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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모세오경

[창 26:23-33] 언약의 하나님 (이삭의 번영과 삶의 도전 5)


바탕본문: 창세기 26' 23-33


본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살펴 봐 온 이짜크(이삭)는 하나님이 언약하신 대로 복/형통/번영과 평화를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삶엔 어려움과 도전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그는 하나님과 그 분의 언약에 대한 신뢰로써 모두 극복합니다.

이제 본 시리즈 마지막 회로, 이짜크가

    1. 번영을 누리고
    2. 도전을 극복한

원인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맺을까 합니다.


게라르(그랄)의 펠레쉩(불레셋) 사람들에게 우물을 여러 번 빼앗겨도 계속 양보하면서 이곳저곳에 우물을 다시 파던 이짜크는 어느 덧 베에르쉐바(브엘세바)에 다다릅니다. 
훗날 왕국 시대에 (이스라엘, 특히) 유다 국토의 최남단에 위치했고, 게라르와의 국경지대에 있던 이 베에르쉐바는 아브라함-이짜크 가문 대대로, 의미가 깊고 역사적인 주요 고장이었습니다. (참고: 메시아계보대장정 시리즈 5회 '베에르쉐바')

베에르쉐바는 언약의 장소이기 때문이지요.
이름 자체가  '언약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베에르=우물, 쉐바=언약/일곱).
'7중 언약의 우물'이라고도 해석됩니다. 성경에서 완전수 '7'은 언약의 숫자이기도 하며..성령님인 보좌 앞 일곱 영의 숫자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비멜렠과의 언약 때 7마리의 새끼 암양을 주어 증거물로 삼음.  


아브라함의 생존 시절 이곳에서,

    1. 하나님과 사람 곧 주/예호바(여호와/야웨)님과 아브라함 사이..
    2.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아브라함과 게라르 왕 아비멜렠 사이에

각별한 언약이 이뤄졌기 때문이지요.
아울러 여기서는 그 전에 하나님께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준 여종/첩이었던 하가르에게 아브라함의 서자인 그녀의 아들 이슈마엘(이스마엘)에게도 복을 약속하신 언약이 체결되기도 했습니다. 이 역시 아브라함의 소생이기에 주어진 복이었습니다.


그런데 역사는 반복된다더니, 이짜크 시대에도 이곳에서..

    아브라함 때 맺어진 하나님과의 언약이 재확인되고,
    이짜크와 게라르 왕과의 언약이 체결됩니다.  

아브라함 시대의 언약이 재 확약된 셈이죠.
언약(covenant)은 맹약/약속/조약 등의 뜻을 포함합니다.


주 예호바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언제나 반드시/절대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혹 그 언약을 어긴다면, 어기는 쪽은 언제나 사람이지 하나님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지 결코 어기시는 분이 아니지요.

그 분은 신실함(에메트)의 하나님, 진리(에메트!)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대언자 예레미야는 그의 애가에서 노래합니다:

   참으로 예호바님의 사랑, 끊이지 않고,
   참으로 그 분의 온정, 다함 없어라!
   그것들은 아침마다 새로워,
   오 크셔라, 주님의 신실하심! (예렘 3' 23)


주님의 사랑과 온정은 아침마다 새롭고
주님의 신실하심과 진리는 크고 크십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참되신 것입니다(로마서 3' 4)
 
이처럼 언약과 진리는 밀접한 관계입니다. 
아울러 아가페(구약의 헤쎄드)와 늘 나란히 함께 가는 하나님의 양대 성품이기도 합니다. 


창조 때부터 하나님은 인류와 자연에게 언약을 세우셨고, 죄 짓기 전후의 아담/하와 부부와도 언약을 하십니다. 신학적으로 이른 바 '행위언약'이라고 불리는 것이지요. 훗날의 율법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세우신 언약의 하나입니다.
성경을 구약(Old Testament)/신약(New Testament)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전체가 언약서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진리인 이유도, 바로 신실한 하나님의 언약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짜크가 베에르쉐바에 당도한 바로 그 날 밤,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십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두려워 마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하마!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케 하마!"

이 얼마나 기쁨과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까!


자, 우리 한 번 상상해 봅시다.

    내가 적을 만나 쫓기고 도망하면서 아주 어렵고 급박한 상황 가운데 있을 때, 홀연히 누군가 나타나 나를 도와서 적을 물리치고 나를 살려 냅니다. 또 먹을 것도 주면서 위로까지 해 줍니다.
그래서 내가 "댁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물었더니, 그는 "나는 네 아버지와 맹약을 한 아무개란다. 네 아버지와 그 후손을 돕기로 했었지. 그러니 너와 네 아들 역시 내가 지키고 도와 줄게. 앞으로도 늘 그러마."라고 말합니다.

