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긴박성 (참솔)
참솔님의 간증을 소개합니다. 많은 감동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맨 끝 영문 부분도 이해에 꼭 필요한 내용이어서 뒤늦게나마 편집자가 옮겼습니다.
저는 1967년 문경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3남 2녀 중 세째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은 석탄 채굴 광부로 20년 넘게 일하셨고, 어머니는 작은 논밭을 일구는 전형적인 영세농이셨습니다.
저는 성실하고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로 알려져 있었고 외적으로 별 문제 없는 모범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은 늘 어둡고 우울하였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여자라 하여 학교 문턱에도 보내지 않은 고지식한 집에서 자라서 하실 줄 아는 것이라고는 오직 소나 종처럼 일만 하고 아무리 힘들고 궂은 일도 참고 견디는 것 뿐이었습니다.
아내가 여자로서 애교가 없다며 오랜 세월 외도하신 아버지와 어머니의 다툼으로 집안은 바람 잘 날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한 번은 심한 구타를 당하셔서 뒷방 어두운 곳에서 하염 없이 저와 함께 울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놓치지 않으려고 옷자락을 꼬옥 붙잡고 있었지만 울음에 지쳐 잠든 저를 두고 어머니는 얼마간 떠나 버리셨습니다. 어디 가서 식모살이를 해도 이것보다는 나으리라 하셨으나 결국 자식들 때문에 일주일이 못 되어 다시 돌아오셔서 반복되는 고통의 세월을 참으셨습니다.
저는 열심히 공부하여 성공하면 어머님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겉으로는 여전히 모범생이었지만, 안으로는 늘 소화불량에 시달릴 만큼 괴로움을 안고 살아 갔습니다. 저는 '부전자전'이란 말을 가장 싫어했고 절대로 아버님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제 속에도 조상의 망령된 피가 흘러서인지 부끄러운 정욕의 죄가 있었습니다.
건국대 무역학과에 합격한 1986년 겨울. 3개월 여유 기간 동안 미우라 아야꼬의 "이 질그릇에도" 라는 책을 읽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야꼬의 신체적 결함에도 불구하고 진실하게 아내를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 미우라의 삶 속에서 순결한 참 그리스도인의 일면을 발견했습니다.
또 그 기간 중 방학 특선 프로그램으로 방영된, 손양원 목사님의 삶을 그린 영화 "사랑의 원자탄"과 주기철 목사님에 관한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시청했습니다. 비록 하나님을 모르던 저였지만 눈물을 흘리며 보았고, 성경을 알고 싶은 소원이 생겼습니다.
캠퍼스에 첫 발을 디딘 날, 하나님은 저를 한 성경공부 모임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조금씩 하나님을 알게 되었고 은혜를 받았지만 죄를 회개하기 싫어 여름수련회 초청을 거절하였습니다. 막바지까지 버티던 저를 하나님은 강권적인 사랑으로 수양회로 이끌어 주시고 부끄러운 죄를 회개하여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 데 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예수님의 말씀을 믿게 되어 모든 죄짐을 주님께 내려 놓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하늘을 날 것 처럼 기뻐 단잠을 이루었고 오래 앓아 온 소화 불량에도 더는 시달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다 내려 놓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최근 어머니께서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짧은 기간이나마 방문을 하는 동안 어머니를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제게 과연 어떤 분이신지 더욱 깊이 깨닫는 기간이었습니다. 학교 문턱에도 가 보지 못하신 어머니께 교회 가셔야 된다고 하면, "글도 못 읽는데 교회는 가서 뭘 하냐"고 하실 때, 곁에서 성경책을 읽어 드리지 못하는 것이 무척 마음 아팠습니다.
비록 낫 놓고 ㄱ자도 모르시는 어머니셨지만 제겐 가장 위대한 어머니이십니다.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고자 언제나 애썼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어머님이 나를 5 남매 중 제일 사랑하신다는 의심 없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정작 형제자매를 만나 보고서야 그들 모두가 저 못지 않은 확신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큰형님, 작은형님, 동생, 막내동생에게 차례로 물어 본다면 모두 한결같이 대답할 것입니다. "어머님은 나를 제일 사랑하셨다"고.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하다가 크고 깊은 깨달음이 왔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5남매 한 사람 한 사람을 자신의 전부를 다하여 최고로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할 때면, 늘 큰형님을 잘 도와 주라고 하셨습니다. 형님이 지금은 우리들 중 가장 큰 부자가 되셨지만 어머니는 형님에게 학교 공부를 많이 시키지 못한 것이 늘 가슴 아파 눈물 지으시고 큰형님이 제게 도움을 청하거든 어려워 말고 힘 닿는 데까지 도우라고 하셨습니다.
