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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김삼의 옛글들(댓글포함)

단풍과 열매, 낙엽의 철을 지내며




사진은 글 내용과 직접 무관함



단풍과 열매, 낙엽의 철을 지내며

- 조락과 서글픔이 아닌 원숙 
 

김삼   
 

단풍철이 어느 결엔지 훌쩍 지나갔다. 우리 아이들은 단풍 잎을 무척 좋아한다. 집으로 들어 오는 좁은 길목 양 옆의 작은 뜰엔 한 그루 단풍나무를 비롯한 몇몇 나무가 때때 옷을 절반쯤 입고 서 있다.

막내는 그냥 바라보며 즐기는 스타일. 큰 애는 매일 두 서 넛 잎씩 따서 두꺼운 주소록 속에 끼워 말리는 타잎이다. 땅에 떨어진 단풍 잎은 아무리 고와 보여도 신선하지 않아 싫단다. 채집해서 완전히 말린 잎은 투명한 케이스에 넣어 아트 작품을 위해 보관하거나 그냥 감상하기도 한다.

집안의 자연사박물관이랄까. 값없이 거저 얻는 단풍잎이건만 쓰임새가 만만찮다. 지난 해는 나의 서재 창문 안 쪽 덧창 위 열 두 개의 작은 쪽창 커튼을 떼 내는 대신 한지로 바르면서, 아내와 두 아이가 갖 가지 모양과 색깔의 마른 나뭇잎과 풀잎들을 즉석 도안을 해 가며 밀풀로 정성껏 발라 넣었다.
아득한 옛 시절, 내 고향에서 어머니도 하셨던 작업이다. 그러고 보니 서재 덧창이 본래 뉴잉글랜드 식이던 것이 모국의 정취가 물씬 난다. 단풍잎이 실내 디자인에 톡톡히 한 몫 한 셈이다. 
 

몇 주 전 온 식구가 가까운 동네 호숫가를 산책길 삼아 한 바퀴 돌면서 아이들을 위해 단풍 든 나무 잎새를 몇몇 채집했다. 한 해 전만 해도 자주 들르던 곳인데, 부쩍 바빠진 이래로 발길이 뜸해졌다. 식구 모두가 호수 이름조차 잊었다.

주택촌 한 가운데 있는데도 주위에 숲이 우거져 집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게 매력인 호수다. 둘레 0.7 마일인 작은 호수지만, 늘 수많은 거위와 물오리 떼가 놀고 있는, 그림 같이 아름다운 곳이다. 어쩌다 가끔 황홀한 모가지의 백조 한 쌍도 날아든다.

무성한 갈대밭과 부들도 곁들여져 제격이지만, 올해는 해충과 들쥐 때문인지 초가을에 일치감치 벌초돼 버려 아쉬웠다. 핑크 빛 가득히 봄꽃들이 피거나 신록이 우거지거나 단풍이 물들거나 눈이 내리거나 사시사철 정겹고 아름다운 호수다.

단풍이 한창이던 그 날, 늦가을 햇살이 이따금 호수 위를 비추자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잎새들이 온통 붉은 나무 그늘 아래 들어서면 빨강 양산, 노란 물이 든 나무 아래서는 노랑 우산을 쓴 기분이었다. 물오리들이 일제히 헤엄쳐 간 물결 위에 그런 색 우산들이 비치면 유화나 수채화 마냥 더욱 다채롭고 호화로웠다. 손에 울긋불긋한 이파리들을 나눠 쥔 아이들의 깔깔 웃음소리도 단풍처럼 곱고 밝다. 바쁜 틈새에도 한 구석 정서를 가다듬을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젠 아이들 학교로 오가는 길가에 색깔이 다소 바랜 낙엽들이 수북수북이 쌓여 있다. 낙엽들 사이로는 덩달아 떨어진 수많은 나무 열매들이 저마다 고개를 내민다. 동네 나무들이 나이도 수도 워낙 많다 보니 무성한 숲을 이루고 있다. 바람이 불든 안 불든 낙엽은 떨어져 내리고 켜를 두고 쌓여 끝 간 데 없이 펼쳐진 색 누비 포대기처럼 포근하고 정겹다.


누가 가을을 조락(凋落)의 계절이라 했나. 누가 낙엽을 칙칙하다고 했나. 단풍이 다채롭다면 낙엽은 무르익은 곡식과도 같은 황금빛. 단풍이 고운 겉 모습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면, 낙엽은 원숙함의 깊이를 속삭여 준다.

     "시몽, 너는 좋으니, 낙엽 밟는 소리가?"

레미 드 구르몽의 시 첫 줄이 생각난다. 문학 소년이던 사춘기 시절, 동네 교회 학생회 여자 선배로부터 구르몽을 포함한 시선 몇 권을 빌렸었다. 들춰 보니 시만 가득할 뿐더러 곱게 눌러 말린 꽃잎과 잎새들이 여기저기 북마크처럼 끼워진 채였다. 몇 주 동안 책 갈피를 들칠 때마다 그것들이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몇 번이고 이파리 향내를 맡으며 실감 나게 낙엽 시를 음미하던 추억이 새롭다. 정말이지 그 땐 무척 낙엽들을 사랑했다! 어지간히도 즐겨 외던 낙엽 시구들이건만, 지금은 더듬어도 쉽사리 기억에 떠 올라 주질 않는다. 두뇌 세포가 낙엽처럼 시들어 가기라도 한다는 얘긴가.


낙엽, 아 낙엽!
그것은 실패의 상징이 아니다. 그 금갈색 잎새 하나 하나가 원숙함의 극치에 다다른 사연이고 역사이고 증언임을 왜 잊어 버리고 무시해 버리나. 왜 무심히 밟고 지나치기만 하나. 
 
힘 없이 떨어져 시들어 간다고 낙엽을 서글퍼 말자. 서러워, 안쓰러워 하거나 슬퍼 말자. 마른 잎새 속에도 삶의 진실 한 조각이 담겨 있음을 인지하자. 내 삶의 모습을 일부나마 비춰 주는 흐릿한 거울이 그 아래 숨겨 있음을 느끼자. 되도록 인생의 실패가 아닌 성숙, 꿈의 실현과 완숙에다 은유하자.

모든 나무들은 꽃과 열매, 단풍과 낙엽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오늘 나는 무엇으로, 그리고 훗날 나의 삶은 무엇으로 무르익고 원숙한 것들을 하나님께 드리고 바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