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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이슈/물음과 답(Q.A)

구약성경을 읽다가 너무 놀랐어요 (물음과 답)

Q / 물음

안녕하세요. 
저는 초신자 여성인데요, 구약을 찬찬히 읽다가 너무 놀랐습니다.
천사를 겁탈하러 온 나쁜 무리들에게 자신의 딸을 강간하라고 넘겨 주는 내용이 있더군요(창세기 19장).

이런 것을 하나님은 좋아 하시나요? 하나님을 믿는다는 롯이라는 사람은 왜 저런 일을 했나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면 되지, 왜 딸을 넘겨 주나요..자신의 물건처럼? 이런 행동을 왜 타이르지 않나요?
그래서 계속 읽어 가는데요...사사기에 또 나오더라구요. 첩을 뺏으러 오니까 강간하라고 내주고 시체를 12 토막을(전 이걸 읽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내서 12지파에게 보내 주었다고.
거기다 전쟁을 하면 여자를 잡아 오거나 겁탈해도 내버려 두셨고요. 처녀가 아니면 전부 죽이라고 까지 하시더군요 ㅠㅠ...

왜 성경은 여자를 이렇게 다루도록 내버려 두지요?
매춘에 관해서도 매춘부에 대해서만 금지하고 있지, 매춘부에게 가는 남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더군요.

거기다 성경은 일부다처제도 인정 하시는 거 같고...첩 제도도 그렇고.
하나님은 문화상대주의자이신가요? 혹은 여자가 선악과의 꾐에 넘어 갔기에 남자보다 덜 사랑하시나요?

아...바보 같은 질문인걸 알지만, 신약과는 너무다르게 무시무시한 구약을 다시는 펴지도 못할 거 같습니다. 저는 신약의 구원 메시지를 통해 믿음을 얻게 되었는데, 구약을 읽으려니 도저히 이런 것은 신의 말씀이라고 보기가 너무 힘들달까요...무섭거든요.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요?



A /

성경에 대한 의문을 갖고, 티엘티를 방문해 주신 데 대해 감사합니다.
질문 내용이 적지 않아서 답글 역시 좀 길어집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비록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답합니다. 구약 성경을 처음 읽을 때, 충분히 갖게 될 수 있는 질문이라 생각됩니다.
님께서는 퍽 건전한 도덕관과 상식적/논리적 의식을 지니신 분으로 판단됩니다.

우선 그 무엇보다, 갓 믿는 분들이 성경에 대한 첫 인상을 올바로 가진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 드립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이 '첫 인상'이 님의 영혼의 미래를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

님의 투철한 도덕의식에 기초한 이 '첫 인상'을 곧 성경에 대한 모든 것의 판단 잣대로 삼기보다, 님의 영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고 그 구원의 완성을 향해 님을 이끄시기 바라시는, 바로 성경의 실 저자(!)이신 성령님, 곧 하나님의 영의 뜻이 더 중요함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님의 그 선한 도덕의식을 주신 분도 바로 창세기 1장에 서술된 대로 당신의 형상과 모습대로 사람을 빚으신 그 분이심을, 더 나아가 님의 놀람이라는 그 첫 인상을 혼자선 어쩌지 못해 이곳 티엘티를 찾게 해 주신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많은 분들이 성경에 대한 첫 인상을 잘못 갖는 탓에 생명의 기회를 놓치고 떠나거나 자칫 '안티'가 되곤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향한 이 '첫 단추' 내지 단초가 중요합니다. 님이 내비치신 대로, 갓 생긴 그 첫 믿음을 소중하게 생각하신다면 섣부른 실망과 낙담은 금물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갖기 시작하셨다면 성경은 '왜'(?)라는 의혹의 색안경보다는 믿음의 눈으로 읽어야 합니다. 이해하기 위해 믿지 않고, 믿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한다면서 "왜?"라는 눈으로 읽기 시작하면,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가 다 의문투성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님은 도덕적 안목으로 보시지만, 과학적 안목의 잣대를 가진 사람은 창세기 1장 창조 기록에서부터 성경은 "비과학적"이라고 선언할 것입니다.

