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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위 코너/샬롬의 평화칼럼

‘그리스도의 수난’을 읽고 1 (샬롬)

    병상에서 십자가상을 내려다보며 묵상에 잠긴 에머릭 수녀

 

참고 번역서: '그리스도의 수난'

전민경 옮김/예찬사/2004


평자: 샬롬


이 책의 원서는 1833년 처음 출간되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중심으로 유대계 독일인인 안나 카타리나 에머릭 수녀의 환상/묵상을 구술로 받아 적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에게도 익히 알려진 멜 깁슨 감독의 영화,「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원작 격인 책이기도 하다. 

소개의 글을 보면, “에머릭 수녀는 한 인간으로 온전히 순종하는 마음과 양심의 지시에 따라 모든 일을 설명하였으며, 한 겸손한 신앙인의 묵상록이 신실한 이들의 격려를 받고 선한 이들의 소망을 담아 출판되었다”고 하였다. 과연 이 책이 신실하고 겸손한 신앙인의 묵상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그리스도의 수난」은 전반적으로 판타지 같고, 지극히 서사적이고도 상상력을 자극하며 감정을 격하게 하는 구체적 묘사들로 점철되어 있다. 소설로 치면, ‘전지적(全知的) 작가 시점-등장인물에 대한 순수 제3자적/표면적 관찰과는 달리 내면까지 두루 조감하는 신적인 입장과 같은 시각--으로 써졌다고 할 수 있겠다. 

판타지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은 특정 정경/상황의 정밀묘사, 성경에 언급돼있지 않은 다양한 인물 및 대화, 등장인물의 숫자나 사건 발생 시간 같은 면밀한 요소들, 심지어는 남의 심령의 탄식조차 알아내는 저자의 ‘능력’과 영계를 아우르는 체험까지 표현되어 있는 등, 대단히 풍부한 상상력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유월절 준비로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의 수난 과정 대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 서사적이면서도, 장면 하나하나를 구체적이고 또렷하게 그려놓은 점들을 보노라면, 마치 누군가가 근접 촬영된 영화의 한 컷을 보면서 있는 그대로를 세밀히 설명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창공을 나는 새의 눈으로 조망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주도면밀한 각 장면은 읽는 이의 상상력을 배가시키며, 그리스도인이라면 응당 느낄 법한 격한 감정까지 무리 없이 이끌어내고 있으나, 이 모든 묘사와 표현이 성경중심이 아니라 철저히 카톨릭적인 관점과 개인의 환상을 중심으로 삼고 있어,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무덤덤해진 우리의 마음이 예수님의 고난을 다시 한 번 묵상해 보는 것은 좋으나, 그 가운데 참과 거짓이 절묘하게 섞여 있어, 예리한 분별이 요구된다. 


성경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고난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십자가 사건만은 아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신 지 약 2년 만에 헤롯의 영아학살극(마2:23)에 쫓겨 그 땅을 떠나셔야 했고, 공생애 기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단의 시험(눅4:1~13)과 유대인들의 비웃음, 불신과 박해 등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심지어는 친속들조차 예수님이 미쳤다 취급할 정도로(막3:21) 고단한 생애를 사셨다. 참으로 머리 둘 곳조차 없으셨던 분이 아니시던가... 

따라서 예수님의 수난이라면, 십자가 위의 희생뿐 아니라 온 생애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연속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고난은 더 나은 영광인 부활을 위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책 대부분은 고난과 그에 대한 애통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점도 독자들의 경계가 요청된다. 


또한, 책에서 이 고난과 더불어 늘 동행하는 이가 나오는데, 바로 ‘주의 모친’ 마리아다. 주님께서 심사숙고하여 부르시던 “여자” 마리아(요2:4, 요19:26)는 간 곳 없고, 모든 경건한 여인의 앞에 ‘주의 모친’ 마리아가 위치해 있으며, 심지어는 예수님이 부활 전날 모친인 마리아에게 먼저 자신을 나타내 보인 장면까지 있는데, 그것이 책의 한 섹션(제 60장 부활전야)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이다. 마리아 숭배를 향한 카톨릭적 어젠더가 여실히 느껴지는 부분이다.

또한 곳곳에서 성인/천사 숭배, 성물 등 유품 숭배 사상 등이 진하게 배어나오며, 은근슬쩍 연옥을 소개하는 등 다량의 비성경적 배경과 표현도 보인다. 이루 일일이 다 언급하는 데 한계가 있을 테니, 대표적인 몇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먼저 저자에 대해 간략히 알아보자. 안나 카타리나 에머릭(Anna Katharina Emmerick 1774~1824, 영어식: 앤 캐서린 에머릭, Anne Catherine Emmerich)은 1774년 9월 8일 신성로마제국의 일부였던 독일 베스트팔리아의 주교지, 뮌스터의 코스펠트에서 약간 떨어진 농촌인 플람쉔에서 태어났으며, 코스펠트의 성 야코보 성당에서 영세했다. 

에머릭의 삶에서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일은 24살이 되었을 때 주님의 가호[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수난에 대한 깊은 묵상이 한 사람에게 주어져 그 수난을 환상을 통해 경험하는 것 ]를 받았다는 것이다. 카톨릭교에서는 이를 일종의 사적 계시 [ 사적계시: 전달되는 진리가 신비로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을 때 초자연적 계시라 부른다. 초자연적 말씀계시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일 때 공적 계시(revelatio publica)라 부르고, 다만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계시는 사적 계시(revelatio privata)라 부른다. / 출처:http://www.catholic.or.kr/ ] 로 여기고 있다. 


