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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이제벨의 죽음과 현대적 의미(메시아계보대장정43)




이번 회엔 잠시 삼천포로 빠져, 이제벨[각주:1]을 다루렵니다. 비록 메시아와 직접 관련 없는 인물이긴 하나, 유다 왕국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한 인사이기 때문이지요.

역사 상에 요녀 이제벨처럼 자주 회자돼 온 이름도 드물 것입니다. 그만큼이나 고대의 명사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름이 좋아 보이는지, 비슷하게 딴 '이자벨', '이사벨라' 등 사실 상의 동명들도 있습니다.

'이제벨'이란 이름의 뜻은 여러가지로 추정됩니다. 끝 자 '벨'의 어원을 바알로 해석, "바알이 드높다", "바알이 높이신다", "바알을 남편으로 삼은" 등과 기타 "동거할 수 없는", "정숙한" 또는 "정숙하지 않은" 등으로 풀이되지요.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 엩바알(="바알과 함께")을 보면, 이제벨의 이름은 바알과 연계됐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의 폭군 아하브 왕의 아내로 악명을 떨친 이제벨은 본래 이웃 나라 시돈 왕가의 공주였지요. 시돈은 쪼르(튀로/푀니키아. 한글성경 표기 '두로')와 함께 나란히, 지중해 연안의 최대 항구 도시이자 최대급 도시국가였습니다. 쪼르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시돈은 상업/무역이 고도로 발달했고 이스라엘의 판관(사사)시대 한때는 이스라엘을 압제하기도 했습니다(판관기/삿 10:12).

시돈의 이름은 성경에 수많이 등장하지만 대부분 부정적으로만 묘사되다가, 예수님 당대에 이방인으로서 복음을 접하고 구원받는 사람도 나타납니다.

본래 시돈은 이스라엘의 광야시대 이후 아쉐르 지족이 점령할 대상이었는데도 아쉐르 족은 해 내질 못했습니다. 시돈 사람들은 바알과 아쉬타롵 등 우상을 섬겼고 쪼르 왕국과 함께 주신으로 섬겨온 바알 신을 이스라엘도 섬기도록 악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판관 10:6).

그러다 급기야는, 슐로모(솔로몬) 시대에 이르자 시돈과의 공식 정략 관계를 맺어 우상종교까지 공식 도입하기에 이르지요(왕들A/왕상 11:1,5, 왕들B 23:13). 하나님은 이미 고대 광야시대 때부터 이미, 우상을 섬기는 이웃나라 남녀와 연혼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바 있었지만[각주:2], 슐로모는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슐로모 왕이 성전 건축할 때 시돈 사람들이 동원돼 백향목(레바논 삼나무)을 벌목질 하기도 했습니다.

왕국 시대의 수많은 대언자들은 주/야웨님의 기름부음 아래서 이스라엘에 미친 시돈의 부정적 영향으로 인하여 시돈에 대한 부정적 예언들을 한 바 있습니다.

시돈 출신자로, 이스라엘에 직접 일대 악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이제벨 왕후였지요! 이스라엘 왕 아하브는 슐로모의 전철을 밟아, 하나님이 평소 경계하신 시돈의 군주 겸 바알 신의 사제 엩바알의 공주 이제벨을 아내로 데려 왔습니다(왕들A 16:31,32). 아하브는 그후 바알/아쉐라/아슈타롵 숭배에 있어 추종불허의 전무후무한 전력을 남겼습니다.  

이제벨은 이스라엘에 시집 오게 된 것을 아슈타롵(아쉬토롵) 숭배교를 퍼뜨리는 계기로 삼았습니다. 먼저 온갖 술수와 유혹으로 남편부터 휘잡아 한 손에 거머쥐었습니다. 아하브 왕은 요염한 이제벨에게 완전히 몸과 맘이 팔려 버렸고 지배 받았습니다. 사실 상 그는 아내의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이제벨은 섭정을 하다시피 했지요.

남편이 자신에게 완전 정복된 것을 확인한 이제벨은 다음 수순으로 아슈타롵 숭배를 거국적으로 합법화해 버립니다. 카나안에서 달로 상징된 아슈타롵은 권력에 굶주린 여신으로, 성애/여권 등과 직결돼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아슈타롵은 이제벨 자신과도 방불했으며 그녀 자신을 상징하는 존재나 다름 없었습니다.

