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아사왕의 개혁시대(2) (메시아계보대장정34)




바탕 본문: 연대기B (역대하) 14:4-8


지난 호(33회)에 이어 아사 왕의 개혁 내용을 더듬어 봅니다. 
 

5. 거국적인 율법 실천 운동 전개 

    "유다 백성에게 명령하여 그 열조의 하나님 주 야웨님을 찾게 하고 그 율법과 명령을 행하게 하였다." (연대기B 14:4 이하 성구 사역) 


아사 왕이 슐로모(=솔로몬) 왕 이래로 획기적인 일을 하나 했다면, 바로 범 국민적인 하나님과 말씀으로 돌아가기(Back to God and His Word) 운동이었습니다. 슐로모의 타락 이후 이제껏 수 십 년간 이런 운동이 없었지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이유는 주로 한 가지. 연대기B서 기자가 12:1에서 잘 설명해 줍니다.

    "레호보암은, 나라가 견고해지고 세력이 강해지자 주/야웨님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았다."


사람이 힘이 커지고 교만해지면 자연히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 당신을 멀리하게 되기가 쉽지요. 바꿔 말해서 하나님을 "우습게" 보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대 최강인 미쯔라임(에짚트) 군대의 유다 침략 및 보물 강탈을 허용하셨습니다(연대B 13:2-12 참조). 그러나 주님은 다빋 때문에 유다를 사랑하셨기에 진멸하시진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그런 우를 범할 수 있으며 자주 그렇게 해 왔습니다. 다만 우리가 목숨이 붙어 있고 삶을 유지하는 까닭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거듭나지도 않고 또 계속 주님과 말씀을 멀리하는데도 주님의 사랑이 계속 무한대로 함께 해 주진 않습니다. 그 사랑을 온전히 회복하려면 우리가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를 비롯한 사람들은, 꼭 중대한 위기를 만날 때까지는 볼 일과 볼 장을 다 보다가 거의 끝장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뉘우치고 돌이키는 성향 내지 악습이 있습니다. 이것을 고친다는 것은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다행히도 아사 왕은 지난 날을 돌아 보면서 나라의 흥망성쇠의 열쇠가 곧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달린 것을 상기하고 거국적인 돌아가기, 돌이키기 개혁 운동을 펼칩니다.

여기서 우리는 회개가 단순히 회[悔=뉘우침]만이 아닌 회+개(改) 즉 뉘우침과 고침이 있어야 함을 발견합니다. 회도 회(回: 돌아섬), 되도록 위기를 겪기 전에 빨리 선회해야 좋습니다. 침몰선 '타이태닠' 호는 고속 항해하다 뒤늦게 빙산과의 충돌 위기를 깨닫고 급선회하려 했지만 결국 당하고 말았습니다.   

[ 오늘날 한국이나 외국의 교계에서 가끔 회개운동이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1907년 장대현(=장댓재)교회 부흥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영적 부흥의 재개(再開) 바람, 'Again 2007'같은 운동 등 다양한 캠페인이 벌어졌습니다만..그 열매나 결과가 있었나요?
지극히 적은 것 밖엔 아무런 소산이 없었다고 평가됩니다. 즉 장대현교회 부흥 재개 바람은 돈만 잔뜩 들였을 뿐 사실 상 실패였다는 말입니다.

그 이유가 뭘까요? 한국교회가 근본적인 것-즉 잘못된 '영성'이란 것을 버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에서 벗어나, 외국에서 사대주의적으로 직수입한 해괴한 관상영성/'목적'영성/'떠오름영성'/신사도영성 따위를 청산하지 않고는 한국 교계에 진정한 회개와 부흥이 이뤄질 리가 없을 뿐더러..(신사도운동권이 목청높여 부르짖는), 지구촌적/우주적인 거창한 대대적인 부흥운동 같은 것은 성경에 예언된 바 없습니다. 뉴에이지적이고 가증스런 거짓 이적들만 판 칠 뿐입니다.

한국교회는 이런 헛 영성을 포기할 기미가 보이질 않습니다. 따라서 혹 부분적인 '회'는 간혹 있을 수 있어도 '개'는 아닙니다. 그러나 참된 진리를 사랑하고 진정 회개하는 작은 교회, 운동이나 모임, 블로그나 웹사이트는 있을 터입니다. 티엘티도 그 중 하나로 탄생했고 계속 그 길을 추구하길 갈망합니다! ]


아사 왕은 온 유다 백성에게 선조의 하나님께 돌아 갈 것, 그 분을 갈망할 것, 그 분의 율법과 명령을 행할 것을 강조합니다. 선조의 하나님, 주/야웨님이 누구십니까? 이스라엘의 초기 선조 아브라함으로부터 이짜크-야콥-요셒-모쉐-예슈아...다빋에게 이르는 믿음의 사람들이 섬긴 그 하나님이지요! 