1802년 11월 13일, 에머릭은 성 아우구스티노 수녀원에 들어갔고, 심한 마음의 고통으로 인한 병을 앓게 되는데, 그 고통은 병이 다 나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아서 1812년까지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고 한다.


그 후 그녀의 몸에는 십자가의 흔적[ 성흔, 스티그마타(stigmata) : 사람의 몸에 생긴 징표 중에서 특별히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흔적으로, 13세기 이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상처 자국을 닮은 상처에 대해서 특별히 사용했다. 십자가의 흔적은 못으로 인해 손과 발에 난 상처, 가시관에 의해 이마에 생긴 상처, 창에 찔린 옆구리의 상처 등을 일컫는다. 그리스도의 5상(五傷)이라 표현하기도 함]이 생겼다고 하며, 1803년 11월 13일 29세의 나이로 뒬멘의 아그네텐베르크 수녀원에서 서원을 한 지 얼마 후부터 병으로 침대에 묶여 지내다가, 49세 때인 1824년 2월 9일 사망하였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고 하였다. 여기서 '흔적'으로 번역된 "스티그마타"가 신약성경에서 유일하게 본 절에서 사용되었는데, 혹자는 카톨릭교에서 말하듯 '그리스도의 5상'이라 말하기도 하나, 본문에서는 바울의 몸에 뚜렷하게 남아 있는, 복음을 전하다가 입은 고난의 상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복수형이 사용된 것으로 보아, 바울의 몸에 이러한 상처가 맣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에머릭의 생애 말기 12년간 당대의 낭만파 시인 클레멘스 ‘마리아’ 브렌타노가 그녀의 환상 구술을 받아 적었고, 그녀가 죽고 난 뒤 그 기록을 세 권의 책으로 출판하였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수난' , ‘제자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 ‘동정 성모 마리아의 생애’이다.  2001년 요한 바오로 2세는 에머릭 수녀를 성인의 반열에 추존하여, 가경자 [可敬者, Venerable: 시성(諡聖) · 시복(諡福)이란 성덕이 높은 분이 죽으면 그 성덕을 드러내고, 모든 이가 그를 본받도록 성인(聖人)이나 복자(福者)의 품위에 올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가경자(可敬者)란 시복을 위해 조사를 시작한 사람에게 잠정적으로 주어지는 존칭이다. / 출처:http://www.catholic.or.kr/ ]라는 칭호를 수여하였다. 

브렌타노는 낭만주의자다운 상상력을 최대한 짜내어, 없는 얘기들을 만들어내는 데 천재적인 사람이었기에, 에머릭 자신의 문제도 문제이거니와, 카톨릭권 자체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에머릭의 구술 내용에 신용을 주지 않는 또 다른 동기가 되어 왔다. 


본 비평은 책 본문의 내용을 가급적 가감하지 않고 추려서, 독자들이 비교적 손쉽게 그 문제점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며,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신화적 요소들 : 성배, 성역화․성물화․유품 숭배, 천사 숭배 

   2. 마리아 숭배/흠숭 

   3. 카톨릭의 전승, 예전 강조 

   4. 베드로의 권위 강조  

   5. 비성경적 내용들 : 환상들, 인물들, 연옥 

   6. 신비주의 경향


※ 이하 옮긴 글 중 “나”는 대부분 에머릭 수녀 자신을 가리킨다.

( )는 대부분 이해하기 쉽게 평자가 첨가해 놓은 부분이다.



1. 신화적 요소들 : 성배, 성역화․성물화․유품 숭배, 천사 숭배

성경이나 또한 역사적으로 출처가 불분명한 판타지적인 요소들이 도드라진다. 카톨릭교에서는 A.D. 786년부터 속죄와 예배의 수단으로 십자가, 성상 및 유골을 숭배해왔다. 이는 십계명 중 둘째 계명의 파기에 해당한다. 이 관행은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미망인 왕후 이레네의 명령에 의한 것으로, 왕후는 그녀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의 눈을 빼도록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당시 로마의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의 요구로 교회회의를 소집하였다. 이와 같은 의식을 성경에서는 오직 우상숭배라고 부른다(출 20:4~5, 신27:15, 시 115)



□ 성배(聖杯) 


· 사도들이 베로니카의 집에서 들고 나온 성배는 훌륭하고 신비로웠다. 그 잔은 원래의 용도와 기원을 알 수 없는 다른 귀중한 고대 유물들과 함께 유구한 세월동안 성전에 보관되어 왔다. 봉헌된 많은 보화들이 잊히거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쓰이지 않고 방치되는 경우가 기독교회에 종종 있었다... 골동품상에게 팔렸다. 세라비아가 골동품상에게서 이 잔을 구입했고, 예수님은 축제 기간에 여러 번 이 잔을 사용하였으며, 최후의 만찬 이후 이 잔은 기독교 공동체의 중요한 재산이 되었다. 


· 성배는 잔과 대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대는 후대에 누군가가 다른 재료로 덧붙인 것 같았다... 순금으로 만든 대에는 과 작은 포도송이의 정교한 장식이 있었고, 보석으로 치장되어 있었다. 이 성배는 예루살렘 교회를 섬기던 작은 야고보에게 맡겨졌고 예루살렘 교회에 잘 보관되어 있으며 옛날에 그랬던 것처럼 언젠가 다시 발견 될 것이다. 다른 교회들은 성배 주변에 있던 작은 잔들을 가져갔다. 하나는 안디옥에, 다른 하나는 에베소로 보내져 족장들이 가져가 성례를 행할 때 신비스런 음료를 마셨다.


