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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독자의 지난 칼럼들/은강의 순례여정

2 - 1 교회를 추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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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강의 당신께로의 여정 2-1


[신앙이 없이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가 물었다.

[신앙을 갖고 산다는 건, 어떤 것인가요?]

내가 되물었다.

그는 신앙을 갖지 않고 살아 본 적이 없고, 나는 신앙을 갖고 살아 본 적이 없다.
그는 '모태신앙'을 가졌다는 사람이었고, 내 어릴 적 교회 경험은 신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어머니도 교회에 다녔다.
내가 어릴 때, 이미 어머니는 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늘 교회에 다녔다.
할머니도 교회에 나갔다. 어머니보다 먼저 나갔다. 할머니는 집안의 여인들을 다 교회로 이끌었다. 집안의 여인들은, 이 동네 저 동네 떨어져 살다가 일요일이면 모두 교회에서 만났다. 교회에서 돌아오는 어머니는 누구네 누구, 누구네 누구들의 소식을 날라 왔다. 샘이 무척 많았던 어머니는, 소식에 따라 때로는 어떤 누구가 부러워 어쩔 줄을 모르기도 했다.

중풍으로 오래 누워 지냈던 할머니가 어머니와 함께 교회 나들이를 했던 시절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어머니의 젊었던 시절, 교회 나들이는 어쩌면 잠시의 해방이었을까.
중풍 맞은 시어머니의 병 수발은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게다가 할머니의 성품은 대단했다. 마음대로 쓸 수 없는 몸을 기다시피 질질 끌며 방에서 나와 막무가내로 소리 소리 지르던 할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생각난다. 할머니가 그렇게 한 번씩 난리를 부리면 집안 분위기는 음습해졌고, 나는 어느 구석으로 숨어 들어 숨 죽인 채 소동이 어서 지나가기만 기다리곤 했다.
시어머니 병 수발은 고스란히 맏며느리 몫이었던 시절이었으니, 할머니 때문에 외출도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던 어머니에게 그 무렵의 교회 나들이는 잠시의 휴식이었을지 모른다.

일요일이면 어머니는 곱게 단장하고 교회에 갔다.
한복을 정갈하게 차려 입고 나서면, 어머니의 전신에서 도도한 기품이 흘렀다.

때로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교회에 갔다. 그렇게 나를 동행시키는 날이면, 귀가 길에 대개 어머니는 다른 볼 일을 봤다. 교회는 큰 시장 근처에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어머니는 어느 포목점의 단골 손님이었던 모양이다. 거기서 어머니는 천을 고르기도 하고 새로 바느질한 옷을 찾기도 했다.


"선생님, 그럼 선생님 어머니는 송편을 이쁘게 빚지 못하셨나 봐요?"

난희였다.
와하하하 와아아 와우, 책상 두드리는 소리, 웃음 소리, 그 때 교실은 순식간에 장바닥으로 변했었다. 공부에는 영 취미를 못 붙였지만 다른 건 나무랄 데가 없던 아이, 영리하고 교우 관계도 좋았다. 수업 시간에 농담도 곧잘 던져 교실을 한바탕씩 웃음으로 몰아가기도 했던 아이. 그런 난희가 괴성에 발까지 구르며 웃어 대는 친구들의 소란 속에서 해실해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추석을 앞두고였다.
어느 단원인가 공부하다 그 끝에, 추석에 송편 많이들 빚어 송편을 이쁘게 빚어야 이쁜 딸을 낳는대 미리미리 연습들 해 둬, 했다.
그랬는데 그만 난희가 바로 받아 저리도 화끈하게 안타를 쳐 버린 것이었다. 아니, 아이들 반응으로 보건대 공은 담장을 넘어 멀리로 사라지는 중이었다. 홈런.
맞다 맞다 하하하, 함께 웃던 내가 웃음이 좀 잦아들길 기다려 말했다.

"그런데 말야, 내 동생은 이쁘단다. 몇 년 더 빚으셨으니 솜씨가 좋아지셨던 거야. 그러니까 군소리 말고 많이 만들어, 알았지?"

아주 작은 일, 사소한 말 한 마디에도 데굴데굴 웃는 나이였던 아이들은 다시 또 책상을 쳐 댔었다.
내가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때, 오래 전 이야기다.

물론 난희는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사실 유전자 측면이라면 나도 할 말이 많다.
아니, 같은 생산라인에서 만들어졌는데 품질 차이가 왜 나느냔 말이다. 나만 빼고 다른 형제들은 다 잘하는 게, 왜 있느냐 말이다. 왜 나만 다른 염색체를 물려 받았느냐 이거다. 그리고 그 다른 게 어찌, 못나고 부족한 쪽이더냐 이거다.

동생이 좀 자라자 어머니는 더 이상 교회 나들이에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어머니가 가자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 나섰지 교회에 무슨 흥미를 느꼈던 것도 아니어서 내 예배 구경은 그걸로 끝이었다. 끝나 버린 교회 나들이에 나는 아무 미련이 없었다.
어머니도 동생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더 나았던가 보다. 사람들은 나에게는 별로 말을 걸어오지 않았지만 동생에게는 달랐다. 새침하게 이쁜 꼬마 아가씨는 뭇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법이니까. 자존심 강한 어머니의 동행으로는 동생이 더 어울렸다.

그 길로 교회와는 끝나나 했었는데, 초등학교 때 한 일 년 교회에 다닐 기회가 있었다.
같은 반 친한 친구의 아버지가 목회를 했다. 그 애는 교회에서 살았다. 그 애가 놀러오라 자주 말해서 일요일이면 그 애네 집엘 갔다. 예배도 드리고 그 애랑도 놀고, 그랬다.