한 때는 자녀가 없는 작은형님 내외의 아픔을 한 몸에 지고 괴로워 하셨습니다. 저의 셋째 아이 현진이가 났을 때 형님께 줄 수 없냐고 물으며 호소하셨을 때 그럴 수 없었던 저의 괴로움은 지금도 현진이를 볼 때마다 응어리져 한숨 짓곤 합니다. 형님께 정말 송구한 마음입니다.
작은동생 영이가 자신이 힘든 주에도 늘 조금씩이나마 어머니께 용돈 챙겨 드리는 것도 고맙다 하셨습니다. 막내가 어릴 때 분유를 먹고 자라 몸이 약한 것을 마음 아파 하셨고, 커서는 야무지고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 나가지 않는 모습에 다시 상심하시곤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서로 다른 부모들이 있지만, 자녀들에게 모든 것을 끝까지 내어 주시고 사랑하는 부모는 드뭅니다.
저는 누구보다 어머니께 큰 고통을 안겨 드렸습니다. 어찌 보면 가난한 집에서 대학까지 나와 혜택을 제일 많이 받은 셈인 제가 어머니 기대를 저버리고 이역만리 선교사로 간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르시던 어머니는 당신의 사랑하는 아들을 송두리째 앗아 가신 하나님이 원망스러우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정해 보이는 제가 무척이나 섭섭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좇아 한국을 떠나던 그 날, 다른 것은 몰라도 어머니 때문에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그래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들어 선교사로 갑니다. 부디 제 형님 동생들 부자 되게 해 주셔서 불쌍한 우리 어머니 호강시켜 드리게 하시고 제가 못하고 떠나는 제 몫의 효도까지 다 하게 해 주소서."
저는 큰형님 내외 분이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얼마나 긴 세월 고생하며 성공하고자 애썼는지 곁에서 보아 알고 있습니다. 두 가지, 세 가지 일을 하며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피 섞인 변을 볼 만큼 고생하셨습니다. 그러나 고생하고 애만 쓴다고 누구나 다 부자가 되고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교 8년 째 되던 해 큰형님이 부자가 되어 볼티모어에 나타났을 때 하나님께서 하신 것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분이시며 그 분의 거룩한 사랑과 자비는 측량할 길 없습니다. 그분은 공의로우셔서 죄에 대해서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감히 섰을 때 죄로 인해 그 심판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셔서 죄 없고 흠 없는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저는 세 아이들 중 막내 딸 하나, 그것도 피를 나눈 친형제에게도 주지 못하는데 하나님은 독자 예수님을 죄인들을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와 질병을 고치시고 그의 부활로 우리에게도 사망을 이길 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예수님 안에 영생이 있습니다. 우리 육체의 생명은 죽음과의 거리가 불과 종이 한 장 차이도 나지 않습니다. 어머니께서는 70을 넘기셨지만 우리 가운데 누가 내일을, 아니 1분 후를 장담할 수 있습니까? 우리 육체의 삶이 끝나는 순간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 가운데 누가 "나는 하나님 앞에 부끄럼이 없다" 자신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나서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값을 낱낱이 다 치루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형벌 받으심으로써 우리의 죄값을 모두 지불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죄 사함 받고 영생과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지니게 됩니다.
저의 삶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전능하신 분임을 느끼실 것입니다.
누구보다 어머니를 사랑하던 제가 어떻게 매정하게 이역만리로 선교사로 가게 되었을까요? 저의 처음 5년 간의 미국 생활은 밑바닥 일을 하는 인내의 기간이었습니다. 지금은 저와 제 아내 모두 미국의 좋은 회사에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엔지니어들로 일하며 세 자녀를 믿음 있고 능력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로 양육하고 있습니다.
최근 어머니는 당신도 예수님 믿고 교회에 다니고 싶다 하셨습니다. 제가 가는 하나님 나라로 가고 싶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난 가을 어머니의 칠순 때, 만사 제쳐 두고 와서 어머니 손 잡고 교회에 모시고 나가지 못한 것이 못내 한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참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바라봅니다.
