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교의 대표적인 중단론자들. 윗 줄(왼쪽부터): 장 칼뱅, 마르틴 루터, 벤저민 워필드. 아랫 줄: 잔 매카터, 리처드 개핀, 대니얼 월리스.
중단설(cessationism).
교계 특히 신학계에서 이보다 더 뜨거운 '감자'도 드물 것이다. 일명 중단론, 단절설 또는 종료설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을 한 마디로 간추리면:
초기교회 이후 방언/신유/은사/계시 등이 끊겨 사라졌다는 주장.
중단의 범위/성격도 부분적 중단, 완전 중단 등 몇 가지가 있으나 부분이든 완전이든 중단은 중단이니까 그냥 한 제목 아래 한데 묶어 논하련다. 또 신학적으로 복잡하게 분석 평가할 것도 없이 성경에 바탕을 두고 떠오르는 필자의 생각을 그대로 적어 본다.
경전적 기록계시는 완료
일각에서는 중단설이란 말 대신 완성/종료적 성격을 강조한 '완료설'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완료'란 표현이 적절한 것은 바로 성경 계시다! 우리 믿음의 바탕인 성경 계시는 이미 완성/완료된 진리로 이젠 더 가감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데도 카톨맄 등은 외경/위경/가경 등 다양한 외전에도 성경과 같은 권위를 두려 하고 소위 '성체성사'를 성경보다 오히려 더 중시한다. 또 유대교도 탈무드 등을 비슷한 수위에 놓고 보려 하니 비성경적이다.
카톨맄측은 멜 깁슨의 영화 '크리스토의 수난'에서 내비쳤듯 마리아를 소위 '공동구속자'(coredemptrix), '공동중재자'(comediatrix)로 부각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말도 안되는 천만의 말씀이다. 카톨맄측에 충고해 두는데, 차라리 그럴 바에야 마리아를 '여신'화 해서 성삼위 아닌 '성사위' 교리를 내세워 더 큰 이단으로 전향하는 게 더 정직한 처사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얼마 전 회교도인 리비아 최고 지도자 무암마르 가다피 대령이 우간다를 방문해 무함마드의 생일날 행한 연설에서, 무함마드에 관한 언급이 없는 기독교의 성경은 '위조품'이고, '이싸'(그들 나름의 예수님)에 관한 언급이 있는 쿠란경이 "진짜 올바른 경전"이라고 한 주장은 무함마드를 모든 종교의 '예언자'로 삼으려는 어젠다의, 얼토당토 않은 사기극이다.
그러므로 현대의 대언자/사도로 자칭 또는 자임하면서 어떤 '기록계시'라는 것을 내세워 성경과 동등하게 또는 그보다 더 중시한다면 이처럼 위험한 짓도 없을 터이다.
실제로 요즘, 자기 글을 성령님이 주신 것이니 "일점일획도 틀림이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우리 주변엔 상당수 있다. 즉 자기 말글에다 성경과 동일한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은근히 자신을 신격화 하는 셈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단으로 가는 지름길에 서 있다고 보면 과히 틀리지 않다.
자연계시와 일부 특별계시는 상존
계시란, 하나님의 실존 또는 그분의 뜻을 인간에게 드러내어 보여 주시는 내용이다. 계시에는 교의신학 또는 조직신학에서 쓰이는 용어로서 자연계시(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가 있다.
'특별계시'란 자연에 나타난 일반계시와 구분되는 성령님에 의한 계시다.
성경계시는 완료되어 추호도 가감할 수 없지만..그렇다고, 교회에 (자연계시가 아닌) 특별계시가 완전히 '종료' 됐을까?
성경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아마도 전통적 보수 신학자들은 강력 반발할 테지만, 우리 흥분하지 말고..성경을 중심으로 한 번 차분히 생각해 보자.
우선 자연계시를 보라.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보라.
모든 계시가 완료/중단됐다는 계시완전종료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자연계시도 종료됐다는 말을 하진 못할 것이다. 자연계시는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실 때 한 번 보여 주시고 그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우리 눈 앞에 전개되어 있다.
