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유월절을 지키다 (메시아계보대장정57)



                       첫 유월절



바탕본문: 연대기B(역대하) 30장


히즈키야의 개혁 가운데 중요한 것 한 가지가 유월절 준수였습니다.

유월절(逾越節/페샇/파스카/Passover)은 매우 중요한 구약 명절이지요. 고대 히브리 명절들이 모두 메시아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만 특히 유월절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은 어디까지나 구약시대를 위함이지 신약에선 실체의 그림자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모두 성취됐기 때문이지요!
신약인들인 우리가 이젠 더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현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부하면서 아직도 메시아가 오시지 않았다고 믿기에 여전히 유월절을 비롯한 명절들을 매년 지킵니다.
[ 미국 같은 나라에선 유대계 명절을 전국적 공휴일로 지키기도 합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며..경제권을 쥔 실세인 유대계가 실상 배후에서 미국을 지배한다는 간접적인 뜻이기도 하지요. ]

아무튼 히즈키야는 과거 오랫동안 내팽개쳐 져 온 유월절 전통을 모처럼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의 의의

고대 최초의 유월절은 미쯔라임 출국(출애굽) 사건 하루 전, 곧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원년 정월인 '아비브' 달[각주:1] 제14일 저녁으로서, 제21일 저녁까지 7일간 '무교절'(無酵節: 누룩 없는 빵 즉 무교병과 쓴 나물, 구운 양고기 등을 먹으며 이레를 지냄)로도 잇도록 했습니다(미쯔라임출국기=출애굽기 제12장 참조). '과월제'(過越祭)라고도 하지요.  

본래는 각 가정마다 '유월절 양'인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받아서 각 집의 대문 문틀의 세로대 및 윗 부분[각주:2]에 바르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양의 고기는 내장까지 모두 불에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단행한 천사들이 히브리인들의 집에 재앙을 내리지 않고 그냥 넘어갔던(passed over) 것입니다. 그러나 미쯔라임 사람들의 맏아들은 모두 죽음의 재앙을 받았습니다.

이 유월절의 숨은 뜻은 바로 어린양 메시아이신 예수 크리스토의 죽음/희생/구속사역입니다. 즉 어린양의 피로써 고대 히브리인들이 재앙을 넘긴 것처럼, 어린양이신 크리스토의 죽음과 보혈로써 오늘날 우리들도 죄와 율법의 저주, 죽음과 심판, 마귀의 재앙에서 건지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오, 영원히 할렐루야~! 예수께서 유월절 양, 어린양이신 까닭이 그것입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각기 집에서 어린양을 잡아 죽였듯..하나님의 어린양인 주님은 우리 개인의 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어린양의 피를 발라 화를 면한 집 대문처럼..주님은 우리 위해 피를 흘리신 양들의 문이십니다! (요한복음서 10'7)
    고대 히브리인들이 유월절에 어린양의 내장까지 모든 고기를 구워 먹고 이어지는 무교절 7일간 무교병을 먹어 유월절을 기념했듯..주님이 잡혀 죽으시기 전날 밤인 지상에서의 마지막 유월절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생명의 빵으로 주신 몸과 흘리신 피의 완전하고 순수한 제사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눠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는 그 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합니다. 그 날의 유월절 잔치가 마지막 만찬이었듯, 우리에겐 예수 크리스토만이 유일한 어린양/ 메시아이십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무교절에 쓴나물을 먹었듯, 우리는 주님의 수난에 동참합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첫 유월절 밤 재앙의 죽음을 면하고 이튿날 미쯔라임을 출국해 떠났듯이, 우리는 주님의 수난의 날에 모든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돼 영생을 얻었고, 이것을 믿는 순간 거듭나 세상으로부터 사실상 영적으로 해방됩니다! 

그러므로 메시아의 한 선조인 히즈키야 왕이 메시아의 미래 죽음을 기념하는 유월절을 지킨 것은 너무나 걸맞고도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다음 달인 '지브 월'에 지키다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고대 명절규례를 따라 매년 아비브 달 제14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예루샬렘 성전(왕국시대 이전엔 성막)에 한데 모여 준수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히즈키야는 당초 정월 14일에 지키려고 유다와 이스라엘 전국에 통보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결례를 거친 사제들 수도 적고, 백성들도 미처 제대로 모이지 못했기에 어쩔 수 없이 제 때 지키지를 못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도자들과 의논한 결과, 다음 달인 2월('지브' 월)로 연기해야 했습니다. 민수기 9'10-14절에 기록된 고대 전례에 따르면, 본래 아비브월 14일에 지켜야 할 유월절이 (몸의 부정 등) 유사시 지켜지지 못했을 때, 2월 같은 날로 미루어 지키게 하셨는데, 바로 이 전례를 따른 것입니다.  

