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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선지서

[사 58:6-9] 참된 금식 (1)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이사야 58:6-9(개역개정판)


위 말씀은 대언자 이사야 당대의 이스라엘 민중의 외식적, 율법주의적인 금식을 경고하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형식적인 금식을 하면서도 하나님이 알아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 불평하기까지 했습니다(본문 앞: 3절). 그러면서 정해진 금식일에 오락을 찾아 즐기고, 하인들에게 온갖 일을 시키고, 주먹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율법시대엔 정해진 금식일에 일제히 재를 뒤집어 쓰거나 베옷을 입거나 옷을 찢거나 가슴을 치고 울부짖으며 통회하던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제대로 금식하는 사람에 따라선 뼈 아픈 회개를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외식적인 삶을 사는, 그야말로 율법주의자들은 금식일을 우습게 보고 적당히 날짜만 "때우려" 했습니다. [ 물론 우리도 그럴 수 있음을 인식하고 두려워해야겠지요.]
문제는 그런 사람일수록 더, 자신이 금식을 잘 하는 양 으스대고 내세운다는 데 있습니다. 단지 '때운' 정도의 것을 갖고 하나님 앞에 내 놓고 대 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놓고 대 들기 - 요즘 말로 이거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과연 그 사람들이 제 정신이었을까요?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시기에 그렇게..!?

그래서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과연 너희들이 금식이나 제대로 하면서, 금식의 본 뜻을 알면서 그러고 있냐고.
너희 금식이 과연 제대로 된 금식이냐고.

물론 우리는 그 누구도 완전할 수 없지요. 하나님께서 보실 때 우리는 누구나, 언제나 미완성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대로 하려고 믿고 애 쓰면 안 될 일도 없습니다.
 
과연 주/야웨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뻐하시는 금식이란 어떤 걸까요?
이사야의 대언을 통해 하신 말씀-오늘 본문이 확연히 밝혀 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섬김입니다.

남의 흉악하고 부당한 결박을 풀어 주고
그 멍엣줄을 끌러 주고
피압박자를 놓아 주고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매우 적극적인 형태의 섬김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는 굶주리거나 헤매거나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 어려운 형제친척친지들을 돕는 것이 곧 기뻐하는 금식이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주/야웨님의 이 심정은 바로 메시아(=크리스토, 기름 부어지신 분)의 섬김 사역에서 극명히 나타납니다.

메시아, 곧 크리스토가 누구시던가요? 
하나님의 아들-성자이시면서 동시에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임마누엘-그분이셨지요! 이런 금식을 기뻐하신 그 심경대로 하나님이신 성자님 스스로가 이런 섬김을 땅에서 몸소 실천하셨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위선하고 외식하기가 일쑤지만 주님은 전혀 그러시지 않고 말씀을 몸소 순종하시고 실천하셔서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남김 없이 완성하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주님은 어떤 결박을 풀어 주셨나요?
감옥으로 쳐 들어가서 모든 죄수들을 다 놓아 주셨나요?
아니지요!

현대의 해방신학자들, 진보신학자들 중엔 성경을 그런 식으로 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리고 '행세'하는 부르주아들은 다 처단하는 반면, 가난하고 억눌린 노동자들은 '해방'시켜야 한다는 게 그들의 부르짖음입니다만..대단히 거짓되고 위험한 사상이며,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로써 이미 실패와 무효과가 적나라히 입증된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거기 미련을 가진 자들이 세상엔 많습니다 .

세상에는 가난과 부르주아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사회주의를 강행하다 보면 언제나 불상사가 곁딸리게 됩니다.

주님은 '부르주아 타파'를 위해 오신 게 아니지요. "흉악한 결박 풀어주기"는 부르주아 타파나 사회주의 봉기나 '노동자 해방'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결박 풀어주기, 멍엣줄 끌러주기, 멍에 꺾기는 바로 마귀와 그 졸개들에게 눌렸던 자들의 해방을 가리킵니다! 진정한 의미의 '결박'이란 영적인 것이며, 바로 싸탄이 우리에게 씌워 놓은 것들이지요. 영적인 대상은 언제나 현세적/물적인 대상보다 훨씬 더 리얼합니다! 다만 우리의 감관이 제한돼 있을 뿐.

경우와 처지에 따라, 몸으로는 혹 모진 박해나 억울한 누명으로 결박을 당하고도 맘으로는 늘 자유롭고 해방 받은 사람들이 거듭난 크리스천들입니다.
그러나 몸은 아무리 자유로워도 맘으로는 결박 당한 채 살아 가는 사람들이 세상엔 더 많습니다.

