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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거꾸로 가는 '교회'들



거꾸로 가는 '교회'들

-수난과 부활을 묵상하며


수난과 부활을 묵상함은 카톨맄교회가 정한 소위 '교회력'을 중시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이런 기회를 선용하자는 뜻입니다. 

네 복음서들에 나타난 대로 예수님께서 수난(受難=고난을 받음)하신 데는, 우리 죄를 사하시려는 뜻과 함께, 죄 사함 받은 우리가 그분의 수난에 동참(同參: 함께 참여함)하기를 바라심도 있습니다. 그분의 수난에 믿음으로 동참하는 사람들은 아울러 그분의 부활에도 믿음으로 동참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사도마다 수난에 동참하기를 강권했습니다 [코린토B(고후) 1:7, 필리포(빌) 3:10, 페트로A(벧전) 4:13 ] 수난에 동참한다는 것은 곧, 주님이 그리도 자주 강조하셨듯, 날마다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뒤를 따른다는 의미입니다(마태복음서 10:38; 16:24, 마르코스복음=맑 8:34, 루카복음서=눅 14:27). 이것은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그런데 수난과 성금요일 등을 유난히 강조하는 카톨맄교 사람들은 평소에도 금욕적이고 율법주의적인 의식(儀式)들과 소위 '영성체'(領聖體: '성체'를 받아모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 것들을 반드시 제의(祭衣)를 갖춰 입은 사제들이 진행합니다. 천주교는 자기네 사제들에 의한 그런 영성체를 하지 않으면, 자신들에게 구원이 없는 줄로 믿고 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이들은 여전히 구약시대에 살고 있는 유대교인들과 별 다를 바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빵(또는 떡)과 포도주로 그분의 수난을 길이 기념하라 하신 명(命)은 그럼으로써 그분의 수난에 동참하기를 바라시는 뜻이었지, 의식과 종교행위로 자기 선을 이루라고 하심이 아닙니다. 주님의 살과 피라고 해서 정말 빵(또는 천주교의 '면병')이 목구멍을 넘어가자마자 '성체'로 바뀌고, 포도주가 '성혈'로 바뀌는 게 아닙니다. 그런 것은 천주교 신학자들의 상상 끝에 나온 신비주의 발상에 불과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몸을 생명의 빵, 살아 있는 만나로 비유하셨습니다(요한복음서 6'48-55). 매우 실제적인 상징입니다. 흥미롭게도 주님이 태어나신 곳은 예부터 '벹 레헴' 곧 "빵집"으로 불리던 마을입니다. 생명의 빵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에 정말로 걸맞은, 비유적이고 예언적인 이름이 아닌가요.    

이 생명의 빵을 믿음으로 "먹는"(받아모시는) 사람에게 주님은 생명을 주시고, 부활과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결코 천주교가 말하는 영성체가 아니라!) 그분의 영이신 성령님을 내 영 속에 받아모시는 거듭남과 구원의 순간을 가리킵니다. 

아울러 주님의 보혈을 "마시는" 사람에겐 모든 죄가 씻기고, 속에 영의 생명수가 늘 샘솟는 기쁨을 맛보게 하십니다. 포도주 자체가 '성혈'이 되거나 그래서 우리가 '흡혈인'(吸血人)들이 되어서가 결코 아니지요. 

그래서,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모신 사람은 비록 어린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것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전부는 아닙니다. 마땅히 제 몫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며, 여기엔 파울(바울)이 말한 대로 우리의 온갖 육정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작업도 포함됩니다. 아울러 세상에서 주님을 위하여 주님과 그 말씀 진리 때문에 순교적 삶을 사는 것도 포함됩니다. 

현대의 구약적인 사제들의 제의(祭儀)에 따라 주고 참여해 주는 것이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이 되지 못합니다.  


참된 동참은 믿음을 길러 줍니다.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고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사람들은 주님과 연합됨을 상기하며, 주님과 함께 부활할 것을 더욱 믿게 됩니다(티모테B서=딤후 2'11). 그래서 침례(세례)는 주님과 함께 연합하여 '수장'(水葬)되었다가  주님과 함께 되살아남을 상징합니다(갈라티아 3'27). 또 요르단강에 일곱 번 잠겼다가 온몸이 깨끗해진 고대의 이방인 나아만처럼 우리 역시 죄로부터 어린양이신 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의 피 속에 온 영혼이 깨끗해졌음을 상징합니다. 그렇다고, 침례 자체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거듭난 성도는 그 영이 크리스토님 안에서, 이미 주님과 연합하여 함께 하늘 보좌에 앉혀진 사람들입니다(에페소 2'6)! 이 얼마나 놀랍고 황홀한 진리인지요.

