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런 글 저런 글

천국 개털모자와 금 면류관 이야기




천국 개털모자와 금 면류관 이야기


김삼




요새도 천국 '개털모자' 이야기가 나돌곤 한다. 적어도 인터넷엔 그렇다. 그러니 이루 확인할 길 없는 책이나 교인들의 모임 또는 교회 강단에서는 얼마나 나돌까.


천국 가서 받아 썼다는 '개털 모자' 간증을 숱하게 들었다. 어릴 적엔 내게도 그럴 듯하게 들렸다. 그 때는 개털이라는 말 때문에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동이 줄어들더니, 언젠가는 영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개털 모자 얘기를 수용하고 있던 시절에 내게 생겼었던 개념은 천국에 진정 금(면류)관이 있을 뿐더러, 개털 모자도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개털 모자와 극대비되는 정반대 개념인 천국 '금 면류관'이라는 명칭 자체가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기 시작하면서, 개털 모자 개념도 내 맘에 덩달아 문제로 떠올랐다. 



금 면.류.관...?


제목과는 좀 동떨어지지만, 금 면류관 얘기부터 해 보자. 과연 금 '면류관'이 정말 존재하나? 좀 과감한, 아니 과격한 얘기가 될지는 모르나, 나는 한글 성경에만 나오는 '금 면류관'(冕旒冠) 또는 '면류관'이라는 용어가 성경과 찬송가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주의(主義)다. 머리에 쓰는 관을 가리키는 성경 원어의 개념이 전혀 '면.류.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면류관이라는 용어가 한글 성경에는 매우 자주 나타난다. 금까지 붙은 '금 면류관'은 요한계시록 14'14에 딱 한 번 나오고, 이의 선구적 상징이 제카리야(스가랴)서 6'11에도 나와 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매우 모순된 말이다. '면류관'이라는 개념은 본래 중국 유교에서 나왔고, 주로 동아시아 유교권에서 쓰여 왔기 때문이다. 초기 한글 성경 번역자들의 큰 실수(?)였다. 하지만 지금도 대다수의 버전의 한글 성경 번역에 그냥 쓰이고 있다.   


구약 성경에서 관을 가리키는 용어는 네제르(נֶזֶר)와 케테르(כֶּתֶר)가 있다. 전자는 주로 고대 사제(제사장)들이 쓰던 제관을 가리켰고, 후자는 말쿠트(מַלְכוּת)[각주:1]라는 수식어가 붙어 왕관이나 왕후모 등으로 쓰였다. 신약 그리스어 용어로는 관 또는 월계관이라는 의미의 스테파노스(στέφανος)[각주:2] 또는 스템마(στέμμα), 디아데마(διάδημα) 등이 있다.   


이 모두의 옮김은 그냥 '관'(冠)이거나 왕관이어야 한다. '면류관'이 전혀 아니다! 그런데 한글성경으로는 가장 최신판인 개정역에도 여전히 '면류관'이라는 말이 나온다. 단지 개역의 '가시 면류관'만은 개정역에서 '가시관'으로 통일했는데, 이것만 해도 큰 업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동양인도 아닌 로마 군병들이 프레토리움(한글성경의 '브라이도리온')에서 즉흥적으로건, 기술적으로건 굵은 가시나무 가지로 거창하고 화려한(?) 면.류.관.을 짤 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시로 얼기설기 엮은 엉성하고도 잔혹한 관(a crude and cruel crown of thorns)--그런 가시관이라면, 말이 된다.  


고대 중국의 전통적인 왕관인 면류관은 본디 한 마디로, 넓적한 네모 지붕 꼴인 평천관(平天冠)과 앞뒤 2면에 줄줄이 늘인 구슬줄로 구성된 예식용 관이다. 중국과 한국의 조선왕조, 일본과 베트남 등 고대 동양의 제왕과 또 군주가 임명한 신하들이 쓰던 것이다. 기원전 유교가 발달했던 고대 주 나라의 제정(祭政) 일치 시대에 제례(祭禮)를 주관하던 제관 겸 군주였던 '천자(天子)'가 썼던 것이란다. 그런 유래는 그냥 간과한 채, 한글 성경 용어로 그대로 옮겼던 것이 넌센스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왕관이라면 으레 면류관을 가리키는 데다, 아마도 초기 한글 성경들이 번역되어 만들어지던 조선 말기에 조선 왕의 면류관을 표준으로 삼아 기초했던 모양이다. 