· 성배는 지난 날 아브라함의 소유물이었다. 원래는 멜기세덱이 그 성배를 세미라미스 지방에서 가나안 땅으로 가져왔다... 나중에 이 잔은 경건한 족장 아브라함의 손에 넘겨졌고 노아의 방주에도 선적되었다.


· 베드로와 요한이 세라비아의 집에서 가져온 포장되어 있던 성배를 가지러 화덕으로 갔다. 두 사람은 성궤를 옮기는 것과 같이 성배를 가져와서 식탁 위에 놓았다.


▶ 잔 자체가 신비스러운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설령 예수님이 성찬식때 사용했던 잔이 있다손 치더라도 성경에서 사단과 동일시하는 뱀이나 사람들이 반할 만한 정교한 장식이 있을 리 만무하며, 성찬에 사용되는 잔의 내용물이 신비스런 음료로 변화되는 것이 성경적인가?  

성배의 소유물이 아브라함 때까지 소급하여 거슬러 올라감은 모종의 근원적인 신비를 추구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근거도 없이 어떻게 이토록 확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노골적인 상상이 시작부터 돋보인다 하겠다.


성찬예식은 단지 예수님의 고난만을 기리기 위함이 아니다. 주님은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고(히12:2) 스스로 유월절 어린양이 되셨으며(고전 5:7), 죄악을 이기시고 죽음을 이기사 우리를 구원의 반열로 이끌어 주셨다. 이 그리스도의 대속사역이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지속되고 있기에 그 은혜를 기념하고 기림이 마땅하다.


▶▶ 실제로, 구약성경에 근거하여 후기 유대인들이 지켰던 유월절 전승의 식탁은 다음과 같다. (일부는 성경에 없음)


  1. 두 촛대(성경에는 없지만 유대인의 전통)

  2. 네 잔의 붉은 포도주(출 6:6~7), 붉은 포도주는 구속의 피를 상징

   출 6:6~7에는 네 가지 은총이 있음을 생각하며 4잔을 마심

    1) 내가 너희를 빼어냈다.

    2) 내가 너희를 건졌다.

    3) 내가 너희를 구속했다.

    4) 내가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았다. 


  3. 양고기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산다. 양이 죽었기에 이스라엘 장자는 살았고, 양의 피가 없는 애급(이집트)의 장자들은 죽었다. 이 어린양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4. 쓴나물

   쓴 냉이, 쓴 상추로 식탁이 구성된다. 처음에는 단맛이 나다가 나중에는 쓴맛이 나는 채소들로, 애굽 생활의 시작(요셉 시절)은 좋았으나, 후에는 노예가 되었음을 상기하면서 먹음


  5. 무교병

   누룩이 없는 맛없는 떡. 하나님께서 해방을 주셨으니 악을 제거한다는 의미가 있음. 그래서 마짜라는 빵을 세 덩이 준비하여 마짜 주머니에 넣는다.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


  세 덩어리의 마짜는

   1) 아브라함, 이삭, 야곱 세 족장을 의미함

   2) 제물, 제사장, 레위인 제사의 3대 요소를 의미함

   3) 유대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세 면류관의 의미 : 배움, 제사장, 왕권 


  6. 달걀

    성경에는 없지만 전통적으로 뜨거운 물에, 오랫동안 단단하게 삶은 달걀을 준비하는데, 이는 이스라엘 민족은 시련이 올수록 강해지는 민족이라고 가르치기 위함. 


  7. 카로셋

    거친 무 또는 잘 이긴 사과, 호두나 밤 같은 견과류, 건포도, 계피 가루 등을 섞어서 짓이겨 만든 잼. 맛이 너무 맵거나 자극성이 강하여 눈물을 찔끔 흘리게 되는데, 애급에서 종으로 중노동했던 것을 생각나게 한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빵을 찍어준 소스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8. 소금물 

    성경에는 언급이 없으나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1) 애급에서 조상들이 흘렸던 눈물

    2) 애급에서 조상들이 흘렸던 땀방울

    3) 조상들이 출애굽 때 건넜던 짠 홍해바다


  9. 엘리야 잔

    역시 성경에는 없는 것으로, 유월절 음식 식탁 중간에 놓여 있는 잔으로 의자에는 아무도 앉지 않는데, 이는 메시야가 오시기 전에 엘리야가 와야 한다는 말라기 선지자의 말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말4:5~6) 



□ 성역화(聖域化) ․ 성물화(聖物化 ), 유품 숭배


· (제 2장 최후의 만찬장소 中) 훼파된 다윗 성에서 멀지 않은 시온산 남쪽 부근 다윗 성으로 통하는 길에는...넓은 광장 한복판에 고대의 견고한 건물이 서 있었다. 입구의 좌우측에는 다른 건물들이 벽에 붙어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특히 문지기의 처소가 있던 오른쪽 부근에 마리아가 예수님의 죽음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집이 있었다.


· 만찬장은 규모가 더 컸으며, 그곳은 옛날 다윗의 용감한 군대 지휘관들이 무기 사용법을 훈련하던 곳이었다. 성전 건물 앞에는 언약궤가 상당히 오랫동안 놓여 있었는데 지하실 안에서는 아직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선지자 말라기 역시 그 다락방에 머물렀었다. 그는 거기서 성찬의 떡과 새 언약의 희생에 대한 예언들을 기록했다. 솔로몬은 이 집을 존귀하게 여기고, 이 안에서 여러 의미의 상징적인 일을 했다 


· 만찬장은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어서 낭실, 성소, 지성소로 구성된 성전과 흡사했다. ... 이 건물 아래에는 전체적으로 훤히 트인 창고 같은 것이 있었다. 예전에는 언약궤가 후대에 화덕이 만들어진 바로 그 자리 밑에 놓여 있었다. 


