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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선지서

[합 1-3] 하바쿸의 물음과 해답





바탕본문: 구약 하바쿸[각주:1] 1-3장  


대언자[각주:2] 하바쿸은 이의(異意)의 사람이었습니다.

전에 우리가 살핀 대로..왕 다빋은, 모든 일의 계획을 결정하기에 앞서 주/야웨님의 뜻을 알고자 "어떻게..?"라고 여쭌 질문 모범생이었다면, 하바쿸은 주로 "왜..?" 하고 여쭙는 이의 달린 물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바쿸의 계시는 첫 부분 부터가..
    "주/야웨님. 제가 부르짖어도 님께선 듣지를 않으시니 도대체 언제까지입니까?.."
라고 여쭈면서 주님을 향한 질문의 '화살'을 연발탄으로 날립니다.

그의 물음은 주로, 당세에 의인들이 아닌 악인들, 적들이 흥하고 잘 되는 것이 못마땅하고 답답하고 억울해서였습니다.
한 마디로, 주님이 정녕 살아 계신다면 어떻게 이럴 수가..? 라는 물음이었습니다.
우리 모두 때때로 물을 만한 물음과 가질 만한 이의가 아닐까요.

그리고 나서, 하바쿸은 주/야웨님이 어떻게 답변하실지가 궁금하여 높은 파수대와 성루 위에 서서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고 섰습니다(2:1).

그때 하나님은 답하십니다:

     악한 자들의 때는..정해져 있고,
     그 종말은 곧 정녕 이를 것이며
     다만 좀 더딜 뿐이니 
     참고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매우 중대한 말씀을 하시지요.

   "..그러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살리!"


하나님은 그밖에도 타락한 유다와 유다를 포로로 잡아갈 바빌론 등 강대국에 대한 심판 예언을 하바쿸에게 하시면서 다음과 같은 말씀들도 주셨지요.

    "이는 땅이 주/야웨의 영광의 지식으로 가득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물이 바다를  덮듯."    
    " '그러나 주/야웨는 그 성전에 있다.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하라.' "


그리고 제3장은 이에 대한 하바쿸의 화답의 찬양노래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해답을 얻었기 때문이지요!
레비 사제지족으로 추정되는 하바쿸은 손수 현악기를 켤 수 있었고 성전에 수시로 드나들며 성전 찬양대 악장(지휘자)과 친교한 음악인이기도 했습니다(3:1,19). 이런 대언자들이 고대로부터 있었지요[각주:3].


특히 3:17,18은 우리가 자주 인용하는 유명한 시구이지요.

     비록 무화과나무가 꽃피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더라도,
     올리브엔 거둘 것이 없고 밭들은 먹거리를 내지 않더라도,
     우리엔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언정,
     그래도 나는 주/야웨님 안에서 기뻐하리!
     나의 구원의 하나님 안에서 즐거우리!


자..이런 구절을 보면, 기독교 '청빈론자'들은 으레 "자, 봐라. 가난하고 없다는 게 얼마나 깨끗하고 좋으냐.."란 식으로 몰고 갑니다.
그러나 과연 이 구절이 청빈론을 뒷받침해 줄까요? 지금 하바쿸이 가난과 주림, 없음과 헐벗음을 예찬하는 노래를 하고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지요.

하바쿸은 세상 사람이 누리고 즐기며 사는 모든 것을 혹 내가 누리고 즐기지 못할지언정 나는 더 큰 자원-리소스-이 있으니 그 안에서 얼마든지 만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생각해 봅시다:

아이에게 아무리 맛있는 군것질거리와 좋은 옷과 장난감을 준다 해도 어디 아빠 엄마 만 하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아이 곁에 아무리 산더미처럼 쌓아둔들 아빠 엄마가 사라지면 진정 행복할까요?
오히려 아빠 엄마만 있으면 얼마든지 더 좋은 것을 갖다 줄 수 있다는, 더 큰 만족과 온전한 행복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에게 아무 부족함 없는 하나님만큼 더 좋은 대상이 있습니까?


왜 하바쿸이 노래합니까?
왜 하바쿸이 기뻐합니까?
왜 하바쿸이 찬양합니까?
왜 하바쿸이 감격하며 고백합니까?

가난 때문에? 결핍 탓에?
그가 지금 가난과 결핍을 즐기며 노래하고 있나요?
아니지요!
그건 청빈예찬일지 몰라도 하바쿸의 노래나 찬양은 아닙니다.

하바쿸은 혹시 그런 막다른 극한상황이 올지라도, 하나님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으니 염려할 것 없다는 믿음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의인은 믿음으로 살 수 있기 때문이죠!
산다는 게 뭡니까? 죽지 않고 생존한다는 뜻이 아니던가요.


하바쿸이 왜 하나님을 기뻐합니까?
그 다음 절-19절을 봅시다.

    주/야웨님은 나의 힘!
    그 분은 내 (두) 발을 사슴 발 같게 하시리!
    그 분은 나를 나의 높은 곳들 위로 거닐게 하시네..


바로 이 까닭에 하바쿸은 주님을 기뻐한 것이지요. 주님은 실로 우리의 모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하바쿸이 말하는 '나의 힘'은 단지 육체적 에너지만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의 온 삶, 내 영/혼/육의 힘이시고 에너지이시며 바탕과 자원이시라는 뜻입니다.

'나의 높은 곳들 위로 다닌다'는 말은 이스라엘 광야지대의 험하고 높은 산등성이들을 산양들[각주:4]이 이리저리 뛰어 다니듯 영적으로 고조된 경지에서 승리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말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그런 힘, 승리의 바탕, 근원이시고 지금 그런 힘을 주고 계신다는 뜻이지요.

그런 하나님이 계실 때는 혹여 현재가 최악의 상황이 되더라도 내 삶의 힘과 바탕이시니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마치 모든 것을 잃고도 아빠/엄마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어린이처럼.


오, 주님!
그 옛날 하바쿸처럼
우리도 주님을 노래합니다.
찬양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을 기뻐하며
주님 안에서 만족합니다.

님은 곧 나의 힘이시기에!

혹 세상 끝날이 가까운 이때 최악의 상황이 오더라도
우리는 주님 한 분 안에 모든 해답과 만족이 있을 줄 믿습니다. 


주/야웨님 예수 크리스토 안에서
늘 기뻐하며 만족할 수 있는
티엘티 독자들이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멘




  1. 한글성경 표기 '하박국' [본문으로]
  2. 代言者. 선지자, 곧 하나님의 예언자. [본문으로]
  3. 왕/대언자 다빋도 그러했고 엘리샤도 예언이 다소 힘든 특별한 때 연주를 들으며 예언한 적이 있다(왕들B=왕하 3:15). [본문으로]
  4. ibeks. 본문 맨 위 사진 참조.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