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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유진 피터슨이 천국에?





유진 피터슨이 천국에?

-피터슨 비평 시리즈1




요 얼마 전 유진 피터슨이 갔다. 갔지만 어디로 갔는지 난 솔직히 모른다. 예상한 대로, 수많은 명사 따르미들은 그의 삶을 예찬하면서 그가 지금 "천국에 있다"고 결정적으로 말해 버린다. 

ㅎ 글쎄다. 나는 나 자신보다 그들이 더 하나님이 되어 있다 생각한다. 면죄부 시대도 아니고[각주:1], 누가 맘대로 그런 인사를 천국에 들여보내 주며, 누가 받아들여 줄까? 


피터슨이 천국 갔다고 하기가 정녕 어려운 이유 몇 가지를 몇 회에 걸쳐 풀어써보려고 한다.

왜 이미 떠나버린 고인을 뒤늦게 구구히 탓하는가?라고 묻는 사람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몸은 떠났지만, 내세의 삶이 앞에 있고, 명사로서의 어록과 저작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유진 피터슨이라면, 많은 이들이 그의 명저(??) '더 메시지(The Message)'를 떠올릴 것이다. 나는 몇 가지를 더 떠올린다. 장로교인이었고, 수많은 책을 썼으며, 이름난 관상영성가(contemplative)인 데다, 이도 저도 아닌 중도주의자였고, 신학적인 여러 과오를 저지른 한 사람이다. 그러고도 그는 말주변과 수많은 저서들 때문에 꽤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있었다. 물론 '세계적'이라는 것 자체는 하나님께 아무 의미도 없다. 



시리즈 첫 회에는 긴 말을 않겠다. 물론 다음 회부터는 말을 늘려 갈 테지만. 여기선 그의 말년의 가장 중요한 과오 한 가지를 지적하련다.



다수를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의 존중을 받아온 피터슨이 불과 1년 전 동성애는 물론 동성혼을 지지했다는 것[각주:2]! 놀랍게도 그는 단 하루만에 이 입장을 뒤집기도 했다. 뭘 말해 주나? 인기를 의식한 기회주의자와 중도주의자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점일 터이다. 우스갯소리지만, 중도주의자는 지진 날 때 가랑이를 조심해야 한다. 


피터슨은 2017년 7월 초순에 종교통신(RNS)을 대리한 칼럼니스트, 조너턴 메리트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동성혼을 포용(embrace)하며, 역사적 기독교의 성윤리를 내 버린다고 선언했었다. 그 인터뷰에서 피터슨은 기독교 성윤리를 초탈한 듯한, 매우 놀라운 발언과 면모를 보였다. 

그의 주장을 일부 간추려 보자:


나는 부교역자였다가 내 자신의 (훗날 약 500명으로 늘어난?) 교회를 맡았을 때, 동성애에 관해 큰 문제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떠날 때, 처음부터 나와 함께 해온 여자 음악목사도 함께 떠나게 됐다. 그래서 새 음악목사가 필요했다. 어느 날 내 밑에서 자란 젊은이가 찾아왔는데 고교 교사였고 괜찮은 음악인이었다. "이곳 음악감독직을 지원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게이입니다." 우리 교회엔 게이가 아무도 없었다. [레즈비언도 없었다는? 이어서 이내 뒤집는 그의 화법을 보라 ->]. 글쎄다, 교인들 일부는 공개적 게이가 아니었다.[있었는데 공개자가 아니었을 뿐이라는 얘기?] 그러나 나는 회중의 결정에 너무나 기뻤다. 아무도 아무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다.[바꿔 말하면, 그가 돌봐온 교회가 그 수준의 교회였다는 얘기다.] 그는 정말 훌륭한 음악인이었다. 


20년 전엔 이런 얘기를 하지도 않았을 테지만, 지금 나는 게이와 레즈비언인 수많은 사람들을 알며, 그들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착한 영적 생활을 하는 것 같다[자신도 문제 없는 영적 생활을 해왔다는 자임인 셈.] 나는 레즈비언과 게이들에 관한 그런 유의 논쟁은 끝났다고 생각한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냥 딴 교회로 가면 그만일 것이다. 

 

물음: 귀하께서 지금도 목회를 하신다면, 믿음 좋은 신자인(??) 게이 커플이 귀 교회에 와서 동성혼 주례를 부탁드릴 때 응하실 의향인지?


답: 그렇다. 


물음: 마지막 질문이다. 귀하는 지금 경력과 사역과 삶의 최종적 단계로 들어가고 계신데, 어느 날 우리 모두처럼 유진 피터슨도 더는 존재하지 않을 터이다. 한때 존재했던 분일 뿐. 그 때가 오면, 사람들이 유진 피터슨을 어떻게 기억해 주길 바라시는지? [이 물음은 예언 같이 들린다. 불과 일년 뒤에 그가 갔기 때문이다! ]


답: 잘 모르겠다, (명사로서) 널리 알려진 데 익숙해져 있어서. 사람들이 자주 오기도 하지만, 엄청난 이메일이 날아와서 답장과 통화를 하곤 한다. 놀랍다. 그렇더라도 난 굉장한 사람은 못 된다... 누가 나를 단지 기억해 주기만 해도 난 놀랄 것이다. 



피터슨의 말에서, 우리는 그의 신학과 영성에서뿐 아니라, 동성애 이슈에 있어서도 영락없는 중도주의자적 면모를 철저히 느낀다. 


아무튼 피터슨은 위 인터뷰를 한 바로 다음 날, 입장을 도로 바꿨다. 크리스채너티 투데이에 실린 그의 말을 보자:


"나는 1남 대 1여의 성경적 결혼관을 확인한다. 나는 만사에 대한 성경적 견해를 확신한다[글쎄다. 관상기도 등 수많은 것을 안 버리고 있었는데도?]... 난 그 특정 인터뷰 중간에 그만 '그렇다'고 대답해버렸다. 그러나 묵상과 기도 끝에, 도로 철회하고 싶다. (그 대답은) 회중과 더 큰 교회 체제와 역사적 성경적인  기독관과 혼인에 관한 가르침을 존중하는 입장으로서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한 번 그의 기막힌 말바꾸기를 보자!] 그렇더라도 나는 (동성애 커플의) 목회자로서 그런 커플을 여전히 사랑해 줄 것이다. 다른 모두와 함께 그들을 기꺼이 나의 테이블로 환영해 줄 테다."


요컨대 그는 중도주의자답게 기회주의자였다. 그 못지 않은 중도주의자로 짐 월리스(소저너 대표)와 랍 벨 목사도 꼽을 수 있다[각주:3]. 이런 중도주의자와 기회주의자를 위한 천국은 어떻게 생겼을까? 한 가운데 지진이 나서 양 다리를 걸칠 수 있게 알맞은 틈이 난 천국?   


피터슨은 탈 많고 말 많은 미국장로교(PCUSA) 교인(목회자)이었다. 그런데 자기 말마따나 명사의 삶에 더 익어서, 하나님의 사역자였다고 하기가 어렵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독자는 시리즈 뒤 회로 갈수록 양파껍질 속처럼 더 잘 알게 된다.



 

  1. 물론 면죄부로도 천국은 못 간다! [본문으로]
  2. 왜 피터슨이 상상밖에 일찍 갔을까? 바로 연전에 동성애 지지발언 후 온 내외적 타격 탓이 아닐까. 더 살 맛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본문으로]
  3. 이 둘 다 역시 동성애/동성혼을 지지해 왔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