면류관이라는 한자어부터 헛갈린다. 冕 자는 그냥 '면류관 면' 자이다. 필자는 옛날에 면류관 한 가운데 '류(유)' 자를 버들 '류(柳)'로 착각하곤 했다. 관의 구슬 줄이 수양버들 가지처럼 줄줄이 늘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깃발 유/류(旒) 자이다. 깃발 류? 처음엔 놀라게 된다. 늘어진 구슬들이 깃발이라는 개념이 머리 속에 잘 착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고 많은 유/류 자들 가운데 왜 하필 깃발 류 자일까? 수양버들 가지처럼 흐드러지니 버들 류도 가능하고, 구슬이 흐르듯 하니 흐를 류(流)도 가능할 터이다. 구슬 줄이 함께 무리지니까 '무리 류(類)'도 가능하고. 좀 억지스러운가? 구슬이 평소 관 아래서 떠나지 않고 늘 머물고 있으니, '머무를 류(留)'도 가능한데 말이다. 아니 그보다도 관에서 옥구슬이 물방울처럼 똑똑 떨어지듯 하니, '방울져 떨어질 유(溜)' 자도 가장 걸맞지 않겠는가! 왜 하필 깃발 류 자일까?


그런데 좀 찬찬히 생각해 보면, 사제권이나 왕권이 모든 군대의 깃발 위에 있다는 개념이 겨우 통하긴 한다. 제사 지낼 때 깃발을 동원하기도 했을 터이다. 이를테면 국가 원수가 국군통수권을 가진 총사령관인 것과 마찬가지다. 깃발들 위에 평천이니, 왕은 모든 군대 곧 백성의 총수이자 하늘의 대표임을 상징하는 셈이다. 그럼 '오~!'라는 감탄사도 나올 법하다. 이를테면, 관 위에다 초소형(미니) 깃발을 일일이 꽂아놓을 수가 없으니, 대신 아래로 늘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아무튼 면류관이 본래 평천관과 구슬 줄로 돼 있는 개념인 만큼 천국의 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성경의 관을 감히 '면류관'이라 함은 또 하나의 옥시모론(oxymoron)이다. 



천국의 개털 모자...? 


개털 모자 얘기로 돌아간다. 폭 넓게 알려진 이 스토리의 오리지널은 영남 지방 어느 교회의 '계 장로'였단다. 개를 팔던 분인데, 교회당 건축에 바칠 헌금을 아끼다가 천국에 가서 금 면류관이 아닌 개털 모자를 받아 썼다는 내용이다. 

필자만의 생각이겠으나, 계 장로의 계 씨 성과 개털이 묘하게(?) 아울려 잘 기억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계 장로님이니 개보다는 닭(鷄)을 파는 분이었어야 더 맞을성 싶기도 한데 말이다. 개털 모자 얘기야 자유겠지만, '천국의 개털모자'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은 더 큰 문제이다. 개털 모자 이야기는 무한불변의 세계인 천국의 문화가 아닌, 당대의 세상 문화를 반영한다고 보면 맞다. 개털 모자 담론은 놀랍게도 '정론'을 펴야 할 기독교 언론에도 곳곳에 긍정적으로 실려있다. 같은 개털 모자이지만 다른 스토리도 있었다.  



오래 전부터 사냥꾼들 사이에 이리나 개, 여우 등 견과(犬科) 동물 모피의 방한 효과가 크다는 말은 있어 왔단다. 북극에 가까운 이글루에 사는 에스키모 족이나 알래스카 지역 주민들이 끄는 개썰매를 타다 동사 위기의 난을 당하면, 개들을 주위에 모아 그 체온으로 생존한 케이스들도 들린다. 


