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파울의 기도 묵상

파울의 기도(5)

 

믿음을 통하여 크리스토님이 여러분의 마음들 속에 머물러 계시길!..
(에페소 3'17a. 사역)


 

파울의 이 기도 부분은 좀 놀랍습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여간해선 잘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 모두는 믿음 생활을 하거나 거듭나고 나면, 으레/당연히 주님께서 우리 속에 영원히 계시리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파울은 믿.음.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 마음들(복수) 속에 늘 머무시길 비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Isn't that something?

파울은 여기서 '카타오이케오'(한 곳에 머물다/정착하다/거주하다)라는 낱말을 쓰고 있음을 눈여겨 봅니다. '카타'라는 장소전치사와 '오이코스' 즉 "집"이라는 낱말에서 유래된 오이케오(안에 머물다, 내주하다)의 합성어이지요.

영어에는 머물다에 해당하는 stay, tarry, abide, live in, dwell in, indwell, remain 등 다양하고 비슷한 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크게 나누면..나그네로 산다는 말과 정착자로서 산다는 말, 두 가지가 있지요.

여기, '머물다'란 말은 후자입니다. 영구 거처를 삼아 그 안에서 살아 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카타오이케오에서 알 수 있는 것은..주님이 내 속에 손님으로 잠시 머물다 떠나 가시지 않고, 내 영을 그 분의 전으로 삼아 입주자/거주자로서 계속 머물어 계신다는 뜻입니다.


파울은 지금 에페소 교회의 한 두 교인들 뿐 아니라 온 교회, 그리고 오가는 세대의 모든 성도 누구나, 주님의 항구적인 거처가 되길 빌고 있습니다. 

성경학자 데이빋 구짘은 "내주해 계신 예수님의 영광은 우리가 알아야 할 무엇, 또 믿음으로 알아야 할 무엇이다. 그 분의 내주는 거기 있지만 믿음으로 지탱돼야 할 무엇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이 내 속에 계심을 우리는 믿음으로 알고 확신하며, 따라서 내주(內住)는 믿음으로 지탱돼야 할 대상입니다.
이 원리가 이해가 잘 안 된다면.. 도움이 될 관련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직접 들어 봅니다.


    "(그대들은) 내 안에 머물게나. 나도 그대들 안에 머물테니.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지 못하듯, 그대들도 내 안에 있지 않으면 그러하오.
나는 포도나무, 그대들은 가지라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머물면 사람이 많은 열매를 맺소. 나를 떠나서는 그대들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네.
사람이 내 안에 머물지 않으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버릴 것이며, 사람들이 그것(들)을 모아다 불 속에 던져 태워버릴 거라네. 그대들이 내 안에 머물고, 내 말이 그대들 속에 머물면, 무엇이든 바라는 대로 구하게나. 그러면 이뤄질 테니." (요한복음서 15'4-7 사역)


이 말씀은 주님이 죽음 당하시기 전, 마지막 유월절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머물다'에 해당하는 낱말은 위와 대동소이한 뜻의 '메노'라는 동사입니다.
주님은 위 말씀 부분에서 여러 번, '메노'를 거듭거듭 사용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것은..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조건부 내주'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대들이 내 안에 머물면.."이라는 조건입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지 않고 떠날 때, 주님도 우리에게 머무실 수 없다는 경고 말씀이지요.

이래서 주님과 우리 사이엔 상호내주가 필요합니다.
위의 말씀은 주님께 대한 믿음을 잃을 때, 우리도 주님의 내주를 잃을 수도 없지 않다는 뜻이 아니고 뭘까요?

그 대표적인 예가 이스카리옽 유다일 것입니다.
유다는 사도들이 둘씩 짝 지어 전도하러 나갔을 때 같이 끼었지만, 그는 주님 안에 내주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저주 받고 영원히 잃어진 영이 됐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 생각이나 믿음과는 상관 없이, 주님께선 내 속에 항상 머물어 주시길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불신은 불신이지 믿음이 아닙니다. 둘은 정반대일 뿐 섞일 수가 없지요.
나 자신의 불신 상태를 믿음 상태와 혼동하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붙듬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확인해야 합니다.


주님의 내주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분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비결 한 가지는, 주님의 말씀을 항상 내 속에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요복 15'7).
예수님 없이, 성령님 없이, 우리가 살 수 없음처럼,
주님의 말씀 없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말씀 사이의 깊은 관계를 우리는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셈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 없이, 우리가 주님의 내주를 확신할 길도 영원히 지탱할 길도 없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실로,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습니다.


파울은 지금,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들 속에 고루 머무시길 빌고 있습니다.
같은 성도 가운데 누구에겐 주님이 머물어 계시고, 누군가로부터는 떠나신다면, 그보다 더 슬프고 황당한 상황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페트로와 유다처럼 극적(劇的/極的)인 대비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요한복음 15장 앞 부분에서 그런 '상황'을 미리 경고하고 계십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가 거듭남을 체험하고 하늘의 은사들을 맛보고도, 주님을 부인하거나 떠난다면, 주님도 더는 그 속에 계실 수가 없습니다(참고: 히브리서 6'4-6).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 속에 늘 머물어 계시도록 주님께 들붙어 있기 위해 우리는 믿음을 발동해야 옳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이젠 더 없는데도, 믿음을 다 잃어 버렸는데도, 주님이 늘 머물어 계신다는 보장, 또는 머물어 계셔야 한다는 당위성이 위 성구들에 따르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울의 이 기도를 우리의 기도로 삼아야 합니다.
이 기도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 버릴 성질이 아닙니다.


우리는 라오디케아 교회에 주신 주님의 다음 경고가 기억납니다.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린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 (요한계시록 3:20)

이 말씀은 주님이 사랑하시던 라오디케아 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19절 참조).
그들은 스스로 풍요롭고 모자람이 전혀 없는 사람들로 자처했지만, 주님은 그들을 경고하시면서 위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 역시 주님의 머무름/내주 차원의 말씀입니다.
주님이 머무르심은 곧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내주입니다(요복 14'17, 17'23).
따라서 주님이 내주하시면서 성삼위 하나님이 내주하시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주님과 우리의 이 상호내주의 법칙, 성삼위 하나님의 머무르심의 다이내밐스를 잘 깨달아야 좋습니다.



티엘티 독자들은 누구나
믿음을 통하여 크리스토께서 그 심령 속에
늘 머물어 계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성경묵상연구 > 파울의 기도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울의 기도(7)  (1) 2010.04.25
파울의 기도 (6)  (0) 2010.03.28
파울의 기도 (4)  (1) 2010.01.24
파울의 기도 (3)  (0) 2010.01.10
파울의 기도 (2)  (3) 2009.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