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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영언(방언)론

칼뱅의 불편한 진실-방언

 

 

-칼뱅도 방언을 했었다!

 

 

'개혁주의자' 내지 칼뱅주의자들에게 묻고픈 것들

 

개혁주의를 표방한답시고 장 칼뱅(Jean Calvin)을 절절히 따르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교계에서 가장 건전하고 옳다고 자임하곤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 외려 칼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기가 쉽다. 
[참고로, 필자도 칼뱅주의권에 속한 사람이다. 그러나 (소위)'개혁주의자'나 칼뱅주의자이기보다, 칼뱅의 신학보다 성경을 더 높이는, 아니 성경을 신학을 비롯한 우리 삶의 유일한 근거라고 믿는 성경주의자에 더 가깝다.]

한 가지 묻는다면, 칼뱅주의가 곧 개혁주의이고, 개혁주의는 곧 칼뱅주의인가? 만약 그렇다면, 칼뱅을 뺀 나머지 당대의 숱한 개혁가들은 개혁 또는 개혁주의 노선에서 제외되는가? 왜 칼뱅주의자들, 특히 장로교 학자들은 개혁주의권에서 다른 개혁가나 다른 신교 교파 사람들을 되도록 배제하려고 할까? 전체 개혁은 칼뱅과 그의 동료들만 한 것인가? 칼뱅이 모든 개혁을 통일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천국은 칼뱅주의자들만을 위한 것인지?

독자가 만일 칼뱅주의자라면, 그리고 칼뱅이 개혁주의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칼뱅을 "안다"면, 그를 얼마나 제대로 아는가? 칼뱅의 '기독교강요'를 얼마나 읽었는가? 중이 불경 외는 만큼이라도 '기독교강요'를 구구절절 외워낼 수 있는가? 칼뱅의 기독교강요가 원래 라틴어로 된 것이니, 성경을 원어로 읽듯, 라틴어로 원독할 수 있는가? 할 수 있다면, 얼마나 해 내는가?

한 가지 더 묻는다. 칼뱅을 개혁가 내지 개혁신학자라면서, 천주교 교회박사요, 그들의 성인이요,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그들이 자랑하는 대표적 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의 고스란히 배워 닮은 칼뱅의 신학이 왜 구태여 개혁주의 신학인가? 그런 점에서라면, 혹시 근(近) 카톨릭 신학(Quasi-Catholic) 또는 신 천주교 신학(Neo-Catholic theology)라고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칼뱅의 불편한 진실들

 

그보다도, 독자는 칼뱅의 '불편한 진실'들을 얼마나 아는가? 칼뱅이 주네브에서, 교인과 크리스천들, 심지어 어린이를 비롯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는 데 배후에서 일조한 사실은 아는가? 과연 칼뱅이 미구엘 세르베토(라틴어 세르베투스)를 옛 로마와 천주교의 관행처럼 화형에 처했어야 했는가? 마땅히? 이마저도 천주교를 닮지 않았는지? 

아니라면, 칼뱅이 워낙 위대한 개혁가이니만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조차도 칼뱅에겐 적용되지 않는가? 칼뱅이 세르베토 화형에 대해 일말의 회개조차 한 흔적이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가? 칼뱅은 우리와 같은 신약인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는 구약의 왕들처럼 신권주의적(theocratic) 권한을 가지고 화형의 횃불을 휘둘렀던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당초부터 법조인이었다. 

이런데도 칼뱅주의자들은 칼뱅이 세르베토를 사실상 죽인 사실에 대해 "그것이 아니다"며 딴 소리, 흰 소리들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정의(?)의 이름으로 이단아들을 마구 죽여도 되는가? 같은 신약인인 칼뱅은 남을 죽여도 됐었고, 우리는 같은 신약인인데도 안 된다는 건가? 그건 무슨 잣대인가..칼뱅주의 잣대?