이래서 왕은 남단의 베에르쉐바에서 북쪽의 단까지 유다는 물론 에프라임/메나쎄를 비롯한 온 이스라엘에도 편지를 띄웁니다.

     "모두들 예루샬렘 주/예호봐(=야웨)님의 (성)전으로 와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예호봐님께 유월절을 지키오."

여기서 우리는 히즈키야가 옛 전통 대로 북국 이스라엘까지도 당연히 한 동포로서 유월절 준수엔 한데 참여해야 한다는 의식을 지니고 있음을 엿보게 됩니다. 특히 에프라임 족은 이스라엘의 지배 지족입니다. 이들이 유월절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선 수도인 예루샬렘의 성전으로 내려와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국 이스라엘 역대 왕들은, 남북 분열 직후인 초대 왕 야로브암 때부터 자국민이 남쪽으로 망명할까 두려워 하여 적극 훼방을 놓았습니다.  


히즈키야 선언문

보발꾼들이 말을 타고 속속 떠나가 남과 북 전역을 다니며 히즈키야 왕의 '전국 유월절 준수 선언문'을 전달합니다. 이 담화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 아브라함, 이짜크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예호봐님께 돌아오오. 그러면 그 분도, 아슈르(아씨리아) 왕들의 손에서 살아 남은 그대들에게 돌아오실 터이요. 그대들의 선조와 형제들 같이 되지 마오. 그들은 그들 선조의 주/예호봐님께 불충하여 끔찍한 일을 겪은 것을 그대들도 아는 바이오.
이제는 그대들의 선조처럼 목을 곧게 하지 말고 주/예호봐님께 순복하오! 그 분이 영원히 성별하신 성소로 나아오오. 그래서 그 분의 불타는 진노가 떠나도록.      
그대들이 주/예호봐님께 되돌아 오면, 그대들의 형제들과 자녀들도, 사로잡아 간 그들에게 온정을 입어 이 땅에 되돌아올 거요. 그대들의 하나님, 주/예호봐님은 은혜로우시고 인자하셔서, 그대들이 그 분께 돌아오기만 하면 그대들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오."


왕들이 교서를 발표한 적은 전에도 가끔 있었지만, 히즈키야의 이 담화문처럼 절실하고 간곡한 내용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또 남북을 아울러 대상으로 한 적도 없습니다. 온 백성과 함께 하나님을 올바로 공경하고 섬겨 그 진노를 피하려는 히즈키야의 간절하고 안타까운 열망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의 참 뜻이 바로 여기 있음을 시사하고 있지요. 이 선언문의 작성엔 분명히 성령님의 감화가 있었을 터입니다. 예호봐의 말씀대로 작성/전달한 내용이며(30'12) 히즈키야 뿐 아니라 바로 하나님 당신의 심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이 담화문은 여러 모로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북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아슈르 침공으로 패망하기 전, 그리고 남 유다가 대대적인 아슈르의 공략과 조만간의 바빌론 포로기 전, 최후의 공적인 경고문 역할도 했기 때문입니다.