이 얼마나 마음 든든하고 기쁘고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하물며 우리 하나님일까요.  


그럼, 오늘날의 우리는 어떨까요? 
"흠..그런 좋은 언약이야 옛날 아브라함이나 이짜크의 일이었지, 나야 뭐.."입니까?
그렇지 않죠!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나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이입니다.
이것은 옛 이스라엘 뿐 아니라..예수 크리스토(그리스도)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아버지-자녀의 언약 관계에 들어온 우리 이방인들도 마찬가지이죠.
우리도 아브라함의 영적 후예들이니까(신약 갈라티아서 3장 참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누구나 언약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과 번영, 은총과 평화의 언약은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갈라티아 3' 8,9,14,29).
 
할렐루야, 참으로 고마우신 하나님이시지요!
그런 사역을 이루신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가 감사해야 할 분입니다. 


자, 하나님을 뵌 이짜크는 이제 베에르쉐바에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맘으로 경배를 합니다.
옛날 아버지 아브라함이 그랬듯 자신도 단을 쌓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랬듯, 이짜크 역시 하나님의 이름을 '예호바님'으로 불렀습니다.

'예호바'는 본래 "스스로 계시는 분(자존자)"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다른 존재에게 지음 받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라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최고의 존재, 가장 높으신 분(지존자)이란 뜻도 됩니다. 같은 뜻의 이름으로 엘리온(지존자)이 있지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예호바님'이라고 처음 부른 때는 아브라함보다 훨씬 오래 전인 고대에 (아담의 셋째 아들) 셑의 아들인 에노쉬(에노스) 때였습니다(창 4' 26).

바로 이 예호바님이 훗날 모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짜크의 하나님, 야콥의 하나님"으로 당신을 계시하시고 옛 언약을 상기시키십니다.
선조 아브라함/이짜크 등이 '예호바'로 부르며 경배한 그 이름으로 자신을 드러내시면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후손 대대로 지키시겠다는 뜻이었지요.

그러기에 스스로 계신 자존자/창조주 '예호바'는 깊은 언약의 이름입니다.
그 예호바님은 오늘날 우리의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그럼, 하나님이 이짜크에게 아버지 아브라함과의 옛 언약을 새롭게 상기시키신 직후 이짜크에게 어떤 일이 생길까요?아비멜렠 왕과 그 부하 등 3명의 게라르 대표단이 이짜크를 찾아와 화해를 청하고 조약을 체결하자고 합니다.
마치 그 옛날 아비멜렠이 아브라함과 조약을 체결했듯이.
 
그래서 양측은 서로 당면한 문제점을 밝혀 해소한 뒤에 화해를 합니다.
또한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서로 잔치를 벌입니다.

그런데 게라르 대표단이 찾아 온 이유가 뭘까요?
직접 그들의 입으로 들어 보죠:

    "우리는 참으로 예호바님이 그대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보았소. 그래서 말했소. '서로 맹세를 하자, 우리와 그대 사이에 조약(=언약)을 체결하자고 말이오.'"

놀랍지 않습니까?
게라르 대표단의 이 말은 과거 선왕(?) 아비멜렠 일행이 아브라함에게 한 말과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가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하시는 군요!"

이것은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늘 상기하여 믿기만 하면 우리에게도 이짜크와 같은 일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주 예호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언제나 한결 같으시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언약 가운데 머무를 때
때로는 적 같은 사람들과 화해하게도 되고, 평화를 되찾게 됩니다.
언약의 하나님이 그렇게 이끄십니다.
그래서 결국 상대방이 떨며 우리/나에게 이렇게 말하게 됩니다.

    "나는 참으로 하나님이 그대와 함께 하심을 봤습니다!"
    "댁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알았소!"

그 상대방이 신자이든 비신자이든 말입니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삶 속에서 도전을 만나 어려운 처경일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아버지, 언약의 하나님! 복의 하나님이신 주 예호바님!
나를 도우셔서 평화를 주시고 복을 내리소서!"

라고 간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진짜 적이고 영적 원수인 마귀와는 결코 화해해선 안 됩니다!
그는 화해할 상대도 성격도 아닙니다.    


이짜크를 복 주시고 번영케 하시고 온갖 도전을 이기게 하신 그 언약의 하나님은
오늘날 믿는 우리에게도 모든 언약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우리에게 삶의 도전을 이기게 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번영케 하신다는 진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모든 티엘티 독자들에게
이같은 은총과 평화가 늘 함께 하기를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