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의 극지방인 캐나다 북부 우드버팔로 국립공원에서 생활하는 25마리 늑대 무리의 대이동.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기 몸보다 10배나 큰 들소들을 잡아먹으며 살아간단다. 사진은 호주 출신의 생물학자로 영국 BBC 방송 자연사 관련 다큐물 제작감독인 채든 헌터 박사의 동영상 캪처.
늑대들의 진실
성경 진리를 곧바로 세우려는 심각한 글을 쓰다가도 가끔 한가로운 글을 쓸 때가 있다. 이것은 필자의 진심이자 진실(^^)이다. 필자는 지금은 한가로울 때가 결코 아니지만, 12월에 올린 글이 너무 적어서, 적어도 이 달 안에 하나를 더 추가하려던 생각도 진상이다.
세속 웹 사회에서도 사실 및 진실을 일깨우려는 글들이 가끔 눈에 띄곤 한다. 하도 거짓과 음모설, 추정과 억측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사실 수많은 웨비언(=네티즌)들은 그런 허위 주장에 쉽게 속는 쪽이다. 무엇이든 인터넽 상에 반듯한 폰트로 올려진 글을 그냥 읽거나 그럴 듯한 동영상을 보고 듣다가 기분상 조금이라도 공감되면, 믿게 되는 성향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천국/지옥에 관한 '간증'들이 그 한 예가 아닐까.
요 얼마 전 캐나다 늑대무리의 이야기도 그런 것의 하나였다. 1
페이스붘에, 눈길 위를 길게 한 줄로 이동하는 늑대무리의 신기한 사진과 함께 이탈리아어로 된 글 하나가 지난 12월 17일날 올려졌다. 그러자 이것을 그럴 듯하게 봤는지 또 다른 '페이스부커'가 이를 영문으로 옮겨 20일에 올려놓자, 페이스붘 사회에 일파만파로 번져갔다. 영문은 불과 며칠 사이에 100만회 이상(?) 접속돼 그중 약 47만명이 호감을 표시했고, 약23만회나 공유됐다. 그에 비해 (현재로서는) 오리지널로 보이는 이탈리아 글은 불과 50명 정도가 호감을 표시하고, 약 25,000회 공유됐다.
[그러나 이보다 한 해 앞서 2014년 러시아어로 된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려졌었다는 사실을 이븐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모양이다. >] 2
그러니 남의 생각과 소문이 얼마나 발빠른가.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더니 수십 만 리 정보고속도로를 한 달음에 간 것이다. 다만 이탈리아 말보다는 아무래도 훨씬 더 공용화된 영어 말이 "훨~" 더 빨랐다!
문제는 그 영역자가 오리지널을 아무 검증이나 비평 의식 없이 흥미 위주로 번역만 했다는 점이다.
위에 올려진 사진을 보면서 그 내용을 한글로 옮겨 읽어보자.
"늑대무리: 첫 세 마리는 늙거나 병들었는데도 전체 무리에게 길라잡이 구실을 하고 있다. 만약 이 세 마리가 반대로 뒤에 놓인다면, 그들은 뒤에 처져 결국 무리를 놓치게 될 것이다. (왜 이들이 맨 앞에 있을까.) 다른 맹수들이 매복해 있을 경우 이들이 희생제물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5 마리의 강한 늑대들이 뒤따르고 있다. 프론트라인인 셈이다. 그리고 한 가운데는 무리의 나머지 일원들이 있고 최강의 5 마리가 그 뒤를 보호하며 따르고 있다. 맨 끝에 있는 외로운 한 마리는 '알파'이다. 그는 맨 뒤에서 모든 것을 통제한다. 이 위치에서 그는 모든 것을 살펴보면서 전진 방향을 결정한다. 무리 전체를 돌보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무리는 늙은 선배들의 길 안내를 따르면서 서로 돕고 서로를 보살피는 셈이다." 3
그럴 듯 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것은 그야말로 pure speculation(순수억측)에 더 가깝고, 늑대 자신들이 아닌 인간의 공상일 뿐이다! 늑대 세계의 놀라운 '비밀'을 담은 인기 높은 사진 한 장을 갖고 끝없는 '공상의 나래'를 펼친 셈이다.