우리 한 번 살펴 보죠.
우선..세상에서 온갖 좋은 것을 누리면서도 참 가치를 몰라 허탄한 삶을 살다 헛되이 죽어 가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가끔 한국 텔레비전 방송을 보면, 한국은 가히 '연예공화국'이란 생각이 들곤 합니다. 거의 모든 것이 연예인들, 연예계 또는 명사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언뜻언뜻 어렴풋이 느낍니다. 특히 시청자들은 사극 등 드라마를 보면서 연예인들이 엮어 내는 가상실제의 삶에 감정이입 되다 보니 마치 제 일인 양, 제 삶인 양 거기 깊숙이 빠져 들어갑니다.
설령 그것이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 하더라도 미화와 과장으로 적당히 포장된 것이지요. 작가의 의도와 묘사와 대본을 따라 특정인으로 분장하고 나와 '어릿광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가끔 전형적인 세상 사람들을 연상시켜 줍니다.  

전형적인 세상 사람들이라면..미안하지만, 마귀의 노예인 사람들입니다.
즉 싸탄과 그 종졸들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살아가면서도 이 진실 내지 현실을 모르고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는 사람들이지요. 고스란히 마귀의 의도와 각색과 '대본'을 따라 행동하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지냅니다. 혹 겉 모습은 화려하고 환상적으로 보이더라도 실은 마귀의 꼭두각시들이지요. 그래서 마귀부대가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라 행합니다.
비신자들 모두가 그러하며 그 극단적인 예라면..마귀를 경배하고 사랑하고 적극 섬기는 자들이지요.   

그런가 하면 마귀의 압박으로 가난과 굶주림, 헐벗음 가운데 지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신자들은 가난을 마치 하늘의 선물인 양 '벗'하며 가난을 미덕이라고 하면서 청빈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성경에 '청빈사상'이라는 게 없습니다. 혹, 가난하게도 부하게도 마시고.. 가난에도 풍요에도 처할 줄 안다는 맘 가짐을 '청빈론'이라고 오해하지 마시길.

신명기 28장에 따르면, 가난은 처음부터 죄를 통해 마귀로부터 온 저주입니다! 가난을 미화하는 것은 철학인지 몰라도 신앙은 아닙니다. 주님이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심령의 가난은 육적/물적인 가난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싸탄의 화신이었던 아름다운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범죄한 아담/하와 부부는 온갖 것이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평생 밭을 갈고 양을 치지 않으면 안 되는 육체노동자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 후로 사람은 꼭 일을 해야 먹고 살게 돼 있으며, 그마저도 마귀가 지배하고 조종하여 온갖 것이 불공평한 세상에서는 일을 해도 제대로 먹고 살 수 없는 지경까지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 모두에게 재물 얻을 권능을 주셨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단지 우리가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충분한 풍요를 누리지 못할 뿐입니다. 이 말은 우리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거나 부자가 돼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단지 부자가 되려는 것은 탐욕일 뿐입니다. 그러나 남을 도울 수 있기 위한 풍요는 복된 것입니다. 가난하고서야 어떻게 남을 도울 수 있겠나요? 

주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섬겼습니다. 
그분은 세상의 빈민들과 천대 받던 사람들의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려고 스스로 낮아지시고 스스로 가난해지셨습니다. 주님은 아픈 환자들도 고쳐 주셨지요.
그들을 먹여 주시고 고쳐 주시고 그러면서 영이 바로 살아 갈 방법을 알으켜 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스스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모든 저주로부터 영원히 인류를 해방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 해방은 예수님을 믿고 말씀대로 실천해야만 삶 속에 적용될 수 있지요.

