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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역사서

[삼상 19:20] 슈무엘은 대언자학교의 창건자였다 (김삼)

           
대언자 무리를 발견한 샤울 일행


슈무엘은 대언자학교의 창건자였다
- 정순태님께 답함

[필자는 되도록 원어 발음에 가까운 표기를 추구한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아울러 선지자/예언자 대신 평소 써 온 '대언자'라는 나름의 용어를 계속 쓰련다.]

재반론 동기

'맑은 바람소리'의 필자, 정순태님이 본 필자의 글-'최고 선지자? 신사도 '예언'의 현주소'의 일부에 대한 반론을 띄운 사실을 티엘티 애독자의 귀띔으로 몇 달 후에야 발견했다. 그 반론이 상당 기간 필자의 이름을 곁들인 채 웹에 유포됐었겠기에, 비록 다소 늦은 감이 들더라도 독자들을 위해 꼭 응대해야겠다는 노파심에서 쓴다. 
 
그 글의 위치는 다음: 
http://www.nosuchjesus.com/bbs/view.php?id=cwcolumn&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6 

그 반론의 주 골자는 필자의 글 전체 요지에 대해선 크게 공감하나 슈무엘(=사무엘)이 고대 대언자학교의 창건자라는 부분은 찬동할 수 없다는 것. 
슈무엘이 그렇지 않았다는 님의 명제도 엄청난 '폭탄선언'이지만, 본 필자로선 계속 충격을 금할 길 없는 여러 지엽적 문제가 줄이어 발견된다.
이 글이 상대방 반론보다 훨씬 길어진 것도 그래서다. 필자의 문제보다는 상대방의 비성경적 문제점들이 훨씬 다대(多大)한 탓. 필자는 솔직히, 그 글을 읽다가 님의 '큰 공감'에 대한 일말의 고마움조차 점점 식어만 갔다. 그 까닭을 독자가 이 글 속에서 느끼게 될 것이라 본다.   

과신(過信)적 레토맄

그 반론은 필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레토맄을 구사했다.

   "'부정확한 성경지식'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부분..
   "단지 설명하는 과정에서 간과된 작은 실수(?)..그냥 넘어가도 무방할 것이다."
   "문제가 되는 원문.."
   "크게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장담할 수 없기 때문.."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
   "성경을 꼼꼼히 살피지 않고 평소의 막연한 기억에 의지함으로써 초래된 착각일 수..  왜 이런 현상이 발생되었을까..?"
   '추정'
   "지나치게 비약된 억측일 가능성이 더 크다"
   "자의적 추정"..
 
상당히 놀랍다. 성마른 속단일 뿐더러 자기과신에 넘친 모습으로 비친다. 애커데밐한 자신감으로서 타당하다면 필자도 인정하겠다. 하지만 위 평가 대부분은 되레 님 자신에게 고스란히 적용될 수 있어 결과적으로 '호언장담'들이 됐다는 게 유감스럽다.
정순태 님은 또 자신이 성경을 늘 "꼼꼼히" 읽는다는 긍지를 표명한 것으로 보이나 타당성이 결여된 긍지임을 독자는 포착하게 될 터이다.  

슈무엘이 이스라엘 대언자학교의 초기 창건자였다는 명제는..

1. 성경으로 충분히 입증되는 극명한 역사적 사실이요 상식이다. (이 글에서 재입증된다)
2. 유대/성서학계에 전반적으로 공통된 견해다.
3. 필자가 지난 1970년 중반부터 30년간 연구해온 명제의 일부일 뿐이다.
4. 필자의 수상 논문을 비롯, 여러 학술논문(구약/성서음악)에서 다룬 주제이기도 하다.
5. 필자가 신학교에서 오래 가르쳤고 수많은 교회 설교에서 언급했던 내용이다.
6. 그러면서 여태 단 한 번도(!) 이 점에 대해 이의나 도전을 받아본 적이 없다.
7. 정순태님의 도전이 사상 처음이다. 아마도 님의 주장은 세계사상 첫 케이스(?)일지도 모르겠다.

더 나아가, 이 과업은 성령님께서 슈무엘에게 맡기고 시키셔서 된 일이니 성령님이 실질적인 창건자이시다.  

학계나 필자의 청중이 다들 생각이 정순태님 보다 모자라거나 성경을 꼼꼼히 읽지 못해서 여태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겠는가? 
필자는 지금, '기선 제압' 따위를 하느라 무턱대고 큰 소리 치는 게 아니다. 독자들은 위 명제 아니 진실을 본인이 직접 성경상으로든 웹의 이런저런 탐색엔진에서든 충분히 확인해 볼 수 있다. 

여기선 그 무엇보다 직접 성경을 통해 이 명제를 속시원히 입증함을 급선무로 삼으련다.

왕국시대를 열 준비를 한 슈무엘

최후 판관(判官=사사/judge) 겸 대언자, 슈무엘이 이스라엘 역사 상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하나님의 뜻과 이끄심으로 아브라함은 히브리 민족인 이스라엘의 기원(紀元)을, 모쉐가 이스라엘의 해방시대를 열었다면, 슈무엘은 판관시대를 마감하고 이스라엘 왕국시대를 준비한 분수령적 인물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왕이 아직 없을 무렵 슈무엘의 어머니 한나를 통해 예언됐다: 슈무엘A서=삼상 2:10 뒷 부분을 읽어 보라. 이하 슈무엘서를 '슘'으로 표기)

그는 선배 판관/사제 엘리의 통치 40년간 피폐해진 나라를 영적으로 회복하고 이스라엘 초대왕 샤울과 다윋 왕을 기름부음으로써 등극을 도와 왕국시대의 기초를 닦았다고 할 수 있다. 당초 그는 왕 제도를 꺼렸으나 하나님의 명에 순종했다(슘A 8장 참조).

그러한 슈무엘이 성령의 감동에 따라 미래의 왕국시대에 꼭 필요한 새 제도를 마련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언자 공동체 겸 대언자학교다. 일종의 대언자 양산체제라고 할 수도 있다. '양산체제'란 어휘의 뉘앙스에 혹 반감이 일지 모르나 과거에 비해 엄청난 수의 대언자들이 동시대를 살아갔기에 사실이라고 봐야 한다. 대언자가 드물던 이전 시대와는 큰 차이가 있으므로 응당 그런 결론이 나온다. 