나도 칼뱅이 개혁의 참여자요, 훌륭한 개혁가의 일원이요, 젊은 나이에 '기독교강요'를 쓸 만큼 당대에 희귀한 문재였던 줄은 안다. 그러나 그가 나의 우상은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장단점이 있다. 필자도 그렇다. 그렇다면 칼뱅의 장점만 논할 게 아니라, 중대시되는 그의 문제점들도 진솔하게 성경 진리 안에서 논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개혁주의자 내지 칼뱅주의자들은 그것을 겁내는지(?) 꺼리며, 그저 기존 논조 위에서 반박할 궁리만 한다. 그 점에서 진솔하지 못하다. 칼뱅주의 기초가 무너질까 봐 전전긍긍하는 셈인가? 칼뱅은 성경을 그의 신학의 근저로 삼았으나, 현대 칼뱅주의자들 다수는 성경 아닌 칼뱅주의 신학을 모든 것의 근거로 삼는 듯한 느낌은 나만의 것인가?

남의 허물을 덮어주라고 했지만, 비진리까지 무조건 덮는 것이 곧 진리는 아니다. 남에 대해서는 피를 내기까지 치열하게 공격하면서 아류에 대해선 함구하는 약삭빠르고도 미련한 사람들도 많다. 
성경은, 앞서 간 가장 위대한 신앙인의 한 분이었던 다뷔드(다윗)의 거대한 문제점들을 꼭꼭 덮고 숨겨준 게 아니라, 낱낱이 폭로해 놓고 있다! 그를 공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다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 때문에 하나님께 쓰임받았다는 사실을 만고에 알기기 위해서였다.  

칼뱅도 영언(靈言)을 했다

 

각설하고, 이 글은 칼뱅의 또 다른 불편한 진실 하나를 공개하기 위해 쓴다. 그가 생시에 영언을 했던 사실이다. [영언*(靈言; '방언'. 영언 곧 spiritual language라는 용어는 필자가 한글 및 한자로 coin해 낸 말이다. 우리나라 선교초기의 성경번역어인 '방언'이라는 용언은 본디 지방어, 사투리 내지 토속어 등의 뜻으로 쓰이는 지상언어 어족을 가리키는 말로, 선교사 등이 기존어로 적당히 번역해 낸 잘못된 첫 단추였다. 신약에서 말하는 성령의 영적/초자연적인 언어는 지상언어가 결코 아니다!]에 관해 말해 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칼뱅은 생시에 일시나마 영언을 했던 사람이다. 물론 그는 이 영언 사실을 숨겼고, 전혀 활용하려곤 하지 않았다. 그 점에서도 그는 불행한 사람이었다. 

켄터키주 애즈베리 신대원의 신약학교수인 벤 위더링턴 박사(Dr. Ben Witherington)는 대다수의 성서신학자들이 알아줄 정도로 저명한 성경학자다. 위더링턴은, 다름 아닌 빌리 그래엄의 언론이자 최대급 웹매거진의 하나인 '크리스채너티 투데이(CT)' 종이판 2009년 9월호에다 이 극비의 사실을 발견한, 놀라운 경험을 소개했다. 

먼저 우리는 감리교 석학인 위더링턴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그의 말을 옮겨 보자. 

"좐 캘빈(=칼뱅)은 실로 위대한 주석가의 한 사람이자 사실상 모든 시대에 걸쳐 탁월했던 조직신학자들 가운데 한 분이었다. 비록 그가 하나님과 그 분의 주권, 은혜의 본성, 선택과 예정, 인간 자유 등에 관하여 주장한 내용 다량에 내가 동의하진 않더라도 말이다."

칼뱅도 영언을 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발견할 당시, 위더링턴은 고든-칸월 신대원에 다닐 때였다. 위더링턴은 복음주의 감리교인이었어도, 고든 칸월은 개혁주의 전통을 유지하는 학교이다. 그는 학교 도서관에서 칼뱅의 글은 물론, 칼뱅의 동역자이자 벗이었던 테오도르 베자, 촬스 하지와 A. A. 하지, 벤저민 워필드, G. C. 버카워, 루이스 벌코프, 코닐리어스 밴틸 기타 수많은 다양한 칼뱅주의자들의 책을 읽었다. 

