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별과 검증/관상영성

날로 구교화 돼 가는 신교?



지난 한 주간은 구교와 신교 일각에서 공히 '성 주간'(Holy Week) 또는 '수난주간'으로 지킨 씨즌입니다. 

신/구교가 유난히 일치하는 점 하나가 특정 교회절기 준수 관행이지요. '그레고리우스 달력'에 맞춰 대강절/성탄절/사순절/수난주간/성금요일/부활절.. 등 주요 절기와 그밖의 많은 명절들을 매년 꼬박꼬박 지킵니다. 퍽 오랜 세기를 그렇게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일부 신교 교회들이 전례(典禮)/의식(依式)상 점점 구교를 닮아 간다는 점은 근래의 현상입니다. 

이 점과 관련, 텍서스의 지역언론 휴스턴크로니클의 최근 보도는 우리의 눈길을 끕니다. 
http://www.chron.com/disp/story.mpl/metropolitan/7533676.html

  '복음주의자들, (천주교식) 전례전통을 제 것 삼아 가'라는 제목입니다. 

세상 언론이 이렇게 간파한다는 것, 약간 두려운 일 아닐까요? 그런 현상이 비성경적이라는 점에서. 기자는 이 기사에서, 복음주의 교회들, 특히 구교/주류교파 교인 출신들이 점점 더 그런 성향을 보인다고 객관적으로 집었습니다.   

천주교의 의식전통에다 새 목적을 부여하는 식이라는 겁니다. 신교 교회에 날로 성행해 가는 어린이 부활절 계란찾기 행사(eggs hunt)도 그렇지만, '관상기도'/'향심기도'/'호흡기도'/촛불명상/미로(迷路/labyrinth)명상 따위가 포함된 관상적(觀想的/contemplative) 분위기도 그렇고, 최근에는 사순절 명상, 세족(洗足/Maundy)목요만찬, 심지어 일부 교회는 전형적인 천주교 관행인 '십자가 길의 기도처'(Stations of the Cross)까지도 흉내내어 한다네요.

이러다간, 그동안 그래도 비교적 의식을 초월/탈피해 온 신교 고유의 특성마저 잃어 가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마저 듭니다. 

이 신문 기사를 보니, 칼로스 잌터라는 침례교 신자(경배리더)는 과거 사순절이나 성주간 등을 전혀 지키지 않는 교회에서 자라났지만, 최근엔 교회에서 세족목요일까지 지킨다고 합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 '이 세족 목요일이란 게 도대체 뭐예요?'라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한다. 일부에겐 외래개념이겠지만 일단 한 번 설명해 주면 성경적이고 의미가 있다고 보게 되죠. 로마 카톨맄교가 하는 많은 좋은 것들에 대하여 우리 모두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건 카톨맄적이거나 침례교 것이 아닌 성경적인 것이죠."

그래요? 절기 준수 전통이 성경적인가요? 그런 성구가 신약성경에 어디 있던가요? 이건 구약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지요. 사도 파울은 오히려 이렇게 말하지 않나요?

   "여러분이 날과 달과 해와 절기들을 지킨다고 하니, 내가 여러분을 위해 애쓴 것이 헛될까 두렵군요."(갈라티아서 4'10,12a) 

이게 꼭 유대절기만을 뜻하는 것인가요? 우리는 왜 파울의 이 교훈을 따르지 않는 것입니까? 왜 파울의 말보다는 천주교 전통을 더 중시하고 준수하나요?? 파울이 '애쓴' 그것이 뭘까요? 의식주의/형식주의에 빠지지 않게 힘써 가르치고 경계한 게 아닌지요? 

흔히들, 천주교 절기는 유대 절기와 다르다..그래서 비록 유대 절기는 꼭 지키지 않아도 되지만 (지켜도 좋지만?) 천주교 절기는 지켜야 하고 지킬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파울의 저 교훈은 천주교 절기준수엔 해당되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그런 물음은 비본질적이고 절기의 정신이 중요하니까 따지지 말라고요..? 그럼, 절기준수가 본질적이라는 말인가요?  

제가 이런 물음을 강하게 갖게 되는 이유는 신교가 점점 더 구교를 닮아 절기전통 준수를 하는 데다 전례/의식 내용까지 더욱 모방해 간다는 점에서 놀라기 때문입니다. 

잌터 씨는 말합니다. 절기준수와 의식적 관행들이 '성경적'이라고요. 몇몇 용어들이 성경에 있다고 해서, 과연 천주교 전통들이 성경적입니까? 그럼 성체성사도 그런가요? 마리아도 성경에 있기에 마리아 숭앙이 성경적인가요?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신교가 이렇게 신속히 근구교적으로 변질돼 가는 걸까요?

이 기사가 인용한 통계자료로는, 미국인들의 10%가 옛 카톨맄 교인들이며 이들중 약 절반이 현재 신교교회에 다니고 있어, 추억을 달래 주려고(?) 이런 풍조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의 천주교도수는 매년 불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선지 교회력을 별로 지키지 않던 복음주의권에서도 요즘 교회력을 각별히 의식하는 교회가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남침례교 교단 같은 경우, 각 교회가 재량껏 자유로 하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십자갓길 기도소(기도처)는 뭘까요? 