'나는 왜 크리스천이 아닌가?'라는 책을 지은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슬 경이 기독교를 떠난 결정적인 요인이 뭔지 아십니까? 예수님이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사건 탓에 "잔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도덕 잣대의 수위가 예수님보다 좀 더 높았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는 무신론 변증가로 돌아섰습니다. 믿음이 아닌 의혹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님은 구약과는 다른 신약성경의 구원 메시지에서 믿음을 얻게 되셨다고 했는데, 알고 보면 신약에서도 많은 의문이 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동정녀(童貞女)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는데, 당시 율법의 잣대로서는 처녀가 아기를 배면 돌에 맞아 공개처형 돼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어떻게 하나님이 이렇게 잔인할 수가..?"라고 물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사춘기 시절 가족예배 때 성경 돌려 읽기를 하면서 구약 성경의 '아가'(雅歌)를 대하면, 낯이 뜨거워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왜 성경엔 이런 야한 얘기가 들어 있나?"라는 의혹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의심하진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봐도, 수많은 비도덕적인 사건들이 안에 꼬여 있습니다. 예수님의 선조들 가운데는 도저히 우리 도덕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방식으로 대를 이어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며느리가 성매매녀로 가장하고 시아버지와 동침해 낳은 아들도 있지요. 왕 다윗과 솔로몬 등은 님이 지적하신 대로 일부다처를 누린 대표적인 사람들이었고, 더구나 다윗이 비합법적인 간통 사건 이후에 그 왕후와의 사이에서 다시 얻은 아들이 솔로몬입니다.

뭘 말해 줍니까? 이런 적나라한 인간세계 속에 하나님이 인간(예수님) 되어 오시려고 그 가운데서도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계보를 면면히 이어 가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다고(신약 히브리서 11:6). 도덕은 사람마다 오십 보 백 보이기에, 믿음 없이 도덕의식만으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습니다. 러슬의 도덕 수위와 님의 도덕 수위는 또 다릅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도덕 수위에 맞춘 성경이어야만 믿음의 대상일 수 있을까요? 평균 수위가 뭡니까?

소중한 믿음을 가지셨으면, 그 첫 믿음, 잃지 말아야 합니다! 본래부터(!), 태초부터(!) 님보다 더 거룩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믿으셔야 합니다. 왜 성경이 감출 것을 적당히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노골적으로 다 드러냈는지부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음을 믿으셔야 합니다. 님의 영혼을 위하여.

님은 창세기 19장의 사건을 지적하셨지만, 창세기를 포함한 첫 성경 5권이 드높은 도덕의식을 지녔을 법 한, 율법의 전수자 모세가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입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기에 자신의 도덕적 잣대로 판단하지 않고 계속 믿음으로 기록해 나아갔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읽는 우리도 믿음의 눈으로 읽어야 하지요.

성경은 인간에게 있던 일들을 숨김 없이 알려 줍니다. 숨기지 않고 진실을 진실대로 곧이 곧대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참(진리)과 선, 사람의 거짓된 모습과 죄악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특히 구약 성경을 처음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경악을 던져 줍니다.
성경에 대한 첫 인상을 잘못 가진 탓에, 표면상으로는 신자 같았지만 오히려 잘못된 기독교관을 갖게 된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중 받는 헬렌 켈러 여사입니다. 켈러는 신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구약의 하나님을 증오와 심판과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는 이중적/이원론적 신관을 평생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기독교가 아닌, 스베덴보리(스위든볽) 파인 '새 교회'의 간판 신자가 됐고요. 매우 불행한 일이지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유일한 창조자, 최고 통치자이신 가장 높은 분(지존자)이시고,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거룩하시고 사랑과 동시에 정의에 넘치시는 분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과 별 다름 없는, 여느 신화 속 신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유일 절대의 신이십니다. 성경은 그 분의 말씀인 계시의 기록이고요. 그 분이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육화(성육신)하여 내려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요.
그 분은 사랑과 동시에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을 굳히고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기본적인 구원 지식 외에는, 거듭난 사람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영감으로 읽을 때, 바로 깨달을 수 있다고 성경 자체가 일러 줍니다.

