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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파울의 기도 묵상

파울의 기도(10)


 

바탕본문: 필리포 1'9-11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 가운데서 점점 더 넘쳐 가기를!
  그래서 여러분이 차원 높은 것들을 가려 내어 크리스토의 날까지 신실하고 흠이 없기를!
   예수 크리스토님으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로 채워져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돌려지기를!



필리포(빌립보) 교우들에게 보낸 서신에 나타난, 파울의 위 기도의 세 번째 묵상입니다.

1'11절입니다.

    예수 크리스토님으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로 채워져서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돌려지기를!


이 기도의 마무리 부분이지요.
파울의 짧은 기도들의 마무리 부분은 언제나..피날레답고 절정스러운 맛이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주된 문구는 '의의 열매'입니다.
[ 제가 지지난 주 바탕본문 옮김에서 부주의로 실수했는데, 복수 '의의 열매들'이 아닌 단수 '의의 열매'입니다. 따라서 문장 일부를 정정하며, 이 점 사과합니다. ]

파울이 성도들에게 의의 열매로 가득하길 빌고 있죠.
의로운 열매, 의로움의 열매라고 해도 괜찮습니다.


과실나무를 보면, 열매는 대체로 두 가지가 있습니다: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

제가 사는 집 대문 바로 곁엔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서 있습니다. 주택가에서는 드물게 보는 것이지요. 봄이면 나뭇가지에 싹이 트다가 꽃이 피고, 초여름이면 복숭아들이 주렁주렁 열립니다. 처음엔 파랗다가 여름이 짙어 가면서 조금씩, 점점 핑크빛으로 물들어 갑니다. 탐스럽고 수많은 복숭아들은 보기만 해도 좋아 마음이 흐뭇해지곤 합니다.

이 복숭아나무는 맛과 향기가 진한 우량종인데도, 연전엔 제대로 돌보고 가꾸어 주질 않아, 복숭아 알이 잘고 별로 맛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린 열매들을 솎아 주고 비료도 부지런히 주어, 이젠 질도 좋아지고 맛도 더욱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길손들이 복숭아 가지를 쥐고 지그시 냄새를 맡거나 아예 따서 맛을 보기도 합니다.

머지 않아 이 복숭아들이 모두 무르익을 때면, 따 먹는 사람들에게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나쁜 열매가 변하여, 모름지기 좋은 열매가 됐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열매가 좋은 것이기를 기대하게 됩니다.
이름에 걸맞게, 그 과일답게 알이 크고, 맛과 향기가 그윽하고, 과즙이 가득하길 당연히 기대합니다.
나쁜 열매를 기대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지만.. 애당초 맛이 없거나, 제대로 익지 못했거나, 벌레 먹어 썩었거나, 말라 빠져 거무죽죽한 열매로 남아 있다면, 솎아 낼 대상, 버려져 밟힐 대상이 됩니다.
그런 열매를 좋아하고 즐겨 먹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을 터입니다.

그리고 열매는 제대로 알차고 가득해야 좋지요.
나무 덩치는 크고 가지도 많은데 열매들이 성기면, 보기에도 어설프고 엉성하거니와 수확도 보잘 것 없게 됩니다. 희소 가치야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실망이지요.

특히 포도송이는 그렇습니다. 잘 가꾼 좋은 포도밭이면 송이마다 주렁주렁 맺히게 됩니다. 
주님의 포도나무 비유(요한복음서 14장 앞 부분)에서도 그림처럼 여실히 느끼게 되는 모습이죠.

의의 열매란 말에는 물론, 올바른 열매, 좋은 열매란 뜻도 있습니다.
그릇된 결과, 비뚤어진 소출, 죄악과 불의, 부정의 결실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이 세상은 영적으로 볼 때, 본래 좋은 열매보다는 나쁜 열매들이 더욱 가득합니다. 또 겉 보기엔 먹음직 하고 탐스러운 열매가 많아 보여도, 먹으면 결국 영혼에 손해가 되는, 악의 유혹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날마다 미디어를 장식하는 뉴스와 bad reports들이 이를 입증해 주지요.
세상은 실로, 불의의 열매 그리고 가시나무와 엉겅퀴가 무성한 곳입니다.

그런 세상에 살다 보니, 성도도 바른 열매, 의의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할 경우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솔직히, 그럴 경우가 많지요.

교회는 포도밭과 같습니다.
성도는 포도 가지와 같은 존재이지요.
하나님이 대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처럼, 포도밭에 최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는데도 뜻밖에 들포도 같은 것을 맺는다면, 농부와 포도밭 주인의 실망이 클 것입니다.  

또 알차고 가득한 열매송이들을 기대했는데 엉성하게 맺혔다면, 이 또한 과히 기쁠 일은 아닙니다.