바알/아슈타롵 신전은 성을 제공하는 종교창녀 겸 여사제들로 가득했고, 여신 숭배를 하러 온 사람들과 성행위를 벌였습니다. 이 '합법적'이고 늘 열려 있는 에로팈한 만남은 수많은 이스라엘 남성들을 꾀어 아슈타롵 숭배로 이끌었습니다. 결국 국민 1천만명 이상이 교도가 됐고 여기 반대하고 항거한 사람들은 모조리 척살 당했습니다.

이제벨은 이즈레엘 최고의 포도 농장주인 나봍의 포도밭을 탐내는 남편을 도와, 경건한 나봍을 암살할 음모를 꾸미는 데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을 정도로 잔혹하고 무서운 여성이었습니다[각주:3].

주/야웨님을 숭배를 강조하던 대언자들도 대부분 이제벨의 명령으로 살해됐고 바알과 아슈타롵 앞에 무릎 꾾지 않고 숨은 국민은 7천명에 불과했습니다[각주:4].
하나님의 감동으로 바알-아슈타롵 사제 850명을 카르멜산 정상에서 거짓 대언자로 입증하고 키드론 시냇가에 끌고가 전멸시킨 용감한 엘리야도 한 때는 이제벨의 칼날이 두려워 피신을 했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하브의 멸망을 예고하며 재등장하게 됩니다.

아하브의 22년간 집정기는 어쩌면 주/야웨님이 참된 의인들인 '남은 무리', '그루터기'를 고르시고 빼어 내시기 위한 과정 같은 것이었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아하브-이제벨 부부의 이런 가증한 모습을 그냥 두실 리 없었습니다. 먼저 엘리야를 통하여 아하브 왕가의 비참한 말로를 예언하십니다. 그 분이 예정하신 마감일이 차자, 아하브의 집안을 씨 하나 남기지 않고 전멸시켜 버리십니다.
물론 아하브의 아들인 아하지야와 그 아들 예호람까지 왕권이 잠깐 지속되지만 왕손이 아닌 장군 출신의 예후에게 왕위를 뺏겨 버립니다. 아하브 왕의 전사 후에도 아하지야와 예호람의 통치기간 중 태후 이제벨이 배후에서 조종했을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새로 왕이 된 예후는 이제 이제벨이 사는 이즈레엘로 전마차를 몰아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이제벨은  남쪽 유다 왕국에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살펴 온 대로, 유다의 경건하고 걸출한 군주의 하나인 예호샤팥은 어쩐 영문인지 사악하기 그지없는 아하브-이제벨의 딸, 아탈리아를 며느리로 삼습니다. 이것은 유다 왕국의 큰 저주거리가 됩니다. 아탈리아는 이제벨을 빼다 박은 듯 엄마와 똑 같이 행동합니다.

엄연히 주/야웨님을 섬기던 경건한 왕 예호샤팥의 아들이건만, 예호람은 아탈리아와 결혼한 뒤 아내의 사주를 받아 사악한 왕으로 돌변합니다.
예호람도 그 아들 아하지야도 모두 죽자, 아탈리아는 돌연 남은 왕손을 (숨겨진 요아쉬 왕자를 제외하고는) 깡그리 없애 버리고 스스로 여왕이 되는 살인마 군주가 됩니다. 가히 '이제벨의 영'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아무튼..예호람과 함께 유다 왕 아하지야까지 처단한 이스라엘 왕 예후는 전마차에 탄 채 이즈레엘의 별궁에 거주하고 있는 이제벨에게로 다가 왔습니다. 이제벨은 예후가 다가 온다는 정보를 듣자, 한가롭게 눈화장과 머리 치장까지 하고 창밖으로 예후를 내다 보며 말했습니다.

    "주인(예호람)을 죽인 그대 지므리. 샬롬인가요?"

여기서 '지므리'라면, 북 이스라엘의 제4대 왕 엘라에게 반역하여, 7일 동안 왕위에 있었다가 (아하브의 아버지인) 오므리 장군에게 옛 수도 티르자가 함락되자 왕궁에 스스로 불을 지르고 자결한 장군을 가리킵니다(왕들A 16:8-20. 시리즈 참조).

이제벨이 예후를 지므리로 비유한 것은 벌어진 상황도 비슷하지만, "네가 왕이 돼 봤자 며칠 못 간다"는 비소적 암시가 내포돼 있습니다.