위더링턴은 박사과정을 할 당시인 영국 더햄 대학교에서 칼뱅 주해서를 중심으로 T.H.L. 파커 교수의 강의도 한 클래스 열청했다. 그는 신중한 주석과 일관된 신학체계에 있어 칼뱅이 드높은 잣대를 설정해 놨다는 결론과 함께, 왜 자신이 칼뱅주의자가 아닌지를 발견했고, 칼뱅을 열심히 연구한 결과로 더욱 아르미니우스주의를 확신케 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칼뱅주의는 결국 (토마스 아퀴나스 등과 함께 천주교의 교회박사이자 천주교 신학의 대부 격인)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신학의 재탕이라는 걸 발견했다. 

위더링턴이 보기에, 그 점에서 칼뱅 신학은 딱히 프로테스탄트적인 신학화라고 할 만한 형태가 "전혀" 아니었다. 

 

아무튼 칼뱅은 성경신학은 단지 모든 시의적절한 자료를 갖고 치밀하고 독해적으로 가하는 주석 위에서 구축돼야 한다는 점에서 모범을 보였기에 존중받아야 한다고 그는 평가하고, 자신도 경력 가운데서 그 점을 애써 본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위더링턴은 여러 해 전, 아내와 함께 주네브(제네바)를 방문했다. 거기서 개혁가의 기념물들을 봤고, 칼뱅의 강론 의자에 앉아보기까지 했단다. 칼뱅주의자는 아니지만, 같은 신교도로서 루터는 물론 칼뱅에게도 신세진 바가 많고 존/촬스 웨슬리 형제에게도 그러하단다. 또 자신의 신학을 날카롭게 다듬게 돼서 정말 진정으로 고맙다고도 한다. 위더링턴은 기독교강요를 깊이 연구하면서 특히 놀란 점은 칼뱅의 성령론이 생각 밖에 심오하다는 점이었다. 

위더링턴은 고든-칸월에 다닐 당시, 1975년 3월 24일자로 된 학보에서 퀜트 워포드라는 학생의 글을 읽었다. '칼뱅이 영언을 말하다'라는 글이었다. 내용을 간추려 본다. 


칼뱅의 절친이자 도우미였던 테오도르 베자의 칼뱅 전기인 De Vitam Iohannes Cauvin에 의하면, 칼뱅이 영언을 했던 사실을 명기하고 있다. 칼뱅이 죽기 얼마 전 베자에게 직접 밝힌 사실이다. 어느 날 아침 칼뱅이 자다 깨어났을 때, 자신이 모르는 언어(lingua barbaria)로 말하고 있었단다. 
칼뱅은 자신만의 경건시간 동안, "나도 모르는, 이해 못할 언어(lingua non nota et cognota mihi)"를 말하고 있었음을 발견한 바 있다. 자신이 심오한 언어학자인 그는 이 점이 놀라워서 이 언변을 철자로 표기해 보려 노력했다. 그러나 추적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자신이 신임하는 베자에게 그 언어가 특성상 히브리어였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야만어'(lingua barbarorum)로 말하고 있었다고 두려워했다. 카나안 족의 언어 같은 저주받은 방언을 말하고 있다고 두려워 했던 모양이다. 

칼뱅 자신보다도 더 문제인 사람들


이것은 칼뱅이 언어학적/해석학적 지식은 고도로 발달했겠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칼뱅이 조우한 영언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의 영언 상황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오늘날 우리가 알지 못할 언어를 중얼거리듯, 칼뱅도 그랬던 것이다.  