이런 체제가 꼭 필요했던 것은 이제 막 시작되는 역대 왕들의 통치에 대비해 거기 꼭 필요한 하나님의 신적 지로(指路)와 영감으로 돕기 위해서였다. 성령을 통해 왕과 백성들을 훈계/격려/경고/예언을 할 일꾼들이 필요했기 때문.
또 과거엔 개별적인 선지자/선견자들만 있었으나 이런 제도는 없었다. 이 학교는 슈무엘 자신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성령님의 영감에 의해 마련됐음이 틀림없다. 슈무엘 자신이 성령께서 부어주신 영력과 계시와 영감이 풍부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같은 권서 3:19-21, 4:1을 보라).  

슈무엘의 통치 전 배경

슈무엘 이전 시대의 영적/정신적/물리적 실상은 비참에 가까운 형국이었다.

 - 광야 2세 신앙세대가 사라져 간 판관시대 말기는 지도자 없이 날로 무법천지가 돼 갔다. 한 마디로 온 나라가 뒤죽박죽 제멋대로였다. (판관기=삿 17:6, 18:1, 21:25. 참조: 17-21장)

 - 판관시대 말엽 40년간을 통치해온 판관 겸 사제-즉 국가 지도자인 엘리는 노쇠하고 영감이 무뎌진 데다 불순종으로 무능했다. 더구나 철저히 타락한 두 아들 탓에 집안이 도덕적으로 피폐했고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온 가문 위에 머물러 쇠망해 갔다. (이상 슘A 2:12-17,22-36, 3:1,12-18, 4:12-22 참조). 

 - 이스라엘 군대는 펠레쉩 군과의 전쟁에서 무참히 패배했다(4:1-11). 

 - 당대 이스라엘 신앙의 상징물인 쉴로 성막의 법궤는 펠레쉩에게 뺏겼다가(5:1-7:2) 우여곡절 끝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켜지고 환수된다. 그러고도 오랜 세월 뒤 다윋 시대에 와서야 비로소 법궤를 찾아 새 수도인 예루샬렘의 성막에 모셨다.

엘리와는 대조적으로, 슈무엘에겐 판관/사제/대언자를 위한 하나님의 권능과 영감, 기름부음이 넘쳐 배가됐고, 그의 말 한 마디도 추락하는 법이 없었다(!). 슈무엘의 삶 여정을 처음부터 종국까지 살펴 보면 어릴 적부터, 선배인 엘리와는 정반대로 철저히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을 산다.     

그런 슈무엘은 판관시대를 마무리하면서 왕국시대를 여는 과도기의 위기에 이스라엘를 구출하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걸출한 지도자였다. 그에겐 과거 판관기에 드물었던 대언의 영이 강력히 임했다.

대언자 무리의 우두머리

슈무엘이 자신의 고향인 라마(='라마 타임쪼핌' 슘A 1:1) 나이옽을 중심으로 대언자 학교 내지 대언자 공동체 시대를 열고 그 초기를 이끌었음을 증명하는 데는 긴 말이 필요치 않고 다음 한 성구로 충분하다. 물론 더 많은 증거들이 이하에 계속 소개된다.

    "그러나 대언자들의 무리가 예언을 하고 슈무엘이 그들의 우두머리로 선 모습을 그들이 봤을 때,.." (슘A 19:20b 필자 사역)

위 구절에서 슈무엘은 분명히 대언자 무리를 거느리는 지도자/이끔이/우두머리로 나타났다. 필자는 정순태님이 이 핵심 구절은 왜 간과하고 빠뜨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본인에게 불리해서?

슈무엘 A/B서는 그의 사후 기록인 B서 후반기 일부를 제외하곤 슈무엘이 직접 기록한 권서로 알려져 있다.
이 '대언자 무리'의 원어 '라콰트(원형 '라콰') 네비임'에서 '라콰'는 구약 전체에서 여기만 나오는 단어다. 슘A 10:5,10의 '헤벨'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다. 어원 불명의 이 낱말에 대해 학자들의 견해가 구구하지만, 필자는 샤울 왕정기의 수십 년이 지난 때 학교와 제도로서 굳혀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고 성령께서 기자 슈무엘을 통해 쓰신 낱말로 여겨진다. 그러니까 단순한 '대언자 떼'보다는 훈련 경력과 규모를 갖춘 '대언자 제자들/학생들'이 아닌가 싶다.

훗날 엘리샤 시대의 대언자 공동체는 '대언자 생도들'(원문 대언자 아들들)로 불린다. '아들들'이라고 표현했음은 특정 대언자를 섬기는 '사환'과도 구분되지만, 대언자들 일부 사이에 좀 더 혈통이 강조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아무튼 같은 대언자들의 무리를 이처럼 세 가지 다른 낱말로 표현했다는 것은 흥미롭고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    

슈무엘의 이 네비임 무리의 존재로부터 곁 가지 유추가 몇 가지 가능해진다.  

    첫째로, '나이옽'은 특정 지명이기보다 흡사 현대의 위성도시처럼 라마 주변을 둘러 싼 여러 작은 지역의 집단거주지 내지 공동체를 가리킨다. 대다수 유대학자들이 이에 동의한다. 이로 미뤄 보건대 라마는 왕국시대를 준비하는 다수의 미래 일꾼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훈련받던 곳임이 거의 확연해진다. 

"대언자 무리"라는 집단은 과거엔 전혀 없었다! 군락 내지 공동체를 이뤄 라마 부근에 웅거하면서 왕국시대를 위한 영적 기반을 닦았다. 판관기를 거쳐 왕국시대를 앞둔 과도기인 슈무엘 시대에 비로소 나타났다. 따라서 그들에겐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음이 필요했다. 이 나이옽은 오랜 훗날 왕국시대에 길갈/예리코 등지로 세포 분열하듯 번져나갔다.

    둘째로, 네비임 다수는 훗날 왕국시대에 대언자들 뿐 아니라 성전에서 다양한 직능을 발휘했을 수 있다.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할지 몰라도 그렇게 유추할 충분한 근거가 있음을 알게 된다. 게다가 라마는 훗날 다윋의 통일왕국, 후대의 남왕국 유다의 수도인 예루샬렘에 비교적 가까운 고장이었다. 