    "천사를 겁탈하러 온 나쁜 무리들에게 자신의 딸을 강간하라고 넘겨 주는 내용이 있더군요."

-> 천사의 능력을 모르고 단순히 행동한 롵(딴 표기 '롯')의 실책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실 리가 없지요.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 이야기이고, 당시 최악의 도시 소돔/고모라의 속이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롯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당시 세속의 죄악상을 날마다 통탄하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베드로후서 2:7-8). 님께서 부도덕하게 보시는 바로 그 롯이 하나님 앞에선 의인이었다고 베드로 사도는 말합니다. 믿음 때문이지요. 믿음 없이, 사람은 누구나 죗덩어리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님이나 저나.

롯은 자신이 영접하고 엎드려 절하고 '내 주님'이라고 부른 그 거룩한 천사들을 강간하러 온 모습을 보고 너무나 황급하고 당혹한 나머지 자기 딴엔 천사들을 보호하려고 그런 행동이 나온 것입니다.

천사들의 능력을 미처 몰랐지요. 당연히 선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그런 롯의 행동을 좋아하실 리가 없지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면 되지 왜 딸을 넘겨 주나요..자신의 물건처럼? 이런 행동을 왜 타이르지 않나요?"

-> 과연 님의 말처럼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면 그들이 말을 "들을" 상황이었을까요? 롯이 딸들을 내 주어도 그들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정도로 사악했습니다. 그래서 선하신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급전을 시키고 롯의 얄팍한 '도움'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해결하신 겁니다. "행동을 타이르는" 정도가 아니라 강제로 롯과 가족을 보호하신 겁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을 살리려면 가족이 빨리 성을 떠나야 하기에. 그 정도로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신 겁니다. 하나님의 이 해결의 권능과 사랑의 행동은 눈에 안 비치고, 오직 롯의 도덕적 상태만 눈에 보이십니까?

이왕 롯 이야기가 나왔으니 더 얘기하죠.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소돔/고모라를 탈출한 롯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음을 하고 두 딸과 교대로 동침하여 후손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님께서는 당연히 "에구, 어쩜 이런 일이?! 왜 좀 더 기다렸다가 딴 남자를 찾아보지, 망칙하게..." 하실 테지요.
그러나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지요. 하나님은 그런 부도덕한 후손도 오랫동안 사랑하셔서 심지어 이스라엘로부터도 보호하셨습니다(창 19:37-38과 신명기 2:9, 19을 비교해 보세요).
하나님은 도덕적인 사람들만 사랑하시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 분은 모든 영혼들 가운데서도 믿음의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유부남과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당대 도덕 잣대로 돌로 쳐 죽이려던 사람들로부터 구하시고 용서하신 주님, 기억하십니까? 도덕 잣대로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옛날에 그렇게 돌로 쳐 죽임 당해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표준으로는 눈으로 음욕만 품어도 정녕 간음한 것이기에.

성경을 비웃다 못해 욕하고 저주하다시피 하면서 온갖 잣대로 긁어대는 '안티'들 자신이 다 속으로는 온갖 상상을 다하는 똑 같이 더러운 죄인들입니다. 그들의 도덕 수준이 성경보다 낫다면 얼마나 나은 걸까요? 더구나 제아무리 드높은 도덕정신을 부르짖는 점잖은 성현 군자라 한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 자신이 거룩하면 얼마나 거룩하며, 도덕스럽다면 얼마다 도덕스럽겠습니까? 그 분의 불꽃 같은 눈 앞에선 인간의 속속들이 숨은 모든 죄가 온통 발가벗고 선 듯, 송두리째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와 의를 힘입지 않고는 우리는 그냥 지옥불에 던져질 수 밖에 없죠.
그러기에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길이 없습니다. 공자, 노자, 장자, 석가모니의 드높은 도덕 수준이 하나님 앞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설령 살인/강도/강간질을 했어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는 게 기독교의 복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믿고 거듭난 사람들이 계속 그런 부도덕을 행하도록 놓아 두시지 않지요.