'관상모임기도소' 또는 '십자가 여로' 등으로 불리는 이것은 14개 기도소가 포함된 천주교의 오랜 전통으로, 향과 이콘(성화상), 의식, 촛불, 읊조리기, 기도, 호흡기도, 경우에 따라 심지어 요가, 신비주의 등이 개재되기도 합니다. 

각 기도소는 예수 크리스토 수난 길의 여러 국면/단계(stages)를 묘사한 그림이나 조각상이 있지요. 이 관습은 여러 세기 전 시작돼, 1731년 로마교황 클레멘토 12세에 의해 공식 인가됐습니다. 


(천주교식) 기도소

그냥 '기도소'(prayer stations)도 있는데, 이것은 기도를 위해 따로 마련된 곳으로, 촛불/십자가상/성화상/성구/디보션질문/기도노트붘 등이 마련돼 있고 무릎꿇거나 앉게 돼 있습니다. 

기도소는 요즘 신교의 관상영성권은 물론, '떠오름'(이머징)영성권에서도 사용됩니다. 관상(영성)가/떠오름영성가 댄 킴볼은 "기도소는 센스를 일깨우고 예배를 표현하는 좋은 방법이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킴볼은 2005년 전국목회자대회(NPC)에서 기도소를 진행한 바 있답니다. 샌디에고에서 열린 NPC에는 미로명상과 기도소가 한데 어우러졌습니다. 35 평방피트 규모의 캔버스에 검은 선으로 '길'이 표시된 미로를 바닥에 깔고, 참가자들에겐 각각 CD플레이어와 헤드폰이 주어져 명상음악을 들으며 미로 노변의 11개 기도소를 따라 미로 한 가운데로 향한 여로를 밟았답니다.  
그럴 동안 한 여성이 요한복음 1장 일부를 읽으면서 "서두르지 말고 심호흡을 하면서 하나님께 온통 집중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세인트프랜시스(='성' 프란치스코) 루터교회는 교인들을 이렇게 관상기도 이벤트로 초청합니다. 
http://www.st-francis-lutheran.org/contempla_home.html

이 초청 사이트의 맨 위엔 "많이들 나를 와서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무도 와서 잠잠하기를 요청하지 않았다"는 헨리 나웬(관상가, 천주교 예수회 사제, 비공개적 동성애자로 폭넓게 알려짐)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와서 우리와 함께 잠잠합시다

   관상기도는 렠시오 디비나, 향심기도, 떼제 챈팅(읊조리기 노래) 등등 여러 기도관습을 통틀어 말하는 데 쓰이며 십자가길 기도소 같은 잘 알려진 전통도 포함됩니다.  이 행습들의 공통점은 침묵/정적/경청/명상테크/성구집중명상 등입니다. 

관상기도는 보통, 우리가 바라는 것을 하나님께 덜 말하는 대신 성경과 마음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더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오랜 세월 동안 수사/수녀들이 해온 관행입니다. 지난 20-30년간 서구의 명상에 관한 흥미의 대두는 자신들의 관상지식을 나누기 원하는 수사들에 의해 바깥으로 향한 것과 때를 나눕니다. 토머스 머튼, 배절 페닝턴, 매크리너 위더커, 캐틀린 노리스 등이 이 신앙유산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오늘 이 기독교 관상기도의 풍부한 유산에 평신도들과 성직자를 아울러 참여할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일차적 목표는 우리 이웃들과 샌프랜시스코 루터교인들을 위한 관상기도 터전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할 수 있는 껏 관상기도의 다양한 면모를 탐구하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루터교회, 성공회당들을 포함한 옛 주류계 교회가 많습니다. 개인별 그뤂별로 주1회 모여 관상기도를 한다는 이 교회는 20세기 관상기도의 선구자들인 멀튼/(로렌스)프리먼/키팅/페닝턴 등이 불교 등 동양종교의 명상을 적용하려 한 것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엔가 탐닉하면 얼마나 무지할 수 있는지요..  

맄 워런의, '목적에 이끌린 삶'(PD) '40일 기도교본'은 캠페인의 각 주제를 대표하는 5개의 예술적인 기도소를 돌며 기도에 관해 밝힌 바 있습니다.  
심지어 PD 초등학생 어린이판(1-4학년)까지도 "어린이들 역시 특정 형태의 기도를 위한 기도소로 갈 수 있다"고 하여 공공연히 기도소 관행을 장려합니다. 


관상가 리처드 포스터('레노바레' 대표)와 댈러스 윌러드의 제자인 마이크 펄샨('유웉스페셜티' 집필가/신비가)은 이렇게 회상합니다:

   "나는 교회개척자로 일하면서 예배 때 관상 요소들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베일이 얆아진다는 믿음으로 '얇은 곳' 예배도 했다. 온 밤을 꼬박 보내며 (이끌린) 명상과 드럼서클(둘러앉아 북 등 민속 타악기를 치는 모임으로 주술적 성격이 강함), '소울랩' 등에 했다. 소울랩을 통해 우리는 관상기도에 다양하게 근접할 수 있도록 서로 다른 음악의 멀티플 룸을 사용해 여러 기도소를 마련했다."     
  
특히 '떠오름(이머징)교회'(EC) 그룹들이 이런 복합적인 의식을 적극 수행합니다. 
http://www.post-gazette.com/pg/05086/477120.s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