슈무엘의 차세대인 다윋-슐로모 시대 사기를 보면, 예루샬렘 성막/성전에서 레비 족인 사제/제사도우미/음악인/문지기 등 남자들 약40,000명이 활약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오늘날 미국 최대급 교회의 교인수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인원들이 성전과 왕궁 주변에서 사역한 셈이다. 그들은 30세 이상의 남성들로 24,000명은 성막/성전 사역자들, 6,000명은 관원/재판관들, 4,000명은 문지기들, 4,000명은 성전음악인들이었다. (연대기A=역대상 23:1-6 참조)

그런데 예루샬렘 성막/성전 음악인들 상당수가 동시에 대언의 영감과 기름부음이 있는 선견자들이었다. 즉 성막/성전 사역과 함께 선견자 역을 감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슈무엘의 대언자학교와 그 후속 전통에 의해 훈련 받았음이 거의 틀림없다.
그 이전엔 그런 사람들도, 그런 적(such occasions)도 없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다윋왕 자신이 대언자/음악인/시편기자였고 성전 사역보다 왕의 전문 선견자로 활약한 같/나탄 같은 사람들이 대언의 영을 통해 성전음악에도 관여했다(연대B=역대하 29:28).

이들 사역자/선견자 일부는 시편 기자들이기도 했다(연대B 29:30). 이 사실은 여러 시편 표제들을 봐서도 확인된다(시 39,42,44-50,62,70,73-83,84,87-89,137 편). 따라서 이런 성막/성전 사역자들이 미리부터 대거 훈련받은 것은 과거의 네비임 공동체 같은 선구적 기관의 존재를 통해 훗날 가능했다고 보는 게 가장 자연스럽다.

슈무엘의 제자/후손들
 
우리가 주목해야 할, 한 가지 거의 숨은 사실은..성막/성전 사역자들 다수가 슈무엘 가문 사람들이었다는 것.

우리는 슈무엘의 두 아들이 아버지처럼 모범적이지 못했다는 진실을 기억한다(슘A 8:1-3). 아마도 아버지가 전국 주요 도시를 두루 순회하면서 나라 일과 판결, 후배양성 등으로 너무나 바쁘다 보니 두 아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약점이 있지 않았나 싶다.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슈무엘이 선택 받은 한 동기였던, 선배 판관 엘리의 두 아들-홒니와 피네하스의 불량하고 아픈 과거를 연상시킨다(2:12). 흥미롭게도 당대 사기(史기) 기록은 슈무엘의 아내에 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아무튼 그는 친자식 교육엔 실패했는지 모르나 후손 훈련에 온통 실패하진 않았다! 하나님의 영감이 그의 손자 헤만을 새 사람으로 만드시고 그 후손에게 대대로 함께 하셨다. 아버지의 예를 반면교사 내지 거울로 삼았는지 슈무엘의 손자들은 아주 잘 자랐다! 성경에 어디 그런 얘기가 있냐고 의아할 독자들은 연대기A 6:16-28,32-38 둥을 잘 살펴 봐 주기 바란다:

슈무엘의 친손자 헤만은 레비 사제 족의 3계열(케핱/게르숀/메라리)을 따라 나눠진 성전 음악인들의 세 유파를 각각 맡은 세 악장들(헤만/아샆/에탄=예투둔, 23:5-6, 25:1)의 한 명이면서 동시에 왕의 선견자였다(연대A 25:5 참조). 실은 아샆, 예투둔도 모두 왕의 선견자였고 시편 기자들이었다.

다음은 슈무엘의 친손자와 친척 후손들인 음악인/선견자들이 쓴 시편이다.

헤만: 시편 제88편
아샆: 50,70,73-83편
에탄(=예투둔): 시 39,62,77,89편

다음 역시 레비 음악인들이 기록한 시편들이다.
시42,44-49, 84,85,87, 137편

다른 두 악장들과 함께 놋제금(='칠칠림'. 오늘날의 심발즈와 유사한 고대 타악기, 연A 15:19)을 치면서 음악인들을 이끈 헤만은 슈무엘을 특별히 총애한 하나님의 은총 덕인지 아들딸 17명을 낳아 길렀는데, 자녀들 모두가 그 아버지 수하에서 성전음악인으로 활약했다(25:4-6).
그밖에 다윋 시대에 3계열 주요 음악인들을 합하면 모두 288명이었다(연대A 25:7). 이들은 모두 일가친척/부자/사제지간인 동시에 선후배 사이였다(앞 8절 참조).  
그러므로 왕국시대 초기 내지 성막/성전 시대에 갑자기 나타난 이들 무리가 하늘에서 파견됐거나 땅에서 솟아났을 리는 없고 슈무엘의 라마 나이옽 공동체에서 훈련 받은 사람들 다수와 그 후손들인 것이다.

슈무엘의 친증손자/손녀들 즉 헤만의 아들딸들이 할아버지/아버지 덕분에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것은 25:5,6에 명시돼 있다. 즉 딴 가족은 모두 아들들만 성전음악인들로 활약했지만, 이 가정만 특별히 세 딸들도 성전음악인들로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다수 유대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물론 이들이 밤낮 성전 골방/연습실에서 훈련받은 것도 사실이나 그 큰스승들은 슈무엘의 대언자학교에서 배웠음이 거의 틀림 없다. 다른 통로는 보이지 않는다. 스승들은 밤낮 성전 골방에서 사역 준비와 연구에 골몰했다(연대A 9:33). 이 전통은 남/북 분열 왕국시대를 거쳐 포로기 이후까지 수백년간 이어진다.

더욱이 이들에게 대언의 영과 영감, 기름부음이 넘쳤다는 것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언자학교가 영감과는 무관한 듯 여긴 정순태님의 생각은 큰 오해다. 슈무엘 때로부터 수 세기가 지나 선한 유다왕 예호샤팥 시대에도 성전음악인들은 영감 넘치는 대언자로 활약했다(연대기B 20:14,20,21).  