실제로, 그 유명한 여우털 목도리 외에도 덜 알려진 개 가죽 버선이나 개 가죽 방석 등이 있었단다. 조선 시대 상류층 남자들은 겨울철에 가죽 방한모인 휘항을 썼고, 군인들은 철갑 대신 개나 소, 노루, 돼지 등의 생가죽으로 된 피갑(皮甲)을 입었단다. 가장 인기가 좋았던 것은 보온력도 뛰어나고 값도 싼 견(犬)피갑. 

우리나라 조선 시대 사람들은 추운 겨울엔 '갖옷'을 입곤 했다. 쥐나 양, 여우나 표범, 너구리나 담비 등의 모피로 된 겉옷이었다. 특히 담비 가죽으로 된 초피(貂皮) 옷이 인기였다. 


전해진 사료에 따르면, 알래스카 내륙개발에 나섰던 1920년대  미군 공병들과 통신병들은 세계 곳곳에서 값비싼 이리 털 가죽 외투를 수입해 입었단다. 훗날 만주국 일본 관동군은 자금이 없어 '야껜까리'(野犬狩り=들개사냥)라는 개 밀렵대를 조직해서, 밖에 나도는 개들은 모조리 잡아다 병사들에게 군용 개가죽 외투를 해 입혔단다. 그 와중에 버젓이 주인 있는 개들도 많이 잡혀죽었다. 일본은 당시 우리나라에도 총독부 산하에 조선원피판매주식회사를 설립해 견피 유통에 나섰는데, 털이 복실하고 통통한 우리네 토종개인 삽살개나 털이 호랑이를 닮은 신라 토종견인 경주개 곧 '동경이' 등이 대학살을 당했다. 


그런데 명색이 군대라는 무리가 가지각색의 개털 외투를 입은 모습이 광대나 걸인들처럼 하도 가관이어선지 관동군 '개털부대'는 나중 흐지부지되고, 개털 모자만이 오래 남아돌았단다. 해방 후에 겨울철에 한국 민간시장에 일본군 방한모와 비슷한 모습의 개털 모자가 유행한 때가 있었다. 개털 잠바도 있었다. 김민기의 노래로 더 잘 알려진, 김지하 시인의 카톨맄적 연극 '금관의 예수'의 대본에도 '개털 잠바'란 말이 나온다. '남부군'(저자 이태)이라는 책에서는 공비 대장 이현상이 개털 잠바를 입고 국군인 공비토벌대에 쫓겨다니기도 했다. 

허은석 님의 제주도 민속사료에 따르면, 옛적 제주도 민속 사냥꾼인 '사농바치'들 사이에 개털 피복이 필수품이었단다. 이들은 소가죽으로 된 쇠털 벙거지나 오소리 가죽으로 만든 감투 등을 썼고, 몸통엔 개가죽 외투를 걸치고, 발엔 개가죽 버선에다 가죽신발을 착용했단다. 그러니까 개털 모자는 외부에서 왔든 자생했든, 우리나라에 한때나마 정착됐던 민속문화의 일부였던 셈이다. 


천국 개털 모자는 '개꿈'의 소산?


폐일언하고, 오래 전 내린 결론은 천국엔 개털 모자가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정체 모를 '계 장로'의 오리지널 개털 모자 간증은 그 효능이야 어떻든지 간에, 실제 천국 방담 간증이라기엔 유머에 가까운 꿈 이야기라고 할 만하다. 개꿈이 아니라면 다행이다. 


천국에 개털 모자가 있다면, 그와 정반대의 늠름한 사자털 모자와 말갈기, 말꼬랑지 모자도 있어야 한다. 천국 상급 주는 데도 점수와 급이 있다면, 털모자에도 급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국에서 급 낮은(?) 성도들에게 주는 개털모자가 정녕 있다면, 천국 개농장과 개 사료, 개 도축장까지도 갖춰져 있어야 한다! 한국계나 중국계 성도들의 보신(?)을 위한 개고기 시장이 없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심지어 개털모자 생산공장과 재단사/재봉사 일꾼도 있어야 한다. 천사들일까? 그들이 일하는 공장엔 매일 개털이 날리고, 주변의 천국 시민들도 미세 먼지 못지 않게 흩날리는 개털 피해를 입고 있어야 할 것이다. 소털보다 더 많은 영원한 천국 시간동안, 그들은 천국에 가장 흔한(?) 시민들이 쓸 개털모자가 충분히 충당될 때까지 개털모자 제조 공장을 가동시키고 있어야 하리라.