히즈키야는 이 담화문에서..선조들이 말 할 수 없이 불충했던 점, 목이 곧았던 점과 함께 거기 상응하는 징벌을 받았던 점, 상존하는 현재의 위기를 상기시킵니다. 즉 1. 아슈르의 최근 침공과 끔찍한 일들을 겪은 점 2. 하나님의 불타는 진노 3. 주님이 외면하실 위기.. 등이지요. 현재는 살아 남아 잠시 안전하게 보이지만, 계속 선조와 같이 굴면 현재의 안전도 보장될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복[각주:3]하고 되돌아와 그 분의 거룩한 성전으로 나아 오면..안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울러 남은 사람들의 귀정(歸正) 여부에 따라 이미 아슈르에 포로로 잡혀간 형제/친척들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고 한 언질이 인상적입니다. 그만큼 회개가 중요하고 힘 있다는 의미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곧 알게 되는 사실은 슬프게도, 비록 히즈키야 대의 이 유월절 행사에 그들이 되돌아와 일시 회개는 했어도 역사는 번복된다는 것입니다. 목이 곧은 북이 먼저 다시 배신하여 당대에 패망하고, 남도 차기 왕인 메나쎄 시대에 가장 극악무도한 배도 행위를 하게 돼 결국 향후의 궁극적인 멸망으로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아슈르(아씨리아) 청동 띠 부조에 나타난 아슈르인들의 끔찍한 잔인성. 샬만에세르 3세 왕의 궁전 문 부근에서 죄수의 항문에다 말뚝 박아 세워 놓기, 신체 부위 자르기 등을 취미 삼아 했다.  물론 이스라엘/유다인 포로들도 이런 만행을 당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를 퍽 놀랍게 합니다. 아슈르 민족은 취미와 자랑 삼아 포로들의 눈과 혀를 뽑고 귀와 손발을 자르는 등 온갖 잔혹한 고문과 체형을 가하는 역사상 가장 잔인한 지배민족이었기에 실로 끔찍한(!) 대상인데도 불구하고, 백성이 도무지 정신 차릴 줄 모르고 깨달을 줄 모른다는 겁니다. 사람이란 한 번 죄에 말려 들기 시작하면 이 정도로 무감각해지고 하나님 앞에 무심해집니다! 

우리는 신약인으로서 히즈키야 왕의 이 선언문을 통해 몇 가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죄인이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둘도 없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께 돌아오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아가페-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가 참으로 회개(뉘우쳐 고치고 돌이킴)하는 한, 우리를 늘 받아 주시고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반면, 회개하지 않고 교만하게 머무는 한,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으로서 회개엔 예수님을 믿는 것도 포함됩니다. 

    셋째로, 우리는 유월절 어린양이신 참 메시아, 예수님을 통하여, 아슈르와도 같은 싸탄 마귀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완성하신 구원 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와 율법의 온갖 저주들-가난/질병/공포/재앙/죽음들로부터 영원히 해방받았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그럼 아직도 내가 겪고 있는 것들은 뭐냐?"고 물을 수 있겠지요. 마치 돌아오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슈르의 손길에서 벗어나듯, 그것은 우리의 믿음의 실천/고백에 따라 떠나고 물러가게 돼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마지막 날 죽음에서도 풀려나게 됩니다. 


엇갈린 반응

히즈키야의 파발마가 서둘러 북국 이스라엘에 도착해, 지배지족인 에프라임과 메나쎄, 제불론 지족의 땅까지 선언문을 전달하자,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을 조롱하고 비웃습니다. 그러나 일부 에프라임/아쉐르/메나쎄/제불룬/이사스하르 지방 사람들 상당수가 마음을 겸손히 낮추고 예루샬렘까지 퍽 먼 길을 여행하여 왔습니다.
참고로, 제불룬(한글표기 '스불론')은 낲탈리와 함께, 훗날 복음선포 시대에 예수님이 주로 활약하신 갈릴리 지방에 가까운 곳입니다(마태복음서 4'13-16).

그러나 히즈키야의 자국민인 남쪽 유다와 벤야민 지족 사람들은 대조적으로 과연 선언문대로 하나님 앞에 겸손히 순복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감화하셨기 때문입니다(30:12).


유월절 치레와 왕의 도움기도

이리하여 오랜만에 수많은 백성이 예루샬렘으로 명절을 지키러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모여든 백성은 먼저  부정한 요소들부터 제거하려고 예루샬렘 주변에 아직도 남아 있던 우상 번제단과 향단들을 처치해 키드론 시냇가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2월 14일, 일제히 유월절 수양들을 잡았습니다.
 
그러자 사제들과 레비인들도 정결례를 치르고 번제물을 갖고 성전에 이르러 규례대로 맡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즉 잡은 어린양들의 피를 레비임에게서 받아다 제단 주위에 뿌립니다. 많은 백성이 정결례를 거치지 못해 레비인들이 급히 유월절 어린양을 잡아다 그들을 위해 속죄했지만, 북쪽에서 내려온 많은 사람들은 오랫동안 익숙하지 않았던지, 규례(출 12'43-39)를 마구 어겨 성결하지 않은 몸으로 어린양 고기를 먹습니다.

