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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예수님 당대의 주화(1): 데나리온

 

 

 

예수님 당대에 사용된 은화의 한 종류인 아우구스투스 데나리온(데나리우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의 초상과 더불어 다양한 디자인이 소개됐다.   

 

 

 

예수님 당대의 주화(1)-데나리온
-성경과 고고학 시리즈(1)
성경 속의 주화(鑄貨, coins)1


 

 

성경고고학의 개관(간추려 보기)

 

 

성경고고학(聖經古考學, Biblical archeology)은 주로 구/신약 성경 속의 역사적 환경, 상황, 주변과 관련된 고대 문명권 내지 생활권의 유적 및 유물들의 다양한 발굴/출토에 관한 학문이다. 에덴 동산의 실제 흔적이나 노아 방주 잔재의 추적, 고대로부터 중세까지의 성경 사본 파편들, 예수님 사도들 당대의 주화(coins)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것들이 성경 고고학의 연구 분야가 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일반 고고학은 소위 진화론에 근거한 지구의 '태고' 때부터 최근까지의 역사의 흔적을 전반적으로 캐는 훨씬 광범위한 학문을 가리킨다.

 

성경고고학은 고고학적 연구와 다양한 발굴 자료를 토대로 성경 속 당대의 실존적 역사성을 입증함으로써, 성경 속의 하나님의 일과 등장 인물 및 배경의 역사적, 실재적 신실성과 아울러 성경의 문자적/문맥적 권위와 정통성을 높여 주고 보태 주는 역할을 하는 중요한 학문이다. 쉽게 한 마디로, 먼 옛날의 성경 역사를 실감 나고 리얼하게 느끼게 해 주는 한 방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성경고고학에 관여된 사람들이 모두 성경의 권위를 믿는 것은 아니다. 진보적 학자들은 신앙으로 성경의 권위를 높이기보다 이성으로 깎아내리는 역할을 해온 사람들도 많다. 고고학자들 가운데 유대교 사람들은 신약 성경에 관하여 자기네가 신봉하는 구약 성경에 직결되거나 자기네 유익에 관여된 것이 아니면 구태여 입증하려고 들지 않는 특징이 있다. 또 성경의 역사성을 부정하려고 고고학에 입문한 '안티'적인 학자들도 많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학적인 면에서는 이런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비교적 상호 협력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본 티엘티에서는 성경에 직결되어 성경의 역사성을 입증하며 그 권위를 높여 주는 가치가 있는 고고학적 발견 내용들을 시리즈로 다뤄 보려고 한다.

 

 

 

 

고대의 금속 화폐

 

고대와 현대의 화폐를 연구하는 학문을 화폐학(numismatics: 그리스어 νομισματική/누미스마티케에서 왔다)이라고 한다. 따라서 성경 속의 고대 화폐를 논할 때는 다른 학적인 자료들과 아울러 성경고고학 및 화폐학 연구 자료가 모두 사용된다.


고대엔 상거래 수단은 있는데도 오늘날과 같은 종이가 없었으므로 지폐도 없었다. 처음엔 물물거래 중심이었다가 금/은/동 등 다양한 귀금속이 있어서 그 무게를 달아 서로 주고 받았다. 고대에도 광물/광석을 캐어 풀무불 제련 과정을 통해 되도록 순수한 금속을 얻는 데 나름대로 애썼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장례를 위한 맠펠라 동굴과 주변 땅을 헽 족속(Hittites)에게서 400 쉐켈(shekel)의 은으로 구입했는데(창세기 23'16), 여기서 쉐켈은 주화의 단위가 아니라 무게를 단 측량 단위였다. 슐로모 성전 건축 때 사용된 금속들의 측정에도 대동소이한 측정단위들이 사용됐다. 그러나 주고 받는 과정에서 측정량을 속이거나 불순도가 높은 금속을 건네는 등 정직하지 못한 비윤리적 상거래 사태가 자주 발생하자, 좀 더 균일된 거래 수단이 필요해졌고, 이에 따라 순수 금속으로 주조한 통일된 주화가 생겨나게 된다.

 

첫 금속 화폐는 주전(BC) 약 650년 경 그리스와 소아시아의 뤼디아에서 주조돼 나왔다. 이스라엘 쉐켐(또는 시켐) 지역의 발굴에 의하면,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에서 돌아올 당시인 주전  600년 이후 그리스 은화들이 사용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러한 금속화폐가 성경에 처음 언급된 것은 구약성경 에스라서 2'69에서이다. 성전 재건-흔히 제2 성전 또는 '제룹바벨(스룹바벨) 성전'이라 부른다-을 위한 기금 모금 때였다. 이 돈은 페르시아(한글 '바사')에서 주조된 금화로 '다맄'(daric)이라는 단위로 불렸다. 그후 주전 326년께 알렉산데르가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나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도 폭넓게 그리스 주화가 통용됐다.  