예후는 그 말엔 대답을 않고 "내 편이 될 사람 누구냐?"고 소리쳐 묻습니다. 그러자 두어 명의 내시가 창밖을 내다 봤습니다.

     "그녀를 내려 던져라!"

그들이 누군데, 이미 사실 상 대권을 잡은 예후의 명을 감히 거절할 수 있겠나요? 올 것이 마침내 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악 소리를 치며 발악하는 태후 이제벨을 내시들이 꽉 잡고 높은 창문 밖으로 내 던지자, 땅에 떨어지면서 충격으로 즉사했고 몸에서 터져 나온 피가 담벽과 말에까지 튀었습니다. 예후는 전마차에서 내려 그 시체를 발로 밟았습니다. 

예후는 새로 된 왕 답게 궁 안에 들어가 먹고 마신 뒤, "이 저주 받은 여자를 돌아 보고 묻어 줘라. (그래도)  왕의 딸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들은 부하들이 바깥에 나가 보니 놀랍게도 이제벨의 시신은 두골과 발과 손바닥 밖엔 남은 부분이 없었습니다. 개들이 와서 죄다 뜯어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엘리야를 통해 예언하신 그대로였지요.
그래서 예후도 그 예언을 상기합니다.   


지난 22년간 왕 아하브와 함께, 또 후손인 차기 왕들의 배후에서 권세를 휘둘러 온 요녀 이제벨의 최후는 이랬습니다. 주/야웨님의 모든 대언자들을 쳐 죽이고 엘리야의 목숨까지 위협할 정도로 서슬이 시퍼렇던 요녀가 죽은 뒤엔 한낱 개들의 먹이 밖에 되지 못했습니다. 앞서 전사한 남편 아하브의 피도 개들이 핥았던 것과 일맥상통 하지요.

하나님은 특히 악인의 최후에 관하여 예언 그대로 남김 없이 이루십니다.
그 분의 마지막 심판도 말씀에 예언된 대로 실행됩니다.


신약시대의 '이제벨'

예수 크리스토님께서는 요한계시록 2:20 이하에서 이제벨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교회를 경고하십니다. 특히 당대의 튀아티라 교회에 해당하는 경고였지요.

    "그러나 내가 네게(튀아티라 교회) 책망할 게 있다. '여예언자'라고 자칭하는 여자 이제벨을 너는 관용하는구나. 그녀가 내 종들을 가르치고 꾀어 음행하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식물을 먹게 하고 있다."

여기서 주님이 말씀하신 '이제벨'은 신약 당대의 실제 인물일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즉 구약 이제벨을 상기시키는 상징적/영적인 실존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성도 곁들어집니다. 이것은 그 다음 구절에서 입증됩니다.

    "나는 그녀에게 그녀의 음행을 회개할 기회를 주었건만, 그녀가 회개하려고 하지를 않는구나." (21절)

하나님은 긍휼이 크셔서 누구에게나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심지어 수많은 성도를 유혹하여 영적 음행을 저지르게 한 당대의 이제벨에게도 주님은 그런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주신 기회에 호응하고 선한 기회로 활용하느냐 하는 것은 본인에게 달린 문제이겠지요.

옛 이제벨은 아버지 엩바알처럼, 자신도 바알/아슈타롵 신들의 여예언자 역할을 했다고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 당대의 이제벨 또한 고대 미디안의 예언자 발람처럼 경건한 사람들까지 꾀어 영적 간음을 저지르게 하고 우상 예물까지 먹게 하는 파워를 발휘하고 있습니다.

신약시대 초기의 튀아티라 교회처럼 현대교회에도 숨어 있는 이 '이제벨'은 우선 제어(controlling)와 조종(manipulation)에 의해 남녀 신자들을 다룹니다. 또한 경건한 사람들까지도 거짓 교훈을 가르치고 꾀어 영적인 음행을 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옛 이제벨이 남편을 한 손에 쥐고 꼭두각시처럼 거머쥔 채 온 나라 권력까지 제멋대로 휘두르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바알/아슈타롵 종교로써 범국가적 차원에서 음행을 하게 하던 그녀였습니다.

영적 음행이란, 대체로 진리에서 벗어난 비진리, 거짓 영성을 가리킵니다.