이 광경을 바라본 히즈키야는 금새 하나님 앞에 두려운 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정결례를 미처 치르지 못한 백성을 위한 도움기도(도고/'중보'기도)에 들어갑니다. 참으로 백성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현왕/선왕다운 훌륭한 모습이지요. 모름지기 지도자들은 이래야만 합니다. 이름과 명색만 지도자가 아니라, 사람들, 성도들을 위해 대신 기도로 무릎꿇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역대 왕들 중 이런 면모를 보인 왕은 드물었습니다.

왕의 이 기도 역시 좀 살펴 보죠.

    "선하신 주/예호봐님. 각 사람을 용서하소서! 비록 성소 정결례를 따르진 못했어도 하나님 곧 그들의 선조의 주/예호봐 하나님을 찾기로 마음 준비를 한 사람입니다."

비록 짧은 기도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돌보는 히즈키야의 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은 왕의 이 기도를 기특하게 생각하시고, 율법 적용에 따라 백성들에게 이미 임했거나 임할 수 있는 저주와 징벌을 거두고 고치십니다. '고치다'('라파')라는 동사는 물론 치유를 가리킵니다.
여기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고대의 율법은 죄에 따라 어김 없이 적용됐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신이시기 때문이지요. 이것은 율법이 공식으로 부여되기 이전 행위언약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대에 아브라함은, 그의 아내 사라를 아내로 취하려 한 게라르[각주:4] 왕 아비멜렠의 저주 받은 집안 사람들의 치유를 위해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창세기 20'17. 20장 전체 참조). 당시 하나님은 이미 아비멜렠 집안 여성들의 모든 태를 닫아 버리셨댔지요(20'18)!

많은 교인/신자들이 율법에 대해 혼동합니다. 흔히들 율법이 "사라졌다"고들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깨트리신 율법의 저주는 참 신자들에게만 공식 무효화됐을 뿐, 예수 크리스토를 믿지 않는 비신자들에겐 그들의 죄에 대한 대가로 여전히 그대로 적용됩니다.
또한 신자 가정에 여전히 잔존해 있는 저주의 증상들(가난/두려움/질병)은 믿음과 말씀으로 물리쳐야 하는 대상입니다. 가난이 율법의 저주의 결과가 "아니다"는 발상은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고대 그리짐(그리심)-에발 산 선언(신명기 27:11-28장 온 장)의 의의를 채 이해하지 못한, 짧은 생각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히즈키야의 이 도움기도는 백성을 치유하고 살리는 필수적인 기도였습니다.
오늘날도 남을 살리는 이런 유의 도움기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유월절을 지키는 유대인 가정


곱빼기로 치러진 가장 즐거운 명절

그 결과, 7일의 '곱빼기'로 14일 동안 치러진 이 대대적인 유월절/무교절 행사는 그야말로 명실공히 잔치/축제 분위기에 젖어듭니다. 예루샬렘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과 유다인들 모두 -백성은 물론 귀족들과 사제들, 레비인들, 나그네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 했고, 그 기쁨의 수위는 최초로 성전을 건립한 슐로모 왕대(솔로몬) 이래로 없었던 것이었답니다(30'21a,25).


이들의 유월절 명절 분위기를 좀 돌아 보죠.  

   * 레비 음악인들과 사제들은 날마다 악기를 크게 연주하고 노래로써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 왕은 모든 성전 사역자들을 위로하였습니다.
   * 백성들은 날마다 성심성의껏 절기를 지키고 정해진 절기음식을 먹으며 화목제를 드리고 감사했습니다.  
   * 온 회중의 결정으로 7일 더 연장합니다.
   * 왕이 수송아지 1000마리, 양 7000마리를, 지도자/귀족들은 수송아지 1000, 양 10000 마리를 백성을 위해 내 놓습니다.
   * 정결례를 거친 사제들도 넉넉했습니다.

그러자 사제들과 레비 족이 일어나 온 백성을 축복했는데..이 축복기도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셨고, 주/예호봐님의 거처인 셋째 하늘 보좌에 다다랐습니다(30'27). 오늘날 우리의 축복도 그럴 수 있고, 그래야만 합니다!


필자 김삼의 글은 외래어는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이 점,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1. 훗날의 '니산' 월 [본문으로]
  2. 문설주와 인방. [본문으로]
  3. "테누 야드" 곧 손을 내밀어 항복/귀순함을 뜻한다. [본문으로]
  4. 지중해변 이웃 나라 펠레쉩의 전신.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