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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영적싸움 도우미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고대 로마 군인의 검과 기타 무장 

 

영적 싸움 무기 6: 성령의 검, 하나님의 말씀 

"...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시오)." (에페소서 6'17b. 사역)
원어(그리스어=헬라어): ... καὶ τὴν μάχαιραν τοῦ Πνεύματος, ὅ ἐστιν ῥῆμα Θεοῦ,
(음역: 카이 텐 맠하이란 투 프뉴마토스, 호 에스틴 ㅎ레마 테우)

라틴어: ...et gladium Spiritus quod est verbum Dei.*
(에트 글라디움 스피리투스 쿠오드 에스트 베르붐 데이)
* 라틴어 성구는 당대 로마 군대용어를 참고하느라 인용했음.  

공격용 무기

우리는 지금 에페소서 6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전신갑주(全身甲胄=온몸갑옷/완전무장/the Whole Armor of God)에 관하여 시리즈로 공부하고 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속한 7 가지 무기들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성령의 검(劍),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른 무기들--진리의 허리띠, 의의 가슴판, 평화의 복음의 군화,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등이 모두 방어용인 것과는 달리, 이것은 주된 공격/방어 용 무기이기 때문이다. 이것 말고 또 하나의 공격용 무기는 모든 기도 및 간구와 무시(無時)로 하는 영적 기도(영언)이다*). 

[* 이 마지막 요소(기도와 영언)를 하나님의 전신갑주 범주에서 제외한 나머지 '6 가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라고 주장하는 학설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것을 나는 치명적인 omission(생략)과 간과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와 영언은 매우 중요한 무기이고, 방어 겸 공격용 무기다! 기도 없는 영적 싸움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주님께서는 기도와 금식으로밖엔 물러가지 않는 악령들도 있다고 귀띔하신 바 있다(마르코스복음서=맑 9'29). 그런데 어떻게 기도 없이 영적 싸움이 가능한가 말이다. 

또한, 다른 무기들이 주로 전술 무기인 데 비해, 기도와 영언은 전략 무기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시리즈 다음 편에서 상론한다.]

검은, 신약 원어인 그리스어로 '맠하이라'(ἡ μάχαιρα)이다. 따라서 성령의 검은 '맠하이라 투 프뉴마토스'( μάχαιρα τοῦ Πνεύματος)이고, 하나님의 말씀은 ㅎ레마 테우(ῥῆμα Θεοῦ)이다. 참고로, 구약의 고대 히브리어에서 검에 해당하는 말은 ㅋ헤레브(חֶ֫רֶב)이다. 칼이라고도 불리지만, 일반 칼(刀, knife)과 분류하느라 살상/전쟁용 칼을 흔히 검(영어 sword)이라고 부른다. 서두의 라틴어 성경 본문에서 보는 대로, 고대 로마에서는 글라디우스(gladius)라고 불렀다. [*여기서 검투사(gladiator)라는 말과 잎 모양이 검 같은 꽃, 글래디올러스(gladiolous, 중국에서는 진란/剑兰 즉 검 같은 난이라고 한다) 등의 낱말이 파생했다].

마카이라는 본래 비교적 짧은 검, 또는 단검이라는 뜻이 있어 왔다. 그럼에도 로마 군 보병들의 주무기였던 이 글라디우스는 좌우가 날선, 휴대가 편한 보통 길이의 양날 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글라디우스는 여러 타국 군이 가진 (칼등과 한쪽 날만 있는) 검과는 달리, 양쪽이 모두 동일하게 날카로운 날선 검이었기에 그 효율성과 살상률, 위험도가 높았다. 모양은 달랐겠지만, 양날 단검은 훨씬 더 오랜 고대의 이스라엘에도 이미 부분적으로 존재했다(판관기=삿 3'16). 

글라디우스에도 역사적으로 칼날의 길이 등 몇 가지 미묘하게 다른 형태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도 파울 당시에는 주로 고대의 영국 쪽에서 (켈팈 검들을 참고하여) 개발된 풀함 글라디우스(Fulham gladius) 또는 마인츠-풀함 글라디우스(Mainz-Fulham gladius) 등이 쓰였다고 추정된다. 칼날의 길이가 약 50-55cm(전체 칼 길이: 65-70cm), 칼날 폭은 6cm, 검 전체 무게는 700g 정도였다고 한다.

