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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히스기야의 중병과 치유(메시아계보대장정62)

                      현대에 상상 재현된 아하즈의 해시계(계단식) 

 
바탕본문: 왕들B(왕하)서 20'1-11. 연대기B(역대하) 32'24, 예샤야후(이사야) 38'1-22   

  
    하나님은 왜...?

하나님은 왜 하필 선한 히즈키야 왕대에, 그것도 히즈키야가 열심히 해 보려던 비교적 집권 초기에 산헤립과 아슈르 군대의 대대적인 유다 침공이라는 상당히 극단적인 위기와 어려움을 허락하셨을까요?

그것은 히즈키야에게 교만과 자기 의존이라는 죄악의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미리 막고 신앙을 단련하기 위해 이런 어려움을 허용하시면서 아울러 앞날에도 왕과 백성의 태도에 따라 또 다른 불행이 올 수 있음을 경고하셨다고 밖엔 달리 해석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례를 욥에게서도 봅니다. 하나님은 욥이 가장 착할 때 그의 믿음을 연단하시려고 마귀에게 욥을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하십니다.
또한 아무리 착한 왕이더라도 훗날 변심할 때 하나님은 슬퍼하시고, 그 후대에라도 더 큰 어려움을 허용하실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실제로 히즈키야는 대국 아슈르(앗수르) 대신 일시적으로나마 또 다른 대국인 미쯔라임(에짚트)을 의존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고, 또한 우리처럼 그에게도 가끔 흔들리는 면모가 없지 않습니다.
이것은 의인이 온전하길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신국 유다 앞에는 치명적인 약점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히즈키야는 이때 끝내 주 예호바(여호와)님을 의존했고, 하나님은 드디어 수도 예루샬렘(예루살렘)과 그를 지키시고 기쁘게 적국에게 승리하십니다.

하지만 히즈키야 역시 역대 왕들처럼 얼마 후 또 다시 잘못을 저지릅니다. 

하나님은 그런 히즈키야에게 한 편으로 큰 복을 주시면서, 앞으로도 히즈키야에게 또 다른 연단과 진보의 기회를 허용하십니다.

하나님은 히즈키야와 유다를 사랑하셨기에, 그에게 기회를 주시면서 동시에 지금껏 자주 타락해 온 유다에게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면면히 메시아의 계보를 지켜 나아가십니다.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것은, 북 이스라엘은 물론, 유다의 역대 왕들 모두가 때로는 선했으면서 하나님을 자주 실망시켜 드렸지만..마지막 때 왕들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 예수 크리스토 그 분은 지상에서나 천상에서나 결코 아버지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린 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지요. 

그 분은 아버지의 뜻과 율법을 온전히, 철저히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은 그 분을 지극히 높여 모든 왕들의 왕으로 보좌에 앉히시고, 온 우주의 모든 이름들 위에 가장 높은 이름을 주셨습니다. 오, 할렐루야!


   드높아진 하나님과 히즈키야의 영예

주 하나님 예호바님의 권능 아래 아슈르 대군이 리브나 벌판에서 하루 밤새 어이 없이 횡사 대패를 하고 산헤립 왕이 하릴 없이 고국으로 물러갔다는 뉴스가 나라 안팎에 퍼지자, 사람들이 "과연 예호바는 참 신이시다!" 하면서 너도나도 예루샬렘을 방문하기 시작합니다.

예물을 들고 찾아와 성전에 바치고, 히즈키야에게도 보물을 선사했습니다. 그러자 주변 국가에 히즈키야와 유다의 영예도 덩달아 드높이 올라갔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이 주 예호바님을 높이고 영광을 바로 돌릴 때, 하나님은 그 사람을 높이시고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실제로 히즈키야 왕대는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과거 솔로몬(슐로모) 시대처럼, 나라와 왕실이 풍요롭던 한 시대였습니다(참고: 연대B 32'28-30).  