▶ 예수님의 ‘최후의 (유월절) 만찬 장소’를 나름으로 설명하는 부분이다. 만찬장에다 역사성과 성스러움을 부여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왕 솔로몬과 구약의 선지자 말라기까지 등장시키지만, 외려 과연 그러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 나라의 왕이 각별히 존귀하게 여기는 장소가 왕이 거처하는 궁전도,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도 아닌 바깥 어느 장소라는 점도 그렇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상징적인 일을 했다는 것도 모순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마땅히 성전에서 제사장이 도맡아 했을 터인데,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이 지정하시지도 않은 제3의 장소에서 그분이 기뻐하실 만한 어떤 상징적인 일을 했다는 것인가? 


만찬장을 세 부분으로 나눈 것 또한 성전의 구조를 모방한 의도적인 표현으로 보이며, 언약궤가 그 곳에 놓여 있었다함은 최소한 언약궤가 놓일 만한 장소라는 뜻인데, 그렇게 성스러운 곳을 이스라엘 민족이 일개인의 만찬장으로나 사용되는 장소로 나 몰라라 두었을 성 싶지 않다. 



· 예수님은 시편을 노래하시면서 만찬장을 빙빙 돌아 그곳(최후의 만찬장)을 새로운 성전으로 봉헌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 뒤를 따라 돌았다. 모든 문을 닫고 이 의식을 봉헌하셨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을 짓겠노라고 공약하셨는데, 무엇 때문에 만찬장 장소를 새 성전으로 봉헌하신다는 것인가?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막 14:58) 



· 예수님이 기도하셨던 동굴은 평상시 감람산에 오르셨을 때 기도하셨던 곳이 아니었다. ... 그 오두막은 어느 날 열매 맺지 않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고 마음이 크게 상하셔서 바위에 기대 팔을 뻗고 기도하셨던 장소에 있었다. 그 바위에는 주님의 몸과 손자국이 남아 있어서 후일에 귀히 여김을 받았다. 


· 나는 돌에 찍힌 비슷한 흔적을 여러 번 보았다. 그것은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이나 예수님, 마리아, 여러 사도의 것이었고 시내산에서 성 캐서린(카타리나)의 몸이 찍힌 흔적을 본 적도 있었다. 이 흔적들은 그리 깊게 새겨진 것이 아니었다. 흔적은 두꺼운 밀가루 반죽에 찍은 사람의 손자국과 비슷했다. 


· 그들은 주님을 난폭하게 쳐서 다리 아래 물 속에 빠뜨렸는데... 주님의 무릎이 먼저 떨어지고 머리가 떨어졌는데 주님이 몸을 뻗고 조금 버티셨다... 이때 주님의 발과 팔꿈치, 손가락 자국이 바위에 찍혔다. 후일에 그리스도인들이 이 흔적을 발견했다.


·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안나스의 집까지 가시면서 일곱 번이나 넘어지셨다. 


· 베드로는 마치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뜰을 빠져나가 감람산 동굴까지 쉬지 않고 달려갔다. 동굴의 돌에는 주님의 손자국이 신비하게 찍혀 있다. 나는 이 동굴이 타락 이후 아담이 거처했던 곳이라고 생각한다. 


▶ 성경이 전혀 뒷받침하지 않는 환상들이다. 사람의 몸뿐 아니라 돌 등 자연물에도 초자연적인 ‘성흔’들이 찍혀 있다는 주장은 카톨릭교의 희망사항일 뿐 성경적으로 아무 근거가 없다. 



· <제 18장 십자가의 길 순례와 그 기원 : 전체 옮김 >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막달라 마리아와 요한과 함께 광장의 한 구석에 서 있었다. 그들은 깊은 슬픔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모든 일을 보고 들을수록 고통은 커져 갔다. 예수님이 헤롯에게 끌려가실 때, 요한은 주님이 지나가신 성스러운 길로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인도했다. 그들은 다시 가야바와 안나스의 집, 오벨, 겟세마네와 감람산을 지나갔다.


그들은 주님이 넘어지신 곳마다 서서 기도했고, 주님이 심한 고초를 겪으셨던 곳에서는 그 일들을 되새기며 소리 없이 눈물을 삼켰다. 마리아는 아드님이 넘어지셨던 곳마다 무릎을 꿇고 그곳에 입을 맞추었다. 


막달라 마라아는 슬픔으로 두 손을 꼭 쥐고 괴로워했다. 요한은 자신의 눈물도 감당하기 어려웠지만, 일행들을 위로하고 부축하며 인도했다. 이렇게 십자가의 길을 향한 묵상이 최초로 시작되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수난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그분의 고난이 이미 기념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성령으로 주님을 잉태한 티 없는 순결의 상징이었던 마리아와 사도 요한,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향한 교회의 섬김을 처음으로 보여주게 된 것이다. 이 길 저 길을 찾아다니며 고난의 장소를 눈물로 적시는 순수한 모정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온화한 위안인가. 하지만 누가 서슬 퍼런 칼이 그녀의 부드러운 영혼을 찌르는 슬픔을 표현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동정녀의 몸으로 구주를 낳았고 오랫동안 젖을 먹였다. 그녀는 진실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 자신이신 예수님을 뵈었다. 주님은 은혜롭게도 아홉 달 동안 그녀의 태 안에 계시다가 후에 사람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구원의 은혜를 나누시며,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셨다. 그녀는 주님의 수난과 모진 고통뿐만 아니라, 끝까지 낮아져 죽음을 맞으면서도 타락한 인간을 구속하시려 타오르는 소망까지도 함께 나누고 있었다.