주전(B.C.) 6-5세기의 포로기 이후 시대에도 레비 음악인들의 대언적 영감은 지속된다(시 137편). 특히 에즈라/네헤미야 시대에 아샆 후손들의 활약상은 빛났다. 그들 다수에게 대언의 영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네헤미야 11:16,17(12:8,24과 10:9, 9:4, 8:7의 명단 일부를 비교해 보라. 특히 레비인들의 예언 9:5-38을 보라! 12:46 참조). 네헤미야의 동역자인 당대의 학사 (역시 레비족 후손!) 에즈라도 대동소이한 기록을 남겨놓고 있다(에즈라 3:10,11과 비교).

정순태님의 글에선..이런 슈무엘의 역사적 중요성이 전혀 언급되거나 강조되지 않고 있다. 님은 대언자학교가 곧 인간에 의해 지명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신사도운동권의 '선지학교'를 미워하다 보니 슈무엘, 엘리샤의 고대 대언자학교(?)까지 미워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인간들의 만들어놓은 현대 '선지학교'의 문제가 하나님이 세우신 고대 대언자학교로까지 소급되는가?

라마의 기름부음/영감의 수위는?

앞서 일부나마 언급했던 내용을 구체적으로 다뤄 본다.
일부 학자들은 라마 나이옽의 선지자 무리에게 대언의 영(내지 영감)이 임했는지 여부에 의혹을 던진다. (놀랍게도 진작 학자들의 견해를 고사했던 정순태님은 이 점에서 비록 무의식적으로나마 그들 학자와 공통되다!)
그들이 놓친 몇 가지를 말하련다. 

    1. 여느 누구도 아닌, 당대 하나님의 사람, 판관/통치자/대언자인 슈무엘을 대표자, 우두머리로 모신 그들에게 성령의 영감이 없었다는 말은 말씀이 안 된다.

    2. 대언자 무리에게 평소 임하던 성령의 기름부음과 영감 때문에 그들이 기악을 연주하면서 산기슭을 내려올 때 왕 후보자 샤울에게 성령의 기름부음이 크게(!) 임했다(슈무엘A 10:5-13). 그 결과 샤울도 대언을 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됐다. 슈무엘 예언대로 하나님이 몸소(!) 그렇게 하셨다(9절 참조). 심지어 샤울 측근도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을 정도였다(10:26). 

    3. 샤울은 뿐만 아니라 다윋을 질투해 변질된 채 다윋을 체포하려고 온 때도 역시 예언의 영이 임해 슈무엘 앞에서 벌거벗고 자빠져 누워 밤낮 예언했다(슘A 19:19-24). 이에 앞서 대신 3회 파견한 전령들부터가 다들 영감을 받아 예언을 했다. 그러니까 왕까지 4회나 그랬다.

이상에서 보듯, 라마 나이옽의 대언자 무리에겐 은총과 평화, 기름부음과 영감이 차고 넘쳤다! 시23:5에서 다윋이 "나의 잔이 가득 찹니다"라고 고백했듯 여기가 그랬다. 하나님이 기름부음을 내리셨고 이곳을 장차 왕국시대의 모든 일꾼들을 기르는 장소로 택하셨음이 명명백백하다!

이상만으로도, 일부 학자들과 정순태님의 의혹 내지 우려는 간단히 불식된다.

엘리샤 대언자학교

앞에서는 통일왕국-(남)유다왕국 시대에 수도 예루샬렘에서 활약한 레비 선견자들에 관해 다룬 셈이다. 그들과는 별도로, 왕국 분열 시대에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대언자들이 있었다. 우리가 잘 아는 엘리샤/엘리야 말고도 수많은 대언자, 대언자 생도들이 있었다. '대언자 아들들'이란 명칭으로 불린 이들은 길갈/벹엘/예리코 등에 분포돼 역시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대언자학교 내지 공동체, 집단훈련의 개념은 슈무엘이 창건한 게 틀림없는 대언자학교로부터 비롯됐다고 봐야 한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정순태 님은 슈무엘의 대언자학교로부터 약 130년이 지난 왕국 분열 후,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이 벹엘의 단과 사마리아 산당 사제를 삼은 사람들(왕들A 13:33)을 가리켜 '선지학교의 시초'라면서, 마치 대언자학교가 성령님 아닌 싸탄에게서 비롯되기라도 한 양 주장하는데, 어이없는 노릇이다.

여로보암에 이어 후대 왕들이 통치하던 이스라엘엔 분명히 주/야웨님의 대언자들이 있었다(왕들A 18:4 참조). 아합왕의 아내 예제벨이 수 백 명을 학살했지만, 엘리야 외에도 오바디야의 보호로 100명이 동굴 속에 잔존해 있었다(18:4,13). [ 엘리야의 말과 기도에 따르면, 실로 당대 하나님의 대언자들은 거의 전멸한 것으로 보인다(18:22, 19:10,14b). ]
바로 그래서 슈무엘의 라마 나이옽 전통을 이은, 다른 대언자학교의 존재들은 절실히 필요했다!
 
정순태님 주장대로라면, 싸탄에게서 비롯된 '여로보암 선지학교'에서 엘리야를 비롯한 주/야웨님의 대언자들 수 백 명이 나왔다는 얘기 밖에 더 되겠는가?!
더욱이 여러 모반자 역대왕들을 거쳐 왕이 된 아합/예제벨 수하엔 바알 '예언자' 450명, 아쉐라 '예언자' 400명 등 최소 850명의 이교 예언자들도 있었으니, 님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여로보암 선지학교'에서 훗날 야웨님의 대언자들과 이교 예언자들이 나란히 배태/양산됐다는 결론이 나 버린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언자 생도 무리는, 엘리샤가 엘리야에게 기름부음 받은 사건과 같은 때 성경 상에 나타난다. 그러므로 이들은 이전부터 있었던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슈무엘 대언자학교(내지 공동체)의 전통을 이어받은 사람들임이 거의 확실하다. 이들에게도 역시 성령의 기름부음과 영감이 있었고, 따라서 대언의 영이 강했다(왕들A 20:35-43). 한 대언자는 아합왕이 알아 볼 정도로 이미 알려진 사람이었다.  