성경엔 구원 받은 강도의 실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달리셨을 때 함께 처형 당한 죄인입니다. 마지막 순간 그는 "주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이를 때 나를 기억하소서" 라는 신앙고백을 함으로써 구원의 대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님께서 하신 작은 고백이 그 어떤 것 보다 진실한, 주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신앙고백이었으리라 저는 굳게 믿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죽음이 영원한 작별이 아닙니다. 죄도 죽음도 없는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운 어머님을 뵙고 기쁨과 감사의 춤을 출 것을 소망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이 헛되거나 무의미하지 않고 우리 남은 가족 모두에게 잊혀지지 않는 중대한 날이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날이 우리 모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새 삶을 살게 되는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날이길 기도합니다.
My Testimony in Remembrance of My Mother
Recently my wife and I had a short trip to Korea and experienced a great work of God in the midst of my mother's passing. I was the only Christian among my family members, but now a lot of them have begun to believe in Jesus.
(최근 제 아내와 저는 한국에 잠깐 다녀 오면서 어머니의 장례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저는 우리 집안에 유일한 신자였지만 이제는 그들 다수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During my previous visit to Korea, even though mother was suffering from a deficiency of iron and back pain her overall health condition seemed not bad. When I heard about her sudden brain surgery on Friday (1/18/08), I couldn't believe my ears. I was shedding tears for two days. My greatest pain was that I had been postponing my visit, epecially as she was fully ready to receive Jesus as her Savior and Lord after my recent conversation with her.
(어머니는 지난 번 방문 때만 해도 철분결핍과 척추통증으로 고생하셨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올해 1월 18일 갑자기 뇌수술을 받으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는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이틀을 꼬박 눈물로 지냈지요. 가장 큰 아픔은 나의 방문을 연기해왔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최근 대화에서 어머니는 예수님을 구주와 주님으로 믿을 준비가 다 되신 상태였습니다).
When I heard that her condition was serious on Sunday (1/20/08) afternoon, my heart was broken and hands were shaking from time to time and I didn't know what to do other than praying at the very moment. Then immediately I booked a flight and made an appointment with the expedite passport place in DC.
(1월 20일 주일 오후 어머니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소식에 제 가슴은 미어졌고 때로는 두 손까지 떨렸습니다. 어쩔 바를 몰라 기도만 하다가 즉시 수속을 밟아 한국 갈 채비를 했습니다.)
My brother told me that the doctor declared her brain death on Sunday night. When I finally arrived at the Hanyang University Hospital Intense Care Unit where my mother was, all I could do was to pray in tears beside my mother, because she couldn't talk or respond to me at all.
(형님 말씀으로는 의사가 주일밤 어머니의 뇌사를 최종 진단했다고 했습니다. 한양대학교 부속병원 중환자실에 도착하자 어머니는 말씀도 대답도 전혀 하실 수 없어 다만 곁에서 울며 기도할 뿐이었습니다.)
Overnight in the hospital, I wrote my life testimony. I slept less than 2 hours each day throughout the week. I could grab the moment when God opened a door to share the gospel with the family members, starting from my sister-in-law. I began to give her my testimony on Saturday (1/26/08) midnight, and then at 2:30 AM, did I to my father, my big brother, a cousin, and another sister-in-law at the hospital.
(병원에서 밤을 지새며 나의 간증문을 썼습니다. 한 주 내내 하루 평균 두 시간도 안되는 잠을 잤지요.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할 문을 열어 주시는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26일 토요일 한밤에 나의 형수님으로부터 시작해 새벽 2시30분 아버지, 큰형님, 사촌, 다른 형수님 등에게 간증을 했습니다.)
That night their hearts were all melted before the Lord! They also canceled their funeral plan based on the Buddhism practices. By the time I returned to Baltimore (1/24/08), they decided to bury mother in Christian way, helped by a pastor of my hometown.
(그날 밤 그들 모두의 마음이 성령으로 녹았습니다. 그래서 불교식으로 하려던 장례도 취소했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고향의 한 목사님을 모시고 기독교식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From this trip, I learned so many things. Particularly, I came to have a sense of urgency in sharing the gospel with unsaved souls. And I tasted the greatness of God's mercy, his power and faithfulness.
(이번 여행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지요. 특별히 잃은 영혼들에게 제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긴박성을 새삼 느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권능, 신실하심을 맛보았습니다.)
Just as God promised in Acts 11:14, "Believe in the Lord Jesus, and you will be saved - you and your household", Jesus changed my household and has begun to write a whole new history of it.
I praise and love Him!
(사도행전 11:14 말씀 "주 예수를 믿어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신 그대로 예수님은 나의 집안을 변화시키시고 새 역사를 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주님을 찬양하며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