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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메시아계보 대 장정

최후의 개혁왕 요시야 (메시아계보대장정 65)



바탕본문: 왕들A(열왕기하) 22장; 연대기B(역대하) 34장


이제, 남 유다 왕국은 머지 않은 패망/종국을 내다보며, 더욱 메시아 시대로 다가가게 됩니다. 

악했다가 말년에 회개한 왕 메나쉐, 역시 악했다가 단 2년만에 암살된 아몬 왕 등..57년이 지난 뒤, 유다엔 정의롭고 어진 임금이 다시 나타납니다. 제15 (또는 16)대 요시야 왕입니다.
그러나..서글프게도 그는 선한 군주로서는 남 유다 왕국 최후의 존재입니다. 그의 죽음 후 유다 왕국의 멸망 때까지 20여년 남짓 남은 기간 중 이젠 더 착한 사람이 나오지 않으니까요.
요시야 자신의 통치기간은 31년.

요시야는 마치 우상 박멸을 위해 준비됐다가 태어난 사람 같습니다. 유다뿐 아니라 약 80년전에 이미 패망한 이스라엘까지, 남/북 전역을 직접 찾아 다니며 그처럼 철저히 우상을 제거하고 타파한 군주는 일찍이 남/북 왕국 사상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역시 그 때뿐..요시야의 아들 등 후손들은 또 다시 우상숭배 군주가 됩니다.

요시야는 불과 8세에 즉위합니다. 이 어린이의 마음 속에 일찍이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7세의 나이로 등극했던 그의 선조인 제7대 (또는 8대) 왕 요아쉬(요아스)를 연상시킵니다. [ 둘 다 선왕이고, 서로 이름도 비슷하니 혼동하지 말 것 ]   

요시야 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하고 건실하여, 선조 다빋의 길로만 온전히 걷되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고 왕들B서, 연대기B-두 기자가 공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생/성장 배경

어떻게 이 어린이가 악한 선조들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고 이처럼 곱고 귀하게 자랄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출생/양육 배경과 내력을 상세히 말하지 않지만,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합니다.

아버지 아몬은 과거 왕세자 시절이던 16세 때에 아들 요시야를 얻었습니다. 한창 혈기방장하던 청소년기에 '예디다'라는 소녀를 만나 임신하게 한 것이지요.
과연 소년 왕자 아몬이 예디다와 최소 15세 때 정식 혼례를 치른 어린 부부로서 요시아를 뱄는지, 아니면 아버지(메나쉐)와 왕가 몰래 율법을 어기고 '불장난' 같은 연애를 하다 덜컥 임신을 하고나자 뒤늦게 결혼했는지..성경이 밝히지 않았으니 모르는 일입니다.
물론, 부왕 메나쉐가 멀리 바벨론에 잡혀 가 있을 동안 왕자가 방황하면서 소녀에게서 위로를 찾으려 했을 수도 있고, 또는 메나쉐가 중년기 이후 늦깎이로 얻은 왕세자를 통해 속히 손자를 보려 했는지도 모르지요.

