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예술비평/음악

오페라 '청교도'는 기독교적인가?

 

물음: 오페라 '청교도'는 기독교적인가?

답: 
오페라 '청교도'는 이탈리아 작곡가인 빈첸조 벨리니(Vincenzo Bellini, 1801-1835)의 최후 작품이다. 1834년작이며, 초연은 1835년 1월 28일 이루어졌다. 정확한 원제는 '스코틀런드 청교도'(I puritani Scozia)였으나, 줄여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품은 기독교와 아주 무관하리만큼 세속적이지만, 작품의 제목과 배경이 영국 청교도(Puritan) 시대였던 17세기를 다루고 있다. 교계나 음악계 일각에서는 이름이나 인상만 갖고 실제로 기독교와 관계된 것으로 오해들을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대본작가와 작곡가, 모두 이탈리아 사람들로 종교인 아닌 세속인에 더 가까웠고, 그들의 작품에 이렇다 할 종교성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오페라 '청교도'에 기독교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넌센스에 불과하다. 

벨리니는 선율이 아름답기로 이름 높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였다. 말년에 프랑스에 살았던 그 역시 다른 이탈리안들처럼 혹 천주교인이었으되, 신교와는 무관했다. '청교도'가 기독교적인 작품인지 어쩐지는 먼저 대본 및 작가의 배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겠다. 

대본 작가, 카를로 페폴리(Carlo Pepoli) 백작은 이탈리아 출신의 망명시인으로, 역시 이탈리아 독립운동을 하다 프랑스로 피신한, 벨지오요소의 귀족 출신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기도 했던, 크리스티나 트리불치오(Cristina Trivulzio Belgiojoso) 공주가 운영하던 살롱에서 작곡가 벨리니와 만났다. 이 살롱은 이탈리아 혁명운동가들은 물론, 다양한 유럽 예술인들의 사교장이기도 했다. 이들 대다수는 형식적인 천주교인들이었다. 

본래는 '원두당(Roundheads: 머리를 둥글게 깎은 사람들로, 17세기 내란 당시 청교도 또는 의회파였던 사람들)과 기사단(즉 왕정주의자)'이란 제목을 단, 자크-프랑수아 앙셀로와 조셉 자비에 상틴이 쓴, 역사적인 희곡이다. 한편으로는 월터 스코트의 소설 '오랜 필사(Old Mortality-必死)'를 빌린 내용이라고 왈가왈부되기도 한다.

벨리니가 1833년 8월 중순 파리를 찾았을 때 3주만 머무르려다 겨울철까지 머물렀고, 이듬해 1월 파리의 데아트르 이탈리엔 오페라로부터 좋은 조건에 창작 의뢰를 받았다. 벨리니는 3월까지 적당한 소재를 찾지 못해 애를 먹다가, 동족 시인 페폴리 백작의 첫 희곡을 무대에 올린 연극을 보고, 여주인공 엘비라의 광증에 특히 매료돼, 고작 6개월이 지난 후인 무렵 오페라 소재로 쓰기로 결심한다.  

그는 페폴리에게 동일작품의 개작을 부탁했는데, 페폴리가 연극이나 오페라에 너무나 경험이 없어 다시 애태우게 된다. 그는 작가에게 기본 원칙을 제시했다. 

"당신 머리 속에다 금강석 글자로 새겨 넣으시오: 이 오페라는 눈물과 공포를 자아내어야 합니다. 노래로써 관객들을 죽여야 하오."

그즈음 역시 파리에 나타난 오페라 분야 선배이자 대작곡가인 조아키노 로시니와 처음엔 경쟁자였으나, 로시니가 애당초 2막 구성을 3막으로 고치도록 제안하는 등 도와주면서 나중엔 절친이 되기도 했다. 