하나님은 우주 만상을 태초에 창조하셨을 뿐더러 늘 생성/번식/변화하게 하시며 더구나 그 손길로 직접 붙들고 계시다! 공중에 묶여 둥둥 떠 있는 풍선처럼 매달려 있는 항성과 유성들은 누군가 꼭 붙잡고 있지 않으면 다 궤도에서 벗어나 제멋대로 떨어져 나가거나 서로 부딪쳐 파괴될 수밖에 없다(욥38:31, 시편 8:3).
수많은 별들이 한데 뭉쳐 있는 갤럭시-은하계만 해도 1,250~5,000억 개나 된다는데 이 엄청난 수의 모든 별들이 현재처럼 제각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뉴튼이 발견한 만유인력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성자님이 붙들고 계시기 때문이다(히브리서 1:3)!
가히 성경의 과학교본이라고 할 만한 욥 서를 숙독해 보면, 오늘날 우주의 자연현상과 성경의 기록계시/특별계시와는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욥 서는 하나님은 우주/자연 속에서 바로 지금 일하고 계심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크리스천 과학자는 둘째치고라도 정직한 신학자라면, 계시가 현재 '중단'돼 있다고 할 수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창조 이래 결코 가만히 관망 내지 방임하고 계시지 않는다. 온 우주 구석구석 관할하고 붙들고 계신다. 그분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류를 단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시기까지 보존하시려고 수많은 별들 한가운데 낀 티끌보다 작은 지구를 보존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주와 만물의 모든 질서가 지탱되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 자체가 계시라는 말이다.
계시완전종료설 주창자들은 무지개 언약을 노아 홍수 직후 하나님의 특별계시로만 보고 말기 쉽겠지만, 무지개는 인간이 바라볼 때마다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자연계시로 지속된다. 의식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하나님의 손길과 역사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가 조금만 눈을 뜨고 귀를 열면 보고 들을 수 있는 것: 지금/현재 살아계셔서 우주자연을 돌보고 지탱하고 유지 관리하시는 성삼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와 사역은 특별계시 못지 않게 우리를 감동시키고 흥분시킨다.
그러므로 자연계시만 봐도 계시라는 것은 완성/종료된 게 아니라 천지가 불 타 버리기까지는 항구적이요 항존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계시의 완전종료설은 자연계시의 존재 앞에서부터 허물어지기 시작해 버린다.
그렇다면 특별계시는 어떤가?
특별계시는 성경이 전부이고 따라서 성경계시의 완성과 함께 모두 끝나고 이제 더는 없는가?
그것이 대다수 중단론자들의 주장이지만, 알고 보면 자신도 모르고 저지르는 대단한 모순이다.
요엘의 예언은 '중단'을 내포하지 않는다
필자가 자주 드는 단적인 예이지만..요엘의 예언 하나만으로도 계시 중단/종료설은 허술하게 깨져 버리고 만다!
ㄱ. 요엘의 '말세'는 지속적인 말세
그 이후에 내가 나의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련다. 너희 아들들과 딸들이 예언할 것이고 너희 노인들은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들을 보게 될 것이다. (요엘 2:28. 이하 성구들은 필자 사역)
이 성구는 바로 오순절, 성령께서 지상에 강림하신 그날, 방언 현상을 호기심으로 바라보며 몰려든 해외 유대계 무리 앞에서 한 페트로의 설교 도중 인용된 예언이다(행전 2:17~18). 페트로는 이 예언이 바로 그날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언급된 예언/꿈/환상 등은 모두 특별계시에 속한다. 아울러 페트로는 오순절날 나타난 방언을 여기 포함/내포시키고 있다.
아마도 중단론자들은 이 요엘 예언의 성취는 그날 하루 '단회'로 "그쳤다"고 주장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또는 성경계시가 완성된 날로 '종료'됐다고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우리 성경 해석과 연구에서 가장 중시되는 원문을 놓고 한 번 따져 보자.
요엘서의 이 부분 첫 머리 둘째 단어인 전치사 '앜하르'를 한글성경은 모두 "그 후에/뒤에/다음에" 등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앜하르'의 정확한 뜻은 "그 이후"(afterward)이다. 즉 단순히 어느 한 시점에 이뤄지고 말 사건이 아니라 계속 지속적으로 성취될 일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페트로는 요엘 서의 '그 이후에'라는 말을 '말세에'(엔 타이스 에스카타이스 헤메라이스: "마지막 날(들)에")로 풀이했다. 이 말세 역시 어느 일정한 한 시점이 아니라 무제한적인 지속적 말세로 봐야 한다. 즉 마지막 정점이 다가올 때까지 지속되는 말세라는 뜻.