예디다는 라키쉬에서 가까운 '보즈캍'이란 성읍 출신인 아다야의 딸이었습니다. 그의 이름과 출신지가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을 보아, 요시야의 외할아버지인 아다야는 경건한 사람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아다야 부부가, 아직 철 없고 어린 아몬-예디다 커플 대신 요시야를 거의 대신 맡다시피 길렀을 가능성이 없지 않습니다. 젊은 우상숭배자였던 아몬 왕이 아들을 제대로 길렀을 리가 없기 때문이죠.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아다야는 그 옛날 아기 왕자 요아쉬를 구해다 성전에서 비밀리에 기른 외삼촌 예호야다 부부와 같은 역할을 한 셈입니다. [본 시리즈 제44 회 참조]
그러던 차, 아몬이 즉위 2년만에 암살되는 등 정국이 어지러운 틈에, 더구나 어린 요시야를 보호하며 아버지에 이어 곧 바로 등극하기까지 잘 양육했을 것입니다. 안 그래도 아몬 왕 암살자들은 이내 국민들에게 잡혀 처단됩니다.
새 왕의 즉위 전에 모든 불안을 줄이고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요시야는, 연대기B서에 따르면, 아직 십대 청소년기인 즉위 제8년(나이 16세)에 선조 다빋의 하나님 예호바님을 갈구하기 시작합니다. 성령님이 그런 마음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아몬이 일찍부터 성을 "밝혀" 아기부터 얻었을 나이에, 요시야는 하나님을 우러르기 시작했으니 퍽 대조적인 삶입니다. 사람이 어떤 십대를 사느냐가 훗날 인생에 크게 작용합니다. 다빋 역시도 목동 시절인 어릴 적부터 하나님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러나 요시야가 하나님 앞에 철저히 회개한 본격적인 '거듭남'은 그보다 10년 후, 토라(율법서)를 만났을 때입니다.


요시야의 첫 개혁

[ 요시야 왕의 개혁 업적에 관해, 왕들B서와 연대기B서 기자는 서로 사뭇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연대기 기자는 요시야가 즉위 제12년(20세)에 이미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해 유다/예루샬렘/이스라엘 등에서 거국적인 우상 제거및 정화를 시작했고, 제18년엔 성전 보수공사에 들어갔다가 율법서를 발견한 데 이어, 회개운동과 영적 개혁에도 힘쓰기 시작한 것으로 썼다.
반면 왕들B서엔, 요시야가 이렇다 할 정책을 펼치지 않다가 제18년에야 성전 보수공사에 이어 율법서를 발견해 강한 자극을 받아, 그때부터 대대적인 전국 개혁/정화를 시작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것은 얼핏 모순된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두 기자 모두 제18년을 강조하고 있으며, 지난 50여년이란 긴 세월에 걸쳐 자행돼 온 우상숭배에 대한 개혁이 단번에 시작돼 단번에 끝났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수차에 걸쳐 진행됐을 터이므로, 양쪽 기자에게 다 일리가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래서 두 권서 내용을 그냥 연대순에 따라 잇대어 가며 다루련다. ]

남 유다 역사를 보면, 왕이 바뀌면서 우상을 세우다/허물다의 '무한반복' 내지 순환고리처럼 보입니다. 의로운 왕 히즈키야가 허물어버린 산당과 우상을 메나쉐가 다시 세웠다가 회개한 후 다시 부순 것을 아들 아몬은 다시 섬겼는데, 요시야는 다시 허물고, 그 후손은 다시 일으키고..  

연대기에 따르면, 요시야는 즉위 제12년에 유다/예루샬렘과 앞서 패망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황폐 지역까지 우상을 제거하며 정화했습니다.
왕과 백성이 뜻을 모아 함께 정화한 당시의 개혁정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당 허물기
    아쉐라 목상(나무신상)들, 새긴 석상들, 주조한 금속신상들 제거
    바알 제단을 부숨. 단 위의 태양상들 제거.
    목상/석상/금속신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숭배자들의 무덤에 뿌림
    이교 사제들의 뼈를 단 위에 불사름 
    북왕국 메나쉐/에프라임/쉬메온/낲탈리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우상 박멸.

이 대대적인 우상타파가 그 해에 다 끝났는지, 아니면 그 해에 시작해서 성전보수공사 무렵까지 최소한 6년간 지속됐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50여년간의 우상숭배 흔적이 단 1년만에 사라지기란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더라도, 몇 개년 계획이었을 법 합니다. 한국만 해도 일제의 잔재가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수 십 년이 걸렸듯.


성전 보수 공사

요시야의 획기적인 업적은 뭐니뭐니 해도 성전 보수 공사. 이 점에서도 과거의 요아쉬 왕과 비슷합니다. 또한 늘 하나님의 처소를 그리며 흠모하던 옛 선조 다빋 왕과도 같은 마음입니다.

