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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현대영성비평

문제의 씨는 문제의 열매를 맺고야 만다



잘 모르는 개척 교회의 잘 아는 장로님과 퍽 긴 대화를 나눴다.
얼마 전 좋은 목회자를 모시게 되어 교회가 짧은 기간 내에 크게 발전하게 됐다는 얘기까지는 즐겁게 들었다. 다년간 찬양사역도 해 왔고 대학교수도 지낸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다음 말에 느닷 없는 충격을 받았다. 헐~ 듣지 않았더면 좋았을 것을! 한국서도 가장 영성에 문제가 많은 모 교회의 부교역자로 있었단다. 그 정도면 더 들을 것도 없을 거 같아, 대화를 피해 떠났다. 차라리 듣지 않았더면, 그 교회에 대해 이토록 빨리, 이토록 크게 실망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것이다: 문제 영성의 대형교회 출신 사역자들은 그 '영성'이란 것을 쓰레기 삼아 버리지 않는 한, 반드시 훗날 문제를 일으키게 돼 있다.
이건 표면상, 소위 교회성장학, 수리학, 통계학적으로 입증되는 외면상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인 문제이다!
영적(!!)인 문제..란 말이다.

그 동안 지켜 봐 온 케이스가 이를 입증한다.


영성 문제가 있는 한국 굴지의 대형교회 부교역자 출신인 모 목사는 이곳의 한 대형교회에 부임해 그 문제 영성을 이용해 자기 식의 목회를 하다 불과 몇 년 안 되어 출신교회로 되돌아가 버렸다.
떠나고 난 뒤 다양한 종류의 잡음이 많았다.
듣자니, 집에는 '양주병'이 즐비하고, 사람들이 있는 데서 부인에게 직접 핀잔을 듣는가 하면, 뭐 '여성 문제'도 있었다나 어쨌다나..어쨌든 다 확인되지 않은 얘기였다.

그러나 훗날 돌이켜 보니, 문제의 씨인 원흉은 그 '영성'이란 것이었다. 그는 전임 목회자의 영성은 대부분 잘못된 것이었다는 전제 아래 영성 대 전환도 주도했었나 본데..이후에 자신의 영성은 더 큰 잘못이었다. 따라서 부작용이 컸다.

 
또 다른 대형교회의 모 목사 역시, 이전에 있던 대형교회에서 한 가닥(?) 했다가 모셔진 모양인데, 만사를 조심하며 특히 대외활동을 삼가면서 신중히 행동하는 은인자중형으로 온 교회에서 존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온 지 얼마 안 되어 역시 문제 영성의 대형교회 강사를 초청해 모종의 영성모임을 갖는다는 뉴스에, 필자는 "어쿠나...필시 문제가 생기겠다" 싶었다.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그도 불과 얼마 안 되어 떠났다.
관상영성에 신사도영성이 복합된 케이스였다.


답답하게도, 사람들은 참된 교회성장이 뭔지를 잘 모른다. 진정한 영적 성숙을 모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냥 유명 교회의 허우대가 괜찮고 그럴싸한 목청의, 비교적 젊은 목회자를 모셔 와, 출석교인 수도 이내 늘고 설교가 듣기 좋으면, 다 은혜롭고 잘 돼 가는 성장 모범으로 성급히 자판해 버린다. 

정작 진짜 문제는 영적인 것인데 말이다. 처음엔 모든 게 그럴싸 해 봬도, 영적으로 돌아가는 상황은 "그게 아닌데"도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머잖아 "아닌 게 아니라"가 돼 버린다.  

교인들은 거의 언제나(!) 자기 눈과 겉모습, 옅은 겉느낌에 치우친다. 영적인 판단이 아닌 오관에 좌우된다.
다른 교회의 문제 케이스를 보고서도 돌아가는 상황을 거의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여전히 전철을 밟는다.

그래서 악(惡) 사례와 폐해가 주기적으로 반복되고도 거기서 단단히 교훈을 받지 않아 영 고쳐질 기미가 뵈지 않는다.

눈과 귀를 막는 마귀의 장난이다.


교계 주변을 둘러 보라.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영적인 원인과 요인에 도무지 관심이 없다. 점점 없어져 간다. 해가 가고 달이 가고 날이 갈수록 교인들은 겉모습과 겉뚜껑, 목청과 말솜씨, 숫자 등에 더 관심을 둔다. 심지어 그런 것들을 "은혜롭다"고 자판한다.

더욱이 아무 분별 없이 인터넽 등의 동영상에 귀가 익고 밝은 교인들은 겉엣것에 초점을 둔다. 자연히 영적인 것으로부터 멀어진다.

요즘의 소위 '영성'이란 것은 실상 모두 영적이기보다 심리성이고 심성이다. 프뉴마 차원이 아닌 프쉬케 차원이다. 그런 영성엔 악령이 개재된다. 프쉬케 차원을 갖고 무리하게 프뉴마 차원을 추구하다 보면, 거짓 프뉴마(악령)를 맞아 들이게 된다. 선하고 좋은 의미가 아닌, 나쁜 의미의 프뉴마다.

알고 보면, 영성은 영적인 밝음이 아니라 정반대로 영적인 어둠이다. 되뇌지만, 실제로 중세의 신비가들 다수는 어둠에서 '신비'를 찾고 있었다. 그러니 그 영성이 얼마나 어둡겠는가!

문제 영성은 반드시 문제의 씨를 심어 문제의 열매를 거두게 돼 있다.
문제의 발단은 문제의 귀결을 낳는다.


문제 영성의 목회자를 모시고도 입 벌려 미소 짓고 좋아 하는 교인들이여..정신 차려라. 조만간 심상찮은 열매를 보게 될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