현대 교회에는 소위 소피아(지혜)라는 여신적 존재로부터 온갖 비성경적인 영성과 뉴에이지 영성까지 다양한 음란한 영적 신들이 침범/범람해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대다수의 신자들이 이런 현실과 현상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데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보라, 내가 그녀를 병상에다 내던질 테다! 또 그녀와 함께 음행을 한 사람들도 만약 그녀 같은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질 테다! 또 내가 그녀의 자녀들을 죽음으로 멸절시키련다."

주님은 회개하지 않는 튀아티라의 '이제벨'을 다시는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할 불치의 병으로 보응하시겠다고 저주하십니다. 아울러 이 이제벨과 우상종교의 음행에 동참한 무리는 대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여기서 '그녀의 자녀들'이란 그녀의 가르침을 좇아 그대로 행하는 제자 같은 무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건 용서 없고 가차없는 죽음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의 이 말씀을 막연하게 2000년 전의 옛 튀아티라 교회에만 해당하는 머나먼 교훈으로 듣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현대교회엔 그런 이제벨이 침투해 들어오거나 교회 안에 존재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않지요.

사실 생각해 보면, 현대교회엔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종류의 이상영성이 침투해 있습니다. 한국교회에만도 얼마나 다양한 비성경적 외래영성들이 팽배해 있습니까? 한 번 볼까요?

    관상기도
    미로명상(labyrinth)
    '목적' 영성
    에니아그램
    (늦은비) '신사도'영성
    '떠오름'(이머징) 영성
    친 카톨맄운동
    뉴에이지 영성

이런 영성들이 성경에서 비롯됐다고요?! 진리라고요?! 그런 성경적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데도 과연 현대교회가 튀아티라 교회보다 더 했으면 더 했지 더 나을 게 있을까요?
우리는 현대의 이제벨을 경계해야 합니다.

주님은 계속 말씀하십니다.

    "..모든 교회들은 내가 생각들과 마음들을 살펴보는 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그대들의 행위대로 각 사람에게 갚아 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이런 가르침을 받지 않고 싸탄의 소위 깊은 비밀들을 배우지 않은, 튀아티라에 있는 나머지 그대들에게 말한다: 나는 그대들에게 달리 지울 짐이 없다. 다만 그대들이 지닌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들고 있어라."

여기서 주님이 뜻하시는 몇 가지는 극명합니다.

    첫째로, 주님은 외모나 표면을 보시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 보신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이벤트에서 우리가 느끼듯 사람들은 표면과 명성만을 보고 그칩니다. 그 이상은 생각할 여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흔히 목회경력이 모든 걸 입증해 준다"는 말을 듣습니다. 과연 목회경력이 모든 걸 말해 줄까요? 그렇지 않지요. 제 아무리 목회경력이 훌륭해도 목회 외(外) 경력이 다른 것을 말해 주지 않나요?

가령 복음과 비성경적인 관상 경력이 나란히 함께 갈 수 있습니까..거짓 복음이 아닌 이상?  

주님은 각 교회와 각 사람의 내면과 속 생각을 보십니다. 외면이나 명성을 전혀 눈여겨 보시지 않습니다!

    둘째로, 심판주이신 주님은 우리의 행위 대로-선행은 상급으로, 악행은 보응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이제벨의 가르침과 싸탄의 비밀을 동격으로 여기십니다.
즉 교회를 어지럽히고 더럽히는 온갖 혼탁한 영성은 싸탄으로부터 온다는 뜻입니다.
성령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면, 그 유래와 바탕은 자명합니다! 이 점을 우리는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로, 이제벨의 가르침과 싸탄의 비밀에 물들지 않고 진리만을 굳게 붙들고 지키는 사람들에겐 주님께서 대환난을 면케 해 주실 뿐더러 그 짐을 가볍게 - 즉 영적인 자유를 최대한 누리며 살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에 도사린 이제벨을 조심하고 극력 경계합시다.


필자는 외래어는 되도록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자는 생각입니다. 
이 점, 독자의 이해를 바랍니다.  



 

  1. 한글성경 표기: '이세벨'. 기타 예제벨, 이사벨, 이사벨라. [본문으로]
  2. 미쯔라임출국기(=출애굽기) 34:15,16. 신명기 7:1-4. [본문으로]
  3. (왕들A 21:1-16 참조) [본문으로]
  4. 왕들A 18:4,13,22, 19:10,18.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