이 유형의 가장 큰 특징은 칼끝이, 길고 뾰죽하게 각이 진 이등변삼각형이어서, 적을 찌르기가 쉬웠다는 점이다(위 사진 참조). 로마 보병은 백병전에서 기본적으로 방패로는 상대방의 공격을 막고 이 검을 방패 아래 곁으로 불쑥 내밀어 적의 흉부 아래를 주로 노리고 공격하면서 전진했다. 필요하면 적의 목이나 팔 등 신체 일부를 마구 찍어버리거나 절단하곤 하여, 적의 극심한 공포를 자아냈다. 양날이 햇빛이나 불빛에 반사되어 번득이는 모습은 더욱 그러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장 예리한 양날 검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검보다 더 예리하다(히브리서 4'12)!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주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고 계시고, 입에서도 그런 검이 나온다고 하였다(요계 1'16, 2'12). 단, 요한계시록의 양날검들은 모두 '마카이라' 대신에 '롬파이아(ῤομφαία)'라는 단어를 썼다. 롬파이아는 대체로 마카이라보다 칼날의 폭이 넓고, 길이도 더 긴 장검으로서, 허리에 차지 않고 어깨에 매었던 종류로 추정된다.

히브리서 4'12은 특히 하나님의 말씀이 영적인 검이라는 사실을 매우 선명하게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어서 어떤 양날 검보다 더 날카롭습니다. 그것은 혼과 영을, 관절들과 골수를 찔러 나누기까지도 하며, 마음 속 생각들과 뜻을 판단합니다." 

이것은 엄청난 선언이다! 왜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강력한 영적 실체이지, 결코 추상적이 아님을 강조해 주기 때문이다. 이 검은 성령의 검, 곧 영적인 검이기 때문에, 세상의 그 어떤 칼보다 더 예리하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따라서 이 검은 초강력 무기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도 수많은-사실은 대다수의-신자들이 이 진리를 미처 모르고 지내거나, 알고도 제대로 써 먹지 못한 채 무력하게 살아가기가 십상이다. 

영적 무기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보자.
첫째로, 성령의 검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저자는 성령이시란 진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진리의 영인 성령님은 당신이 쓰신 말씀에 대해 신실하시며, 그 말씀을 올바로 믿을 때 거기 담긴 모든 약속에 대한 책임을 지신다. 

둘째로, 죽은 검이 아닌 살아 있는 검이다. 활력 있는 검이고, 자체에 권능이 숨어 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을 화합할(결부시킬) 때, 초자연적(영적)인 권능과 결과가 나타난다. 이것은 이 무기의 권능을 믿는 사람만 체험할 수 있는 효과이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무력하게 살아가는 이유 한 가지는 말씀이 살아있음을 잊고, 반대로 죽은 것처럼 믿기 때문이다.   

셋째로, 영적인 검이다. 영적 검이란 뜻은 세상적, 물리적 차원의 검과 전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그 어느 물리적인 검보다 더 실제적이고, 강력하고, 더 날카롭다는 의미다. 많은 신자들이 이 점 역시 놓친다. 
이 말은 또한 인간의 을 다룬다는 의미다. 인공적/물리적인 검이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적을 다루는 데 사용되지 않고, 눈에 뵈지 않는 영적인 원수들, 곧 마귀와 그 졸개 악령들을 상대로 사용된다. 

이 검은 예리하여 초강력한 힘을 나타낸다. 이 검은 혼과 영을 찔러 쪼개기(=나누기)까지 한다! 
[여기서 한글 번역들 다수가 획일적으로 "찔러 쪼갠다"고만 옮겼는데, 막연하고 별로 걸맞은 옮김이라기엔 다소 어폐가 있다. 되려 '찔러 나누기도 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므로 난외주로라도 덧붙이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적용될 때, 혼과 영 사이, 즉 혼과 영의 차원을 극명하게 나누는 이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보통사람이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 성령침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은 흔히 혼과 영을 분간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이 밝은 사람은 사도 파울이 코린토A서(고전) 14장 2,14,15절에서 말한 내용이 바로 이에 관한 것임을 안다. 우리가 평소 보통 모국어로 하는 기도는 혼적 차원의 것이지만, 영언('방언')으로 하는 기도는 영적 차원의 것이다. 영언해석 은사자가 함께 할 때 혼(정신/이성)으로도 비로소 이해가 돼, 영적 차원에서 혼적 차원과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영언은 기도가 아니다"고 억지를 부리는 교인들이 있는데, 이같은 오해는 영적 체험의 결여에서 온다. 로마서 8'26c, 코린토A서 14'2, 14, 15, 에페소서 6'18, 유다서 1'20b 등은 모두 이 기도에 관해 말하고 있는 대목들이다. 물론 영언으로 찬양도 하며(행전 2'11; 10'45,46, 코A 14'15b, 엪 5;19, 콜로새 3'16b), 특정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한다(행19'6; 코A 14장).]