각설하고..
우리는 마귀에게 결박 당해 억눌려 지내는 사람들을 돕고 섬길 수 있어야 참된 금식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귀의 흉악한 결박은 가난 뿐 아니라 악령들로부터도 옵니다.
온갖 악령들에게 시달리는 신자들을 가끔 대하곤 합니다.
참으로 무거운 온갖 멍에를 메고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갑니다.
퍽 수동적이고도 극단적인 형태의 노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신자도 귀신 들릴 수 있느냐?"고 묻곤 합니다.   
그렇다고 "직접 귀신 들려 봐야 안다"고 답하기도 안 되는 일입니다.
신자에게도 악귀가 지필 수 있는 메카니즘을 잘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신학자들은 (절대 또는 일부) 부정할 테지만, 비신자는 물론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사람에게도 악령들이 침입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영/혼/몸 3차원 내지 세 영역의 존재인데, 거듭난 사람의 영은 하나님이신 성령께서 지배하시기에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는 한 합법적으로) 악령이 침투할 수 없지만, 혼과 몸의 영역은 본인이 허용하기에 따라 (또는 환경과 조건에 따라 부지불식 간에) 악귀들이 침투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언약과 지시에 따라 나의 '수호'천사가 나를 늘 지켜 주지만, 나의 죄 때문에, 또는 허용한 기회 때문에 악령들이 내 정신이나 몸에 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가령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점을 치거나 부적을 지닌다거나 마리아상, 성화상 등을 앞에 놓고 추앙/숭배한다거나 성경의 하나님이 아닌 모호한 신을 그리며 명상을 한다거나 고인을 지나치게 그리워 한다거나 지나치게 무서움을 탄다거나 악습을 오래 유지한다거나 하면 악령들이 침투할 문을 열어 주는 셈입니다.
그밖에도 악령들이 신자에게 침투할 기회는 불행히도 많습니다. 그래서 비신자는 물론, 신자가 흉악한 결박에 묶이는 수도 부지기수입니다. 택한 성도라도 되도록 삼키려는 마귀인데 악령이라고 침입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그들의 결박 풀어주기에 나서야 하는데..제도교회는 대체로 이 방면에 거의 '대책 전무(全無)'가 현실입니다. 성경은 잘 읽고 잘 풀면서도 성경이 명시하는 결박 풀어주기 사역에는 무능/무지/무관심/무책임 합니다. 그래서 현대교회엔 악령이 지피거나 자신도 모르게 악령들을 품고 있거나 심지어 환영하고 사랑해 주는 신자들도 많습니다. 심지어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그렇고요.

교회는 신자들을 위한 결박 풀기(deliverance) 즉 악령축출 사역을 해야 마땅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베뢰아'파 김기동의 귀신론 얘기들을 하면서 마치 악령축출 사역 자체가 이단인 양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합니다. 그런 말은 결국 자신들이 성경을 모른다는 무지를 드러내는 소치 밖엔 아니지요! 엄연히 주님과 사도들도 한 게 악령축출사역인데..어떻게 이.단.일 수 있나요? 말이 되는 얘기를 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현대교회는 이 결박 풀어 주기 사역을 외면하기에 사실상 이 방면엔 거의 무능한 곳이 대부분이지요. 현대교회는 자체에 악령들이 맘껏 방만하게 무상출입하고 있어도 '불감증' 신세이면서..악령들이 쫓겨 나가면서 내는 소리는 괴상하고 듣기 싫다고 민감하게 귀를 막습니다. 불감증 속 과민이라고나 할까요. 

자연히..수많은 신자들이 악령의 노예가 돼 있으면서도 느끼지 못하거나 느껴도 풀려날 길 없이 살아 가게 됩니다. 자신에게 이상한 현상이나 특이한 병증이 나타나도 참 원인을 모르고 지냅니다. 당연히 그들의 결박을 풀어 줄 성도를 찾아 헤매게 됩니다.

악령들의 축출은 생각 밖에 원리가 간단합니다.
주님이 이미 싸워 이기신 싸움인데, 단지 성도의 적극적인 섬김이 필요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과 성령의 권능, 하나님의 완전무장(온몸갑옷), 기도/금식/찬양, 어린양의 보혈과 성도의 간증 등으로 물리치면 됩니다! 바로 그것이 피해자가 꽁꽁 묶인 멍엣줄, 동앗줄을 끌러주고 멍에를 꺾어 주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악령들은 한결 같이 예수님의 이름 권세, 어린양의 보혈, 성도의 찬송과 간증을 싫어합 니다. 아가페 사랑과 성도들의 참된 친교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악령들은 작전 상 거짓 사랑과 거짓 친교를 심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사랑 아닌 미움과 증오 속에 똘똘 뭉친 게 아니라 갈갈이 흩어진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싸탄의 노예들이지요. 무저갱 지옥에서 멸망하기까지 싸탄에게 철저히 복종해야만 합니다. 따라서 주인이고 노예주인 싸탄과 함께 철저히, 영원히 저주 받은 존재입니다.
 
