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바빌론 유적
김동열의 날마다 묵상하며
에스라2장55절-70절말씀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조서가 내려지자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본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을 모집하기에 바쁘다.
이제 70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감하고 돌아가는 날이 되자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믿음의 결단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씩 집합 장소에
몰려든다.
정리한 재산과 말과 가축들, 간단한 살림살이들을 챙긴
사람들의 얼굴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긴장감도 있지만 부푼 기대와 소망이 열기로 느껴질 정도다.
성전과 성벽 재건을 반드시 이루겠다는 강렬한 결심도 엿보인다.
4만명이 훨씬 넘는 사람들이 모이자 ‘출바벨론’을 이끌 리더들이
각기 혈통대로 본적대로 성직자인 제사장과
레위지파는 그 직분대로 그룹을 나누고, 이방인이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구분해서 행렬 대형을 갖추기에 정신 없다.
그런데 왠지 여기 저기 행렬 대형에서 열외되는 사람들이 있다.
지파와 가문에 따라 그룹에 줄 서 있는데, 가문의 리더들이 한 명 한 명
확인을 하고 제외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혈통을 잊어 본적지 별로 모인 그룹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델멜라와 델하르사와 그룹과 앗단과 임멜에서 올라온 자가 있으나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는 증거할 수 없으니..."(스2:59).
제사장 그룹에서도 쫓겨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로 아내를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으로 이름한 자라
이 사람들이 보계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 (스2:61-62).
성경은 이 사람들의 이름을 귀환 대열의 맨 마지막에 기록한다.
당당하게 자신의 혈통과 본적, 제사장의 대형에 서있는 사람들과는
달리, 이들의 얼굴을 제대로 들지 못한 채 어쩔 줄 몰라 한다.
같은 사명을 가지고 귀환 행렬 명단에 분명히 제 이름을 올리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다.
예전엔 이렇게 될 줄 미처 몰랐으리라.
제사장의 직분을 갖고도 바벨론 풍습에 동화되어 사는 쾌락을 누렸다.
유대 여인보다 세련되고 예쁜 이방 여인과 결혼해 기쁘고 행복하게 지냈다.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의 딸 중에
하나를 아내로 삼고....."
그러나 지금,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지 얼굴을 들고 서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귀환 대열에 서긴 섰지만 당당하기는커녕 부끄러운 귀환이었다.
우리 스스로에게 물을 질문이 있다.
참으로 나는 당당할 수 있는 구원 대열에 서있는가?
구원은 받았지만 세상에 동화되어 세상 욕심과 즐거움을 다 누리면서도,
어찌하든 말씀대로 살려고 발버둥치는, 좀 답답해 보이는 성도들을
보면서 왜 저렇게 사느냐고 비웃는 모습은 아닌가?
성도의 당당함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 부유함이나 세상 권세에 있지 않다.
가난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말씀 앞에 신실할 때, 성도의 당당함이 있다.
그리고 그 당당함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다.
우리 모두 하나님 나라를 회복하고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사역에
당당함과 즐거움으로 쓰임 받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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