아사 왕 시대의 대언자 아자리야는 훗날 이렇게 예언합니다.
 

    "..여러분이 주/야웨님과 함께 하면 야웨님도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 분을 찾으면 그 분도 여러분을 만나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만약 그 분을 버리면 그 분도 여러분을 버리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엔 참 신도 없고(=버리고) 가르치는 사제들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이제 오래 됐지만, 환난 때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 야웨님께 돌아가서 찾으니 그 분도 그들을 만나 주신 것입니다..(하략)" (연대B 15:2-4)


지극히 단순/간결한 진리이지요. 아사 왕은 이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깨달을 뿐더러 백성에게 주/야웨님의 말씀인 율법을 실천하게 합니다(율법은 구약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 오늘날은 고대의 이스라엘/유다와 같은 신정(theocracy/神政)은 끝났고, 현대에는 나라 단위로나 집합적으로나 안 되는 일입니다. 대통령/국왕/총리 등이 아무리 기독교적이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이유는 현대사회는 여러 잡다한 종교가 한데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본 고장인 이스라엘이 '신국통치'를 추구한다고 한들 유대교는 참 종교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영국을 비롯한 몇몇 나라들이 역사 속에서..그리고 아직도 '기독교국가' 내지 '신정'이라는 것을 추구합니다. 이것은 거짓이며..'생쇼'에 불과합니다. 미국은 비록 초기 건국 선조 다수가 '분리파' 청교도였지만 그들 가운데는 엄연히 비신자들도 있었습니다.
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부터가 프리메이슨/이신교도(deist)였고 따라서 거짓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정직한 조지'? 천만에! 에이브러햄 링컨도 (믿든 말든) 참 신자가 아닌 이신교도였습니다(링컨은 메이슨이 되기 얼마 전 암살됨).
역사를 알고 보면,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엔 거듭난 참 신자로 확인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통치자가 거듭나 나라를 기독교국가로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가 아닌 탓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를 새로운 각도로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날 미국의 '기독교화' 내지 보수화를 추구해 온 소위 복음주의자들 상당수가, 자신들이 메이슨/비밀집단 인사들임을 간파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 명사들 바라 볼 것 없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이 세상은 마귀가 신/왕으로서 통치하는 곳임을 가르쳐 주고 있고 이것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 절대자, 우주 최고의 통치자이신 주/야웨님이 한시적으로 허용한 때문임을. 그 메커니즘을 우리는 이해야 합니다. 거듭난 성도 외에는 세상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마귀에게 속해 있다고 성경은 명언해 줍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 이후로는 예수 크리스토가 다스리는 미래의 천년왕국이 오기까지, 세상에 '신정'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런 것을 추구하는 주권운동/신사도운동에 결코 속지 말아야 합니다. 마귀가 다스리는 이 땅에서는 마귀가 축출되기까지 '하나님의 왕국' 따위가 있을 리 만무합니다.
그러나 신사도운동권/주권운동 사람들은 정치경제권 세력 등을 빌려 세상의 소위 '7 권역'(Seven Spheres)을 "정복"하자는 운동에 광분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왕국은 오로지 거듭난 사람들 가운데, 그들 속에만 이뤄질 뿐입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신사도/신대언자들/주권운동자들이 추구하는 그런 '하나님의 왕국'은 결코결코결코 이뤄지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크리스토의 재림 이후 천년왕국에서만 가능할 뿐입니다. 신사도/주권운동 배후에 카톨맄과 기사댠 등 온갖 비밀집단들이 도사리고 있음을 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카톨맄 교회는 참 신정도, 하나님의 왕국이 아닙니다.  
오늘날 한국교계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비롯한 교계 지도자들이 신사도운동/주권운동 등에 골고루/깊숙이 개입돼 카톨맄 등과 '일치운동' 운운하며 손잡아 가는 것은 종말현상의 하나일 뿐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 


6. 국력 강화

아사 왕의 개혁엔 국력 및 국방 강화도 포함됐습니다.
우상들을 제거하여 하나님이 평화를 주신 사이를 선용하여, 견고한 성과 요새들을 구축합니다.