문제는, 칼뱅 자신보다도 '칼뱅주의자'라면서 자신이 성령으로 영언을 시작했던 사실 자체를 굳이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있다. 그런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한다. 그들의 공통된 발언은 "나도 한 때 방언을 했더랬지만, 지금은 아니예요. (난 건전한 개혁주의자죠?)"란 식이다. 오래 전, 티엘티의 한 애독자도 그랬다가, 자신의 카페를 만들어 나갔다. 
그들이 간과하는 점은 그들이 시작했던 그 영언은 죽기까지 엄연히 남아있어서, 원하는 때는 언제든지 다시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도 한때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는 식의 영언체험 부정론 내지 영언거부론은 이 말세에 강력한 영적 무기인 영언을 성도로부터 빼앗아가고, 자신도 영언을 시작해 보려는 성도들의 의지마저 꺾으려는 이 시대를 위한, 마귀의 고도의 효과적이고 간특한 술책이다! 우리가 과연 하나님의 선물을 그렇게 대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거듭났다는 사람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까지 그 고귀한 선물을 괄시하고, 하대하고 있을 정도로 세상은 급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지금은 모든 은사와 영언, 신유 등이 "중지"됐다고 주장하는 개혁주의 내지 칼뱅주의 종식론자들(cessationists)은 칼뱅이 영언을 했다는 사실을 우선 당장 부정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모든 영언이 다 귀신의 것이라고 주장해온 일부 인사들은 칼뱅조차도 그럼 한 때 귀신의 영언을 말했다고 선뜻 하기는 곤란할 것이다. 

그들은 칼뱅이 한 영언은 진짜 순수 영언이었다고 인정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칼뱅의 말 그대로 야만적인, 저주 받은 언어라고 볼 것인가(그들이 그토록 존중하는 칼뱅이 한 그 언변이?)? 그래서 죽기 전에 깨끗이 부정한 것이라고 볼 텐가?
아니면 베자가 별 생각 없이 그냥 옮겨 쓴 것일 뿐, 가치 없는 지난 날의 회오에 불과한가?

개혁주의 종식론자, 또는 칼뱅주의자로선 참으로 난감할 노릇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맺는 말

 

끝으로, 전에도 몇 번 말했던 한 가지 실화를 다시 한 번 말하려고 한다. 
어릴 적 나의 모교회 역대 담임목사 한 분의 내외가 모두 영적인 면에 밝았다. 그가 목회하던 시절, 수많은 교우들이 모여 영언을 하고 있어, 나의 눈길을 끌었다. 나는 그런 장면이 매우 생소했다. 내 어머니의 절친이기도 했던 그 목회자의 부인은 수시로 날 위해 안수기도를 하면서 영언기도와 그 통변(해석)을 했는데, 난 아무 거부감이 없었고, 병이 곧장 낫곤 했다. 
그러나 영언 자체에 관해서는 나도, 그들도 그 교회의 누구도 따로 묻지를 않은 것으로 기억된다. 어린 나와 무관한 것으로 생각했던 거 같다. 훗날 이 점이 나는 참으로 후회가 됐다. 나도 좀 묻고 적극 관심을 보였더라면 훨씬 일찍 영언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맘에서다. 
그후 그 목사는 한국 최대 보수교단의 총회장이 되었다. 

또 미국의 어느 대형교회 목사는 모 개혁신학교 교장으로서 본래 영언을 몰랐거나 의심했던 분이었지만, 어느 미국인 강사를 초청한 연합집회 도중 강사가 묵고 있던 호텔에 찾아갔다가 방바닥에 구르면서 영언을 시작했다. 내가 아는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한 때 또는 지금까지 영언을 하는, 영언자들이다. 사실 '한 때'라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게 한 번 영언을 시작하면, 크리스토를 부인하지 않는 이상 영구적으로 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나도 방언을 했었어요. 지금은 아니지만..."(??)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으로 마치는 사람 치고 불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없다. 회개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성령의 사람이 아닌, 성령을 훼방하는 사람들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