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분별과 검증/관상영성

성경과다치중? 모얼랜드의 관상영성

사용자 삽입 이미지

'등댓길 뉴스' (1월말)

J. P. 모얼랜드(James Porter Moreland)는 남가주 바이올라대학교 탤벝신학교 교수(철학)이자 '서밑 미니스트리'(대표 데이빋 노블)의 강사이기도 하다. 뛰어난 학적 재능으로 대학시절부터 이름을 떨쳤고, 수많은 저서를 냈고 200여 대학교에서 강의를 해 왔다.

'성경우상숭배'?

미 교계 종합언론 크리스채너티투데이에 따르면, 그는 최근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에 너무 치중한다"는 문제 발언을 한 뒤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져 뜨거운 감자 위에 놓여 있다.

지난해 늦가을 복음주의신학협회(ETS) 모임에서 한 그의 발언을 보자.

    "북미주 복음주의 공동체의 실제 관행 속에는 거짓되고 불합리하고 크리스토의 대의에 해로운 방향으로 성경에 지나치게 치중(over-commitment)하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천박한 정신을 조성, 주 예수께 대한 제자의 도리를 기괴하게, 그리고 흔히 무지하게 왜곡한다. 문제는, 성경이 하나님의 지식, 도덕, 그리고 관련된 수많은 중요한 항목들에 대한 유일한 자원이라고 보는 생각이다. 따라서 성경은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권위로 취급되고 있다."

이같은 '성경우상숭배'(biloatry) 개념은 이미 수 년 전 관상주의자 브레넌 매닝도 비슷하게 노출한 바 있다. (매닝은 범신론적 신비가 토머스 머튼, 윌리엄 쇄넌 등에게서 많은 아이디어를 딴다). [그는 패러처치 '네비게이토'가 발행하는 매거진 '제자저널'(Disciple Journal)의 단골 기고가이기도 하다.] 

     "내가 깊이 골치를 앓는 문제는 성경우상숭배라고 밖에 부를 수 없는 기독교문화이다.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을 하나님을 가리키는 지표보다는 하나님 자신으로 여긴다. 하나님은 가죽 겉장으로 된 책 안에 갇혀 계실 수 없다. 나는 마치 성경 쪽들의 면밀한 정독만이 하나님의 생각을 보여 주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밝혀 주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곁에서는 끔찍한 두드러기가 돋는다."(브레넌 매닝, '예수의 서명', 188~189쪽).

그러나 성경을 보라. 뭐라고 말하는가?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티모테B 4:1~5 이하 개역 개정)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팀B 3:16,17).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페트로B 1:19~21).

모얼랜드의 관상영성

모얼랜드는 게다가 다른 '명성'을 떨치게 됐다-관상/떠오름 영성 증진에 나선 것.  

모얼랜드는 자신의 책-'왕국의 삼각대: 크리스천 정신의 재 발견, 혼의 재 정비, 영의 힘 회복'(2007년)에서 기독교엔 복음주의 공동사회의 성숙을 위한 집합적/개인적인 세 가지 필수 요소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바로 둘째 요소가 영적 영성(spiritual formation)이다. '영성훈련'이라고도 불린다.

모얼랜드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바이올라대학교 영성연구소 존 코우 디렉터에게 사의를 표했다. (모얼랜드는 바이올라대 '그 해의 시니어 클래스 교수'(1992~93년)로 선정된 적도 있다). 그는 코우가 자신을 "영적 형성과 내적 삶으로 이끌어 줬다"고 말했다. 코우의 프로그램은 관상영성코스, 수련회 등을 제공해 왔다.

모얼랜드는 '영적 형성' 강조를 위해 유명 관상가 댈러스 윌러드에게 서문을 부탁했다. 책 13쪽에서 모얼랜드는 윌러드가 25년간 자신의 멘토였다고 밝혔다. 바로 이 점이 모얼랜드가 기독교 공동체에 필수적이어야 한다는 '신앙'의 까닭을 설명해 준다.

이 책 제6장에서 모얼랜드는 '참 자아', '헛 자아'에 관한 토론 속에 몰입한다. 그는 신비주의성이 강하면서 신비적 행습을 통해 참 자아(완전자아)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은 토머스 머튼, 마틴 부버 등을 반향한다.

이어서 신성은 이미 우리 내부에 있고, 그것을 인식하는 데 우리를 도와 주는 것이 신비적 행습이라는 토머스 머튼의 사고 과정을 언급한다. 트래피스트 수사였고 달라이 라마와도 친분이 있던 머튼은 이렇게 말했다.

     "인류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영광스런 운명이다..나는 지금 우리 모두가..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참 모습을 스스로 볼 수만 있다면..우리가 서로를 향해 몸을 굽히고 경배하게 되는 큰 문제가 생기리라고 추정한다..우리 존재의 중심에는 죄와 환각에 때묻지 않은 한 '무점'(a point of nothingness)이 있다..이 작은 점..이 우리 속에 있는 하느님의 순수한 영광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있다."(유죄성 대기자라는 착각들, 157~158쪽).

