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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비평/음악

간주곡과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무대              

김삼
 
학창 시절부터 흔히들 즐기던 기악곡들 가운데 한 장르가 '간주곡'일 것이다. 요즘은 CD, 유튜브, 모바일(핸드)폰 등으로 발달된 안방/휴대 음악실이 됐지만, 옛날엔 라디오나 음악감상실 등에서 딴 기악곡들과 함께 간주곡도 자주 들려 주었다.  

간주곡이라는 음악용어는 인털류드(Interlude)와 인테르메쪼(Intermezzo)가 있는데, 둘은 뜻이 거의 같아 교용되기도 하지만, 후자는 특히 작품의 큰 두 부분 사이 또는 오페라 등 긴 음악의 막간(=막 사이) 또는 중간에 끼워 넣은 비교적 짧은 기악 삽입곡을 가리킨다. 듣기에 부담 없어 독립적 레퍼토어로 자주 연주되기도 한다. 

이런 간주곡들 가운데는 듣기에 매우 아름다운 것들이 더러 있다. 다음은 이탈리아 오페라의 간주곡들만 모아 놓은 CD 광고 사이트인데, 각 간주곡의 일부만 샘플로 들을 수 있다. 



들을 때마다 늘 마음이 확 풀리는 듯한 간주곡이 하나 있다면, 피에트로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간주곡이다. 오페라도 연주되지만, 간주곡만도 매우 자주 연주/녹음된다. 독립 연주곡,/감상 음악으로도 훌륭하기 때문이다. 악기 중엔 오르간도 포함돼 있다. 

음악도 듣고 눈요기(?)도 할 겸 유튜브의 몇몇 연주 동영상을 나열해 보면..(혹 주변 게시물이 방해가 되면, 동영상 아래쪽 메뉴의 맨 오른쪽 '전체화면' 아이콘을 클맄하면 됨. 되돌아갈 때는 Esc. 키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파워풀한 필하모니아 연주(1954년) ->  
   레너드 번스타인의 정통적 연주(1970년. 메트로폴리탄오페라하우스). 하프 소리가 두드러짐
     
-> 
   1996년 라벤나 축제에서 리카르도 무티가 볼로냐시립극장 관현악단을 심혈을 기울여 가며
     지휘 
-> 
   노 대가, 조르주 프레트르가 프랑스 국립교향악단을 섬세하게 지휘(2009년, 옥외. 매년 8월 프랑스 남부 오랑주의 고대 로마 원형극장에서 열리는 레쇼레지에도랑주 음악제에서 연주).  -> 
   로린 마젤이 미국에서 이탈리아 교향악단을 이끈 앙코르 곡. 낭만적이기보다 거의 고전적인 연주. ->  
   2001년 창단된 대만 에버그린(長榮)교향악단(ESO)을 초대 지휘자 림케치앙(林克昌)이 이끈 연주. 현대 현악의 포스가 느껴짐. ->    
   현재 독일 마그데부르크 극장 음악감독인 대만 태생의 일본계 지휘자, 킴보 이시이-에토의 멋진 (NHK?)지휘/연주. (해석은 별로 두드러진 데가 없음). -> 
   작곡가 마스카니 자신의 1940년 지휘/연주(밀라노 스칼라 오페라단). 속도(템포 루바토), 일부 다이내믹스 등 해석이 자유롭고 강렬. (오르간 바탕소리가 장중) ->
   작곡가 자신의 피아노 연주(당대 녹음기술 탓?에 셈여림이 약함). -> 


이 간주곡은 마치 속삭이듯 여린 소리로 비교적 고성부의 화음이 장식적으로 지속되다 이윽고 시원하고 유장한 가락이 투티(합주)로 강물처럼 흘러나오면서 오르간의 장중한 바탕화음과 하프의 아르페지오 분산화음이 받쳐 주는데, 끝 부분에서 최고음에 계속 미련을 두듯, 매달리듯 이어지면서 되풀이되는 절정은 마치 영원을 그리기라도 하는 느낌이다. 

어릴 적 그 언제쯤 처음 이 곡을 듣기 시작했는지는 모르나 그 감동적인 아름다움에 정말 감탄하곤 했는데, 순수기악곡으로서 지금 들을 때의 정서도 그 때와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늘 독립 기악곡으로만 생각하다가, 언제인가 정작 모곡(母曲)인 오페라의 내용을 알고는 퍽 놀랐다. 너무나..세속적이어서다. 

여기서 필자는, (오페라) 간주곡과 그 모곡인 오페라의 연계를 통해, 세속음악에 대하여 크리스천이 자신의 가치관을 가누는 동기가 나타난다고 말하고 싶다. 미/아름다움/예술에 대한 크리스천의 가치관과 표준/잣대는 필리포서(빌) 4'8에 담겨 있다고 늘 느낀다.