주님이 다시 오셔서 공중에서 우리를 들어올리실 그날, 우리 몸이 홀연히 주님과 같은 영체(옛 낱말: '神靈體')로 변화되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을 신자는 믿습니다(코린토A 15'52, 코B 3'18; , 테살로니카A 4'16). 우리 앞서 잠자던 모든 성도들이 그날 먼저 무덤에서, 죽은 자리에서 되살아날 것입니다(참고: 테살A 4'15). 죽은 모습이 어떠했든지 믿음으로 살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성찬이 아닌 천주교의 영성체를 마치 참된 것인 양, 로마식 교회를 따르고 흉내 내는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가는, "거꾸로 가는" 교회입니다. 영성체를 하는 제의적 종교를 참된 교회로 착각하는 사람들은 참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참 기독교는 사제들의 것이 아니며, (천주교가 첫 '교황'으로 모신) 바로 그 사도(페트로) 자신이 모든 성도(!!)가 왕적인 사제=제사장들(loyal priests)이라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페트로A 2'9)! 이것만 봐도, 천주교가 얼마나 엉터리 교회인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지요. 

그네들과 같은 신비주의적 '관상' 기도(또는 '향심기도', '호흡기도')나 '미로'(labyrinth) 명상인가를 하고, 그네들처럼 성흔(聖痕/stigmata)인가를 추구하며, 그네들 식의 '금욕'과 그네들 식의 '청빈'을 추구하는 사람들, 그네들과 소위 일치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거꾸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예루샬렘이 아닌 로마에 교회의 뿌리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모든 길은 로마로!"라고 부르짖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참 기독교는 그런 방법론적/비본질적 변용(varying)에 있지 않습니다. 성경대로만 가야, 주님 말씀대로만 따라야 참됩니다. 그것이 참 교회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갖고 "응용"한다면서 온갖 방법론에 심취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꾀를 부리고 잔재주를 피워가며 성경 말씀을 변용하여 온갖 '영성'을 만들어 내고, 온갖 의식(儀式)들을 꾸며 내고, 온갖 방식과 프로그램을 짜내어, 결과적으로는 교인들을 진리로부터 멀어지게 현혹시킵니다.  

실상 이단들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사람들이지요.  

그런 것들은 저주 받은 나답과 아비후가 피운 "다른 향불"(strange fire)을 피워대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참고: 레빝서=레 10'1,2). 주님이 지정하신 순수한 향불(pure fire)이 아닌 다른 향불을 피우는 사람들은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끝날에 형벌의 불에 영영 저주 받을 운명에 처해지기 쉽습니다. 마치 나답, 아비후처럼.

이 사람들은 나답/아비후 시대로 돌아가는 "거꾸로 가는" 사람들, "거꾸로 가는" 역행적 교회들의 모습입니다. 


끝으로..주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에는, 진리를 지키고 따르며 진리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진리이며, 그분의 로고스(Logos/말씀)이신 주님은 진리 자체이십니다! 

크리스천들이 흔히 강조하는 사랑도 진리 안에서 기뻐합니다(코A=고전 13'6). 

진리는 때에 따라 목숨도 요구합니다. 진리 앞에서 몸을 배배꼬며 자신의 편의를 위해 진리를 휘려고 하는 사람들은 비겁한 사람들입니다. 진리를 불편하여하는 사람들을 진리가 불편해 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부활을 보장합니다. 우리의 부활은 믿음으로 진리를 받아들여, 얼마나 지켜 나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진리이신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요복 11'25; 14'16)!

성도는 영/성령과 진리로 경배합니다(요복 4'23,24). 그밖에서는 영이신 하나님을 참되게 경배할 길이 없습니다. 


진리는 우리에게 비진리에 대한 회개와 시정을 요구합니다. 회개는 회(悔=슬퍼함/뉘우침)와 개(改=고침)입니다. 회개하고 나면, 회개(回改=돌아와 고침) 받게 됩니다. 비진리는 진리에게 바로잡혀 고쳐져야 하며, 그러지 못할 경우 사라져야 합니다. 비진리가 진리와 함께 설 수가 없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다른 향불'은 꺼트려져야/꺼져야 하며, 영원한 불에 삼켜져야 합니다. 진리는 비진리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서로 동행할 수 없는 상대입니다. 세상은 진리대로 믿는 사람들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진리의 사람들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요복 15'19; 17'14,16). 세상에 속하려야 속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진리를 지켜 나갑시다!

그 진리를 주변에 전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으뜸가는 계명인 아가페 사랑을 진리 안에서 실천합시다! 


거꾸로 가지 말고, 역행하지 말고..진리대로만 순행합시다! 

마귀의 '역기능'체가 되지 말고, 주님의 순기능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