지상에서도 개털 모자나 개털 가죽 코트라면, 요즘을 사는 현대인으로서 왠지 쉽사리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 특수 가죽 제품은 개들의 대량 도살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동물의 멸종을 적극 염려하는 환경보존 시대에 살다 보니 동물보호 본능 때문이랄까. 하물며 인간과 가장 친근한 개의 털껍질이라?... 좀 끔찍하다. 하기야, '도디(Dodie)'라는 애칭으로 불리던 영국 여성작가 도로티 글래디스 스미스의 1956년 명작소설 '101 마리의 달마시안(The Hundred and One Dalmatians)'에는 하얀 털바탕의 아름다운 점박이개인 달마시안 종 개들의 껍질을 벗겨 자신의 코트를 만들어 입겠다는, 정말 개 같은 아이디어를 가진 여인이 등장한다. 마귀 할멈 같이 생기고 이름도 섬뜩한 '크루엘라 드 빌'(Cruella de Vil)이다*이름을 풀이해보면, the cruel devil(잔인한 마귀)가 된다!) 1960년대와 1990년대의 애니메이션이나 영화로는 그녀의 사악성이 더 실감나지만. 그녀가 남자 주인공 로저의 아내인 아니타의 절친(?)이라니, 설정이 놀랍다. 물론 애완동물, 시쳇말로 반려동물인 데다 점박이 무늬가 고급스런 달마시안이기도 하지만, 환경보존주의가 발달하지 않던 당시로선 퍽 앞서간 내용이다. 드 빌 여인이 음모에 성공해서, 용감한 주인공 개인 퐁고와 퍼디는 뺀다 하더라도, 99마리 달마시안들을 하나씩 껍질을 벗겨 코트를 해 입었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현대라면, 아마 그녀는 사형감일지도... 

아무튼 천국에 개털 모자가 있으려면, 한 마디로 천국에도 개 도축산업이 존재해 있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또, 천국에 개털 모자가 있다면, 무더운 여름날 쓸 리는 없을 터. 엄연히 방한모인 개털모자를 써야 할 만큼 충분히 추운 겨울 날씨가 천국에도 있었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천국의 여름(?)엔 뜨거운 천국 태양 빛을 가려 줄 챙이 긴 모자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천국엔 사계가 있을까? 지상의 변화무쌍한 기후를 거기서도 즐기려는 기분파 성도들이 있어서, '천국의 여름'엔 생명 강가와 유리바다 비치에서 수영복을 입고 노닐다가, 겨울엔 흰 눈을 즐길 수 있는 것일까? 

 

천국엔 금 '면류관'도, 개털 모자도 없다. 다만 9 가지 다양한 이름의 빛나는, 자못 상징적인 상관(賞冠)이 있을 뿐이다. 천국 가면, 너와 내가 써야 할.....

천국엔 계급도, 계층도, 차별도 없다. 그냥 땅에서 주님께 죽도록 충성하던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과, 많은 영혼들을 올바른 길로 이끈 사람이 궁창의 별처럼 빛나게 될 뿐이다. 

우리 모두 그 상을 받아 누리자! 단, 천국에서 개털 모자를 쓸 위험은 없다. 



  1. royal 즉 왕다운, 왕권의, 왕실의...등의 뜻이 있다. 왕을 뜻하는 '멜렠'과 같은 어원. [본문으로]
  2. 순교자 스테판(스데반)의 이름의 뜻이 이것이다. [본문으로]

'이런 글 저런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코로나로부터 지켜줄 신?  (1) 2020.03.06
교인님, 로또 하세요?  (19) 2019.05.26
데니스 굳델의 르네상스  (0) 2018.08.27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10) 2018.04.11
절대표준과 비평정신  (4) 2016.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