악령들에겐 음흉한 웃음과 간악한 냉소는 있을지언정 참된 기쁨과 즐거운 웃음은 결코 없습니다. 그들에겐 아무런 희망도 없습니다. 영원한 절망 뿐이지요! 그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그들이 궁극적으로 향하게 이미 운명이 결정돼 있는 무저갱이나 지옥에 되도록 늦게 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를 갈고 미움 속에 인간을 비웃으며 인간 세계를 상대로 더욱 악을 자행하게 됩니다. 그들은 때로는 천사처럼 때로는 무서운 사자처럼 온갖 간계와 공포로 인간을 괴롭히고 장난을 칩니다.

그러므로 비신자는 물론, 허다한 신자들이 악령들의 장난과 희롱에 농락 당하곤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도교회는 이에 대해 속수무책인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그 자구책이 아닌 임시처방 내지 위약(僞藥/플라시보)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신자는 구원 받았기에 귀신과 무관하다"는 헛믿음이지요.

그렇다면 구원 받은 신자는 아무런 죄를 지어도 악령들과 무관하다는 것인가요?
신자가 점을 쳐도 악령과 무관하고, 은연 중 우상숭배를 해도 악령과 무관하고, 신자가 점성술 용 조디앸(천궁도), 띠점, '운세보기'를 하고 타로카드를 놀아도 악령과 무관한지요?
신자가 요가를 하고 비성경적인 관상기도를 하고 미로명상을 즐겨도 악령과 전혀 무관한지요?
검증 없는 온갖 이상한 영성을 받아 들이고 관련 도서를 읽으며 '삼매경'에 빠지고 그런 집회에 적극 참여하면서도 악령들과 전혀 무관한지요?

예수 믿고 나면 뭘 해도 악령과는 결코 상관이 없다는 그런 헛 믿음을 가르쳐 주는 학자나 '목자'들은 과연 어떤 목자들인지요? 무지하고 무책임한 삯군들은 아닌지요?

주님께서는 비신자는 둘째 치고라도 싸탄의 노예가 된 신자들의 결박을 풀어 주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참된 섬김의 일환이요 참된 금식의 일환입니다.

여기서 잠시..금식이 뭔가요?
금식이라면, 우리는 거의 무조건 '일부러 밥 굶기'를 연상합니다.
그러나 금식은 단식이 아니지요. 성경은 [금식=단식]이란 조리법을 제공해 주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금식이란 본래, "좋아하는 음식을 삼간다"는 뜻이 우선적입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가 바빌론의 일반 음식을 거부하고 채식으로 살아갔던 것이 올바른 금식의 표본입니다.

"금식을 해도 물은 마셔야 한다"는 말들을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금식인가요? 물도 밥도 안 먹는 게 진짜 금식인가요? 밥은 안 먹고 물만 마시는 게 진짜 금식인가요? 온종일 또는 그 이상을 하는 것인가요? 한 끼만 해도 금식인가요?
아니면..?

금식은 기간이 다양하지만, 방식 역시도 다양합니다.
약한 사람들은 금식하다 힘들면 기본적으로 버틸 힘을 내기 위해 가벼운 무엇이라도 먹어야 합니다. 물은 기본적이고, 주스나 미음, 오트밀, 가벼운 야채나 포도 같은 과일 등이 그 예입니다. 정 힘 들어도 단식을 하면서 끝내 버티는 게 올바른 의미의 금식이 아닙니다. 금식은 준비와 뒷바라지도 잘 해야 합니다. 금식을 잘못해 현장에서 또는 후유증으로 숨지는 경우도 과히 드물지 않지요.
성경은 [금식 = 단식]을 정해진 금식 공식으로 제시한 바 없습니다.

아무튼 이런 금식은 우리의 몸에 유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금식의 본뜻을 망각하거나 무시한 금식은 아무 금식 가치가 없습니다. 자신이 금식한다고 요란하게 선전홍보하고 자랑하는 외식적인 금식은 더구나 그렇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여느 평상인처럼 수색 없이, 외양을 반듯이 행동하라고 하십니다.   

더구나 오늘 본문에서..하나님은 그런 금식에 곁들여 그분이 기뻐하시는 참된 의미의, 영적, 정신적인 금식을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 흉악한 결박을 풀어주고 멍엣줄과 동앗줄을 끌러주며 온갖 멍에를 꺾어주는 섬김의 사역을 해야만 참 금식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교회에는 적극적인 섬김 사역을 통한 참된 금식이 필요합니다.

티엘티 독자들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에 참여할 수 있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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