모얼랜드는 특히 카톨맄 신비가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예수회 창시자)의 저술을 추천하면서 그런 신비주의적 행습들이 우리 내부에 "신적 성분을 분별해 내는 능력을 함양시켜 준다"고 주장했다.

반면 라저 오클랜드는 그의 '미완 신앙'에서 이그나티우스 로욜라에 대해 이렇게 논한다. "이그나시우스는 떨어져 나간 형제들을 카톨맄교회로 되돌릴 목적으로 예수회를 창설했다. 그와 그의 무자비한 무리들은 이 목표를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았다."(116쪽).

'메타모어파' 웹사이트엔 "이그나티우스 식 기도의 열쇠는 상상이다..이그나티우스식 명상은 여러 가지 핵심 영적 훈련: 렉치오 디비나, 이그나티우스 관상, 회상, 의식검증 (양심 검증이 아님에 유의)이 포함된다"고 썼다. 그 사이트엔 윌러드/포스터/코우 등 관상가들의 비디오가 있다.

모얼랜드는 독자들에게 '광야교부들', 헨리 나웬, 리처드 포스터 등에게서 "영혼에 관한 깊고 풍부한 지식의 보고"를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153쪽). 아닌 게 아니라 이 셋은 궁극적으로 동양식 명상을 지향한다. 모얼랜드가 포커스온더패밀리(가정초점, FOF)를 위해 만든 4부 시리즈에서 그는 "카톨맄 피정(수련)센터들이 보통 독거 수련에 이상적이다"고 추천까지 한다. 

모얼랜드는 왕국을 위한 삼각대의 세 번째 요소에서, 하나님의 왕국 또는 왕국의 복음(172쪽)은 표적/이적/기적으로써만 올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왕국의 기적적 힘의 회복'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얼핏 성경적인 것 같지만, 이 '삼각대'의 다리 하나가 관상 영성임을 미뤄 볼 때 실로 위험천만한 말이다. 만약 그 관상 중재자들의 영역이 '친숙령'들로 채워져 있다면 결과는 뻔하기 때문.

모얼랜드는 ('예수의 길의 나그네들'로 묘사한) 수많은 신자들이 지쳐서 삶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한다며 그 해답은 날마다 가세되는 새롭고 혁신적인 움직임 가운데 왕국 삼각대을 지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모얼랜드는 결론 짓는다:

     "예수님의 길로 더욱 깊숙이 진입하면서, 왕국 삼각대가 귀하의 삶과 (귀 교회의) 전략의 중심에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첫째 다리는 진리, 지식에 대한 사려깊은 감각과 삶에의 이런 근접을 위한 방향을 제시해 줍니다. 둘째 다리는 여정에 열정을 더해 주고..짐을 내려 놓게 해 줍니다. 셋째 다리는 신앙과 확신을 얻어 하나님을 위하여 더욱 더 모험을 하게 하며, 그 분을 하나 뿐인 센스 있는 삶의 플랜의 동역자로서 기대하게 만듭니다. 이것이 우리의 문화가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별 볼 일 없는 것에다 삶을 선점 당하여 낭비하지 마세요. 저와 함께 이 혁명에 동참합시다. 이것은 귀하의 기회입니다. 이것을 꼭 잡으시고 그것을 기뻐 하십시오."(199쪽)

우리가 대단한 영적 일깨움의 언저리에 있다는 식의 이런 과장은 뉴에이저들의 말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뉴에이지 저술가 게리 주케이브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변화가 우리 위에서 우리 주위에서 우리 가운데로 밀려 들고 있다. 새로운 인간의식이 수백만 개인들 속에서 하나씩 탄생하고 있다..우리는 미답 지대의 개척자들로서, 변화하는 내적 경험들을 통해 새로운 인간성 탄생에 참여하고 있다. 이 위대한 변화는..우리에게 이전엔 없었던 포텐셜을 제공한다. 우리의 인식은 오관의 한계 저너머로 확장돼 간다..이 새로운 관점, 다감각적인 관점을 통하여 우리는 그 무엇 또는 그 누구로부터 떨어져있지 않으며..각 개인은 자신의 경험에 어떻게 반응할 지 책임이 있다.
우리들을 자신의 창조자로서 새롭고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까지, 얼마나 오랫동안 자신들을 경험의 연민에 맡겨 놓은 어쩔 수 없는 바보들로 보도록 선택하느냐는, 각 자 결정할 일이다..떠오르는 다감각적 관점을 갖고서, 각 개인은 자신이 세계에 무엇으로 기여할 지에 대한 책임이 있다. 남들이 얼마나 기여하든 간에..당신을 그곳으로 데려갈 그 여정을 언제 시작할 터인가?"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은, 지금 사회(그리고 불행히도 기독교계 상당 부분)가 나날이 더 신비주의적이 돼 가고 대 규모의 속임수를 위한 매개체가 제공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기 바란다. 성경이 경고하듯, 예수님의 재림 전에 악령들이 지어낸 교리들을 통한 큰 배도가 있을 것이다(티모테A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