순수하고 경건한 마리아는 가슴을 적시는 모습으로 십자가의 길이라 불리는 묵상의 기초를 놓았다. 그녀는 아드님이 겪으신 고난의 자리를 지날 때마다 그 공로를 마음에 새겼다. 그리고 진실한 성도들의 모범으로 영원하신 아버지께 바치는 정수를 값비싼 보석과 향기로운 꽃처럼 모았다. 


막달라 마리아는 너무나 슬퍼서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 그녀는 경건하고 한없는 주님에 대한 사랑으로 식탁 앞에 앉아 계시던 주님께 향유를 부어 드릴 때처럼 주님의 발자취 앞에 몸을 던지고 정성을 쏟았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마음의 감동에 의해 움직이려는 순간, 그녀와 주님 사이에 검은 구덩이가 나타났다. 자신의 죄에 대한 회한이 사무쳤고, 속죄함으로 감사가 무한했다. 하지만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밑에 향유로 사랑과 감사를 표시하려고 할 때, 그녀는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주님이 대신 지시고 버림을 받아 고난당하시며, 속죄를 위해 죽으시는 것을 보았다. 


이 광경을 보자 공포로 전율했고 그녀의 영혼은 놀라움과 사랑, 회개와 감사의 마음으로 산산히 부서졌다. 주님이 대신 죽어 구원하시려는 사람들의 배은망덕은 막달라 마리아를 몇십 배 더 비통하게 했다. 막달라 마리아의 걸음걸이와 말씨, 행동을 통해 영혼의 고뇌가 드러났다.


사랑이 많은 요한의 마음도 어지간히 고통스러웠으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요한은 십자가 도상의 첫 순례길에서 사랑하는 주님의 모친을 부축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이 열심히 해온 묵상 기도의 모범으로 그녀들을 도왔다. 



(제62장 부활의 밤)

· 마리아가 견딜 수 없는 사랑의 느낌에 고취되어 회색 겉옷을 두르고 홀홀 단신으로 집을 나섰던 때는 거의 밤 10시가 된 시각이었다...... 나는 아드님이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셨던 길을 따라 홀로 걷는 마리아를 보았다. 마리아는 주님이 특별히 심한 고난을 당하셨거나 야만적인 적들로부터 폭행을 당하셨던 장소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리아는 무엇을 찾는 사람처럼 천천히 걷고 있었다.


그녀는 가끔 바닥으로 몸을 숙이고 돌들을 만지작거리다가, 사랑하는 아드님의 귀중한 혈흔을 발견하면 거기에 입을 맞추었다.


· 하나님은 이때 그녀에게 특별한 빛과 은혜를 내려주셨다. 따라서 마리아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주님의 고난으로 성화된 모든 장소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는 마리아를 따라 경건한 순례길에 동행했다. 나는 나의 허약함이 허락하는 한 최선을 다해 그녀의 본을 따르고 싶었다.


▶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  라틴어로 ‘슬픔의 길’ 또는 ‘고난의 길’이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서 빌라도의 법정에서 골고다까지 걸어가셨다고 전해지는 예루살렘의 도로를 말한다.

카톨릭교는 비아 돌로로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聖畵), 혹은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성당 양벽에 걸어둔 곳(14처, stations)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것은 초기 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하는데 이 순례지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15세기,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였으나 각 처의 숫자와 기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기도는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B. Innocentius) 11세는 이 수도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였다. 

  1964년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이 특전을 확증했으며, 1762년 교황 베네딕토(Benedictus) 13세는 모든 신자들이 이 특전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1731년 교황 글레멘스(Clemens)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곳의 숫자도 14처로 고정시켰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걸어가신 길에 대한 고전승(古傳承)은 남아있지 않으며, 초대교회 시절에 십자가의 길 순례를 행하였다는 성경적 기록도 전혀 뒷받침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승천하셔서 하늘 보좌에서 성도들을 위하여 구하고 계시는데, 어찌하여 제대로 남아있지도 않은 그분의 족적만을 그리워하며 과거를 붙들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예수님의 고난도 소중하나,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히12:2) 그리스도의 부활과 현존이 더욱 확실하고 중하지 않겠는가?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4 ~ 25) 


덧붙여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기도모범은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주기도문이다(마6:9~13, 눅11:2 ~ 4). 그밖의 기도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라면 주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라 명하셨고, 하나님은 들어주신다고 약속해 주셨다.(요 14:4) 기도는 마치 주문처럼 반복해서 외우는 것이 무엇이 아니라 자녀가 아버지께 하듯 믿음을 가지고 구하는 것이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4)



· 주님은 길고 헐거운 옷이 발에 칭칭 감기는 바람에 대리석 계단 위에서 넘어지셨고, 그 계단은 주님의 머리에서 흘러내린 피로 얼룩졌다. 


· 그들은 클라우디아가 갖다 준 아마포로 주님의 거룩한 보혈을 닦았다. 


· 형 집행인들이 예수님을 위병소로 데려와 가시 면류관을 씌울 때...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는 경건한 여인들과 기둥 쪽으로 다가와 땅바닥에 고여 있는 피를 닦아냈다. 