또 아합/예제벨이 그렇게 많은 대언자들을 죽이고도 (바알/아쉐라 예언자들이 아닌) 그가 소집할 때 나타난 여타 대언자들도 약 400명이나 있었다(22:5). 그렇다라도 이들이 정순태님이 말한 가상의 '여로보암 선지학교' 출신은 물론 아니다! 그런 흔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아람군과 싸울 이스라엘-유다 연합군 결성을 위해 사마리아를 특별 방문한 유다왕 예호샤팥(선한 군주였으나 아합왕가와 연혼을 했다)은 이 400명에게선 야웨님의 영감을 느끼지 못해 다른 대언자를 찾았고 그 대상이 바로 미카야였다(22:7-9).    

그러므로 우리는 그지 없이 타락하고 사악한 북왕국에 성격상 선하든 악하든 수많은 대언자 무리가 있었고 이 대언자들 대다수가 고래로 왕국시대 직전 슈무엘의 대언자학교 전통을 이은 것임을 능히 추정할 수 있다. 그러지 않고선 이 많은 숫자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순태님의 주장은 매우 무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엘리야-엘리샤 경유기에 길갈/벹엘/예리코 등에 수 백 명의 선지학교 생도들이 있었는데 이들에게 모두 나름의 영감이 있었고(왕들B 2:3,5,7,15, 4:1,38. 길갈에만 100명이 있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15-18절 참조). 엘리야 승천 후 엘리샤가 그들의 우두머리가 됐다. 즉 슈무엘과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이들이 결코 (정순태님의 주장에 따라) 마귀가 창건하다시피 한(?) '여로보암 선지학교' 출신이나 후예였다고 상상할 수가 없다. 과연 정순태님 주장대로 대언자학교가 모두 마귀에게서 왔다면 왜 이들 다수에게 하나님의 영감이 있었고 또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했는지, 왜 엘리샤가 그들을 거느리고 도왔는지 묻고 싶다(4:1). 님의 대단한 모순이 여기 있는 것이다.  

엘리샤의 제자들인 선지학교 생도들이 목재를 갖다가 학교 건물을 세운 것은 그 후의 일이다(6:1-4). 그는 제자들을 성실히 돌보아 기르고 훈련시켰다(9:1). 그러나 말기로 갈수록 북왕국와 남왕국 유다가 모두 약화돼 간 것이 사실이다.

대언자학교는 사악했는가?

필자를 "근거 없다"고 매도하는 정순태님은 근거 없이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선지학교에 얽힌 비화(悲話=슬픈 이야기).."
    "선지학교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무관한 불신앙으로부터 출발되었다는 것을, 출현하지 말았어야 할 그런 조직체였다."

만약 정순태님의 주장처럼 대언자학교가 그렇게 불신적, 인위적이고 사악한 것이라면, 당연히 현대의 신학교나 교회학교/주일학교, 제자훈련, 리더십 세미나와 컨퍼런스 등도 그렇게 봐야 마땅하다. 대언자학교가 씨의 시사처럼 그토록 인위적이고 못 돼 먹은, 망할(?) 것이었다면, 예수님이 12명 제자들을 훈련시킨 것도 인위적인가? 단지 예수님이시기에 (그분의 말대로)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인가? 

이 점에서 님에게선, 한편으로는 관대히 열린 듯 하면서 한편으로는 극단적이고 과근본주의적인 우를 범하고 있음이 발견된다. 그에게선 자가모순도 쉽게 발견된다. 그야말로 전술한 그의 초기 표현대로 실수로 "간과"한 것들이다. 그중 하나가 다음이다(님을 인용한다).

   ○ 생도 : (히) 벤(ben) = 아들, 손자, 구성원의 일원 ⇒ 선지자의 생도들 = 선지자의 아들들.

여기서 선지생도는 당초 번역자가 쓴 한자 개념상 학생이란 말과 동일하다. 그런데 님은 이들을 어디까지나 '선지자의 아들들'로 본다. 그렇다면 앞서 그가 결코 승계한 후계자가 아니라던 주장은 뭔가?

그는 또 생도(벤)는 선지자의 제자 즉 차세대 선지자를 지칭하므로, 결국 선지자/선견자(로에와 호제) 및 벤 등을 몽땅 '선지자'로 번역하더라도 의미상 오류는 아니라 할 것이라고 말해 놓곤, 선지학교는 "하나님의 뜻과 전혀 무관한 불신앙에서" 출범했고 "출현하지 말았어야 할" 조직체였다는 '비화(悲話)'를 재고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미 봐온 대로) 님은 선지학교의 '실질적'(이 낱말의 뜻을 필자는 잘 모르겠다) 창설자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이라고 시대착오적 단언을 한다. 놀랍게도 레비족만이 수행 가능한 사제직을 변개하여 원하는 자 누구나 일정과정만 이수하면 사제가 될 수 있도록 한 데서 바로 그 유명한 선지학교가 "시발됐다"고 엄청난 억측을 남발하고 만다.  

지금 님은 슈무엘이 대언자학교를 창건했다는 필자의 부정확(?)하고 간과한(?) 실수(?) 내지 몰상식한 추정(?) 이상으로 몇 배나 더 엄청난 부정확하고, 실수를 간과한, 억측을 하고 있다.
그의 억측 또는 그것이 결과적으로 시사하는 바를 열거해 보자.

 - 대언자학교의 창건자는 여로보암왕(!)이었다.
 - 여로보암이 북왕국을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다. (대언자학교 창건은 인간-사실상 마귀?-의 뜻이었다는..것인가?) 
 - 그 결과 북왕국 도처에 선지학교가 '난립'됐다. 
 - 엘리야나 엘리샤는 대언자학교 생도들과 긍정적 교제를 나누거나 사명을 부여했다. (여기서 그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자기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독자들은 그게 뭔지 알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것이 대언자학교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성경적 근거가 못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선지학교가 "일종의 배교정신에서 비롯된 비신앙적 실패작"이었다고 다시 한번 큼직한 착각의 바윗덩어리를 던져 놓고 만다. 그 착각의 근거는 뭔가?