신유의 도구
성령의 검은 아울러 영적인 메스(수술도)로도 사용된다.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한다는 말은 곧 <하나님의 말씀+믿음+성령의 권능>으로 다양한 질환을 고친다는 의미도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순간, 고침 받았다는 환자들이 매우 많다. 

영적 싸움에서의 말씀의 검

이 무기 역시 다른 무기처럼 믿음을 화합할/결부시킬 때, 제대로 활용된다. 그렇지 않으면 추상적인 무기로 그칠 뿐이다.  
성경을 맨날 읽더라도 이것을 믿음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기 십상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적인 적군들을 무찌를 수 있는가? 물론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런 권능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예수님께서는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시던 끝에 유혹하며 찾아온 마귀를 모두 성경 말씀으로 물리치셨다. 그만큼 주님은 어릴 적부터 성경 말씀을 늘 묵상하여 익히신 데다 슐로모(솔로몬)보다 더 능한 말씀 지식으로 대처하셨다. 

이때 역설적으로 마귀도 성경 구절을 사용하여 유혹에 사용했다. 이처럼 마귀와 악령들은 성경 말씀을 착하게 믿어서가 아니라, 거꾸로 신자들을 유혹하고 공격하기 위해 악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흔히 빛나는 천사로 위장하여 이 방법을 써 먹는다. 마치 에덴 동산의 간교한 뱀이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히 뒤틀어 하와(이브)를 유혹했듯이, 지금도 악한 천사들과 더러운 악령들이 그러고들 있다. 

그러므로 신자들이 영적 싸움에 이기기 위해서는 성경 말씀을 익히 알고,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대다수의 신자들은 성경을 읽긴 읽어도 영적 싸움에 도움되는 핵심적인 성구들을 제대로 써 먹을 줄 모른다. 

이것은 말씀의 권능과 더불어, 하나님이 인간의 혀에 주신 권능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사람의 입술과 혀에 무서운 권능이 숨어 있다고 시사해 주고 있다. 사도 야코보는 그의 서신서에서 사람의 말로써 일어날 수 있는 놀라운 긍정적/부정적, 자연적/초자연적인 일을 상세히 언급한 바 있다(야코보서 3'2-11). 

구약 성경에도 사람의 혀와 입에 주어진 권능을 암시하는 수많은 구절들이 있다.

(예: 잠언 10'11; 12'14,19; 13'2,3; 16'24; 18'7,20,21; 21'23, 예샤야후=사 57'19a).  

인간의 입과 혀는 왜 그럴까? 창조주 하나님 자신의 입과 말씀에 창조의 권능이 있어(창세기 1장 참조; 시편 33'6; 148'5), 피조물인 인간에게 그 분의 형상을 심으면서 그 권능도 일부 부여됐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간의 전능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 형상은 죄로 인해 대부분 손상됐으나, 아직도 인간의 혀와 입술에는 권능이 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이 형상이 회복된다.  
요한복음서 1장은 메시아로 오신 성자님이신 예수 크리스토가 곧 로고스, 창조 때 창조주 하나님이 사용하신 그 말씀이라고 선언하고 있다(요복 1'1~3).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이 선포하고 활용할 때, '(ㅎ)레마(rhema)'(서두의 원어 성구 참조)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입술과 혀를 제대로 바로 사용하는 길은 헛된 말짓거리가 아닌, 성경 말씀을 입에 담아 믿음으로 읊조리고 고백하고 선언/선포하는 것이다!  
 
영적 싸움에서 그런 예를 들어 보자: 

사탄(또는 악령들)아, 물러가라! 
사탄아, 내가('나' 또는 '내가'에다 신자의 이름 대입) 너를 대적하노라! 
사탄아, 주 예호봐(여호와)님께서 너를 책망하신다! 널 책망하신단 말이다!
  참고: 마태복음서 4'10; 16'23, 엪 6'11, 야코보 4'7b, 제카리야서(=슥) 3'2

더러운 귀신아, 그에게서 나오너라!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마라!
(마르코스복음서=맑 5'8; 9'25)

사도 파울도 이를 응용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한다. 그에게서 나오너라"(행 16'18b)

이런 식의 고백 내지 자기 선언도 가능하다. 

"나(이름 대입)는 약하지만, 예수 안에서 강하다!"
  참고: 에제키엘 34'16; 요엘 3'10. 참고: 예샤야후=이사야 35'3, 히브리서 11'34c

수많은 성경구절을 이런 식으로 믿음으로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어디까지 입술과 혀의 권능을 활용할 수 있을까? 
다음 성구들은 주님께서 심지어 이런 믿음의 선언을 담대히 할 것을 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실로 놀랍다! 물론 이런 말씀은 무턱대고 적용하기보다 슬기롭게 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태17'20; 21'21, 마르코스복음서(맑) 11'23, 루카복음서=눅 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