·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은 기둥 주변에 있는 피를 닦아 내고, 광장을 떠나 가까운 작은 집으로 갔다. 


· 그녀(마리아)는 의식을 찾자마자 곧 주님의 고난으로 거룩하게 정화된 모든 장소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을 자신의 눈물로 적시기 위해서였다. 마리아는 교회의 이름 안에서 거룩한 장소들을 취한 것이었다.


· 어떤 군인들은 마리아를 불쌍히 여기는 듯 했다... 아무도 마리아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마리아는 거의 정신을 잃었고 문가에 있는 돌 위에 앉았다. 이 돌은 꽤 단단했으며 지금도 이 돌에는 마리아의 손자국이 남아 있다. 


▶ 여러 장소에 대한 의미 부여와 성역화․성물화, 마리아의 특별한 위상을 다수 나타내고 있다.



· 그녀(에머릭 수녀)가 다른 이들의 병과 고통으로 매우 지쳤을 때는 어떤 신앙의 선조를 만나 축제에 함께 참여하거나 그의 유품을 받기도 했다.


· 형 집행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있었다. 주님의 옷은 윗부분이 좁고 아래는 폭이 아주 넓었다. 가슴선이 재봉되어 있었고, 줄무늬 사이에 같은 옷감으로 만든 주머니가 하나 달려 있었다. 그들은 봉제선을 잡아 뜯고 조각조각 찢어서 나눠 가졌다... 이때 니고데모와 이리마대 요셉이 보낸 심부름꾼이 다가와 예수님의 옷을 전부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옷가지들을 통째로 팔았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렇듯 소중한 유품을 소유하게 되었다. 


· 아리마대 요셉의 종들은 ... 해융 등을 인근 창고에서 가져와 수레에 실었다. 이 수레는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마커루스 성에서 사도 요한의 시신을 가지고 나올 때 썼던 것과 비슷했다.(※평자 주 : 세례 요한을 사도 요한으로 오역, 또는 잘못 말한 것 같음)


· 주님의 보혈이 십자가 밑 바위에 생긴 틈으로 흘러 들어갔고 사람들은 그 광경에 압도되었다. 마리아, 요한, 경건한 여인들과 카시우시는 피와 물을 모아 통에 담고 바닥에 남은 것은 아마포 조각으로 닦았다. 


· 주님의 옆구리에 난 상처에서 물과 피가 철철 넘쳐 바위 틈 사이로 흘러내리자 경건한 여인들이 항아리로 보혈을 받았다. 보혈을 담은 항아리에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이 떨어졌다. 


· 그동안 백부장 아베나달은 발에 박힌 대못을 굉장히 힘을 들여서 뽑아냈다. 카시우스는 그 못들을 정중하게 받아서 마리아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 요한은 즉시 주님의 부활을 믿었고, 두 사람 모두 수난 이전에 예수님이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명확하게 이해했다. 또한 그때까지 이해할 수 없었던 성경의 이 일에 관한 모든 구절들이 분명해졌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세마포를 외투 속에 넣었다.


▶ 유품 숭배



· 시몬이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200보 정도 갔을 때... 고상한 자태의 한 여인이 어린 소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와 행렬의 선두를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 왔다. 이 용감한 여인은 세라비아다.


그녀는 성전에 속한 공회원인 시라크의 아내였다. 이 여인은 후대에 베로니카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베로니카의 어원은 ‘진실한 상’으로 그 이름은 이날의 담대한 행동을 기념해서 얻은 것이다. 


행렬의 선두에 있던 자들은 세라비아를 뒤로 밀어내려 했으나...그녀는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베일을 건네면서 말했다. “내 주의 얼굴을 닦도록 허락해 주소서” 예수님은 왼손으로 베일을 잡으시고 피 묻은 얼굴을 닦으신 뒤, 고맙다고 하시면서 돌려주셨다. 세라비아는 베일에 입을 맞추고 그것을 옷자락 속에 감추었다. 


세라비아는 집에 가자마자 양모 베일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넋 나간 듯이 무릎을 꿇었다. 잠시 후 그녀의 친구가 그 방으로 들어와... 주님의 피 묻은 얼굴이 거의 그대로 찍힌 베일을 보고는 놀라워했다. ... 세라비아는 “나의 주님이 내게 그분을 기억할 수 있는 유품을 남겨 주셨으니 이제 나는 진정 행복한 마음으로 살겠나이다.” 하였다. 


베로니카는 죽을 때까지 이 베일을 머리맡에 두고 간직했고, 그녀가 죽은 후에는 주님의 모친 마리아에게 전달되었고, 나중에 사도들의 손에 들어가 교회에 전해져 내려왔다.


세라비아와 세례 요한은 사촌 간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사가랴는 형제였다...세라비아는 뒤늦게 결혼을 했는데, 그녀의 남편 시라크는 정숙한 수산나의 자손으로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다. 시라크는 처음에 주님에게 심한 적대감을 드러냈지만...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시라크에게 예수님에 대한 좋은 인식을 심어주어 세라비아가 주님 섬기는 일을 허락했다. 


예수님이 가야바의 법정에 불법적으로 고소당하셨을 때, 세라비아의 남편은 주님의 석방을 추진하기 위해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측에 가담했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산헤드린 위원직을 사임했다.


· 세라비아는 주님이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을 하셨던 종려주일에 자신의 베일을 벗어 주님이 지나시는 발 밑에 깔아드렸다. 이때 그녀의 나이 쉰 살이었다. 세라비아가 주님께 올린 이 베일은 종려주일에 펼쳐 드렸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날의 행진은 영예로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다. 사람들은 이 베일을 주인의 이름을 따라 베로니카라 불렀다. 그리고 이 베일은 믿는 이들에게 소중한 경건의 표시가 되었다.


