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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관상영성

관상 선구자-광야교부들은 누구?

 


[변증/분별을 위한] 등댓길 연구소 뉴스 최신호(12월4일)

중세 초기에 중동 광야지대에서 지내던 기독교인들이 있었다. 소위 '사막교부' 또는 '광야교부'로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전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하느님께만 삶을 투신할 목적으로 이룬 작고 외딴 공동체였다. 관상기도의 유래는 이 수사들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들은 만트라를 기도의 도구로 활용한 시초였다.

"이들 초기 수사들의 명상 행습과 규율은 동양 힌두교/불교 금욕주의자들의 그것과 매우 비슷했다. 예수님과 그 가르침이 그들의 영감이기는 했지만 이들이 하느님을 '찾기' 위해 하는 명상 테크닠들은..동양에서 빌렸거나 어쩌다 자연발생적으로 동일한 것을 습득하게 된 것이라고 한 명상학자는 말했다. (레이 영엔 '빗나가는 시대' 42쪽).

광야교부들은 하느님에 대한 갈망만 진지하다면 무엇이든 하느님께 도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믿었다. 힌두교도들이 그들의 신에 도달하는 방법이 먹혔다면 기독교적 만트라도 예수께 사용될 수 있다는 식이다.

광야교부들은 마치 야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싶으면서도 주님의 지시를 경청하거나 옳은 것을 하기를 거부했던 카인과도 여러 모로 흡사하다. 그들의 열정과 헌신은 탓할 수 없겠으나 분별의 결핍은 확실히 탓할 수가 있다.

브레넌 매닝과 리처드 포스터의 신비적 유산 사이에 '영적'인 나무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인도로부터 알렉산드리아, 광야교부들까지, 토머스 머튼과 자신들까지, 그리고 그들을 통해 (관상을 선호하는) 독자들까지.

하지만 올바른 그림은: 성삼위 하나님으로부터 그분의 거룩한 대언자들, 사도들까지..그리고 우리에게까지다.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들 같이 점을 치며 이방인과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하였음이라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이사야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