    죽음의 위기와 애통

그즈음 히즈키야가 중병에 걸려, 점점 악화돼 갔습니다. 아마도 피부암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대언자 예샤야후(이사야)가 하나님의 예언을 전언합니다.

    "예호바님의 말씀입니다: '집안을 정리해라. 네가 죽고, (더) 살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집안을 정리하는 데는, 왕실에다 유언을 남기는 것도 포함돼 있습니다(예샤야후=예샤야후서 38'1). 왕은 비록 중병이 들리긴 했지만, 하나님의 이런 단도직입적인 '사형선고' 같은 말씀을 전해 듣자, 대단히 놀라고 충격 받은 모양입니다. "내가 그래도 착한 왕이니까 이러다가 그냥 낫지 않겠나.." 라고 막연히라도 기대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히즈키야는 곧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하나님께 눈물로 탄원합니다.

    "간구합니다, 예호바님! 제가 진리 안에서 온전히 걸어 왔고 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해온 것을 기억하소서."

그러면서 크게, 슬피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 훗날 병이 나은 때에 쓴 히즈키야의 회복 기념 시인 예샤야후=이사야서 38'10-20을 보면, 그가 당초 중년에 일찍 죽게 됐음을 얼마나 허무하게 여기고, 슬퍼하며 섧게 울었는지, 치유와 삶을 얼마나 고마워 했는지 극명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


   응답의 말씀과 생명 연장

하나님은 히즈키야의 기도를 거의 들으시자마자 예샤야후를 통해 왕의 치병과 회복, 그리고 왕과 나라의 보호를 선언하십니다. 예샤야후가 걸어서 다윗 성 궁정 뜰 한 가운데를 지나기도 전에 응답이 떨어진 것입니다.

    "돌아가, 내 백성의 통치자 히즈키야에게 말해라:
 '여호와(예호바) 곧 너의 선조 다윗(다빋/다윋)의 하나님의 말이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내가 널 고쳐 주마! 사흘 째 되는 날, 네가 예호바의 전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아울러 내가 너의 수한을 15년 늘려 주겠다. 또한 내가 너와 이 도시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 주고 이 도시를 나 자신을 위하여, 내 종 다윗을 위하여 지키련다.'"

이 얼마나 감격스런 말씀인지요!
하나님은 히즈키야의 간구에 신속히 응답하시되, 왕 개인의 치병 약속과 함께 왕이 미처 구하지 않은 것까지 더 보태어 응답하십니다. 즉 히즈키야의 말년까지 나라를 지켜 주시고 안전보장을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외침 탓에 일대 위기에 빠져 있던 왕으로서는 참으로 마음 든든한 일이 아닐 수 없지요.  


   치유와 징표

이어서 예샤야후는 왕실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무화과 반죽 한 뭉치를 가져 오시오."

사람들이 부랴부랴 만들어 가져 오자, 그것을 왕의 환부(부상에 의한 것이 아니므로, '상처'라는 일부 한글 번역은 어색함) 위에 얹게 했습니다. 그러자 히즈키야는 회복됩니다. 여기서 무화과 반죽은 치료용 고약이 아니라, 안수 때의 기름처럼 치유를 뜻하는 하나의 상징 내지 '접촉매체'(contact point)와도 같은 것입니다. 

(사도) 행전(19'12)을 보면, 사람들이 파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갖다 환자에게 얹어도 병이 낫거나 악귀가 떠나곤 했습니다.


히즈키야는 이 때 대언자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고치셔서 사흘쨋 날 여호와님의 성전에 올라가게 된다는 징표가 뭘까요?"

예샤야후가 대답합니다.

    "이것이 곧, 여호와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루신다고 왕께 주시는 징표가 될 터입니다: 해 그림자가 열 칸 앞으로 나아가게 할까요, 열 칸 뒤로 물러가게 할까요?"

그러자 왕은 "그림자가 열 칸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쉬울 테니, 열 칸 뒤로 물러나게 해 주시오."라고 주문합니다. 

