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본문: 왕들B서(열왕기하) 20'12 이하. 연대기B(역대하) 32'24-33, 예샤야후(이사야) 39장
남 유다 왕국 역대 군주들 중 가장 착하고 훌륭한 임금이었던 히스기야(히즈키야/헤제키야. 영어식: '헤즈카이어')도 역시 인간이었습니다. 그도 말년에 범죄하여 나라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니까요. 그러나 정작 징벌은 당대가 아닌 후대에 옵니다. 이 범죄는 유다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기를 가져 오게 되는 주요인입니다.
유다엔 통일왕국 시대의 다빋을 본받은 선한 왕들이 퍽 많았지만, 하나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다 방심하여 범죄한 뒤 징계를 받는 패턴을 보였습니다. 한결같이 그랬습니다. 히스기야 왕도 예외가 아닌 데서 우리는 근성이 죄악스러운 인간에 대한 비애를 맛보며..메시아와 성령님에 의한 거듭남이 아닌 율법이 인간 존재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진실을 통렬히 느낍니다.
왜 히스기야가 범죄했고, 범죄한 내용이 뭔지를 살펴 보기로 합니다.
히스기야는 외부의 유혹을 받아, 자신과 나라의 속을 까뒤집어 보였습니다. 유혹이란..멀리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별도 박스 참조)이 넌지시 '추파'와 손짓을 해온 것이지요. 히스기야가 중병이 들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문안/위로의 편지와 예물을 대표단을 통해 보내온 것입니다. 이전에 양국은, 아씨리아를 공동의 적으로 삼는 모종의 친교 관계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히스기야는 대국의 왕이 이런 예우와 친절을 표해 준 데 대해 크게 감격한 모양입니다. 우리는 친절과 웃음, 아부로 포장한 마귀/싸탄의 근접 방식을 삼가 조심해야 합니다. 히스기야의 신병 소식은 히스기야 자신이 외교 차원에서 바벨론에 알렸는지 아니면 소문으로 절로 알려진 것인지, 또한 병상에 누웠다는 소식만 듣고 병의 치유 소식은 들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유다 내정에 대한 바벨론의 관심 때문임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연대기서엔 '베로닼발라단', 이사야서에는 '메로닼발라단'(한글성경: '므로닥발라단')이라고 적혀 있다. 본토어로는 '마르둨-아플라-이띠나(2세)'였다. "마르둨 신이 내게 상속자를 주셨다"라는 뜻이다. 마르둨은 고대 바벨론의 창건자인 '님로드'(창세기 10'8-12, 11'1-9 참조)를 신격화한 존재다.
주전 721-710년경 바벨론 왕으로서 다스렸고, 그후 703년의 9개월간 재임하기도 했다. 당시 군사적 우위였던 아씨리아 아래서도 10여년간 바벨론의 독립을 유지한 용감한 왕들의 하나였다.
그는 본래, 페르시아만 연안 및 유프라테 강 입구의 칼데아 족 왕국, 늪 지대인 비트-이아킨 출신으로 한동안 고향을 다스렸다. 후에 그는 바벨론 왕 에리바-마르둨의 합법적인 후계자로 자임했고, 아버지의 이름 '발라단'을 따 자기 이름에 붙였다.
그가 아씨리아 치세 때 무난히 바벨론 세력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칼데아 비트-아무카니 출신인 우킨제르가 당대의 친 아씨리아계 왕인 나부나딘-제르에게 도전했을 때, 작전 상 아씨리아의 티글랕필레세르 3세의 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티글랕필레세르와 샬만에세르5세는 729-722년에 아씨리아는 물론 바벨론 왕국의 통치자도 겸했다.
부조 사진: 바벨론 왕 메로닥발라단(왼쪽)
그러던 722년, 아씨리아의 샬만에세르가 죽고 사르곤 2세가 승계하는 과정의 와중에, 메로닼발라단이 엘람인들의 도움을 받아 바벨론으로 들어가 왕권을 선언한 뒤 칼데아 왕국을 강화했다. 그러나 사르곤은 720년에 대(對) 메로닼발라단 전쟁을 준비해 티그리스 강 동쪽의 데르 평원에서 대전했고, 아울러 아람(시리아)/유다 등 친 바벨론 계 연합세력을 적극 견제했다. 차기 왕인 산헤립 역시 그랬다.
메로닼발라단이 지배한 이래 710년경엔 그의 소홀과 경제 착취로, 과거에 충실했던 바벨론 본토 도시인들의 반감을 불러 일으켜. 710년 전쟁 때 대신 아씨리아의 사르곤2세를 대대적으로 환영한 계기가 됐다. 다만 남부의 칼데아/바벨론 주민들만은 여전히 그에게 충성을 표했다.
전쟁에 패배한 메로닼발라단은 비트-이아킨으로 도망가 재기를 노리다가, 705년 사르곤2세가 죽자 정국이 혼란해진 틈을 타 703년 돌아와, 엘람/바벨론에 있는 모든 아람인들에게 아씨리아에 반기를 들게 하여 재차 바벨론 왕으로 등극했다. 그즈음 유다의 히스기야도 그의 편이었다.