벨리니는 계속 페폴리의 대본 만들기에 함께 관여하면서, 초연을 위한 주요 (이탈리아) 성악가들을 직접 미리 선정하는 등 작품 다듬기에 최선과 완벽을 기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고, 이내  '파리의 노도광풍'이 되어 17회 공연됐다. 1909년까지는 모두 200회 무대에 올려졌다. 
벨리니는 그러나 초연 후 몇 달만인 1835년 9월, 불과 33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성공의 극치에서 죽었으니, 참 허망한 것이 세상 음악계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명작은 뒤에 남는다지만 말이다. 벨리니는 그밖에도 '노르마(Norma)', '카풀레티가와 몬테키 가(로미오와 줄리엩)' 등 수많은 오페라를 남겼다. 

오페라 '청교도'의 배경
오페라 '청교도'는 17세기 영국 청교도 혁명이 일던 전시(戰時)를 시대적 배경으로 삼았다.
잉글런드 (튜더 왕가의) 일리저벹 1세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친척으로서 그녀의 왕위를 계승한 스코틀런드 왕가 출신인 (제임스 6세였다가 영국 스튜어트 왕조의 제1대 왕인) 제임즈 1세(영문성경 KJV 반포 왕)는 잉글런드 연방의 군주로서 구약적인 '왕권신수설'을 주창하면서, 국교인 성공회(Anglican Church)를 통한 전제정치를 펼친다.  

그러자 왕권과 국교 세력인 왕족과 귀족들, 성직자와 지주층을 중심한 왕정파에 대응하는 세력으로서 청교도(Puritans)가 등장한다. 신흥 중산계층인 이들은 사회와 정치계에서도 주류를 이루면서 의회에 진출해, 왕권에 제동을 걸기 시작하다 1642년 양측 사이에 내란이 일게 된다. 

처음엔 청교도가 불리했지만, 크롬웰 장군이 청교도 군대를 이끌면서 역전되어, 왕정파를 굴복시키고, 제임스의 후계자인 촬스 1세는 교수대에서 처형된다. 크롬웰은 공화제를 수립했으나 왕정시대보다 더 독재적이어서, 결국 1660년 왕정 시대로 복귀한다(왕정복고). 

'청교도'의 줄거리 
(대본에는 작가 임의로, 본디 영국식이어야 할 이름이 편의상 대부분 이탈리아식으로 돼 있다.)

때는 1649년 무렵, 영국 국내 전쟁 중이던 시기. 

제1막이 열리면, 플리멑 항 부근의 청교도군 요새. 날이 밝으면서 성벽 파수병들의 아침 교대가 시작된다. 아침 전례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기도소리가 들리고, 청교도 귀족인 발톤(밸턴)경의 딸, 엘비라(소프라노)의 결혼 뉴스에 성 안에서 신사숙녀들의 환성이 들린다. 

홀로 남은 리카르도(리처드) 대령(바리톤)은 브루노에게 자신의 역경을 토로한다. 그는 장인이 될 뻔한 발톤 경에게서 엘비라와의 결혼을 사실상 약조받은 터였으나, 전날 밤 플리멑으로 돌아왔다가 엘비라가 흠모하던 왕정파 기사인 아르투로 탈보(아터 톨벝) 경과 사랑에 빠져 곧 결혼하게 됐음을 발견한다. 리카르도의 부하들이 다가와 그에게 부대 인솔을 바라지만, 상심한 그는 거부한다. 

장면이 바뀌어, 엘비라가 자기 아파트먼트에서 삼촌 조르지오(조지)를 맞이한다. 삼촌이 그녀가 곧 결혼해야 할 것을 말하자, (리카르도와 결혼해야 하는 줄로 안) 엘비라는 충격받아 "(평생) 미혼으로 남겠다"고 말하지만, 삼촌이 그녀의 기사인 아르투로가 곧 올 것이고 자신이 형(곧 엘비라 아버지) 밸턴 경에게 호소하여 결혼을 승락받은 것이라고 귀띔해주자, 엘비라는 환희에 젖는다. 

군장 홀(Hall of Arms)에서다. 기사 아르투로(테너)와 종졸들이 홀에 도착해, 엘비라, 밸턴, 조르지오와 성의 무리에게 환영받는다. 이때 아르투로는 사랑의 아리아, '내 사랑, 그대에게'(A te, o cara)를 부른다. 벨리니의 모든 테너 아리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는 곡이다. 