즉위 제18년. 요시야 왕은 여태 나라 사면에 개혁의 눈길을 돌리다 보니, 자신이 섬겨 온 하나님이신 주 예호바님의 전인 예루샬렘 슐로모 성전에도 눈길이 갔습니다. 성전 곳곳이 허물어지고 금이 가고 오래 내팽개쳐지다시피 한 데 대해 가슴이 아파왔습니다. 

아마도 요시야는 궁중 서기관을 통해 나름대로 과거사를 연구하면서 자신과 거의 같은 어린 나이에 등극하여 비교적 의로운 길을 걸은 7대 왕 요아쉬의 생애와 업적에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살펴봤을지도 모릅니다.
또 사실 우상들의 '광팬'이었던 악한 선대 왕들이 실제로 성전을 더럽히고 곳곳을 허물기도 했습니다(참고: 연대B 34'11).
  
그래서 요아쉬처럼 대대적인 성전 개보수와 정화에 착수하기로 큰 맘을 먹고, 과거의 관례법대로(왕들B 12장, 연대B 24'6) 백성이 바친 은돈(성전보수관리세)을 경비로 써서 진행하도록 지시를 내립니다.

왕은 왕실의 샤판 수석서기를 불러 성전의 힐키야 대사제에게 보내며 특명을 내립니다. 더불어, 마아세야 예루샬렘 시장, 요아 부서기관도 딸려 보냅니다.

    "그대는 힐키야 대사제에게 올라가오. 그에게 전 문지기들이 백성에게서 수납해 성전에 들인 은돈을 세어, 성전 건물관리 감독관들에게 맡겨서 성전 사역자들에게 건네어 전의 허물린 부분들을 고치게 하오. 목공/석공들과 미장이들에게 은돈을 주고 목재와 켜낸 석재를 사들여 전을 수리하게 하라고 말이오."

관리들로부터 왕명을 받잡은 힐키야 대사제는 사제/서기관들과 함께 그동안 성전보수관리비로 성전 레빝 문지기가 받아서 안 골방의 수납함에 저축해 둔 엄청난 양의 은돈을 궤에서 덜어내며 셈 하기 시작합니다.

성전건물 보수만을 위한 이 특별재정은 유다 국민들과 예루샬렘 시민들, 벤야민 지족, 메나쉐/에프라임 등 북 왕국 이스라엘의 잔류 거민들로부터 수금해 온 돈입니다. 이 관행은 고대 광야시대 때 성막 건립을 위해 백성들이 바친 헌물(미쯔라임출국=출애굽기 제35장 참조), 슐로모 성전건립 이후 바치던 돈, 헤롣 왕 때 바친 성전세와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리고 산정된 은돈을 성전사역자들인 레빝 지족 사람들에게 맡겨 성전 보수공사를 지시합니다.

당시 레빝 성전관리 감독관들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메라리 계: 야핱/오바디야
    케핱 계: 제카리야/메슐람

여기서 '계'(系)란, 고대 레빝 지족 선조들의 이름 대로 각 계열별 후손들이 대대로 날짜별 성전사역을 맡아 했기 때문입니다(출 6'16-19; 연대A 6'16-19;32절 이하).  

이들을 도와 일꾼들의 일을 감독한 레빝 사람들 가운데는 성전 제사음악 사역자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일꾼들이 성전 대들보 보수에 필요한 석재와 이음매(연접) 용 목재 등을 등짐 지고 나르는 일, 목공/석공 일 등을 지시하고 도왔습니다. 아울러 성전 서기/관리/문지기 역할도 겸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전이 모처럼 제 모습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여 헌신합니다. 또 일꾼들과 사역자들이 다들 정직하고 건실하여, 재정 지출을 검산하지 않아도 사제/관리들이 염려를 놓을 정도였습니다. 주 예호바님을 바로 섬기는 열정에 모두 한 맘이었던 것이죠. 


