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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순결과 순진-무엇이 다른가?

순결과 순진-무엇이 다른가?
-크리스천의 순결은 세상의 순결과 다르다

 


순결이 뭔가? 많은 신자들은 거듭나고 나서도 세상 표준에서의 순결을 생각하기가 쉽다. 원시적인 순진무구가 곧 순결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순진무구 속에는 생각 없고 분별 없는 영적인 '멍청이'들도 포함된다. 그것이 문제다.
 
있는 대로의 순진무구가 순결이라면, 뱀에게 속고난 아담/하와(이브)도 순진해서 속아 넘어갔으니, 여전히 순결한 것인가..? 이건 질문조차 웃긴다. 아담/하와가 정말 순결한 때가 있었다면..지음 받은 이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아직 선악 지식의 열매를 경계했을 때였을 뿐이다.

아담/하와는 왜 하나님이 경고하신 그 열매를 따 먹었는가? 뱀을 충분히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말씀을 교묘히 뒤트는 영을 경계하거나 분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뱀의 간교한 말에 무장해제 되어버리고 말았다.


우리 주님은 역설적으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신다. 지혜와 순결-두 가지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상관관계임을 암시하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은 교계나 서가에 충만한 문제의 외래영성에 대해 실상을 모른 채, 겉모습만 보고 순진하게 따라 주는 것이 순결이라고들 믿고 있다.,그런데 그게 과연 '순결'이라고 받아들일 미덕의 상태인가? 천만이다. 그냥 영적인 멍청이일 뿐이다.  

 
온갖 영성을 경계하고 멀리 하는 사람들을 '겁보'로, 또는 세상과 교계의 '비적응자'로 볼지 모르나..성경 속 신자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사실은 적응 잘 하고 더 나아가 사다리도 잘 타는 사람들이 훨씬 더 위험한 지경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교계엔 많다. 

반대로, 정신 바짝 차리는 사람들보다는 "멍청한" 사람들이 더 많기도 하다. 그러니, 역설적인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순진의 농도를 달리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우리는 순결의 농도를 높여야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 수난절기 때마다 전체 또는 부분이 상영되거나 동영상 또는 스틸 커트가 비춰지곤 하는 영화-'패션오브크라이스트'(POC) 말이다. 이 POC가 과연 경건한 영화인가? 그냥 크리스토의 수난을 그렸다고 해서 그렇게 무차별로 믿어주는 것이 순진이고 순결인가?

이 영화만큼 교인들의 견해가 정반대로 상반되는 경우도 드물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어느 쪽이 옳을까? 양쪽 다 옳을 수는 물론 없다! 어느 한 쪽이 옳다면 다른 쪽은 그르다. 그런데도 많은 지도자들은 "이건 그런 성격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아니다'라는 것은 모든 영을 검증하라는 교훈에 순종하지 않겠다는 소리나 다름 없다. 사실 교계엔 그런 지도자들이 훨씬 더 많다.

 

이럭저럭 결과적으로, 멜 깁슨만 거액을 벌어들였다. POC는 '기독교' 영화 사상 최고 수익을 올렸다. 그런데 깁슨이 경건한 사람으로서 (성경적으로) 경건한 동기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가? 천만에다! 이미 말한 대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천주교 어젠다로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도자라는 사람들은 말한다. "혹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 없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라고. 그런데 과연 결과가 좋은가..? 상상은 자유지만, 착각은 금물이다.

좋은 게 좋다는 말은 영적인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소위 '교회성장'에 도움되고 교인 수가 불어난다고 다 좋은 게 아니다. 아니다! 분명히 아니다. 교회는 성장도 해야지만 영적인 성숙이 더 큰 문제다. 성숙해야 한다. 성숙하지 않은 지도자/신자는 언제고 문제의 소지와 요인이 되는 탓이다.


어린이가 순진하다고 해서 어린이 같은 상태가 다 옳은가? 성경은 어린이 같은 상태에 관해 분명히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는 천국이 그들의 것인 상태다. 진리대로 다 받아들이는 순수한 믿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하나는 말씀을 스스로 소화시키는 이유식을 못하고, 젖먹이 신세를 벗어나지 못한 영적인 미성숙 상태다.

그런데 오늘날 교계의 수많은 지도자들이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해야 한다는 진리에 대해, "뱀은 약삭빠르고 영악합니다. 안 좋습니다. 그냥 비둘기처럼 순결하세요."라는 식으로 말해 버린다. 그리고는 자진해서 뱀이 아닌 '비둘기'의 길로 간다.
그래서 오늘날 한국 교계를 무차별 침투하고 있는 온갖 잡동사니 '영성'에 대해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아무 분별도 검증도 없이 나가면서 온 교인들을 무장해제시켜 버린다.
한국교회의 영적 무장해제-언젠가는 지도자들이 반드시 책임져야 할 무서운 결과이다.
-이게 순결인가, 순진한 멍청이인가?

 

어린이의 마음은 흰 도화지와도 같다고들 한다. 그 도화지는 사람들과 세상이 그리면 그리는 대로 결과가 만들어진다. 닥치는 대로 그리게 놓아두면 순진한 멍청이가 되어버린다. 어린이가 가릴 똥오줌을 가리고 옹알이 때부터 딱 부러진 바른 말을 하도록 가르치고 길들여야 한다. 벽에다 마구 똥을 쳐 바르고, 쌍소리를 마구 입에 올리도록 놔두어선 안된다.

 

마찬가지로, 갓 거듭난 사람들도 갓난아기들, 갓 자란 어린이들이다. 순진한 양들과 같다. 방금 또는 얼마 전 영이 새로워진 그들 역시 마음은 도화지와도 같다. 지도자가 거기 무슨 그림을 그리든지 그대로 결과가 따르기 쉽다. 지도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기 쉽다.

 

지도자들은 그 도화지에 올바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 오색찬란한 무지개 그림부터 그리려고 궁리를 할 게 아니라, 깨끗하고 바른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이 순진한 그들을 순결로 이끄는 결과이다.

그러지 않고 도화지에 되는 대로 제멋대로 그림을 그리다가는 얼마 안 가 불도장 찍힌 양심이 되고 만다. 그런 양심은 멍청한 것이지, 순결한 양심일 수가 없다.

 

성경이 모든 영을 가려 분별하고 검증하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 좋아뵈는 게 다 좋은 게 아니다. 그런데 그걸 다 좋다고 따라가는 건, 순진일지는 몰라도 성경이 말하는 순결은 아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계 지도자들은 양떼인 교인들에게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수한 참된 순결의 길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양들을 멍청이 '순댕이'로 기르고 있다. 온갖 거짓된 영성의 이리떼와도 "잘 어울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주고 있다. 양의 탈을 쓴 이리의 겉모습만 보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양들을 가르친다.

그 결과, 한국은 이리떼에게 차근차근히, 착실하게 먹혀가고 있는 게 현실이다. 눈을 들어 직시해 보라. 한 번이라도 알아 보라. 필자의 말이 거짓말이고 과장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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