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의 지난 칼럼들/은강의 순례여정

2 - 6 신앙이 이렇게 단순해? (은강)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11. 09:06

은강의 당신께로의 여정
2-6

[그렇다면 지금도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신앙이란, 그들의 일상을 하나님의 말씀에 맞도록 사는 것인가요? 그렇게 살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

알기로, 주변인들을 통한 그동안의 내 간접경험으로, 신앙이란 그리 간단명료 단순소박한 것이 아니었다. 일단 믿기 시작하면 보통 골치 아픈 것이 아니었다. 신경을 써도 써도 늘 부족해 보였다.
그런데 그의 말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그저 나그네에게 친절하고 이웃에게 잘해 주었을 뿐인데도 하나님의 친구였단다.
(아브라함은 언제부터 하나님의 친구가 된 것일까.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나진 않았을 테고 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지시를 군소리없이 따른 이후 친구가 되었을까. 오래 오래 살았으니 긴 세월을 두고 천천히 친구가 된 것일까.) 
 
나한테는 아들을 번제로 내라곤 안 하실 테니 친구될 '기회'는 일단 없다 치고, 아브라함을 모델로 삼아 그저 다른 사람에게 잘해 주는 것이 그럼 신앙이라는 말? 나그네에게 친절하게 구는데 신앙까지 빌어와야 하는지는 의문스럽지만.

[정답]

이크, 정답이란다. 이게 웬 횡재람?  
긴 강의 그냥 듣고만 있기 민망해, 적당히 넣어본 추임새가 정답이란다.

나, 공부에 소질 있었던 거 아냐, 혹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한때 달달 외웠던 '국민교육헌장'은 외우기만 하고 지키며 살진 않았나 봐, 이제 와서 계발하기엔 너무 늦은 소질인 거 같고. 
     
정답이라니, 가볍게 한 말이 점수를 따 주니 기분이야 괜찮지만, 신앙이라는 게 정말로 그렇게 단순해?   

[정답입니다. 더 넣고 빼고 할 것도 없네요.
간단한 일이에요. 하나님이 창조주시고,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셨어요. 대체 뭘 더 원하시겠어요, 안 그래요?]

그런가..
정말로 그런가..
대체 뭘 더 원하시겠느냐..
하나님은 창조주 인간은 피조물, 대체 뭘 더 원하시겠느냐..

이건 너무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얼른 동의가 나오지 않는다. 믿기가 쉽잖다.
대체 뭘 더 원하시겠느냐.. 솔직히, 모른다. 내가 어찌 알랴. 그게 다인지 더 원하는 게 있는지, 그걸 내가 알면 설마 이렇게 살까. 
모르긴 모르는데, 나는 모르는 문제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사람의 말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 건 또 무슨 심사지?
머리로는 그렇다네 하면서 마음으론 진짜 그렇대? 반문한다.  

하나님이 원하는 게 대체 뭐가 더 있겠냐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원하는 게, 겨우 그것 뿐이라고?
내가 곁눈질로 얻어 들은 하나님은 영 안 그래 보였는데.     
 
오래 전, 외가집 창호문에 뚫려있던 구멍. 소설에서는 보통 그 구멍으로 방안을 들여다 보지만, 나는 그 구멍으로 바깥을 보았었다. 작은 구멍으로 내다보면 세상은 작고 동그랬다. 내가 늘 보던 그 세상이 아니었다. 코 앞으로 누가 지나가면 금방 깜깜해지고 재빨리 사라지고 나면 누구였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지금 앨리스인가 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늘 봐 왔으면서도 낯선 느낌이었던 구멍을 통해 보던 마당처럼, 제법 살아온 세상이건만 신앙을 통해 보는 세상에 대해 나는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내 마음에 동의가 일지 않는다고 진실 또는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되는 거다. 

비교적 가까이 볼 수 있는 몇몇 기독교인들의 생활이 일순 머리를 스친다.
그들의 삶이 단순했던가.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그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다.
내가 내 아들한테 무엇을 바라겠나, 그저 저나 행복하게 살아주면 그걸로 족하지.    
인간인 내가 아이에게 이럴진대 하물며 창조주가 피조물에게랴.

[종교를 복잡, 처절, 비장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들이랍니다.]

맞다 맞다.
명언이다 명언.

인간이란 얼마나 복잡한 걸 좋아하는 생명체인가. 온갖 것을 다 복잡, 처절, 비장하게 만들어 권력 다툼을 하고 전쟁을 한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사생결단을 하며 매달린다. 머리카락에 목숨을 걸기도 하고 죽은 이를 위한 상복을 입네 못입네 하며 나라를 말아먹기도 한다.  

그러고 보니 그러한 성향이 종교에도 고스란히 적용되는가 보다. 종교는 '종교'니까, 어쩐지 거룩할 거 같으니까 그러한 인간 취향의 공격에서 예외일 거라고 내 멋대로 치부했는데, 역사를 짚어 보니 전혀 그렇지가 않다. 세계사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종교전쟁,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끔찍한 처벌 행위들.. 매사를 복잡 처절 비장하게 몰아가는 인간 특유의 행동양상이 종교라고 비켜간 건 아니었다.  
하나님이 설마 당신을 놓고 피터지게 싸우라고 명하셨을 리는 없으니, 종교전쟁이야말로 어쩌면 복잡 처절 비장의 전형일지도 모른다.

[교회에 다니면 좋은 점 많아요. 가족 관계에 좋고, 자녀 교육에 좋고, 부부관계에 좋고, 이웃이 많아서 좋고, 마음에 중심이 생겨 좋지요. 글을 쓰는 분들은 글에 내적 경험과 관점이 생겨서 좋습니다. 나쁜 점도 있어요. 일요일에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생기고, 헌금을 내게 되고, 보지 않던 교과서를 하나 끼고 살게 되지요.
그런데요, 늦게 갈수록 이익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개 간 사람들은 늦게 간 것을 아쉬워한답니다.]

그가 웃음지으며 가볍게 덧붙인다.
뭐야... 좋은 점이 이렇게 많아? 이게 다 정말 돼?
가족 관계, 자녀 교육, 부부 관계, 이웃.. 거기에 마음의 중심까지? 이거 뭐 만병통치약이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가족 관계, 자녀 교육, 부부 관계, 이웃은 꼭 교회에 다녀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밝게 살면, 교회 아니어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마음의 중심이라.. 이건 조금 다르다.. 마음에 중심이 있다는 것, 이건 그리 쉽게 되는 건 아닐 텐데.
흠... 이건 솔직히 좀 탐이 난다. 마음에 중심이 확실하게 서면 사는 게 얼마나 편해질까, 갈등이 현저히 줄겠지.

그러나 또 어떤 중심?
중심도 중심 나름이다. 이상한 중심이면 없느니만 못한데 기독교인의 중심이라고 다 바람직할까?
기독교인이라면 모두 다 중심이 같나?

아니 아니다. 그건 아닐 거다.
하나님을 믿는다 해서, 그들 모두가 동일한 중심을 지니고 있을 거 같진 않다. 내 주변의 사람들만 봐도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렇긴 한데.. 결국 다 다른 중심이라면, 비기독교인으로 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지? 약하긴 하지만, 그 놈의 중심이 변덕을 부려 가끔 힘들긴 하지만, 나도 나름대로 중심은 있는데.

마음의 중심, 간단하지 않다.
땡기긴 하지만 일단 보류다.

자, 나쁜 점도 제법 많군. 이것도 만만하진 않다.
일요일을 꼼짝없이 투자해야 하는 것, 이건 거의 불가능이다. 거기에 헌금과 교과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