승계되지 않았다면 여로보암왕을 훗날에 승계한 아합왕 시대엔 대언자학교 생도들이 없었다는 말인가? 승계가 뭐고 후계자가 뭔가? 예수 크리스토는 멜키쩨뎈의 사제직을 승계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비단 구약 대언자직이 아니더라도 신약시대에 수많은 신앙 선진들이 개별적 또는 단체적으로 (현대어를 빌면) '멘토링'을 주고 받거나 제자훈련을 한 예를 본다. 대강 다음과 같다.

   침례요한과 그 제자들(일부는 훗날 예수님의 제자가 됨)
   예수님과 12제자
   예수님과 70제자
   바르나바스(한글성경: '바나바')-마르코스 요한(마가)
   초기교회 신자/제자들
   페트로-마르코스
   파울-마르코스
   파울-티모테 (및 기타 수많은 동역자/사역자들. 일부는 배신함)
   파울-프리스킬라/아퀼라-아폴로
   파울-티토
   파울-오네시무스
   파울과 안티옼 등 소아시아의 교회 지도자/감독/장로들
   사도 요한-가이우스
   루카-테오필로스(루카복음과 행전을 써보냄으로써 사실상 제자훈련)
    기타 다수.


이런 제자훈련, 멘토링은 다 거룩한데 유독 구약 대언자학교만 (님의 표현이 시사하는 대로) 가히 싸탄적(??)이었는지를 묻고 싶다. 

정순태님은 그의 글에서 대하13:8-9에 근거하여, "선지학교의 실질적 창설자"가 여로보암왕이라면서, 왕이 종교적 정통성이 매우 취약했기에 심히 걱정스러워 1. 금송아지 설치 2. 레비 족 사제직을 변개하여 일정과정만 이수하면 누구나 사제가 될 수 있게 했는데 2에서 그 유명한 선지학교가 시발됐단다.

정순태님은 여기서 슈무엘의 대언자 무리는 여로보암 보다는 훨씬 선대의 사람들이란 사실, 그래서 실상 여로보암보다 약 130년 전에 이미 대언자학교가 있었다는 역사의 '도치'에 대해 자신의 독자들에게 아무런 해명도 해 주지 않는다. 님에게 짧은 역사의식조차 없다는 말인가?

정순태님의 논리는, ('여로보암선지학교'에서는) [사제=선지자]란 등식이다.
그는 또 이 여로보암선지학교를 기원으로 북왕국 이스라엘 도처에 선지학교가 "난립"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님은 아직까지 성경에서 남왕국 유다 소속 선지학교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독자들은 이미 왜 남왕국에 북왕국 같은 별도의 선지학교가 따로 보이지 않나를 짐작할 것이다. 바로 성전 안에서 필요한 선견자 훈련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독자는 이해가 가는가? 오히려 왕국시대를 앞둔 슈무엘의 대언자학교에서 미래의 사제감이 훈련 받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충분히 말이 된다. 그랬을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이다.

나의 의문은 정순태님의 이른 바 '여로보암선지학교'에서 누가, 어느 선지자가 선지생도들을 가르쳤냐는 것. 정순태님 논리대로라면 그 선지자는 응당 싸탄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리고 님은 길갈/벹엘/예리코/에프라임산지/요단강변 등의 선지학교를 나열하면서도 슈무엘의 대언자학교의 자취를 전혀 찾지 못하니 안타까운 노릇이다. 이들은 슈무엘이 아니었더라면 아직 나타나지도 못했을지 모를 학교들인 것을.
그리고 나아만 장군에게 한 게하쉬의 말대로 에프라임 산지의 대언자학교가 실존했다면 그것이야 말로 슈무엘의 라마와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사실을(슘A 1:1,19).
또 한 가지 사실은 라마라는 마을은 여러 군데였지만 에프라임 산지의 라마는 바로 슈무엘의 고향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라마 나이옽은 분명히 슈무엘의 집 근처였을 것이다. 이 라마는 벤야민 지파와의 경계선상에 있었고 유다의 예루샬렘과도 가까웠다. 그렇다면 뭘 말해 주는가?  

그 다음으로 정순태님의 중요한 문제점을 보자.

'여로보암 선지학교'가 이스라엘 최초의 대언자 훈련기관이었다는 님의 발상은 결국 이스라엘 대언자학교가 본질적으로 금송아지를 섬기려고 학생들을 배출했다는 주장이다. 즉 이스라엘의 대언자학교가 처음부터 우상숭배를 위해 개설됐다는 것. 독자들은 이해가 가는가?

정순태님은 아울러 이스라엘의 모든 아니면 대다수 대언자 무리가 궁극적으로 금송아지 숭배 사역을 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과 다름 아니다. 역시 굉장하고 특이한 발상이다.
이 말이 얼마나 엄청난 의미를 갖게 되는지, 과연 이스라엘 대언자 무리가 그랬는지 한 번 정신 차리고 따져 보자.

성경에서 대언자의 집단, 대언자 무리, 또는 대언자 생도(역본들의 차이: 선지자의 제자, 예언자 수련생, 예언자의 무리, 예언자의 제자들..영어판들: 예언자의 아들들, 예언자의 자녀들, 예언자의 무리)에 관한 언급은 다음과 같다. (바알/아세라 선지자들은 제외)

슘A 10:5, 10:10, 19:20
왕들A 18:4,13, 19:1, 20:35, 22:6
왕들B 2:3,5,7,15, 4:38, 5:22, 6:1, 9:1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면 알지만 위 성구들 중 단 하나도 금송아지나 기타 어떤 우상숭배와도 연결돼 있지 않다! 정순태 님의 주장을 뒷받침할 성구는 단 한 절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정순태 님은 또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물론 엘리야나 엘리사는 선지자의 생도들과 긍정적 교제를 나누었고 때로는 사명을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선지학교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성경적 근거로 해석해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지금 님은 '여로보암선지학교'가 당초 금송아지 우상숭배를 위해 설립됐기에 부정하다는 견해의 모양새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대언자 무리/생도는 철저히 악한 무리들로 배제해야 한다는 의식 탓에 저런 부언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만약 대언자 무리/생도의 뿌리가 그렇게 우상숭배적이고 싸탄적이고 마귀적이라면, 엘리야나 엘리샤가 어떻게 한시라도, 아니 단 일초라도 그들과 '긍정적' 교제를 나누거나 '사명'을 부여하겠는가?! 논리적으로 당치도 않는 말인 것이다. 

