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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역사서

[스 1:1-11] 하나님 나라 회복 운동에 동참하자! (김동열)


김동열의 날마다 묵상하며

에스라1장 1절-11절 말씀


말씀 앞에 설 때마다 은혜와 교훈에 대한 큰 기대에 들뜨게 된다.
어떤 부분을 고치시고 다듬어 세워 주실까.
때로는 약함과 연약함을 건드려 다치지나 않을까 조심조심 다가오시는가 하면,
죄악과 교만에 대해서는, 수술실의 의사처럼
예리하게 냉엄한 말씀의 칼을 대신다.

때로는 가슴 떨리게 하신다.
이해할 수 없이 무조건적으로 사랑해 주시는 주님의 품이 따뜻하기만 하다.
묵상하는 성경의 권서가 바뀔 때마다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시는 하나님은
오늘도 끊임없이 새롭게 다가오신다.

이번엔, 느헤미야서와 나란히, 쌍둥이처럼 동시대의 역사를 다룬
에스라서를 다루려고 한다.
마치 4복음서가 네쌍둥이처럼 서로 조화와 완전을 이루며 복음의 핵심인
예수님을 전하듯, 느헤미야와 에스라는 함께 맞물려 구약의 대미를 장식한다.

다윗 왕조가 망하고 성전이 무너자자 선민의 역사는 송두리째 끝이
나는가 싶었다.
게다가 70 여년의 바벨론 포로생활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회복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완전히 빼앗기에 충분했다.
사실 모든 것이 끝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누구도 이해 할 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기이한 방법으로
당신의 구속사를 끊임없이 이어가신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약속을 성취하시는 자신의 신실하심을
밝히 드러내신다.
역사를 주도적으로 장악하시고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 자신이심을
만천하에 공포하신다.

에스라는 "여호와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스1:1)
라는 선언으로 긴 이야기(시간적으로 100여년에 걸친)를 시작한다.
여기 "감동시킨다"는 번역된 히브리어는 원래 "잠자는 사람을 깨운다"는
뜻의 말이다.
이방사람 고레스를 깨우셔서 일을 시작하신다.
이번에는 모세도 아니요 다윗도 아니다.
왜 하필 이방사람일까?

우리는 종종 착각한다.
내가 믿음이 좋아서 내가 충성스럽기에 우리 교회가 이만큼 되었다고 말하기를 좋아한다.
목회자, 평신도를 막론하고다.
내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식이다.
마치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요한삼서의 디오드레베 같다.

하나님께서는 아예 이방사람을 사용하신다.
고레스를 통해 하나님을 고백하게 하고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는 명을 내리게 하신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온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하신다.

이방사람 고레스를 감동하신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깨우신다.
70년간이나 예배를 잊어버리고 고향 예루살렘과 성전을 잊고
잠들어 버린 그들을 흔들어 깨우신다.
소망을 부어 주시고 자신을 바라보게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이민 3년이면 어느새 고국을 잊어버리고
이 나라에 남고 싶어들 한단다.

문화적으로 이곳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고국에 가기보다 이곳에서 눌러사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당시 가장 문명이 발달했던 바벨론의 편리함과 문화의 혜택을 버리고
폐허로 변해버린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은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으리라.
그 곳은 당장 집도 없고 일자리도 없다.
게다가 성전 공사와 성벽 재건 공사의
막 노동만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깨우지 아니하시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감당할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 내가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은 주님의 역사요 은혜이다.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우리 교회를 재건해가시며,
우리의 심령을 흔들어 깨우신다.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일어나니...."(
스1:5).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백성들이 일어나 예루살렘을 향해 힘차게 행군한다.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부푼 꿈을 가지고 동참한다.

주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주의 전을 건축하러 올라가는 이 행렬에
나는 동참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