우선 이 사진은 호주의 야생물학자이자 영국 BBC 방송의 자연사 관련 영상기록물 디렠터인 채든 헌터 박사가 촬영한 것으로 지난 2011년 영국 BBC의 다큐인 '냉동지구'에 올려진 것이다. (참고 동영상 >)
해당 기록물은 북극에 가까운 캐나다 북부의 우드버팔로 국립 공원에서 박사가 영하 50도의 혹한을 견디며, 바이슨(아메리칸 들소)을 사냥하는 한 떼의 용맹스런 늑대들을 찍은 것이다. 박사 자신 이 늑대들의 행렬에 관하여, '알파 암컷' 이론을 통해, 영리한 암늑대 한 마리가 이 무리를 이끌었고, 나머지 늑대들은 깊은 눈길 위에서 자신들의 힘을 절약하느라 알파가 이끄는 트랰을 따랐다고 설파했다.
25 마리나 되는 이 늑대군단의 수적인 규모는 겨울 동안 쌓인 눈과 제한된 먹이 때문에 들소떼의 출현을 기대하기도 힘든데도 불구하고, 얼마나 먹거리 베이스가 풍부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물증이라고 박사는 해석한다. 그렇다면 기후환경 변화가 이들에게 주는 영향 또는 그만큼 적은 셈이다.
박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자기 몸의 10배나 되는 들소들을 사냥하는 늑대 족은 이들이 유일하다고 한다. 지상에서 가장 크고 강한 늑대들로 자라난 그들이다.
그러나 기록전문가인 헌터는 한 가지, 별로 체험에 기초하지 않은 애매한 주장을 펼치는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소위 '알파' 늑대에 관한 것이다. 데이비드 멕은 '캐나다 동물학 저널(CJZ)'에 실린 그의 1999년 논문, '늑대무리의 알파 지위, 지배와 노동분담'에서 늑대들 위에 군림하는 알파 늑대의 개념은 실제로 야생계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 바 있다. 참고: >
멕은 말한다: "(일부 학자들이 붙이는) 높은 서열의 '알파 늑대'라는 딱지는 지배족임을 강조한다. 그러나 자연의 늑대 무리에서 알파 수컷과 암컷은 단지 무리의 부모이거나 주로 번식시키는 동물로, 다른 늑대들과 지배력 경합을 벌이는 사례는 없거나 드물다. 나는 엘스미어 섬에서 13번 여름을 나면서 관찰했지만 단 한 번도 '알파'의 존재를 본 적이 없다."
또 이븐은 말한다: "그래서 늑대를 알파라고 부르는 것은 인간 부모나 암사슴을 알파라고 부르는 것보다 더 나을 게 없다. 어떤 부모이든 자식들에게는 지배적이기 마련이다. 따라서 알파란 용어 자체가 무의미하다. "
그러면서 그는 이 사진이 현실의 야생세계를 그대로 찍은 것, 그리고 보다 힘센 늑대가 눈길 위로 길을 내어 그뤂을 이끈 것만 사실일 뿐이라고만 결론지었다.
필자가 이븐의 결론에 추가하고 싶은 게 있다.
이 늑대 행렬 맨 앞에 있는 언덕 위의 세 늑대들은 "늙고 병든" 늑대이기보다, 눈길 위를 걸어온 긴 여로 끝에 다소 높은 언덕을 오르면서 조금 힘들어 숨 돌리고 있는 모습으로 얼마든지 상황을 해석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 물론 동영상을 보면 들소의 뿔에 받쳐 약해진 늑대가 있긴 있다. 하지만 세번 째 늑대 같은 경우, 새끼를 배어 몸이 무거운 암컷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둘째 그뤂의 늑대 중 일부는 이 와중에도 수시로 들소나 기타 사냥감이 어디 있는지를 살피고 있음에 거의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맨 끝의 늑대는 단지 힘이 좀 부치거나 딴전을 좀 피우거나 임신한 암컷이거나 정말 뒤를 살피는 책임을 지녔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처럼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경쟁이 심한 동물세계에서 늙고 병들고 약한 동물은 으레 뒤에 처지게 되고, 얼마 안 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맨 앞에서 젊은 늑대들을 이끌 리가 없다고 나는 본다.