아사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주/야웨님을 찾았기에 이 땅이 아직 우리 앞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런 성들을 세우고 주변에 성대와 망대와 성문과 문빗장을 만듭시다. 우리가 주/야웨님을 찾았으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사방의 평화를 주셨습니다.." (연B 14:7)


하나님이 때때로 이적으로 도와 주셔도 국방은 기본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신다고, 나라 안팎을 허술하게 내버려 둘 순 없습니다. 

다윋도 슐로모도 다들 국방을 튼튼히 했습니다. 고대의 아브라함도 평소 가내 전사들을 기르고 훈련시켰기에 5개국 연합군이 빼앗아간 조카 롵의 소유물을 되찾을 수 있었지요. 
 
왜 하나님이 도와 주시는데도 국력을 길러야 할까요?
전쟁에서 혹 하나님의 도움으로 완승해도 사람이 할 일도 있기 때문입니다. 
평소 국경선을 지키고 망을 봐야 합니다. 승리할 때도 후퇴하는 적군을 따라가야 하고, 전리품도 차지해야 하고, 잃었던 도시는 도로 되찾거나 필요한 도시를 차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국군의 존재는 기본적인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매사닠한(메이슨적인) 싸구려 격언에 맞추자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우셔도 사람이 기본적으로 할 일은 해야 한다는 겁니다.

[ 이 부분을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교계에 은근히 영적 전쟁 무용론자/회의론자들이 많은 탓입니다. 특히 절대주권론자들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절대주권'으로 우리를 다 지켜 주고 늘 돌보시니까 영적 전쟁 따위는 중요하지도 않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은근히 신자들의 눈과 귀를 막습니다. 영적 전쟁 무용론자/회의론자들 대다수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실상 이것은 마귀 앞에 무장해제나 다름 없는 소치입니다. 신사도운동자들이 그들 나름의 '영적 전쟁'을 강조한다고 해서 우리가 반사적으로 영적 전쟁은 '불필요'하고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오착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세상과 공중이 영적 전쟁이 치열한 곳이라고 우리에게 계시해 줬건만 우리는 이 싸움에 게으르기 쉽습니다. 거듭난 신자들은 분명히 마귀의 어두운 영적 세력을 대항하는 하나님의 전사들, 예수 크리스토의 투사들이며 군대입니다.
그래서 사도 파울은 공중 권세 잡은 마귀와 그 군대의 치밀하고 거창한 진세를 계시로 알려 주고, 우리도 거기 대응하기 위해 하나님의 완전무장(전신갑주=온몸갑옷)을 무기로 갖출 것과 그들을 상대로 전략적인 기도/지원(도움)기도/방언기도/합심기도 등을 하길 권한 것입니다. 모이기에 애쓰라고 했으니까 모이면 합심기도를 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까? 교회엔 전략적인 합심기도가 필요합니다. 신사도운동권 사람들은 이 전략적 영전 개념을 단지 그들 나름의 어젠다를 위해 악용하고 있을 뿐입니다. ]

아사 왕은 아울러 유다 국군을 점고해 보니 큰 방패와 창을 잡는 군대가 30만, 일찍이 이스라엘이 아닌 유다로 자진 귀속된 벤야민 지족 중 작은 방패와 활을 잡는 궁수들이 28만 등 총 약60만 대군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 아비야 당시(40만)보다는 매우 보강된 군세였지요.  

이같은 국방력을 테스트나 하려는 듯 쿠쉬 족의 제라 왕이 1백만 군대와 전마차(=병거) 300대를 몰고 쳐들어 오지만 아사 왕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역사적인 대승을 거둡니다.
[이 대(對) 쿠쉬 대전에 관해선 다음 회에 따로 다루렵니다.]
 

7. 경배 회복

대 쿠쉬 전쟁 후 아사 왕은 다빋-슐로모(초기) 대와 같은 거국적인 경배도 회복합니다.
즉 즉위 제15년 3월, 온 국민이 예루샬렘에 모인 가운데 전리품 중에서 소 700마리, 양 7,000 마리로 제사를 드립니다(여기서 '7'은 아마도 완전을 의미하는 듯).
슐로모 이후 지난 수십 년간 이런 일이 없었지요. 물론 슐로모 당대와는 비교가 안되는 규모이지만 정성에 있어서 슐로모 초기에 못지 않습니다.

이에 앞서 아사는 대언자 오덷-아자리야의 예언을 따라 하나님의 혐오대상인 온갖 작은 신상과 관련물품(paraphernalia)를 제거하고 성전 현관 앞, 주/야웨님의 제단을 새로 고쳤습니다.