․여인들은 베로니카의 집에 이르러 안으로 들어갔다... 마리아 일행들은 예수님의 얼굴 모습이 그대로 찍힌 베일을 보고 설움이 북받쳐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런 예수님의 유품을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 글의 소제목부터가 베로니카의 베일이다. 전형적인 성물 숭배를 보여준다.

 


· 마리아와 경건한 여인들과 남자들은 주님의 시신 주위에 무릎을 꿇고 작별을 고했다. 그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상처로 뒤덮인 주님의 거룩한 몸이 덮인 천의 표면으로 드러난 것이다. 주님의 모습은 마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감쌌던 모든 천들을 뚫고 보여진 듯 했다. 그들은 시신을 안고 눈물을 흘리고 입을 맞추었다. 그들은 위에 덮인 천을 들어보고 더욱 놀랐다. 주님을 감싼 천들은 사용하기 전처럼 희었다. 위에 덮인 천에만 흔적이 남아있었다. 온몸을 몰약으로 덮어 감싼 것으로 볼 때, 이것은 혈흔이 아니었다. 예수님의 시신에 남은 창조주의 능력을 증명하는 초자연적인 흔적이었다.


나는 이 천과 관련된 이후의 역사적 사건들을 많이 보았지만,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겠다.


이 천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예수님의 한 친구가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유대인들의 수중에 두 번 넘어갔었고 이후에는 여러 장소로 옮겨 다녔다. 나는 이 천이 카톨릭 신자가 아닌 기독교인의 손에 있는 것을 아시아의 한 도시에서 보았다. 동방 박사 세 사람의 출신 지역에서 가까운 도시였는데 그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소위 ‘토리노 수의’(襚衣)의 기원을 시사하고 있다. 이 역시 카톨릭교 나름의 전승을 뒷받침하기 위한 전략적 차원의 서술이다.  



(제58장 안식일을 보내는 예수님의 제자들)


· 자정이 되자 여인들이 다시 일어나 옷을 입고 침상을 정리한 후 등불 아래 모여서 마리아와 함께 기도를 계속했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와 그녀의 신실한 친구들이 심야기도(하나님의 모든 신실한 자녀들과 특별한 은총을 구하는 사람들 또는 하나님과 교회의 규칙에 따라 경건한 영혼들이 행하는 거룩한 임무)를 마치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성전에 들어가는 것과 그 안내를 약속했던 제자들 몇 명과 요한이었다. 여인들은 옷을 다시 입고 그들을 따라 나셨다. 그때가 새벽 3시경이었다. 


· 성전의 분위기는 여느 때와 많이 달랐다. 제사가 중단되었고 황폐해 있었다. 전날 있었던 사건(예수님 운명 직전에 있었던 많은 일들) 때문에 성전이 부정해졌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순전히 자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장소에 작별을 고하기 위해 성전을 방문한 것 같았다.


· 마리아는 예수님의 성스러운 발자취가 자신의 눈에 선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그곳에 엎드려 입을 맞추고, 눈물이 고인 채로 자신이 이 장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다른 이들에게 설명했다. 그래서 그들도 주저없이 마리아처럼 성스러운 곳에 엎드려 입 맞추었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 거룩하게 된 장소를 성스럽게 여기고 기념하였다. 성스러운 곳에 무릎을 꿇고 앉아 공손하게 손을 얹고 입을 맞추었다. 이런 행위는 그들의 관습이었다. 나는 이런 관습이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그들이 하나님의 권능이 증명된 거룩한 장소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성전과 성별된 장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는 성찬과 같은 것이었다.  


· 마리아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열두 살 소년 예수님이 사람들을 가르치시던 성전에 이르러 다시 일행을 불러 세우고, 예수님이 서 계셨던 자리에 공손히 입을 맞추었다. 경건한 여인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로 거룩하게 된 모든 장소들을 다니며 눈물의 기도를 드리다가 시온으로 돌아갔다.


· 마리아와 일행이 최후의 만찬 장소에 당도했을 때는 새벽녘이었다. 여자들은 오른편 건물로 물러갔다. 요한과 다른 제자들은 등불을 켜놓고 둘러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존경했다. 요한이 끝까지 예수님의 곁에 남아 임종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 나는 모인 사람들이 그날 하루 동안 한 끼의 식사를 하고 조용히 지낸 것을 보았다.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문도 굳게 닫혀 있었다. 그 집이 니고데모의 소유인만큼 아무도 그들을 방해할 수 없었다. 니고데모는 이곳에서 유월절을 보내도록 해주었다.


▶ 사도들이나 제자들이 아닌 철저한 마리아 중심의 기술이다. 

▶▶ 장소를 ‘성역화’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천사숭배

천사는 하늘에 있어서 주로 하나님께 쓰임 받는 초자연적, 영적 존재로서 인격을 지닌 사자(使者)이다(시8:5, 히1:4, 히2:7). 피조물인 천사를 숭배/경배/예배하는 것은 엄히 금지되어 있다(골2:18, 계 19:10, 계 22:8~9).

천사장(대천사)들을 포함한 모든 천사가 결코 존숭의 대상일 수가 없으며,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영적 존재들일 뿐이다(히 1:14).