밸턴 경은 결혼예식에 참석할 수 없다는 예고와 함께, 한 여인을 데리고 런던 의회로 향발할 참이라고 예고한다. 엘비라는 예식 준비차 떠난다. 남아있던 아르투로는 밸턴이 말한 의문의 귀부인이 처형된 촬스 1세의 왕비였던 엔리케타(실제의 앙리에타=헨리에타 마리아. 프랑스 앙리 왕의 공주로 촬스와 결혼함)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녀의 목숨을 구해주기로 맹약한다. 

예식을 앞두고 성장을 한 채 잔뜩 들뜬 엘비라가 나타나, 아리아 '난 혼례복 차림의 매혹적인 처녀(Son vergin vezzosa in vesti di sposa)'를 부른 뒤, 다시 채비하러 들어간다. 아르투로는 예식 전에 왕비를 구출해주려고 그녀를 신부복을 입혀 위장한 채 말에 태워, 요새를 탈출한다. 리카르도가 길을 막았다가, 엘비라를 되찾을 기회라고 여겨지자 둘에게 길을 열어 준다. 

아르투로가 신부복을 입은 딴 여인과 도망쳤다는 탈출 소식을 접한 엘비라는 예비신랑이 자신을 배신한 줄로 알고, 축하객들 앞에서 실성해 버린다. 그녀는 자신이 아르투로와 함께 예식을 올릴 교회의 강단 앞에 나서고, 하객들은 그녀를 동정한다. 

2막 
성 안의 홀. 조르지오가 나타나 엘비라의 상태를 성 사람들에게 알리고, 리카르도 대령은 의회가 아르투로에게 사형선고를 했다는 소식을 전한다. 실성한 엘비라가 나타나 광기어린 아리아 '님의 상냥한 음성이 날 불러(Qui la voce sua soave)'를 노래한다. 이른 바 '광란의 아리아'라고도 불리는 곡으로, 콜로라튜라를 위한 벨리니의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엘비라는 삼촌 조르지오도, 대령도 알아보지 못한다. 조르지오는 리카르도에게 '자네가 연적을 살려야 하네'(Il rival salvar tu dei)라고 타이른다. 

3막
성 부근. 도피 중이던 아르투로가 엘비라를 다시 만나고 싶어 요새 쪽으로 몰래 다가와, 전에 엘비라와 함께 부르던 사랑의 노래를 부른다. 그러자 요새 안에서 엘비라의 화답송이 들려와 둘이 상봉하게 되자, 엘비라가 그제야 정신을 되찾는다. 둘이 헤어져있던 기간은 석 달이었으나 엘비라는 "300년간 기다렸다"고 말한다. 아루트로가 왕비를 구해야 했던 상황을 얘기해 주자, 엘비라는 이해하고 아리아, '님을 품에 안으리(Vieni fra queste braccia)'로 재회의 기쁨을 고백한다. 

이때 리카르도가 나타나 아르투로를 체포하자, 엘비라가 재차 착란상태로 들어갔다. 형장으로 끌려가는 아르투로는 엘비라를 바라보며 작별의 노래인 '내가 배신한 줄로 믿었던 가여운 그녀(Credeasi misera)'를 부른다. 사형 집행 직전, 크롬웰의 전령이 달려와 스투아르디(스튜어트) 왕조의 (일시적) 멸망과 공화정의 시작, 아르투로 사면의 급보를 전한다. 엘비라는 제 정신을 되찾아 아르투로와 포옹하고, 모든 이들이 아르투로를 용서하고 둘의 재화합을 축복하면서 막을 내린다. 

'문화예술비평 >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와 이 찬송가  (0) 2020.07.09
오소서, 성령님?  (18) 2019.06.13
You Raise Me Up은 표절?  (3) 2019.01.04
'하늘 가는 밝은 길'의 좀 어둔 배경  (4) 2018.07.05
찬송가가 곧 천국 음악?  (8) 2018.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