우리는 엘리야가 바알/아쉐라 대언자들을 카르멜산 정상에 초청, 그들을 조롱하면서까지 하나님이 참 신을 보여준 다음 모조리 척살했던 사실을 기억한다. 야웨 섬김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또한 그 전에 아합/예제벨에게 학살 당한 야웨 대언자 무리(!)의 보복을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였다(왕들A 18:4a,13, 19:10). 엘리야는 또 아합/예제벨 부부의 우상숭배를 철저히 견제하고 경고했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 엘리야가 '여로보암 선지학교'가 배태한 금송아지 우상숭배자들 내지 그 후예들(?)인 대언자 무리/생도들을 전멸시키긴커녕 그들과 "긍정적인 교제"를 하고 "사명을 부여"할 텐가? 어떤 교제? 어떤 사명? 정순태 님은 갈수록, 스스로 도처에 저지르고 있는 엄청난 자가당착과 자기모순을 거의 전혀 의식하지 못하 듯 하다. 이런 것을 점입가경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대언자학교의 지도자인 엘리야가 왜 자신이 이끄는 무리의 정당성을 구태여 보증해야 하나?
그런 보증은 이미 성령님께서 해 주신 것이다.

배교정신의, 비신앙적 실패작?

이제 갈수록 심각해져 가는 정순태님의 더 큰 모순을 지적해 보련다.

    "..선지학교는 일종의 배교정신에서 비롯된 비신앙적 실패작.."

본 필자는 지금 '여로보암선지학교'의 양파 껍질을 한 꺼풀씩 벗기고 있는 듯한 심정이다. 갈수록 요지경이기 때문이다.
우선 위의 진술은 문장 자체가 모순이다. 만약 처음부터 여로보암의 배교정신에서 선지학교가 시작됐다면 거기에다 '비신앙적', '실패작'이란 수사어조차 불필요하기 때문. 배교정신으로 한 것이 신앙적이거나 성공작일 수가 있겠는가?

대언자학교가 과연 1. 배교정신에서 비롯된 것이고 2. 비신앙적이고 3. 비실패적인지 실례를 들어 가며 직접 살펴 보자. 여기선 슈무엘의 대언자 무리를 '선지학교'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정순태님의 일가견(?)을 존중하는 뜻에서 일단 제외시켜 두고..엘리샤가 직접 지도했던 대언자 생도들에 관해서만 다뤄 보려고 한다. 

독자는 왕들B 4:1에서 한 대언자 생도의 아내가 죽은 자기 남편을 주/야웨님을 경외한 엘리샤의 '종'이었다고 자임하는 모습을 볼 것이다. 엘리야의 영력의 갑절이 엘리샤에게 내린 이래 엘리샤는 대언자학교의 우두머리 내지 스승이 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왕들B 2:15). 엘리야로부터 물려받은 그 영력과 영감이 마귀의 것이 아닌 이상 이 대언자학교는 성령님의 영력으로 움직여지고 있었음을 의심할 수 없다.

아무튼 이 생도 부인이 엘리샤에게 부르짖으며 채권자가 그녀의 두 아들을 노예로 삼으려고 하니 막아 달라고 간청하자, 엘리샤는 성령님의 초자연적 권능으로 낱 병 기름이 계속 배가되게 하여 여인이 빚을 갚을 뿐더러 여분으로 생활하기까지 도왔다.

만약 정순태 님 주장대로 대언자학교가 "배교정신으로 시작된 비신앙적 실패작"이라면..
여인의 남편인 대언자 생도도 가짜여야 할 것이고 고인의 야웨님 경외도 엉터리고
엘리샤가 행한 권능도 헛일이고 싸탄으로부터 왔다고나 해야 맞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엘리샤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불린 것은 어쩐 영문인가?

그뿐인가?
엘리샤가 갑절의 영력자 답게 당대의 조국과 왕, 여러 사람들에게 베푼 이적도 다양하고 많지만 (왕들B 2:19-22, 13-21, 4:13-37), 대언자 생도를 위해 한 일이 더 있다. 즉 길갈의 흉년 때 들야채로 끓인 국의 독성을 해독한 일(4:38-41), 대언자 생도들에게 주/야웨님의 말씀 대로 보리 떡 20개와 채소 자루를 생도들과 함께 한 주민들이 다 먹고도 남을 만큼 배가시켰다. 주/야웨님이 "무리가 다 먹고 남으리"라고 하신 말씀이 이뤄진 것!
정순태님의 주장대로라면, 위의 예언이 "주/야웨님의 말씀"이 아닌 마귀의 말이었다는 뜻인가?  

여기서 필자는 묻는다: 정순태님이 "꼼꼼히" 읽었다는 성경은 왜 필자가 꼼꼼히 읽은 성경과 그리도 정반대로 다른가..?

대언자학교에서 이뤄진 이적들은 이뿐 아니다. 대언자학교의 목조건물을 짓기 위해 생도들이 엘리샤와 함께 요단 강변에서 나무를 베던 중 한 생도의 도끼가 강물에 빠지자 엘리샤가 도끼를 되찾도록 초자연적 권능으로 도왔다. "배교정신에서 비롯된 비신앙적 대언자학교"였다면 이 이적은 마귀의 초자연적 이적이었다는 말인가?
 
만약 대언자 생도들이 정순태님이 묘사한 것처럼 그렇게 사악하고 배도적인 인물들이었다면, 엘리샤는 왜 예후를 차기 왕으로 기름붓는 중책을 일개 생도에게 맡겼겠는가(왕들B 9:1-10)?
아울러 이 기회에..대언자 생도들은 모두 별 쓸짝 없는 인사들이었던 것처럼 주장해 온 모 타 인사에게도 동시에 묻고 싶다: 명사만 일꾼이란 말인가..무명인사는 일꾼이 아닌가? 그 무명인사들 중 명 대언자도 나타났는지 어떻게 아는가? 엘리샤는 엘리야의 사환이었고 따라서 일종의 생도 겸 후계자는 아니었나?
조금만 꼼꼼히 성경을 봐도 금방 드러나는 별 근거 없는 말과 마인드는 함부로 생각 없이 내세울 성질이 아닌 것이다.