율법 두루마리 발견

요시야 왕의 즉위 제18년은 그의 통치사에 굵은 획이 그어지던 해였습니다. 성전 보수공사에 착수하려던 참에 고대 모쉐의 율법서(토라) 두루마리가 발견되어, 이를 계기로 왕과 나라가 크게 변화되던, 이를테면 "거듭난" 해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26세였던 젊은 왕과 나라가 함께 제대로 영적으로 성숙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사제들과 함께 성전 안에서 은돈을 계수하려고 했던 힐키야 대사제는 문득 바로 은돈이 보관됐던 그곳에서 양피지(羊皮紙) 두루마리를 발견하고 깜짝 놀랍니다. 떨리고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살펴 보니, 그것은 놀랍게도 모쉐 시대에 기록됐던 고대의 토라 곧 하나님의 율법책이었습니다!

힐키야는 이 중대 사실을 즉각 왕께 알리려고 샤판 서기를 불러 두루마리를 건네며 말했습니다.

     "제가 성전 안에서 이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샤판은 이 고대의 두루마리를 삼가 정중히 받아 들고, 요시야 왕께 전하려고 궁으로 떠납니다.

샤판은 먼저 왕께 보고를 올립니다.

     "왕께서 종들에게 분부하신 대로 모두들 잘 진행하고 있습니다. 성전 안에서 발견된 은돈을 쏟아 붓고 세어서 감독관들에게 맡겼고, 또 일꾼들에게 넘겼습니다."

그리고 샤판은 두루마리를 왕에게 바치며 말합니다.

      "사제 힐키야가 책 하나를 제게 건네 주었습니다."

두루마리를 유심히 살피며 심상치 않게 여긴 요시야는 서기관인 샤판의 업무이기도 한 서찰 낭독을 시켰습니다. 샤판이 낭랑한 목소리로 두루마리를 읊조리며 읽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샤판이 한 낱말, 한 문장씩 읽어 내려가자, 왕의 표정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 "아~" 하고 조용히 감탄사를 연발하거나 깊은 한숨을 쉬며 진지하고 심각하게 경청하던 그는 이내 혈색이 어두워지더니, 마침내는 두려움과 슬픔, 아픔으로 창백하게 일그러지고, 식은 땀과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에 온 몸이 부르르 떨려 옵니다.갑자기 왕은 보좌에서 벌떡 일어나, 입고 있던 왕복을 두 손으로 와락 잡아 당겨, 좌악~ 두 조각으로 찢어 버리더니 큰 소리로 통곡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옛 말씀이 온갖 복의 예언은 물론, 무서운 책망과 저주와 심판의 경고와 함께, 그의 전 존재에 커다란 파도처럼 거세게 부딪쳐 왔습니다. 살아계신 예호바님께 대한 두려움이 실감 나고 사무치게 가슴 깊이 엄습해 온 것입니다. 난생 처음 겪는 일대 충격이었지요.

그렇게 한참을 흐느끼던 잠시 후,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정돈한 왕은..과연 자기가 나라를 다스리는 이 시대에 발견된 이 율법서 내용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다는 강력한 갈구가 솟구쳤습니다. 이 역시 성령님이 제때 주신 감동이었지요.


대언의 메시지

그래서 왕은 대표단을 하나님의 사람인 대언자에게 파견하여 주님께 여쭈려고, 힐키야 대사제, 아히캄, 압돈(또는 앜볼), 샤판, 아사야 등 주요인사들 5명을 특별 선임하여 부탁을 합니다. 

    "자, 다들 가셔서 나를 위하여, 또한 이스라엘의 남은 무리와 유다 백성을 위하여 예호바님께 여쭈어 주시오. 금번 발견된 책의 말씀에 관해서 말이오. 우리 선조가 예호바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이 책에 적힌 대로 할 바를 다 하지 않아서, 우리에게 쏟아부어진 예호바님의 진노가 크기 때문이오!"