그러나 9개월 후인 같은 해, 키쉬 전쟁에서 메로닥발라단이 산헤립의 군대에 패배해 남부의 신상들을 갖고 엘람으로 도주해, 비트이아킨과 남부 최단지역을 다스리다가 700년 재차 그와 맞싸움을 벌인 산헤립에게 다시 패해, 페르시아 만 남부 엘람 경계선에서 694년 최후를 맞는다. 그의 아들 나부쉬미쉬쿤도 체포됐고, 이에 따라 그의 직계 후손이 아닌 벨-이브니가 산헤립의 선임을 받아 그의 뒤를 잇는다. 그러나 벨-이브니도 엘람-바벨론 연합세력을 형성, 아씨리아를 적대하자, 산헤립은 이를 평정하고 자기 아들 아슈르-나딘-슈미를 대신 바벨론 왕으로 앉힌다.
고고학 발견에 따르면, 메로닼발라단의 이름은 산헤립의 6각비(프리즘)와 코르사받 궁전에서 발견된 사르곤 연감 등에 언급돼 있다. 그와 칼데아/바벨론 사람들은 아씨리아 왕들의 강적이었다.
탈무드/미드라쉬 등에 기록된 전설에 가까운 랍비들의 글모음인 '아까다' 문서에 따르면, 태양신 숭배자였던 메로닼발라단은 히스기야가 중병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될 당시 해그림자가 물러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우위성을 인정하고 히스기야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히스기야에게 평화를! 히스기야의 하나님에게 평화, 예루샬렘에도 평화를!"
그랬다가 신에게 먼저 인사하도록 순서를 바꿔야 함을 알고 대표단에게 순서를 바꾸도록 지시를 내리자, 신으로부터 그 보상으로 이런 말이 들렸단다: "네가 내 이름을 높이려고 3단계를 밟았구나. 나도 너를 높여 (네 후손인) [네부칻네자르, 에빌-메로닼, 벨샤자르] 3대에 걸쳐 세상을 땅끝부터 땅끝까지 다스리게 해 주겠다." 물론 성경적인 근거는 없다.
아무튼 메로닼발라단은 사르곤-산헤립 왕대에 그들을 위협한 초 강적이었음은 분명하다.
히스기야는 바벨론 대표단의 말을 "듣고", 그 일행에게 자신과 나라의 모든 보물/귀중품/무기/특산품을 몽땅 공개했습니다. 여기 "들었다"는 말로 보아, 바벨론 대표단이 히스기야에게 온갖 아부의 말을 하면서 넌지시 유다의 자랑거리들을 보여 달라고 주문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연대기 기자는 바벨론 왕 브로닥발라단이 히스기야와 유다 왕국에 일어난 기적들이 어떠했는지 대표단을 통해 물어 봤다고 했습니다.
왕은 바벨론 대표단의 감언이설에 너무도 기분이 좋아, 왕실의 보물고 속의 은과 금, 향료/향유, 군기고의 모든 무기들, 창고 등에 보관된 모든 물품들, 각 지방에서 특선하여 왕실에 바친 온 나라의 진상품들까지 낱낱이 보여 주었습니다. 선조인 역대 왕들이 모아 둔 보물과 전리품들도 보여 주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으니, 한 마디로 자기 간이며 쓸개며, 자기 창자 속을 미래의 원수에게 다 드러낸 셈입니다.
더욱이 그렇게 하기 전, 하나님이나 대언자 이사야(예샤야후)에게 전혀 물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혼자 판단해서 스스로 한 것입니다. 참으로 현왕답지 않게 어리숙한 행동, 미련한 처신이었지요. 아무리 외교가 좋다고 한들, 이렇게까지 과잉친절을 베풀고 쇼오프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결국 자신을 팔아 상대의 탐욕을 자아내고 침 흘리게 한 행위였습니다. 마귀는 자신의 작전이 성공한 줄로 알고 박장대소했을 터입니다.
히스기야가 이렇게까지 경솔/경박하게 한 것은 상대방의 선심에 가히 황홀해질 정도로 마음이 무르고 해이해진 탓입니다. 그는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죽음을 앞둔 중환자였다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이적적인 치유를 받았음에도, 깨어 삼가고 근신하지 못했습니다.
마귀는 성도의 이런 틈을 노립니다. 우리는 마귀의 포장된 '선심'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또 병이 낫고 난 이후 마음이 사뭇 교만해져 있었습니다(연대B 32'25 참조). 안 그래도 아씨리아의 패배로 주변 나라에 그의 명성이 두루 퍼져 간 데다 마치 죽음에서 실제로 부활한 듯 생명까지 연장되고 나자, 그에 대한 찬사가 그칠 줄 몰랐습니다.