 

주전 167년 마카비 반란이 시작된 지 44년 후(123년) 유다는 일시 독립국이 되었고, 110년에 당대의 통치 대사제(제사장)가 최초의 유다 동전을 발행했다. 은화는 고위급 정치세력만 발행할 수 있었다. 유다 주화들은 제2계명에 따라 통치자의 초상을 넣지 않고 화환, 바구니 또는 7가지 등대(메노라) 등의 이미지로 대신했다. 이런 상징물은 헤로드(헤롯) 왕 당시 때까지 쓰여졌다. 당대의 작은 동전들은 지금도 발굴되곤 한다.

 

신약 성경엔 고대의 유대를 비롯한 로마 제국의 식민지에서 통용되던 은화인 로마의 데나리온(denarion: denarius의 그리스어형)이 자주(모두 16회) 언급된다(마태복음서 18'28; 20'2,9,10,13; 22'19, 마르코스복음/맑 6'37; 12'15; 14'5, 루카복음/눅 7'41; 10'35; 20'24, 요한복음 6'7; 12'5, 요한계시록 6'6).


 

예수님이 언급하신 데나리온의 정체?

 

주님이 언급하신 은화, 데나리온(로마식: denarius)은 어떤 것이었을까?

 

먼저 당대의 은화의 종류로 튀로(한글 '두로', 히브리어 쪼르, 영어 Tyre)에서 주조된 쉐켈이 있었다. 이것은 1 온스보다 약간 적은 무게의 은화로, 이스카리옽 유다가 주님을 판 대가로 받았던 30냥이나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로마 수비대 군인들이 주님의 부활의 아침에 일어난 일들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받았던 '큰 돈'(마태 28'11~15 참조)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데나리온은 쉐켈보다는 작은 은화였다. 데나리온은 KJV(제임스왕 역본)에는 '페니'(penny)로, NAS, NIV 등엔 'denarius'로 표기되어 있다. 이것을 예수님 당대 가치로 따지자면, 로마제국 군대 군인의 1일 복무비 또는 팔레스타인 지역 노동자의 하루 품삯(마태 20'21)에 해당했다. 이 은화는 종주국인 제국의 수도였던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발행된 것이었다.

 

마르코스복음 12:13-17(참고: 마태 22'21)에서, 예수님은 파리새(바리새인)들과 헤로디안(헤로드 당원)들의 물음에 응하여 데나리온에 관해 언급하시면서 거기 새겨진 이미지 즉 초상과 문자(에피그라페)가 누구의 것이냐고 물으시자 그들은 "카이사르(한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했다. 로마 황제의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어느 황제의 초상이 들어 있는 데나리온이었을까?

 

그동안 이 데나리온에 관해 중요한 학설이 두 가지 있어왔다. 우선 예수님 당대에 생존해 있던 티베리우스(한글: 디베료) 황제의 것이라는 폭넓은 통설이 있어왔다. 시대적으로 당연한 추정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쉬리아 주화 전문학자인 케빈 버처 교수에 따르면, 티베리우스 황제의 초상이 들어간 은화는 유대에서 통용된 적이 없다.

 

 

티베리우스의 데나리온

 

 

그렇다면, 주님이 언급하신 데나리온 은화는 보다 초기의 것인 아우구스투스 황제(한글성경의 가이사 아구스도)의 초상이 들어간 은화라는 결론이 난다. 아우구스투스 카이사르(본명: Imperator 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 Divi Filius Augustus, 주전 63년 9월 23일 출생~주후 14년 8월 19일 죽음)는 로마 제국의 건국자로 초대 황제였다.
그는 영웅이자 그의 외종조부인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시저)가 암살된 뒤 '사후 입양'되어 아들이 되었다. 그는 후에 시저 암살단과의 국내외 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얻고 제국을 건국해, 이후 200년간 소위 '로마 평화'시대(팍스 로마나)를 몰고온 사람이다.

 

아기 예수의 탄생 직전, 로마와 식민지에 호적 칙령을 내려 "마리아/요셒이 복종하여 베틀레헴으로 가게 한 황제가 바로 이 사람이었다.

티베리우스(한글성경의 디베랴)는 아우구스투스가 입양한 아들이자 승계자였다. 즉 두 번째 황제였다. 갈릴리 호변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 티베리우스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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