오페라에 나오는 음악들은 아름답지만 그 줄거리나 분위기의 타락성/세속성에 신자인 우리는 새삼 놀라곤 한다. 가끔 박재훈의 '에스더'나 올해초 한국서 공연된 '손양원'처럼 자못 건전하거나 경건하기까지 한 오페라도 있지만, 세속 오페라 치고 거룩한 냄새가 나는 것은 드물다. 거의가 다 "둘이 사랑하는데 경쟁자가 나타나 싸우다 죽었다" 식의 천편일률적인 줄거리들이 많다. 3-4막 길이의 지루함을 달래고 청중을 만족시키려고 온갖 극적인 줄거리/스토리에다 극적인 대화, 극적인 음악, 극적인 무대/배경/소도구/분장/의상 따위를 동원한다. 
 
대학 시절, 나의 스승은 이유야 어떻든 오페라를 'X페라'로 부르곤 했다. 오페라는 웅장한 서곡들, 최고의 표현과 기교의 결정체인 아리아들과 오페라의 대화인 레치타티보, 보석 같은 중간 기악곡인 간주곡 등이 있는 대작이지만, 그 줄거리들은 하나 같이 세속적이다 못해 퇴폐적이거나 거의 음란하거나 잔인한 내용들이 많다. 
그래선지 청중의 극적인 흥미와 감정을 폭발적으로 자극한다. 오페라는 순수히 세속인 청중을 위해 가장 세속적인 스토리를 세속 예술로써 미화한 공연문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오페라로부터 세속적 장면들과 연기를 빼 버린 종교적 오라토리오로 전환한 핸델의 삶이 흔히 바람직한 개종의 표본으로 취급되나 보다. 


아름다운 간주곡들을 들으면, 작곡가가 대본에 의거하여 등장인물들의 대화 중심으로 치밀한 상황을 전개하던 중 자신도 내용에 질리고 부담스러워 지겨워진(?) 나머지 한 번 큰 한숨을 돌리고 기분전환 하기 위해 쓴 것 같은 인상을 받곤 한다. 물론 간주곡이란 건, 꼭 오페라를 쓰다가 순서에 맞춰 쓰는 것은 아니고, 따로 악상이 떠오르면 적당히 쓸 수도 있는 것이다.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Cavalleria rusticana: '시골 기사도'란 뜻)는 마스카니의 (완성/초연된) 첫 오페라 작품으로, 1888년 밀라노 출판업자 에도아르도 손초뇨가 아직 오페라 작품을 올려보지 못한 젊은 작곡가들 상대로 단막 오페라 3편을 모집할 당시의 응모작으로서 대상에 올랐다. 

마감시한을 불과 두 달 앞두고 공모 사실을 안 마스카니가 친구인 시인/작가/문학교수, 지오반니 타르지오니-토제티가 시칠리 작가 지오반니 베르가의 동명의 단편/희곡에 기초, 동료인 귀도 메나스키와 함께 급조한 대본에다 부랴부랴 곡을 붙인 작품이다. 베르가의 베리스모(사실주의)가 오페라에도 묻어나 선구자 격이 됐다. 마스카니의 15개 오페라들 중 최고 인기작으로서 그의 생애 중 이탈리아에서만 무려 14,000여회 공연됐다.  

줄거리는 제대한 청년(투릳두)이 약혼녀(롤라)가 이미 동네의 잘 나가는 마차운전사(알피오)와 결혼한 사실에 분노, 동네 처녀(산투짜)를 꾀어 동침한다. 질투한 롤라가 투릳두와 간통한 뒤 산투짜를 견제하다 결국 산투짜의 폭로로 모든 것이 탄로가 나자, 알피오가 투릳두에게 결투를 신청, 투릳두가 숨져 간다는 내용이다. 참고 그래핔 ->
오페라 전반에 걸쳐 배경이 마을과 천주교 성당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무대는 지나칠 정도로 아예 노골적으로, 마냥 카톨맄 냄새를 피우기도 한다. -> 


위의 간주곡 말고도 우리의 귀에 늘 익은 간주곡 하나가 '마돈나의 보석들'(I Gioielli della Madonna, 독일어: Der Schmuck der Madonna), 또는 '성모의 보석'이라는 오페라의 제1막을 위한 간주곡이다. 독일-이탈리아 두 혈통을 받은 작곡가, 에르마노 볼프-페라리의 "주옥 같은" 소품이다. 
이 오페라의 줄거리는 비극이지만 볼프-페라리는 희극 오페라에 주력한 사람이다. 그런 작곡가가 가장 애상에 넘친 곡으로 유명한 작품을 썼다는 것이 좀 역설적이다. 
볼프-페라리는 본래 아버지처럼 화가가 되려고 미술수업을 닦다가 뮌헨에서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어느 정도 음악공부를 하고는 고향 베네치아(베니스)로 돌아와 첫 오페라를 써서 공연했지만 실패하자 독일로 되돌아가 다른 버전으로 성공한다. 
그러다 베네치아 출신 극작가 카를로 골도니의 희곡들을 계속 오페라로 옮기면서 대성하지만, 세계 1차대전은 그에게 커다란 환멸과 고통을 안겨 준다. 그후 잠시 오스트리아에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다시 귀국, 세상을 뜬다.


