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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김삼의 옛글들(댓글포함)

주님의 진정한 탄생일은 부활의 날






김삼 ㆍ 2007/04/08


초기 교회는 예수님의 초림보다 부활과 재림을 더 강조했음을 사도들의 서신서에서 익히 알 수 있다. 초기 교회가 예수님의 초림을 '축하'한 흔적을 볼 수 없다. 반면 부활과 재림은 서신서 전체에서 강조되고 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인류 구원의 구체적 단계의 시작이니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부활이 없는 성육신은 무의미한 것이다!

마리아를 신격화해온 천주교는 언제나 예수님을 마리아와 연계시켜서만 기리려는 어젠다를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낸 12월 25일 성탄절/크리스마스를 매우 강조한다. '영원한 동정녀' 마돈나(='여주인')의 착한 '베이비'로 나셨다는 데 집착하려 한다. 하지만 일단 아기를 낳으면, 더는 처녀가 아니다. 이 점을 카톨릭은 '눈 가리고 아옹' 식으로 부정하려 든다. 오로지 마리아의 신격화를 위해서.

정작 성경이 강조하는 성자님의 진정한 탄생일은 바로 2000년전 주님이 무덤서 살아나신 그 날이었다. 다음 구절을 보라.

"내가 주님의 칙령을 선포한다. 그 분은 내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 아들! 너를 내가 오늘 낳았다'"(시2:7. 필자 사역. 이하 성구들도 사역).

이 구절은 성탄절에 해당하는 말씀이 결코 아니다. 사도들은 그렇게 해석하지 않는다. 사도행전 13:33~37을 읽어 보라. 분명히 부활과 연계해 설명되고 있다. 이것은 다시 히브리 1:5, 5:5로 추가 해설되고 있다. 히브리서 1장은 주님이 부활하신 직후 일차 승천하시어 자신의 피로 하나님께 하늘 대제사장(히5:1~10참조)으로 임명받으신 후 다시 땅으로 돌아오신 엄청난 천상적/우주적 사건을 기록했다.

'일차 승천'이라니..무슨 황당한 말이냐고? [이에 관해 필자의 옛 글 '예수 승천은 딱 한 번?'을 꼭 읽어주기 바란다.] 히1:6을 보라. 이미 위에서 "낳으신" 맏아들을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셨다고 하지 않는가? 분명히 최소한 2회 이상 승천하셨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을 어떻게 장담하느냐고?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의 새벽 예수님을 만지려고 했을 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나?

"..날 건드리지 마오, 난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못했으니까. 그대는 나의 형제들에게 가서 전하오: '내가 나의 아버지 곧 그대들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그대들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요20:17).

위에서 주님은 40일 이후 감람산에서 하실 최종 승천을 말씀하신 게 아니다. 바로 하늘에서 있을 예수님의 '하늘 탄생 파티' 겸 하늘 대제사장 위임식에 참석하려고, 무덤서 되살아나신 당일 새벽, 맨 먼저 지난 지상생활 33년간 늘 그립던 아빠(Abba) 성부님을 뵈러 하늘로 올라가시는 길이었다. 그래서 마리아에게 터치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바로 부활하신 그 날부터 모든 제자들이 하나님의 자녀들, 그의 형제들이었다(시22:22, 히2:10). 그래서 '맏아들'로 호칭된 것이다! 시편 68편 18절이 성취된 날이기도 하다(에페소 4:8~9 참조).

이 신비를 깨닫지 못한 카톨릭교회는 예수님이 마치 감람산에서 단 한 번 승천하신 것처럼 교리를 굳혔고 동시에 마리아의 '몽소승천'설을 주장해왔다. 신교측도 비록 마리아의 승천설은 안 받아들여도 예수님의 단회 승천설은 그대로 받은 것.

그러나 주님의 승천은 한 번 뿐만이 아니다. 사실 성자께서는 구약 시대부터 여러 번 하늘 땅 사이를 오르내리셨다. 아니라면 왜 아구르는 이렇게 말했겠는가?

"나는 슬기를 배우지 못했고 또 거룩한 분에 관한 지식이 없다만, 하늘에 올라가셨다 내려오신 분이 누군지..그 이름이 무엇인지, 그 아드님의 이름이 뭔지 그대는 아는가?"(잠언30:3, 4)

주님 자신도 니코데모에게 그렇게 명시하셨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곧 인자 밖에는 하늘에 올라간 이가 없다네."(요3:13).

승천이 감람산 승천 사건 단 한 번 뿐이었다면 어떻게 이 구절을 설명할 수가 있나? 전술했듯, 히브리서 1장도 이 사실을 확실히 증언하고 있다.


주님의 부활과 성도의 부활은 그래서 더 없이 중요하다! 사도 파울은 코린토 알파(고전) 15장 전체를 할애해 이 부활의 지극한 중요성과 신비를 거듭거듭 강조하고 있다. 성도라면 누구나 이 코a 15장을 반드시 정독해야 한다. 파울이 그토록 강변했듯,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말짱 '꽝'이 돼버리기 때문이다(코a 15:14~19. 이하 같은 15장)!

부활은 우리의 목숨처럼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사건이고 진리다. 그런데도 요즘 교회 안에서 "부활을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단다. 파울 당시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15:12).
오죽하면 파울은, 이교도들이 고인을 위해 받는 침례까지도 언급했겠는가?(15:29) [오해 마라. 이 구절은 파울이 죽은 자들을 위한 침례교리를 믿었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다! 그런 건 몰몬교 사람들이나 믿게 내버려 두라.] 고대 미쯔라임(아이귑트=에집트) 등 이교 사람들조차 죽은 자의 부활과 내세를 믿었었기에, 하물며 왜 우리 크리스천들이야 못 믿을 게 뭐냐고 한 역설적인 얘기인 것이다.

부활! 첫 열매이신 예수님 다음으로는..주님 오실 날 그 분께 자석처럼 빨려 올라가 공중에서 그 분께 들러붙을 우리의 몫이다(15:23b). 우리 모두 주님의 부활한 몸과 같은 신비한 신령체(spiritual body)로 변화받게 된다. 신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