또 하나님의 복으로 그의 부와 영예가 극에 달하여, 은금보석과 값진 향료들, 방패들, 식기들과 그것들을 쌓아둘 국고를 세웠고, 곡식과 포도주, 기름 등을 위한 창고, 가축들을 위한 우릿간, 우양을 위한 성 등을 건립하고, 상수도 시설을 대거 건설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대표단이 왔을 때,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마음 속 깊은 곳을 떠 보시려고 그에게 아무 경고도 없이 잠시 떠나 계셨습니다. 이 때도 왕은 하나님을 기억해야 했는데, 싸탄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라고 신호탄을 올린 뒤, 작전 실행에 돌입한 것입니다.
결국 왕은 하나님을 잊었거나 무시해 버린 것입니다.
아무튼, 예호바님이 여태까지 돌봐 주신 은덕을 새카맣게 잊고 하나님을 무시한 왕의 방만하고 무심한 배신 행위에 주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래서 대언자 이사야를 보내셔서 자초지종을 따져 물으시고, 미래에 다가올 결과와 징벌을 알립니다. 경고 차원이 아니라 이미 결정난 심판의 통고였습니다.
먼저 대언자와 왕 사이에 심문처럼 질의응답이 오갑니다: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했고 어디서 왕께로 왔습니까?"
"그들은 멀리 바벨론에서 제게로 왔습니다."
"그들이 왕궁에서 무엇을 봤습니까?"
"그들은 내 궁안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보았습니다. 나의 보물치고 보여 주지 않은 게 없습니다."
이윽고 이사야는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왕께서는 만군의 예호바님의 말씀을 들으소서: '보라! 그 날들이 올 테니, 네 집의 온갖 것들과 네 조상들이 여태 쌓아둔 것들이 다 바벨론으로 옮겨지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예호바님의 말씀입니다. '또 네게서 태어날 너의 후손들 가운데 더러는 포로로 잡혀 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될 것이다'."
가슴 서늘해지는 무서운 심판이지요. 히스기야가 바벨론 대표단에게 낱낱이 보여준 모든 것들을 다 빼앗기게 됐고, 후손들 일부가 내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환관/내시의 원어 '사리스'(복수: '사리심')는 본래 중동 국가들의 왕가/하렘(후궁) 등 왕실의 내사를 돌보려고 거세된 남성 관리를 뜻합니다. 곧 유다 왕손 일부는 대를 잇지 못하게 된다는 암시입니다.
바꿔 말하면, 유다의 멸망과 70년 바벨론 포로기의 불행이 주로 히스기야 왕의 배신의 결과인 셈이지요! 히스기야가 깊은 생각 없이 저지른 행동이 이런 끔찍한 결과를 자초한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대표단에게 보물을 공개하기 전, 이사야를 통해 미리 하나님께 한 마디 여쭙기만 했어도, 하다 못해 그럴 생각만 했더라도 역사적 결과는 사뭇 달라졌을 터입니다.
이 엄청난 통보를 받은 왕이 대답합니다:
"그대가 일러 준 예호바님의 말씀은 선하오."
그리고 왕은 덧붙여 말합니다. 이 말은 따로 적혀 있어 혼잣말일 수도 있습니다만.
"나의 (남은) 날동안 평화와 진리가 있다면야 어찌 그렇지 않겠소?"
히스기야의 이 말을 반영이라도 하듯 그 자신은 별 탈 없이 여생을 보낸 듯 하지만, 그의 아들인 차기 왕 메나쎄는 아버지와 정반대로 악한 임금이 되어 나라를 다시 혼란 정국에 빠뜨리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이 덤으로 주신 길고도 짧은 15년을 누리면서 이런 중범죄를 자행한 것은 퍽 유감된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자신들에게 있을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신자는 하나님 앞에 늘 마음을 추스려 그 분의 뜻을 거스리지 않게 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일이든 중대사를 앞두고는, 꼭 그 분께 여쭈어 성령님의 지로를 받는 것이 슬기롭고 큰 범죄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영언(방언)기도는 편리하고 긴요한 도구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받은 소중한 덤의 삶은 그의 범죄로 인해 생명연장만 했을 뿐, 별 의미 없는 바보 같은 삶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시작보다 마무리가 잘 돼야 함을 특히 유다 역대 왕들에게서 절감하게 되지요. 명사의 생애가 아무리 업적으로 화려하게 빛나도, 끝이 좋지 않으면 그 빛이 반감되고 맙니다.
구약시대 이후 메시아로 오시는 예수님은 비록 왕통으로는 연약한 히스기야의 후손이지만, 선조와는 달리 지상생활을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철저히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심으로써 왕들의 왕, 주들의 주님이 되십니다!
여생 15년이 차고 히스기야가 죽고 나자, 백성들은 그에게 각별한 경의를 표하여 왕의 묘실 가운데서도 높은 곳에 매장했습니다. 이로써 남 유다 최고의 선왕 히스기야의 시대도 종말을 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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