바른 열매, 좋은 열매, 알찬 열매를 거두는 농부와 주인, 나눠 먹는 사람들의 흐뭇한 기쁨이 되듯, 성도의 의의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중요한 얘기를 하렵니다.
파울은 이 열매가 예수 크리스토님으로 말미암는다는 표현을 썼습니다.
여기서 그는 '..디아 예수 크리스투..'라고 하여, '디아'라는 전치사를 썼습니다.
디아에 가장 걸맞은 우리말이 곧 "말미암는", "말미암아"라고 생각합니다.
까닭이 되다, 계기가 되다, 인연이 되다 등의 뜻인데, 낱말이 좀 길다 보니 요즘은 자주 쓰이진 않지만, 퍽 유용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의의 열매는 예수 크리스토로 말미암습니다.
예수 크리스토에게서 비롯됩니다.
예수 크리스토를 통하여, 예수 크리스토 때문에 의의 열매가 맺힙니다.
딴 길, 다른 방도로선 불가능합니다.
예수 크리스토 밖에서는 불의(不義)의 열매를 맺을 뿐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참된 의(義)는 예수 크리스토로부터만 오기 때문입니다.
의로움은 예수 크리스토님에게서만 올 수 있습니다.
오직 그 분만이 인간에게 촉구되던 모든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셔서 완성하시고, 완전한 의를 이루셨기 때문이지요.
오직 그 분을 통해서만 의의 옷을 입을 수 있고, 정의롭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고 그 앞에 설 수 있습니다.
다른 길은..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좋은 열매, 의로운 열매를 맺을 수 있다거나 맺고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자신을 "fruitful" 한 존재라는 생각들을 합니다. 실적/성과/업적 위주의 사회여서 그런 경력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열매들은, 예수 크리스토로 말미암는 바로 그 의의 열매가 아니지요.

그 열매! 파울이 단수로 강조한 의미가 그것입니다.

심지어 교계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의 열매가 의롭다고 생각하는데, 성경과 대조해 보면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그 의의 열매, 바른 열매, 좋은 열매, 선한 열매, 마땅한 열매가 아닐 때가 잦다는 말이지요.

성경 진리와 대조해 볼 때, 아니면 아닌 것입니다. 엇비슷, 비스름하거나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막연하고 애매모호한 그런 의의 열매는 없기 때문이죠. 솔직히 말하면, 그런 열매는 썩은 열매요, 결국 불의의 열매, 악의 열매일 뿐입니다. 그건, 예수 크리스토로 말미암는 열매가 아니지요!

남들은 둘째 치고, 우리 자신들도 그런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맺을 때가 있습니다. 
다들 최상품 포도를 기대했는데, 몰래 들포도를 맺힌다는 거죠.
주님께 죄스럽고 성도에게도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건 주님으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그 열매(!)가 아닙니다.
 
그래서 11절은 10절(지난 회 참조)과의 상관 관계가 또렷합니다.
만사에 분별과 검증의식이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과실들은 가려서 솎아 내고 계속 잘 돌봐 주고 가꿔야 하듯, 영적인 열매도 그렇습니다.
예수 크리스토로 말미암는 열매가 아닌 것은 의의 열매가 아닙니다.

오늘날 이상한 '외래 영성'의 열매들이 많습니다. '교계 명사'를 자처하는 인사들이 짐짓 '의의 열매'를 자칭하며 스스로 맺고 있다고 요란스레 자랑들을 합니다. 정말 주렁주렁 맺혔는데도, 웬지 "그 열매"답지 않습니다. 이상하게 화려한 빛을 띠고, 야릇한 향기를 내거나 달착지근한 것 같은데도 그 열매다운 맛이 안 나는..그런 영성들 말입니다. 심지어 무지개 빛을 띤 열매도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황홀해 질 거 같은..

관상영성의 열매, '목적'영성의 열매, 떠오름(이머징)영성의 열매, 신사도영성의 열매, 뉴에이지 영성의 열매..등입니다.

보기에 따라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맛을 보면 슬기롭게 해 줄 만큼 탐스럽기도 한 열매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그 열매에 쉽사리 혹하여, 따서 맛을 보곤 즐기게 되고, 급기야 무섭게 탐닉합니다. 그 결과..혼동과 혼란으로 말미암아 진리에서 벗어나, 비진리에 빠져들게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열매를 보고 그들을 알 것이오" 하셨는데도, 열매와 열매를 분간하지 못하게 됩니다.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구분하지를 못하게 마비돼 갑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외래 영성이라는 열매이지, 예수 크리스토님으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는 아니지요!
우리, 혼동하거나 착각하지 맙시다.
가리고 솎아내고, 분별합시다.

파울의 기도를 기억합시다: "..여러분이 차원 높은 것들을 가려 내어 크리스토의 날까지 신실하고 흠이 없기를!"
 
외래 영성의 열매..알고 보면, 차원 낮은 것들입니다. 저급한 열매, 불의의 열매들입니다.
그야말로 허울 좋고 빛 좋은 개살구일 뿐입니다.
크리스토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 바른 열매, 좋은 열매, 선한 열매, 바람직한 열매는 그런 게 아니지요.

아울러..우리의 삶의 열매가 늘, 바른 열매인지, 영글고 알찬 열매인지 자신을 돌아 봅시다.
내 눈에 큼지막한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서 티를 빼 주겠다고 마구 달려 들면 안 되겠지요.


끝으로, 예수님의 한 아우였던 사도 야코보도 의의 열매를 언급했습니다.

    "또, 의의 열매는 평화 속에서 심어지는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에 의하여."

성경은 여기저기서 평화와 의의 상호관계를 말합니다.
특히 예샤야후(이사야)서 32'18은 그러합니다.

    "의의 열매는 (미래의) 평화!
     의의 효력은 영원한 평온과 안보!"

이런 결과가 오직 성령으로부터 온다고 예샤야후는 말합니다.
예수 크리스토님으로 말미암는 참된 의로써만, 그의 영이신 성령 안에서 참된 평화도 누릴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의와 평화는 불가분의 상관 관계입니다.

바꿔 말한다면, 불의의 열매가 맛보여 주는 듯한 '평화'는 참 평화가 아니며..
아울러, 의의 열매는 참 평화 속에서 맺히며,
바른 열매가 참 평화를 낳는다는 교훈이지요.


티엘티 독자들은..
예수 크리스토님으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로 채워져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이 돌려지기를!
또한 언제나 의의 열매를 통한 참 평화를 누리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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