그 해 성탄절에는 교회 행사에도 참여를 했다. 나로서는 처음 참석해 보는 성탄절 행사였다.
그 시절, 떡이라도 얻어 먹고 선물이라도 얻어 들고 구경거리 없던 시절에 구경이라도 얻어 하려고들 성탄절이면 동네 아이들은 대개 일일 신자가 되었는데, 나는 그 무리에 끼어 보지 않았었다. 어머니도 성탄절에 나를 교회에 데려간 적은 없었다. 물론 내가 따라 나서면 함께 갔겠지만 그럴 정도로 관심이 가지도 않았다.

그 날 내가 참여한 행사는 찬송가 경연 대회였다.
참 내, 무슨 배짱으로 노래 대회엘 다 나갔을까. 내 형제들은 다 잘하고 나만 못하는 것 중에 가장 약 오르는 게 바로 노래이거늘, 그 때는 그 사실을 미처 몰랐을 거다. 다른 형제들이 다 잘하니 나도 웬만큼은 하는 줄로 착각했을 거다.

예수님은 생명의 참 포도나무.. 아아 이런, 그 밤에 불렀던 노래다.. 아버지는 과수원 농부시니.. 세상에, 이게 기억나다니, 제목이 뭐였더라.. 가지들이 열매를 맺지 않으면.. 아낌없이.. 으으음.. 아낌없이.. 다음이 뭐지? 아낌없이.. 가지를 어떻게 쳐서 잘라 버린다는 내용이었던 거 같은데, 이제 희미하다. 아낌없이 잘라서.. 어? 가만.. 그게 아닌가? 아낌없이 쳐서 잘라 버린다고? 잘라? 가지들이 열매를 좀 안 맺기로 예수님씩이나 되신 분이 그걸 그렇게 댓바람에 잘라 버린다고? 좀 이상하다. 내 기억에 문제가 있나 보다. 아낌없이.. 아낌없이.. 이거 뭐, 망가진 레코드판이다.

나는 그 날 장려상을 받았다. 내 생애 유일하게 노래 불러 받은 상이었다.
이듬 해, 학년이 하나 올라 가고 나는 그 애와 헤어졌다. 바로 옆 반도 아니고 좀 떨어진 반이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애는 전학을 갔다. 그와 함께 교회도 멀어졌다. 내가 무슨 신앙심으로 교회엘 다닌 것도 아니었으니 친구도 없는 교회,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것이 내 짧은 교회 이력의 전부다. 그 후로 나는 교회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제는 고인이 되었지만, 사는 동안 어머니가 한 신앙생활은 그닥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었다. 어머니 다니던 교회의 목회자도 별로 호감가는 형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목회자는 한때 금전적인 문제로 신문지상에 시끄럽게 오르내리기도 했었다.

일부러 찾아 본 적이야 없지만, 주변에서 멋진 기독교인을 만나지 못 했다.
이래저래 주변에 기독교인들은 많았는데 그들은 아무 때나, 예수 믿고 천당 가랬다. 구원을 받으랬다. 밑도 끝도 없이 그랬다.  
황당한 소리였다. 믿으라고? 예수를? 예수의 무엇을?
어떻게 무언가를 무조건 믿어? 자기들이 믿으라고 그냥 한 마디 하면, 저절로 다 믿어지는 거야?
죽음 후의 세상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사후 세계를, 누가 감히 알랴.

내가 아는 몇몇의 경우,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보다 더 이기적이고 더 탐욕스러웠고 더 자기중심적이었다. 행동은 취하지 않으면서 말은 질리도록 매끄럽게 잘했다. 말로 쓰는 인심이 어찌나 후하든지, 그 입 치레 구경하느라 넋을 놓고 바라본 적도 있었다.

몇몇 기독교인의 모습이 전체 기독교의 모습으로 확대되어 내 안에 들어 앉았다.
기독교에 영 호감을 가질 수가 없었다.

입치레에 바쁘지 않은, 내가 아는 기독교인이 그래도 다행스럽게 두엇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쉽게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수시로 하나님을 빌어 자신을 변명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은혜를 빌어, 다른 사람의 호의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무례도 범하지 않았다.
그들 덕에 기독교에 대해 겨우 배타적이지는 않을 수 있었다. 

종교라면, 관심은 크게 없지만 그래도 종교를 지녀야 한다면 성당이나 절이 낫지 않을까 싶었었다. 근거 없는 선입견이겠지만, 그래도 종교라면 뭔가 좀 엄숙함이 깃들어 있어야 폼이 나지 않겠는가.
나중에, 더 나이를 먹으면 그때 가서 조금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볼 요량이었다. 종교 말고도 할 일은 많았다.


그런데 뜻밖에 그가 나에게 묻고 있다, 신앙 없이 산다는 게 어떤 것이냐고.
신앙 없이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있으나 없으나 무어 그리 크게 다를까,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지 않나.

신앙이 없이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이런 질문은 처음이다.
나에게 예수를 권했던 어느 누구도 이렇게 묻지는 않았다.
신앙 '없이' 사는 게 어떤 것이냐.. 이건 신앙 '있이' 사는 게 의미가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질문이다.

늘 그래왔듯 가볍게 웃음으로 받아 그냥 넘어가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어딘지 무시하기 어려운 진지함이 물음에서 묻어난다.    
나에겐 없고 그에겐 있는 것, 나는 한시도 가진 적이 없고 그는 한시도 안 가진 적이 없는 것.


그러자 그가 제안했다.

[이 기회에 성경 공부를 좀 해 보시지요?]

사양할 이유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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