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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물음과 답(Q.A)

고전 4:8-13의 뜻은?


 

Q/물음

고린도전서 4:8-13 부분(특히 8절)이 잘 이해가 안되어서 질문 올립니다..
티엘티를 통해 처음 배우고, 성경을 통해 확인한 바 "우리가 예수님을 통해 크리스토 안에서 누리는 복과 상속물이 영/혼/육/물-모든 차원의 좋은 것들"임을 알고 믿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고린도교회 사람들에게 바울이 이 구절에서 말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A/답

4장 전체의 문맥을 보면,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 쉽게 교만해져서 남을 단죄하는 경우를 경고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선, 이것을 오직 코린토교회의 문제로만 보아, 코린토교회 '동네 북 만들기'나 '때려 잡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그건 또 다른 판단/단죄 행위가 될 수 있지요.
파울 자신의 원 의도는 그런 데 있지 않습니다. 파울의 의도는 14절에 밝혀져 있지요. 오히려 수많은 현대교회들이 코린토교회보다 훨씬 더 교만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현대 사회가 고대의 소돔/고모라보다 훨씬 더 더럽고 사악한 것처럼.

그래서..다만 코린토교회의 경우를 전례로 삼아 성경 말씀대로 검증/분별하여, 우리도 피해야 할 교훈으로 삼는 것이 슬기롭겠지요.


7절에서 파울은, 자만해져서 남들과 (귀족적인?) 자신을 비교해 가며 심지어 상대방을 적대하는 교우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잇달아 던지고 있습니다. 자만하는 사람에게 스스로를 돌아보아 양심의 가책을 갖게끔 깨우치려는 것이지요. 

   - 누가 당신을 남달리 구별했나요?
   - 당신이 지닌 것들 가운데 (하나님께) 받지 않은 게 있다면 뭔가요?
   - 정녕 그것들을 당신이 받아 가졌다면, 왜 마치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

우리가 남과 달리 세상/비신자들로부터 구별됐다면..더 나아가 어떤 차이가 있다면, 그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지 스스로 잘 나서, 썩 잘 해서가 아니죠.

또 우리가 갖고 누리는 모든 좋은 것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지, 내가 처음부터 지녔던 게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자랑하고 자만할 게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 자신과 주변을 둘러 보다 보면,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갖고 남 앞에 뻗대기가 쉽고 또 그럴 경우가 잦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영적 선물과 은사로부터 일용할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 분이 주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그 분께 감사하고 그분께만 영광을 돌릴 따름입니다.


8절은 반어적 역설법을 사용한 풍자입니다.
그런데 결코 코린토 교우들을 비꼬고 비웃기 위한 '시니컬'한 풍자가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14절 참조). Simply, 성령께선 그런 뒤틀린 계시를 주시지 않지요! 다만 사랑의 동기로 깨우치기 위한 풍자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배가) 가득 차 있군요(포만 상태이군요)!
    여러분은 이미 부유하군요!
    여러분은 우리 없이도 왕들로 군림해 왔네요!

자만해진 나머지, 한 마디로 "눈에 뵈는 게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는 뜻입니다.

이런 상태는 비단 코린토 교우들만은 아니겠지요.
우리 자신과 주위를 둘러 봅시다. 마치 자신을 살핌이 없이 모든 걸 다 가진 것처럼 행동할 경우가 없겠습니까? 그런 경우, 우리는 코린토 교우나 스스로 부유하다고 생각했던 라오디케아 교우들보다 나을 게 없겠지요(요한계시록 3'17).

물론 믿음으로 "예호바님은 나의 목자, 나 아무런 부족함도 없네!"(시편 23'1)라고 고백할 수 있지만, 그것은 뭔가 부족해 뵈는 상대방 앞에서의 교만이어선 안되겠지요.

파울은 이어서 정말 여러분이 드높은 자리에 왕으로 군림해 다스려 왔다면..(8절 후반절에서) 복음을 위해 고난 받기로 택함 받은 우리 사역자들도 낮아질 것 없이 여러분처럼 떵떵거리며 다스릴 수 있겠네요..라고, 역시 반어법으로 말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도들의 현실은 정반대이지요. 그들은 지금 순교 직전 상황까지 내려가 가장 낮은 지경에서 처참한 박해를 받고 있지 않습니까(코린토A 4'9-13)! 예컨대 파울이 어떤 수난을 겪었나요: 코린토B 11'23-33?

파울과 동역자들이 코린토 교우들과 다름없이 지니고 가졌으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행세하지 않은 주된 까닭은..: 코B 4'7-11, 코B 6'3-10 같은 이유들 때문이지요.  

그러니, 코린토 교우들 상당수는 "십자가 없는 영광"과 자랑거리만을 찾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교회 대다수도 그렇지요. 진리가 빠져 버린 '영성' 속에서 '나름 사랑'만을 찾고 허영을 구하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강단 위에서 옛 코린토교회를 비평하고 두들겨 패기나 즐기지 않습니까. 마치 자기네는 전혀 그러지 않는 양.

끝으로..우리가 한 가지 진리를 새로 깨달으면, 서로 부딪치는 듯, 좀 배치되는 듯이 보이는 다른 진리를 새로 만날 때, 의문을 갖기가 쉽겠지요.
그러나 이미 깨달은 진리를 쉽사리 의혹하거나 더 나아가 부정하진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