 암자 겸 기도원 식 '텅빈 종(EB)'을 설립해, 수사겸 법사 노릇을 하고 있다. 나웬은 '텅빈 종'의 개원식 때 축사를 해 주었다. 

그밖에도 관상기도와 위에 언급된 인물에 관해서도 본 블로그에 다양한 글들이 실렸으니 일독하면 도움된다.

한국에도 퀘이커들이 있다. (고)함석헌이 그랬고, 성공회 대학교의 박성준 교수도 그렇다. 지난 역사를 보면, 함석헌이나 박 교수나 좀 '삐딱선'을 탄(?) 사람들로 보인다. 순수 크리스천들이라기엔 좀 그렇다. 인터넽 검색을 해 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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