또한 경배를 위해 온 국민을 소집할 때 유다 족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일부로 오래 전부터 유다 국경에 인접해 있는 벤야민 지족은 물론, 그밖에도 북 왕국 이스라엘에 속한 에프라임/메나쎄/쉬메온 지족들 일부가 나아 왔는데, 이들은 하나님 주/야웨님께서 아사 왕과 함께 하심을 보고 듣자 결심하고 유다로 돌아 온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붙여 준 사람들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찾고 삶을 바로잡을 때 하나님은 잃은 사람들까지도 붙여 주시는 이적이 일어납니다! 참 신나는 일이죠.

이들은 제사로써 하나님을 정성껏 경배할 뿐더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 선조의 하나님 주 야웨님을 찾기로 언약하고
그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죽이는 것이 마땅하다(!)며
무리가 큰 소리를 외치고 피리와 나팔을 불어 주 야웨님께 맹세했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만약 슐로모나 레호보암이 살아 있었다면 간담이 서늘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행실로 말하자면, 죽어 마땅한 사람의 하나였기 때문이죠. 물론 늙어 죽었습니다만.


개혁의 결과

개혁은 개혁 자체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대가가 있다는 말입니다. 주 하나님께 행한 좋은 일들은 반드시 대가를 받습니다.

[ 요즘 교인들 가운데는 점잖은 선비 족(?)들이 있어 하나님으로부터 상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고 큰 소리 치곤 합니다. 하나님의 복도 대가성/기복성 상품(?) 정도로 취급하면서, 치사한(?) 복이나 대가를 바라지 않기에 십일조도 하지 않는다든가, "십일조 이상"의 것을 바친다고 자임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모종의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자선사업가 같은 퍽 관대한(?) 신자들이 늘고 있지요. 그러나 사실은 신앙처럼 그럴 듯 포장된 불신일 뿐이요 착오된 형태의 기독교적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상이나 대가, 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 아무 쓸모가 없는 인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절로 주어진 복의 기회를 헌신짝처럼 차 버린 에사후는 버리고 야콥을 택하시고 사랑하셨음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반드시 그 분이 계심과 그 분께 나아오는 사람들의 보상자(rewarder)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히브리서 11:6). ]
 
그런지 안 그런지 한 번 볼까요?

당대의 대언자 아자리야는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강해 지십시오. 낙심하지 마시오. 여러분이 하는 일엔 상급(!)이 따르기 때문입니다."(연B 15:7)


오..! 끝 부분 보십니까? 우리의 믿음의 행동엔 대가가 따른다는 말입니다.
그럼 어떤 대가일까요?


   1. 첫째로 하나님은 아사와 온 백성, 나라 안에 평화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야웨 샬롬 즉 평화이신 주님이십니다. 성자님은 평화의 군주이심을 기억하시죠(이사야 9:6)? 주 야웨님을 나의 목자로 모실 때 마음 든든한 평온과 위로를 얻습니다(시편 23:4).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는 세상의 '평화', 유엔의 '평화'와는 다릅니다. 모든 외적 상황과 조건이 불안해 보여도 탄탄한 바위(!) 위에 두 발로 버티고 선 듯 든든한 마음-그것입니다. 바위 같은 주/야웨님-예수 크리스토의 진리 위에 설 때 이런 평화가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아사에게 평화를 주시자, 그 땅에 여러 해 전쟁이 없었습니다. 슐로모 당시와 같은 큰 평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슐로모'라는 이름 자체가 평화란 뜻).

나라나 개인이나 교회나, 평화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시는 평화는 조건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 분의 진리를 존중하는 한도 안에서 주어지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사 왕의 평화도 그랬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붙어있는 한 유지되던 평화도 훗날엔 깨어지고 맙니다. (다음 회에서 보게 됩니다.)

이것은 이미 대언자 아자리야가 경고했던 바입니다 .


    "..그 당시엔 드나드는 사람들에게 평화가 없어, 그 땅의 온 주민들이 혼란에 빠졌댔지요. 나라가 나라에, 도시가 도시에 침공을 당한 것은 하나님이 온갖 고초로 그들을 힘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연B 15:5,6)


평화의 비결은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느냐, 그렇지 않냐에 달려 있습니다.
 
  2. 나라가 부강해집니다. 이미 앞서 살펴 본 바입니다.

  3. 큰 전쟁에서 이깁니다. (다음 회에서 다룹니다.)

  4. 하나님이 만나 주십니다. 나라와 개인 차원에서.(연대B 15:15). 즉 하나님의
      응답이 보장됩니다.

이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요?


필자는 외래어 발음을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