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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 코너/샬롬의 평화칼럼

[요 15:4] 통화권 이탈 (샬롬)

credit: Flickr Fan68 from flickr.com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요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핸드폰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가계에서 통신비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 가족 개개인이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는 초등학생들까지도 핸드폰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요즘은 DMB기능은 기본이며, 터치폰에, 각종 검색기능에 게임기능까지 가히 손안의 작은 컴퓨터와 같습니다.

사람들이 핸드폰을 사용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만, 핸드폰을 사용하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예쁘고 세련된 디자인입니까? 많은 기능입니까? 
아닙니다. 

아무리 핸드폰이 진화한다해도 바뀌지 않는 가장 기본은 바로 “통화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통화야말로 핸드폰의 본질입니다.
아무리 많은 기능이 있다한들 통화가 되지 않는 핸드폰을 핸드폰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핸드폰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통화가 되나요?
새 핸드폰을 그냥 가지고만 있으면 통화가 됩니까?
대리점에서 가입을 해서 연결을 시켜줘야 통화가 되지요...
핸드폰 통화의 비결은 바로 이 “연결”에 있습니다..
이 연결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저는 추석기간중에 부모님을 모시고 베트남에 다녀 왔습니다. 
언제간 로밍을 받지 않아서 난처했던 안 좋은 추억(?)이 있어서 생전 안하던 “핸드폰 로밍”서비스를 받아서 갔습니다.
로밍서비스를 받아서 의기양양하게 다니는데....

동남아여서 그런지 가끔씩 제 핸드폰에 “통화권 이탈”이라는 말이 뜨네요.
로밍도 완벽하게(?)한 핸드폰인데도 말입니다.
로밍이 안 되니 통화는커녕 잘 보이던 문자 서비스도 접근이 안되더군요.
이건 그냥 핸드폰이 아니라 핸드폰 모양 케이스가 되어버렸답니다.

통화권 이탈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통화는 둘째치고 늘상 보이던 문자조차도 차단이 되어버리는게 “통화권 이탈”이었습니다. 
이 순간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통화권 안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통화권 안에만 들어가면 통화, 문자, 검색이 다 가능해 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통화권 이탈은 대체 어떤 것일까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케이스만 가지고 있다면 예수님이 보실 때 통화권 이탈입니다.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지 않으면 통화권 이탈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없이 그저 교회만 들락날락하면 통화권 이탈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으면 통화권 이탈입니다.

교회에 잘 나오는 척, 착한 척, 헌금 잘 하는 척, 말씀 잘 보는 척, 기도 하는 척......척 척 척 하는 것이 바로 통화권 이탈입니다.
이 척척척들은 핸드폰 케이스에 불과할 뿐입니다.

오늘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척척척 하면서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하십니다.
왜냐면 척척척은 예수님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라고... 그러면 예수님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주님의 통화권내로 들어오는 것은 겸손히 주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9절의 말씀대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것이며
야고보서 말씀대로 내 힘이 아닌 성령안에서 실행하는 것이며
중심에 모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편 1편의 삶이 살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그리스도인의 케이스만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모든 게 완벽한 듯 한데 혹시 예수님과 단절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가만히 자신을 돌이켜 보기를 원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바로 지금 즉시 주님의 통화권내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오늘 주님의 말씀대로 열매 맺는 그리스도인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