천사숭배는 골로새 교회에서 거짓 교사가 가르친 이단의 하나(골2:18)로, 겸손이라는 미명 하에 하나님과 교통하는 일 등은 너무나 더러운 존재인 인간으로서는 송구한 일이므로 “합당치 못한 일”이라 하여 천사의 ‘중보’(中保)를 기원하고 천사를 예배케 했다. 그리스도를 떠나 천사를 숭배하는 일은 경건같이 보이면서 커다란 불신이고 우상숭배이기에, 이러한 사이비 예배에 빠져 참된 신앙에 의한 상급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골 2: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골2:18) 


카톨릭교는 A.D. 375년부터 천사와 죽은 성자들에 대한 숭배, 성상 사용을 해오고 있다. 


성경은, 천사는 모두 남․녀 성별이 없이 창조되었으며, 여성보다는 남성에 더 가까운 모습임을 알려주고 있다. 남․녀 천사가 따로 없으니까, 그 자식들인 ‘아기 천사’도 물론 있을 수 없다. 


일반 천사들은 날개가 없이도 충분히 날아다닐 수가 있다. 여섯 날개를 지닌 찬양하는 ‘스랍’, 네 날개․네 얼굴을 가진 최고의 천사 ‘그룹’ 등 특수한 천사들은 날개도 있고, 날 수도 있겠지만 상징적으로 보인다.

‘그룹’은 구약의 조각물․자수 같은 형상에서 때때로 한 쌍의 날개를 갖고 나란히 있는 두 존재로도 표현된다. 사탄도 원래는 ‘그룹’의 하나였다. 가브리엘, 미카엘 등 주요 업무를 관장하는 천사들의 우두머리가 있는 듯 하다.



․(제11장 감람산의 예수님 中) 

· 그리스도의 고귀한 인성이 처참한 고통의 무게에 짓눌릴 때 천사들은 예수님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가득 차 있는 듯 했다... 나는 천사들이 정말로 주님을 돕기 위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기도하고 있음을 알았다. 순간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가 스스로 희생 제물로 바치시려는 사랑과 마찰을 빚는 것 같았다. 


· 인간적인 의지로 회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간구하시던 모든 고통을 주님의 인성만으로 다 감당할 수 있도록 예수님의 신성이 영원하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셨다. 천사들은 이때 연민으로 가득 차 예수님을 돕고 싶어해서 주님은 조금 쉬실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을 때, 천사들은 주님을 떠났고, 주님의 영혼도 새 힘을 얻었다. 


천사들의 마음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 그들은 애타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돕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원히 하늘에 계시는 공의롭고 자비하신 하나님의 기적을 놀라움에 가득 차서 찬양할 수 있을 뿐이었다. 천사들도 우리와 같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 -이하 사도신경 - 


▶ 영물인 천사는 우리와 같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필요치 않다. 왜냐면 예수님의 대속은 철저히 인류를 위함이었지 영물인 천사를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인간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거나 혹은 행하며 인간을 보호하고 지도하며 형벌을 주기도 한다.(창19:1 , 출3:2, 눅1:26~38, 마1:20) 


천사들은 하나님을 경배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예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은 성도들만의 특권이다!!!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고(계 7:1)


누가복음에 따르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여 주었고(22:43), 그 결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다. (22:44) 예수님께 쉴 참을 제공한 것이 아닌 것이다.



· 나는 세 번이나 머리에 피가 흥건하여 쓰러지시는 주님을 보았다. 그리고 예수님 옆에서 울며 주님의 머리에 천국의 향유를 부어드리는 천사들을 보았다. 나는 주님이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도 살아 계신 이유가 초자연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임을 알게 되었다. 


· 나는 주님이 채찍질 당하실 때 천사들이 다가와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았다...주님이 피 투성이가 되어 계시는 동안, 나는 투명한 음료를 담은 항아리를 그분 앞에 가져다 드리는 천사를 보았다. 주님의 기력을 회복시켜 드리기 위한 것 같았다.


· 무거운 십자가를 주님의 오른쪽 어깨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주님은 오른손으로 그 엄청난 무게를 떠받치게 되셨다. 나는 주님을 도우러 오는 천사들을 보았다. 천사들이 오지 않았더라면 주님은 땅에서 일어나실 수도 없었을 것이다. 


· (처형장 위에서 궁수들이 처형준비를 하고 있을 때) 애곡하던 천사들은 예수님의 곁에 서 있었는데 그들이 우는 모습은 나의 슬픔을 달래주었다. 울고 잇는 천사들은 영광을 나타내는 작은 천사들과 함께 있었는데 나는 천사들의 머리 밖에 보지 못했다. 동정의 천사와 위로의 천사가 그들 중에 있었다. 위로의 천사는 마리아와 다른 신실한 사람들 곁을 바쁘게 다니며 그들이 굳건히 설 수 있도록 위로의 말을 속삭여 주었다. 


·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장면 중) 나는 천사들이 둘러선 모습을 보았다. 나는 아직도 외롭고 쓸쓸하게 고통을 견디며 십자가상에서 죽음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 천사에 대한 신비주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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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글: 패션오브크라이스트는 거룩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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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새성경 사전

옥스퍼드 원어성경 대전

호크마 주석사전

네이버 지식인

http://www.catholic.or.kr/

온라인 성경

루이스 벌콥.「벌콥 조직신학」. 고영민 옮김. 기독교문사, 2005

(장로교 신학자 뵈트너 박사의 저서) Loraine Boettner, Roman Catholicism, (The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ishing Co., 1979). 7-9-

유선호.「천주교도 기독교인가」. 하늘기획, 1998

성막으로 흐르는 보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