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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이 날이 그 날이 아닌데도 (캪튼)


화씨 100도를 넘는 열기 속에서 사람들은 약간 시원한 생각을 한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문득문득 이 때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다 겨울이 점점 다가오면 이것을 으레 기대한다.
꿈처럼, 그리움처럼 기대치가 높다.
몇 달 앞서부터 기대하고 고대하다가 다가오면 실천한다.
겨우내 간직하기도 한다.

삭막한(?) 눈과 얼음의 세계에 색칠하길 즐긴다.
흩뿌리는 눈발, 하얗게 눈 덮인 지붕과 나무들, 산봉우리들을 생각하게 된다. 
해마다 그래왔는데도, 어김 없이 또 그런다.
그러다 보니, 어릴 때의 즐거운 추억으로 오래 간직하기도 했다.


썰매와 벨.
집 둘레에 알록달록 반짝이는 다양한 색깔의 등불들.
여러 그루의 상록수에 걸쳐진 반짝이는 종이/틴 장식들, 방울방울이 크고 호동그란 금은빛 유리방울들.
대문 앞에 내걸린 푸른 나무가지 화환과 빨강 리본. 

하얀 눈 위에 비쳐 이 모든 광경이 어둠의 배경과 절묘하게 어울어진다.
사람마다 무드/분위기를 탄다. 자신들이 켜 놓은 불빛을 바라보거나 들여다 보며 감탄사를 발한다.
물론 그들의 자유이고, 취향이겠다.
그러나 이건 종교적 임무도 아닌 관습이고 전통이며, 막대한 비용이 들기도 한다.  

신/구 교인들은 '크리스마스 데커레이션'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유대계의 '하누카'(빛의 날), 아프리칸계의 '콴자'가 엇비슷한 날짜로 겹쳐 이들 종교인 나름의 장식들도 한다. 종교마다 존중해 준다며 장식들을 대강 '짬뽕'하기도 한다. 요즘은 한 가지 색빛으로 통일하거나 요요로운 뉴에이지성 분위기의 색깔을 즐기기도 한다.
집 안에도 역시 온갖 장식물이 주렁주렁 걸쳐져 늘어진 크리스마스추리와 벽난로 주변의 큰 빨강 버선/양말들. 한 구석에 쌓여 땔감이 되길 기다리는 율 로그(겨울장작). 추리 아래 화려한 포장지로 싸여 리본으로 마무리된 선물 상자들.

파노라마 같은 다이오라마를 집 안팎에 설치해 꾸며 놓기도 한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요셒, 목자와 동방박사들, 천사들과 동물들, 큰 별 작은 별, 싼타클로스와 난쟁이 등등.
그 뿐인가. 눈으로 보는 것으로 부족하니까, 입으로 부르고 귀로 듣기도 한다.
화려하고 요란한 캐럴을 켜 놓거나 부르기도 한다. '성탄절 찬송가'들도 있지만, '실버벨', '화이트 크리스마스' 등 귀에 익은 세속 캐럴들도 있다. 

세상과 교회가 한데 어울어지는 타임이기도 하다.
세상은 대목철로, 둥근 상록수 가지로부터 거대한 추리의 별까지 온통 장식물과 선물로 막대한 수입을 벌어 들인다. 여유 있는 사람들이 모여 흥겹게 선물과 음식과 술, 춤과 섹스까지로 내달리는, 질탕하고 거나한 '막 가기' 파티도 흔하다. 
회사는 회사대로, 직원들은 그들대로 바쁘다. 여유 있는 회사는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챙겨 주기도 한다.

요즘은 소위 '교회/국가 분리' 원칙에 따라 공공 장소의 크리스마스 전통과 장식들을 없애자고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사회 곳곳에서 배제 운동을 펼치는 무신론자들도 있다. 종교 상징물과 이미지들을 강조함은 '위헌'이라며, 막대한 돈을 들여 제소하고, 교계는 막대한 돈으로 변호팀을 사서 항소하기도 한다. 급기야 연방 대법원까지 오르락내리락 한다.  


이 철이면, 교회는 교회대로, 성당은 성당대로 바쁘다.
추수감사절의 연장선상에서 몇 주동안 '어드벤트'(대강절/강림절/대림절)를 지내며 강단 주위에 색깔 양초를 바꿔 켜고 매 주 해당 스토리의 성구를 찾아 읽기도 하고, 몇 주 전부터 '성탄절' 당일까지 특별 경배, 탄생 스토리를 중심한 '성극'/촌극 공연, 지난 몇 달 내내 준비해 온 칸타타/오리토리오, 캐럴합창 등의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
이웃 비신자들을 불러 들이는 이웃 초청 잔치를 벌이는가 하면, 빈민들에게 구호품을 나눠 주며 자선을 베풀기도 한다.


여기까지는 그들 나름의 자유이겠다.

그런데..이들은 한결 같이 섣달 스무 닷새째인 이 날을 그 날이라며, "오늘 나신 아기 예수~"라고 입 모아 고백하고 노래한다. 섣달 스무 닷새라는 숫자가 잠정적으로 '예수탄신일'로 통일돼 있다.

사실은 이 날이 그 날이 아닌데 말이다. 스스로들 속으며 막연히 진리로 여기고 믿는다. 
이 날이 그 날이라는 주장은 실상 분명히 비진리이고 거짓이다. 그럼에도 신자들은 "아유, 그걸 뭐, 그리 날짜를 따져 가며 그럴 필요가 있는감. 좋은 게 좋은 거지 뭐."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엄연한 카톨맄교 전통을 성경 진리처럼 표준으로 따라 준다.

카톨맄교는 이 때면 반드시 동정녀 마리아의 품에 꼭 안겨 있거나 젖을 빠는 '아기 예수'를 해마다 강조한다. 고대 제국들의 신화마다 있는 '아기를 안은 여신'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남의 아기나 자신들은 매년 0살 아기로 머물지 않고 해마다 점점 자라남을 축하하건만..그래서 생일 파티 때마다 케잌 위의 작은 장식 촛불 수도 해마다 늘려 주건만, 아기 예수는 그렇지 않다. 언제나 '0살'로 되돌아간다. 이젠 2000살(?)인 셈이니 아기 예수가 퍽 자랄 만도 하겠건만, 매년 '아기 예수'로 되돌아간다. 마치 예수님이 늘 귀엽고 사랑스런 아기로 영영 머물어 주길 바라기라도 하는 양.

계절이 바뀌면, 어느새 그 '아기 예수'가 교회의식과 행사 속에서 수난하기도 하고, 부활하기도 한다. 그러다 다시 추운 계절이 돌아올라치면, 감쪽 같이 '아기 예수'로 도로 바뀐다.              
그렇게 해서 매년 쳇바퀴 돌 듯 순환고리로 엮어 전통과 의식을 꼬박꼬박 지킨다.


사도 파울은 오래 전 이런 말을 했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을 모르던 그 무렵엔, 본디 신이 아닌 것들에게 노예 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가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은 약하고 가치 없는 저급한 가르침으로 되돌아가, 그런 것들에게 온통 또 다시 노예 노릇을 하려고 듭니까? 여러분은 날들과 달들과 계절들과 해들을 삼가 지킵니다. 내가 여러분을 위해 애쓴 보람도 없이 헛될까 두렵습니다." (갈라티아서 4'8-11 사역)


소위 '성탄절', '부활절' 등은 위에 전혀 해당되지 않을까?
글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