이 진실은 이어지는 성구에서도 밝혀진다(요엘 2:30,31). 바로 지구촌의 멸망을 예언했기 때문. 따라서 문맥상/논리적으로 이것은 분명히 예수 크리스토의 재림까지는 예언/꿈/환상들 등 특별계시가 지속된다는 뜻이다.
중단론자들은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절히 대응해 주길 바란다.
ㄴ. (크리스토의) 온 몸 위에
둘째로, 성경 원문을 아는 사람이라면, 위 성구의 원문에서 놓치지 말고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알 칼 바싸르"(모든 육체 위에)라는 전치사구. 이것처럼 난감한 문구도 별로 없다.
'모든 육체'라면 응당 '모든 몸들'이라는 뜻이라야 할 텐데, 여기 그런 구체적인 복수개념도 없고 '바싸르'는 단수 집합명사처럼 쓰여졌기 때문이다. [이 성구를 그리스어로 인용한 신약의 행전 부분도 단수를 써서 '에피 파산 사르카'(모든/온 몸 위에)로 돼 있다. 행 2:17 ]
일부 학자들은 '모든 생물들'(all creatures)이란 뜻으로 옮겼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사람만이 아닌 다른 생물에게도 성령을 내려 주신다는 뜻인가? 여기서는..전혀 걸맞지 않다!
그게 아니라 "온 몸 위에" 즉 크리스토의 몸인 전체교회라고 봐야 옳다. 바꿔 말하면 '온 교회'로 봐야 한다.
왜 그런가? 만약 '만민들'이라면, 구원 받지도 않은 비신자들도 포함되는 말이기가 쉬우니,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세상은 성령을 알지도 못하며 모실 수도 없다(요복 14:17). 성령님은 오직 지상의 모든 거듭난 신자들의 공동체인 비가시적 교회, 참 교회에 내리셨을 뿐이다.
그렇다면 크리스토의 온 몸인 교회 위에 성령님이 부어지는 것이며 이 몸에 속한 모든 신자들은 동시에 예언/꿈/환상의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 말은 교회가 존속하는 한 이 혜택도 존속된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ㄷ. ..'여종들'
위 성구에 이어진 다음 구절을 보라.
또 그 날들에 남종들과 여종들 위에도 역시 내가 나의 영을 부어 주리(요엘 2:29 행 2:18 참고).
여기 남종/여종들은 누구를 뜻하는가?
앞 절에서는 자녀들(어린이/청소년), 젊은이들, 노인들 등 모든 연령층이 성령님의 부으심을 받을 것이 이미 언급됐다. 그렇다면 남종/여종들은 과연 누군가?
남종/여종들의 '종'이란 개념은 일차적으로 노예들을 뜻한다. 특히 앞 절에 이어져 뒷 절로 나타났다는 사실이 이를 암시한다. 노예들은 신약 기록 당시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이 낱말은 동시에 고대나 신약시대의 남/녀 사역자들을 가리키기도 한다. 섬기미들(ministers)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뜻이 모두 가능하다. 즉 일반인들보다 약간 하층 사람들인 노예들도 인간이므로 예수 크리스토를 믿을 경우 차별 없이 성령을 받는다는 뜻이기도 하며, 한 편으로는 남/녀 사역자들에게 사역에 필요한 은사로서 성령의 권능이 주어진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단론자들은 특별계시인 성경의 기록계시가 종료됐기에 다른 특별계시도 종료됐다는 말을 하려 든다.
이러한 그들에게 한 가지 묻는다: 성경 기록계시-특히 신약- 안에 여종들의 계시도 포함돼 있는가?
필자가 알기로는, 신약 성경엔 여성 사역자들이 예언/체험한 계시는 단 한 마디도 포함돼 있지 않다(마리아나 안나의 계시는 구약시대에 속한다)! 물론 여종들이 쓴 성경도 단 한 권도 없다. 다만 그들이 끼친 거룩한 영향들만 시사/내포돼 있을 뿐.