당대의 대언자들 가운데 예레미야, 제파니야(딴 표기: 스바냐) 등이 있었지만, 또 다른 한 명은 여성인 훌다였습니다. 훌다는 예전(禮典) 의상 담당 관원인 하스라의 손자이자 토캍의 아들인 샬룸의 아내로, 예루샬렘 제2관구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왕의 대표단의 문의를 받은 훌다는 다짜고짜 성령의 영감으로 거침 없이 대언을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예호바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제게 여러분을 보내신 그 분께 아뢰시오. '예호바의 말이다: 보라, 내가 이곳에, 그리고 이곳 주민들에게 재앙을 내릴 것이고, 유다 왕 앞에서 읽힌 그 책에 쓰여진 모든 저주라도 내릴 테다. 그들이 나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그들의 모든 수작(또는 수공품 곧 우상)들로 나를 격앙시킨 탓이다. 그래서 나의 진노가 이곳에 퍼부어져, 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호바에게 물으려고 너희를 보낸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가서 말해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예호바의 말이다. 네가 들은 그 말씀들을 인하여 네 마음이 연해져, 하나님 앞에 네 자신을 낮추었다. 이 곳에 대하여, 또한 그 주민들에 대하여 한 말들을 네가 듣고, 내 앞에서 스스로 겸허해져 옷을 찢고 내 앞에서 통곡하기에, 나 또한 네 소리를 들었단다.
보라, 내가 너를 네 조상들에게로 돌아가 평안히 그들의 묘실에 들어가게 할 테다. 또 내가 이곳과 그 주민들에게 내릴 모든 재앙을 네 눈으로는 보지 않게 할 것이다.'"
 
대표단은 가슴 서늘해지면서 일편으로 안도감을 주는 이 대언을 마음에 담아 왕에게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이 훌다를 통해 주신 이 메시지를 몇 가지로 간추려 보면..

    - 심판과 저주는 율법의 경고/예언 말씀 그대로 성취됨.
    - 원인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숭배로써 진노를 불러 일으킨 탓임.
    - 단, 현 유다 왕 요시야의 겸손과 회개는 상달(上達)돼 그 대가가 평화로써 반영될 것임..

등입니다.


거국적인 회개와 언약

대표단의 보고를 들은 요시야 왕은 즉시 온 유다 곳곳에 파말마를 보내어 유다와 예루샬렘의 원로들을 호출합니다. 그리고 왕이 몸소 이들을 이끌고 앞장서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참으로 오랜만의 경건한 행보입니다.

급보를 전해 들은 유다 백성과 사제들, 레비 지족, 온 예루샬렘의 남녀노소 시민들도 다 함께 성전 뜰에 모여 듭니다. 왕은 앞서 성전에서 발견된 그 율법서를 큰 소리로 낭독합니다.

그리고나서 왕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하나님 앞에 새로 언약을 굳게 세웁니다. 예호바 하나님을 따라 걷되, 온 심령으로, 또 온 마음으로 그 분의 계명과 증언 말씀과 규칙을 지키고 율법서에 적힌 언약말씀들을 실천하기로.

백성들도 예루샬렘은 물론 주변의 벤야민 지경까지 눈에 띄는 사람들에겐 모조리 이 언약 말씀 앞에 엄숙히 서도록, 동참하게 했습니다. 왕은 또 이스라엘 사람들을 망쳐 버린 모든 혐오물들을 제거하도록 했고, 모두들 뜻을 같이하여 한평생 이스라엘 하나님만 섬기도록 명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요시야 통치기가 끝나기까지 수 십년간, 온 남/북 백성이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선조의 하나님 예호바님을 잘 섬겼습니다.

이렇게 우상제거와 나라개혁, 성전보수, 회개와 율법준수 언약 체결 등 혁신적인 과업을 단행해온 요시야는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기 위해 마음 속으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바로 유월절 지키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