이 간주곡은 처음부터 애수가 어려 애잔하지만, 귀가 시릴 정도의 고음현의 옥타브 병행 가락이 전반적으로 지속되는 통에 대체로 날카롭고, 듣는 마음이 과히 편하지가 않다. 현재는 오페라 전체가 연주되는 예는 거의 드물고, 두 간주곡들만 자주 연주된다. 3막의 다른 간주곡은 대조적으로 매우 쾌활하다. 

이 곡 역시 학창 시절엔 제목이나 배경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다만 애상적인 가락에 젖어 들어 즐겨 듣곤 했지만, 제목이나 오페라의 스토리를 알고 난 뒤로는 느낌이 덜(dull)해졌다.  

   ♪ 런던 교향악단의 연주 ->
  ♪ 볼프강 자발리쉬가 도쿄에서 NHK 교향악단을 지휘한 연주 동영상(1988년). 지휘자의 표정과 손동작이 모두 예술(^^)  -> :
  ♪ 바바리아 라디오방송악단(지휘: 얀 콭지어)의 연주 -> :


'마돈나의 보석들'은 굳이 마돈나를 찬양하는 내용이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 있는 내용도 있지만, 아무튼 카톨맄적 배경이 매우 강하다. 

대다수의 오페라가 그렇듯 이 작품도 비극이다. 어머니(카르멜라)가 아들(제나로)이 어릴 때 서로 돌봐줄 오누이가 되라고 데려온 입양소녀(말리엘라)가 크고 나자 제나로가 누이를 맘 속으로 사랑한다. 그러나 말리엘라를 짝사랑하는 동네 청년(라파엘레)이 '마돈나 축제' 때 그녀에게 접근하여 마돈나상에 박힌 보석들을 훔쳐 주겠다 맹세한다. [ 마돈나 축제를 배경으로 한 점에서 전자-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공통된다. ]
처녀는 청년과 함께 보석을 갖고 떠날 상상을 하며 황홀해 하는데, 얼떨결에 그녀가 한 고백을 들은 제나로는 진상을 알고 가서 자신이 보석을 훔쳐다 준다. 두 남자는 서로 결투를 하게 되고, 마돈나 상의 보석을 보여준 처녀는 저주를 안고 바다에 몸을 던졌고, 의붓오빠는 칼로 심장을 찔러 자살해 버린다. 

한 마디로 회개도 구속의 복음도 없는 황당한 스토리다. 이처럼 근대 오페라 내용 다수가 카톨맄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매우 세속적이다. 이것은 천주교가 (수사/수녀/수도원의 인상처럼) 세속을 초탈한 종교같이 보이면서도 중세 때와 다름 없이 세속에 깊이 결부된 종교임을 시사해 준다.  


얼마 전 도시 변두리의 한 작은 교회에 들렀다가 한 소녀가 휴식 시간에 교회당 안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귀에 익은 오페라 아리아였다. '오 미오 바비노 카로'(오 나의 사랑하는 아빠)라는 유명한 곡이다. 지아코모 푸치니가 쓴 그의 유일한 희가극, '지안니 스키키' 도중에 스키키의 딸인 여주인공 라우레타가 부르는 짧은 노래다.

어리고 여려 보이는데도 목청도 썩 좋아서 알고 보니, 현재 음대 성악과를 다니고 있단다. "그 노래는 아름답지만, 내용은 썩 좋지 않지요" 하며 웃었더니, "맞아요. 그래요, 정말." 하고 맞장구를 쳤다. 가락이 귀엽고도 유장하여 널리 불리지만, 내용은 놀랍고 끔찍하기까지 하다. 여주인공이 동네 청년 리누치오를 사랑하는 나머지 상대 가문에 대한 아버지의 반감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정말 사랑하니 결혼을 하겠다며, 포르타 로사로 가서 결혼반지를 사러 가니 아빠가 반대하고 끝까지 말리면 폰테 베키오에 가서 투신자살하겠다면서 제발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일종의 위협적 탄원이다. 
흥미롭게도 지오바키노 포르자노가 쓴 대본은 단테의 '신곡'('연옥'편 칸토 XXX)에 나오는 한 사건에 기초한 것으로, 13세기에 피렌체에서 발생한 실화에 근거한 것이다.  


오페라가 'X페라'라는 말은 혹 지나친 혹평일는지 몰라도, 파울이 과거의 모든 것들을 똥처럼 버린 사실들은 신자로 하여금 오페라를 X처럼 여기게 된다. 

간주곡이나 아리아의 곡조는 아름답다. 복잡한 세속사를 담은 줄거리/대본/가사 때문이 아니라 그 음악 때문에 잠시 기분전환도 된다. 그러나 세상의 아름다움일 뿐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연결되지 못한다. 그래서 오페라에 탐닉하지 말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