사도 파울이 초기교회 7집사의 한 명인 '전도자 필맆'의 집에 묵을 당시, 필맆의 네 딸들이 모두 예언을 했다. 그러나 행전 기자인 루카나 파울은 그들의 예언을 단 한 마디도 인용하지 않는 대신 아가부스의 예언은 인용했다(행전 21:8~14).
파울의 동역자, 프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는 에페소 교회를 섬기던 목회자 아폴로에게 크리스토와 성령의 복음을 멘토링 했다(행 18:18, 24~26). 그러나 프리스킬라가 계시를 전달했다거나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 단 한 마디도 인용되지 않고 있다.
자, 그렇다면 역으로..주/야웨 하나님은 분명히 남종과 여종들(!)에게 성령님을 부어 주시겠다고 하셨고, 페트로는 그들도 예언을 하리라고 했는데, 같은 말세의 여성노예들 또는 여성 사역자들이 이런 것을 해 보지도 않은 채 특별계시가 모두 끝났다는 말인가? 상호모순 아닌가?
중단론자들은 중단론의 이런 자기모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는다.
먼 미래를 내다 본 페트로
페트로는 오순절에 내리신 성령의 선물이 오순절 당일로 끝이라고 선언하지 않는다. 오히려 먼 후대까지 내다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 약속은 여러분에게, 또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그리고 주님,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모든 먼뎃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행 2:39).
여기서 '먼뎃사람들'이란 문맥적으로 거리 상으로 먼뎃 사람이기 보다 시기적/시대적으로 먼 후대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말하면, 아마도 일부 중단론자들은 그거야 단순히 성령의 선물의 약속이지, 방언이나 예언/꿈/환상 등 초자연적인 요소들까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고 우기려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다음 구절을 보라. 특히 꺽쇠표-[ ]속을.
.. 그 분(예수님)은 아버님으로부터 성령님의 약속을 받아 여러분이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신 것입니다. (행 2:33b)
이 구절은 성령침례를 주시는 분 곧 성령의 침례자가 예수 크리스토이심을 확증하는 내용이다(마 3:11, 요복 1:33).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표징 없는 밋밋한 성령침례를 주시지 않는다. 분명히 "보고 듣게" 부어 주신다. "보고 듣는" 것이란 바로 오순절날 해외 유대계 군중이 지켜 보고 들은 것, 즉 120성도에게 부어 주신 방언이다! 할렐루야.
성령침례의 표징은 바로 방언이다. 이것은 마르쿠스복음서 16:17에서 주님이 친히 모든 신자들에게 약속하고 예언하신 사항이다.
여러 해, 또는 수십 성상을 사이에 두고 계속 발생한 사도행전 속 방언 사건들을 보면 예외 없이 누구나 성령침례를 받으면서 방언을 했다. 사도 파울도 성령침례(첫번째 성령 채우심 행9:17)를 받을 당시 그랬기에 훗날 모든 성도들보다 더 방언을 할 수 있었다(코린토A 14:18). 오순절 때와는 달리 가끔 예언이 곁들여지기도 했지만 그 예언은 방언 후에 오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기름부음이나 신약 때의 성령침례를 받지도 않고 예언하는 법은 없다.
심지어 유대인들이 늘 천시하던 이방인인 사마리아 사람들조차 (자주 '이방인'으로 불렸다. 뤀 17:18) 방언을 했다(행 8:14~19을 보면 마술사 시몬은 성령을 받는 순간 나타난 표징 즉 방언을 보고 들었음이 분명하다. 이 진실을 부정하려 들지 말라!).
예수님은 사마리아 사람들도 권능을 받아 5대 표징들의 하나인 방언을 하게 될 것을 예언하신다(행전 1:8과 맑 16:17을 결부시켜 보라. 예수님의 지상대명은 행1:8 뿐 아니라 4복음서의 모든 뒷 부분도 포함된다).
더 긴 논증을 하지 않으련다.
중단론자들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중단론의 '근거'로 대기 전, 먼저 필자의 이 논증에 대해 성경적으로 타당한(?) 반박을 해 줄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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