여기서 히즈키야가 말한 뜻은 사람이 보기에 그림자가 10도 앞으로 전진하는 것은 더 쉬워 보인다는 뜻이지요. 10도 전진이든 후퇴이든 이것은 초자연적인 기적이며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샤야후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왕의 소원대로 구했더니, 과연 해 그림자가 아하즈의 해시계(일영표) 위에서 열 칸 뒤로 물러났습니다. 히즈키야의 부친 시대에 제작된 이 해시계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지 다양한 추정이 있지만, 이스라엘 학자들은 계단식이었다고 주장합니다(본문 상단 사진 참조). 즉 해가 뜬 이후 그 빛의 그림자가 계단의 한 칸을 내릴 때마다 시각을 산정했다는 것입니다.  

이 징표는 물론 하나님이 하신 일로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초자연 이적이지요. 과거 카나안 정복시대에 예슈아가 아모리 족과의 전쟁을 치를 당시 완승하기까지 해와 달이 지지 않고 중천에 머물도록 믿음으로 선언하여 그대로 이뤄진 적도 있지요(예슈아=수 10'12-14). 하나님이 한 사람의 말을 이런 식으로 직접 즉각 들어 주신 날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초자연적 징표를 요구한 사람들은 성경에 여럿 있지요. 판관(사사) 기데온은 자신을 통해 이스라엘을 미디안/아말렠/동방족에게서 구원하실 징표로, 타작마당에 놓아 둔 양털뭉치 위에만, 또는 양털을 제외한 주변 땅에만 이슬이 내리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여 그대로 응답된 바 있습니다(판관들=사사기 6'36-40).


히즈키야가 기도를 아뢴지 사흘째 날에 성전에 올라갔을 것은 당연합니다.

여기서 중시되는 점은, 하나님은 히즈키야를 한 번 슬쩍 테스트 하시려고 그를 잠깐 중병에 들게 하신 게 아니라 실제로 불치병으로 왕이 죽어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수명을 15년 연장해 주신 점에서 분명해집니다.

그랬기에, 히즈키야는 이제 죽음에서 되살아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가 완전히 회복되어 제3일에 성전에 다시 올라가게 된 것은 어쩌면 앞으로 히즈키야의 왕손으로 오실 메시아 예수님의 부활을 예표하는 듯도 합니다. 대언자 요나가 사흘 밤낮을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이 주님 부활의 한 예표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병을 치유하는 메시아

예샤야후 시대에, 히즈키야 왕의 중병 치유는 뜻이 깊습니다.
대언자 예샤야후는 특히 그가 기록한 예샤야후서에서 메시아의 수난을 통한 병 치유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전에도 언급했듯, 예샤야후서엔 그 어느 성경보다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 예샤야후 53장은 의로운 종 곧 메시아의 수난을, 또 그 가운데서도 다음 성구는 메시아 수난을 통한 병 치유를 약속해 줍니다.

    그러나 그 분은 우리 허물 탓에 찔리셨고,
    그 분은 우리 죄악 탓에 상처 입으셨네 
    우리의 평화를 위한 징벌이 그 분 위에 내리고,
    그 분의 채찍 맞음으로 우리가 치유됐네
    (예샤야후 53'6 사역)


어떤 사람들은 이 말씀이 정신적 또는 영적 치유를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우선적으로 몸의 병 치유를 가리킨다는 것은 마태가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병 고침에 예샤야후 53'4을 인용한 사실로도 알 수 있습니다(마태 8'16,17).

성경엔 그밖에도 육신의 치유를 약속한 수많은 성구들이 있지요. 하나님은 치유하시는 분 곧 여호와 라파이시며, 그분이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면서 우리를 치유하신 분이 메시아, 곧 예수 크리스토이십니다.

치유는 고대의 유대인들 뿐 아니라 오늘날의 이방인들인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마가복음서 16'17,18엔 병의 치유가 믿는 사람들-곧 참 신자들-을 위한 것임을 입증해 줍니다.

유감스럽게도,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믿지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