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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의 연구묵상/캪튼's 코너

한인 목회자들의 불감증

주일날이면, 한인 목회자들의 설교 강단에서 으레 한 두 번씩은 꼭 헨리 나웬(관상영성가, 카톨맄 예수회 사제, 동성애자, 뉴에이저) 같은 문제 명사들을 인용하곤 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한인 목회자들은 마치 나웬 등의 "위대한" 명사들을 그저 좀 더 소개하지 못해 안달복달인(?) 양-흡사 교우들에게 이 명사들의 명언과 체험을 들려 주려고 초조하게 주일 설교시간만을 기다리면서 오매불망이라도 하는 듯 합니다. 그들의 메시지는 성경 진리 보다는 명사 소개, 명사 인용에 초점이 맞춰지는 듯 느껴지는 것은 저뿐인가요?


바로 지난 주일날 저녁에도 짧은 여행을 하던 중, 라디오 방송에서 N모 장로교회의 젊은 목회자가 시인 칼릴 지브란의 '거울 속 왕'의 우화를 인용한 데 이어, 나웬의 라르슈 공동체 체험을 마치 변화 받은 훌륭한 선교목회인 양 자랑스럽게 예화로 담아내는 것을 들었습니다.

매끄러운 말 솜씨에다..참 크리스천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를 둘씩이나 자연스럽게, 단순한 예화 수준이 아닌 거의 절정과 결론으로 삼아 '설교'하더군요. 저만 그런지 몰라도 유감스럽게 그 '메시지'에서 제 머리 속에 남은 건 그 뿐입니다. 본문이 뭔지, 주된 내용이 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 설교자는 "하버드 대학교 교수였던 나웬이라는 사람"이라고 짐짓 '객관적'으로 말하면서 모르는 교인들이 들으면 마치 명문대 교수였던 나웬이 마치 어떤 정상적인 신교 목회자로 들리게끔, 제대로 누군지조차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는 적어도 일년에 최소 10회 이상은 나웬을 인용하는 수많은 한인 목회자 가운데 한 명일 듯 싶습니다.

그래서 교인들은 자연히 나웬이라는 이름만 나오면, "아, 또 그 훌륭한 분 얘기를 하시는구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돼 갑니다. 차라리 교우들이 잘 모른 채로 "울 목사님..또 나웬인지 너웬인지 타령이시네"라고 한다면 더 나을 터입니다. 


설교자여, 목회자여. 설교에 인용할 대상이 그렇게도 없으며..그렇게도 명사들의 말이 맛깔스럽고 진리스럽습니까? 아니면 살아 오면서 고작 읽고 인용할 책이 그 뿐이던가요?

나웬을 알면 얼마나 압니까?
반면, 성경은 얼마나 아나요?
성경 진리와 나웬은 엄연히 서로 배치된다는 건 알고 있었나요?


한인 설교자들이 어떻게 보든 듣든 간에, 나웬은 '목회자'가 아닌 카톨맄 사목자에다 카톨맄 포교사였고, 그가 때때로 남성 친구가 그리워 만나면 껴안고 몸부림치거나 남자에게 꽃도 선사하곤 하던, 평생 비적극적인 동성애자였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며, 20세기 관상영성의 선구자이면서 동양철학/동양종교에서 천주교와의 '공통분모'를 찾았다던 토머스 머튼의 정신적 제자요, 불교와 기독교의 합성을 추구해온 라벝 조나스 같은 배도적 종교혼합주의자를 수제자로 기른 사람임을 아.시.나.요.?

몰랐다면, 왜 알아 보려고도 안 하고, 님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나웬을 예수님의 '대언자' 정도로 만들어 주는 겁니까?  

물론 이런 영적 불감증 환자 설교자들은 비단 미주 한인 목회자들뿐 아니라 한국 등 세계 곳곳에 수두룩~하겠지만, 제발 성령님으로부터 "얼빠진 삯꾼 목자"라는 책망과 더 나아가 무서운 심판을 받지 않도록 진작 일깨일 순 없는 겁니까?


설교자여, 목회자여.
왜 말발은 있는데, 꼭 필요한 분별력이 없나요?
깊고 오묘한 지식인 양 자랑스레 늘어놓는 그 예화들과 인용문들이 알고 보면 영적으로 너절~한 너스레에 그치며, 그리고 성도 앞에 너무나 무책임한, 더 나아가 지극히 위험한 소치인 걸 알고 있나요?

그런 설교는..진리의 하나님 앞에 전혀 가치를 인정 받을 수 없는 빌 공(空) 자 '공 메시지'임을 아나요?
허공을 울리며 사람의 귀나 간질여 주는 한담 또는 기껏 재담에 불과하다는 것을 못 느끼나요?
바로 성경에 경고예언된 그 전형적인 말세 현상의 일부일 뿐임을..


한인 교계의 배도 현상을 흐느끼는 맘으로 지켜 보는 심경을 털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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