이처럼 진실/사실과 허위/허구 사이를 가리는 데는 어려움이 있지만 궁극적으로 그래야만 한다. 사물과 사실, 사건들이 밝혀지지 못한 채 내내 거짓과 억측으로만 남는다면 서글픈 일이다.
그래서 말인데, 성경은 궁극적인 진리를 밝히는 데 목적과 관심이 있다.
진실이라는 것은 언제 어디서건 입증되는 절대 진리가 있어야 타당하다. 과학이 객관적으로 입증되는 데는 실험과 실증을 바탕으로 삼는다.
반면 성경은 믿음을 전제로 하여 오는 결과를 통해 성경 전체가 진리임을 깨닫게 된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신약 히브리서 11'6).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절대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함부로 아무 '진리'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학에서, 일단 실험과 관찰, 경험으로 실증되기 전엔, 약하고 병든 선배 늑대들이 젊은 늑대들을 앞장서 이끈다는 둥, 알파 늑대가 있어 지배하고 통제한다는 식의 억측을 받아들이지 않듯 말이다.
나에게, 또는 나와 공감을 나누는 독자들에게 중요한 사실이 더 있다. 그것은 이들이 '알파'라는 고등 늑대를 내느라고 '진화'돼온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 지음받았다는 엄연한 진리이다!
하나님은 개는 개, 여우는 여우, 늑대는 늑대로 지으셨다. 이들 서로 간에 아무런 '진화' 따위가 없었다는 말이다. 서로 비슷한 이들 사이에 혹 교배종은 있을지 몰라도 원래는 개가 늘 개이고, 여우는 여우이고, 늑대는 늘 늑대로 존재해 왔다는 말이다.
개는 사람에게 친근한 반려동물이므로 배고플 때는 늘 주인에게 얻어먹기 마련이다. 그러나 야생동물인 여우나 늑대는 상황이 다르다. 그들과 야생조들은 배고플 때 구슬피 울부짖기도 한다.
왜 야생동물이 울부짖는가? 성경이 설명해 주고 있다(요브서(욥) 38'39~41, 시 104'21; 47'9, 요엘서 1'18). 창조주 하나님이 그들을 먹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자신이 이를 고대의 의인 요브에게 설명해 주셨다!
이런 진리를 모른 채, 자생(自生)과 진화를 운운하는 생물학자들과 무신론자들, 불가지론자들, 유물론자들, 뉴에이저 등은 참 가여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 내가 '신화' 같은 소리를 한다고 할지 몰라도, 필자가 보기엔 진화론이야말로 하나의 허탄한 허구요, 신화 같은 소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화가 돼 왔다면 도대체 언제 어디서 시작됐다는 것인가? 상상의 '빅뱅' 시점? 진화가 시작되는 장소와 시점을 누가 봤는가? 우리 인간이 유인원으로부터 점진적으로 진화돼 왔다면 유인원과 인간 사이의 미세하고 점진적인 진화과정이 왜 우리 사회에 골고루 보이질 않는가? 어느 때 한꺼번에 진화하기로 약속이라도 했다는 말일까? 여기에 거창한 '빠진 고리'(missing link)가 있는 것이다.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됐다면, 웃지도, 노래하지도, 말하지도, 신을 경배하지도 못하던 유인원이 언제부터 돌연 웃고 노래하고 말하고 경배하는 존재가 됐다는 것일까..? 영혼이 없던 유인원이 어느 날 갑자기 영혼이 있는 인간으로 "회까닥"했다는 말인가? "웃기는 짬뽕" 같은 이야기다. 설령 천지가 다 진화한다 해도 인간 영혼만은 절대로 진화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진화론은 필연적으로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이다.
성경은 말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말하길 "하나님은 없다"고 한다고.
성경은 절대 진리만을 말한다. 상대적인 진리는 참 진리가 아니다.
절대적인 잣대가 없는 인간세계는 혼동과 혼난 뿐이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을 절대 권위로 모신 곳에 참 질서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분이 보내신 아드님을 받아모셔야 이 죄악 세상으로부터 구원을 얻게 된다.
25 마리의 늑대군단은 진화된 게 아니라, 들소떼를 사냥하면서 거기 살도록 적응해온 하나님의 창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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