이상에서..정순태님의 주장들이 아무 근거가 없음을 우리는 확인했다. 

구분 모호? 불능? 

돌이켜 보면, 정순태님은 진짜로 사악한 대언자 무리들과 참된 대언자들을 구분하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진짜 사악한 대언자 무리들은 바알 아쉐라 선지자 850 명이었다. 
그밖에도 아합을 도운 선지자 400명도 과히 선한 사람들은 아니었던 듯 하다. 왜냐하면, 엘리샤가 그의 도움을 찾는 이스라엘의 악한 왕 여호람에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 모친의 선지자들에게 가소서!"(왕들B 3:13) 했기 때문이다.

정순태님은..

    바알/아쉐라 선지자들(전멸)과
    아합/여호람을 도운 선지자들(왕들A 22:6, 그 이하도 참조. 왕들B 3:13 중간)을..

    대언자 생도들 및
    선한 대언자들

등과 구분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밖에 뵈지 않는다. 애꿎은 대언자 생도들, 하나님의 대언자들까지 모조리 싸잡아 사악한 종으로 본 것이다. 이것은 잘된 분별이라기보다 전제가 너무 억세다 보니 분별을 좌시 또는 포기한 셈으로 쳐 진다.

추가적 문제점

그밖에 정순태님의 몇 가지 문제점을 추가로 지적한다.

님은, 선지자는 결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지명을 받은 자여야 하며 혈통으로 승계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큰 특징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지만, 여기서 님이 의도하는 바는 대언자학교 또는 대언자 생도들은 인간에 의해 지명 받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지명을 받지 않았으니 가짜라는 시사이다. 과연 그런지 독자들의 판단을 바란다. 

또 (님이 읽었다는) 몇몇 주석과 김삼에게서 "가장 크게" 의문시되는 점은 "하나님의 산"(기브앗엘로힘)으로 표기된 기브아는 사무엘의 주 활동무대가 아니었음을 "간과했다"는 것이라며 "지나치게 비약된 억측일 가능성", "자의적 추정" 등을 운운했다.
과연 그것이 (님이 읽은) 주석들과 김삼의 가장 큰 의문점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보기로 하자.

여기서 님의 일차적인 문제점은 히브리어를 잘못 적용하는 데 있다. '하나님의 산'에서 기베앟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일 뿐이다. 따라서 (왕) 샤울의 고향이자 주 무대였던 기베앟(슘A 10:26, 11:4, 15:34b, 22:6)와는 거리는 가깝지만 다르다. '기베앟'라는 고유명사/지명도 여러 군데였다(예슈아 15:57, 24:33, 판관기 19:13-14, 20:10 '게바'로 표기, 슘A 23:19=샤울의 기베앟와 동일할 듯).

글 초두에서 인용한 성구, 슘A 19:20에서도 라마(나이옽)에 있는 이 하나님의 산이 슈무엘의 주 무대임을 극명히 입증해 줄 뿐더러(참고: 19:18-24) 이 라마는 다름 아니라 에프라임 산지에 있는 슈무엘 가문의 고향이고 자택이 있기도 했다는 점이다(슘A 1:1,19, 2:11). 또 훗날 여기 매장됐다(25:1).
더욱이 슈무엘은 매년 베텔/길갈/미쯔파 등을 순회했고 언제나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뿐만 아니라 자기 고향에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주/야웨님을 위한 단도 쌓았다(슘A 7:15-17, 15:34a). 바로 그 라마에 산당과 대언자학교도 있었다는 말이다.
이런데도 왜 라마가 주무대가 아닌지, 그게 왜 억측인지 님에게 묻고 싶다.

[ 물론 라마 역시 '산지/고지'라는 말로 일반명사로 쓰일 수 있고, 구약에서 라마란 지명이 여기저기 나타난다. 예를 들면, 아쉐르 지족 영토의 국경 촌락(예슈아 19:29), 낲탈리 지족의 요새(옛 19:31), 라뫁 길레아드(=길레아드 라마. 왕들B 8:28,29, 연대기B 22:6), 쉬메온 지족의 유산인 네게브의 한 성(옛 19:8, 슘A 30:27), 벤야민 지족의 성(옛 18:25) 등이 있다. 그밖에도 라헬의 묘지(슘A 10:2, 예레미야 31:15=마태복음서 2:18), 여대언자 데보라의 거주지/판결소(판관기 4:4,5), 호세아와 이사야가 각각 언급한 라마(호세아 5:8), 이사야 10:29) 등이 있다. ]

그러나 슈무엘의 주무대인 라마는 '라마타임쪼핌' 또는 '라마 나이욭'으로 명기된 그 라마이다. 

님이 "긴 시간을 투자"해 가며 "세심히 검토해 본" 결과가 기껏 주석들과 남의 글을 '억측', '자의적 추정'으로 내모는 것으로 남는다면, 실로 성경연구도 신중히 가려서 해야 한다고 본다.

님은 또 구약 때는 특정인물에게만 한시적으로 성령이 임재했고 신약 때는 모든 신자에게 임했다고 강조한다. 특정인물에게만 임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역이 종료되면 떠나시는 경우가 많았다"고, 또 성령임재 기간이 종료되면 그 이상 선지자가 아니라면서 모쉐 떄의 70장로, 샤울 시대의 샤울과 그 전령들을 예로 들고 있다. 성령임재 기간이 지났음에도 계속 예언을 하면 '거짓선지자'로 구별돼야 한단다.

그러나 님은 여기서..우선 개념상 성령의 사역적인 내림과 신격적 내주를 구분하지 않고 있다. 또 70장로나 샤울은 본래부터 대언사역자로 부름받은 대언자/대언자 생도와는 달리 처음부터 '선지자'의 직능이 아니라 단지 국한된 특정 경우였다는 사실도 구분하지 않고 있다. 아울러 성도들에게 모두 성령이 임재해 계시다고 해서 다 대언은사를 받은 것도, 대언은사가 사라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명시해야 했다.

결론

결론적으로, 정순태님이 이만큼 용감한(?) 지론을 견지할 수 있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성경적 뒷받침을 위한 묵상에다 학적인 연구도 보태져야 한다고 믿는다.
아무튼 님의 건필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