    "그래서 계속 읽어 가는데요...사사기에 또 나오더라구요. 첩을 뺏으러 오니까 강간하라고 내 주고 시체를 12 토막을 (전 이걸 읽고 무서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내서 12지파에게 보내 주었다고."

-> 이 역시 세상 죄인들의 이야기입니다(사사기 19장). 결국 전쟁까지 일어난 원인이 됐고요(사사기 20,21장 참조). 하나님은 그 사람이나 그런 행동을 괜찮다고 또는 그래도 거룩하게 봐 주셨다거나 하신 일이 없습니다.
바로 그 사사기에 뭐라고 돼 있습니까? 그 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기에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20:25, 참고: 17:6)?

그에 대한 책임이 인간들 자신에게 있지, 하나님께 있지 않지요. 성경은 하나님의 사역과 함께 인간사를 기록했을 뿐, 그 인간사 모두가 선하신 하나님께 책임이 돌려질 수 없습니다.

    "거기다 전쟁을 하면 여자를 잡아 오거나 겁탈해도 내버려 두셨고요.."

-> 우선 위 사사기 당시는(21장) 빈야민(벤야민) 지족 사람들이 거의 멸족할 처지였기에 그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한국이라고 없었겠나요? 성경 속 역사만 그런 게 아니지요. 그래도 이런 기록이 성경에 있다는 것만으로 모든 인간사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는 말일까요? 아니지요! 다 인간의 죄 탓이지요. 그래서 구세주님이 필요했던 것이고요.

그리고 구약 성경 곳곳에서 발견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만을 위한 신정(神政) 통치를 하셨다는 것이지요. 수 백만의 얼마 안 되는 선민(選民) 백성을 대대로 이어나가게 지키시려면 어느 정도 금하고 허용하시는 하나님 나름의 선이 있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쟁 때 이스라엘 쪽의 살육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모압/암몬 후손들은 지키셨지요.
하나님이 선민에게 허용하신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덕적인 원 뜻은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율법에 잘 나타나 있지 않나요? 그 율법이 세상 도덕이나 님 수위의 도덕에 비해 저급하거나 뒤떨어지던가요? 더구나 주님의 율법 해석은 어떻습니까? 하나님께는 눈으로만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고, 맘으로만 미워 해도 살인입니다.

이래서 중요한 것은 성경에 대한 믿음입니다. 성경의 일부에 대한 님의 도덕적 식견만으로 잣대를 삼아 하나님까지 판단하시는 실수를 범하시지 말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표준은 율법과 십계명이고 주님의 첫 계명이며, 님 자신도 그 표준 앞에서는 다 같은 죄인이었다가 주님을 통해 간신히 구원 받으신 거 아닐까요? 저도, 이곳의 누구도 마찬가지지만.

제가 이 긴 답글을 쓴 것은 제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님의 영혼이 소중하기 때문이지요. 죄와 죽음 가운데서 건져내어진 님의, 생명처럼 소중한 믿음을 위해서죠. 천하의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믿음만은 잃어선 안 됩니다.

성경을 나 자신의 안경으로보다는 믿음의 눈으로, 성령님의 영감이라는 안경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힐 수 있습니다. 나의 도덕적 잣대가 내 믿음보다 더 소중하고 귀할 수는 없습니다.

나 자신의 의와 도덕이라는 것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한낱 걸레 쪽 같은 것에 불과합니다. 도덕적 양심이라는 것도 창조주이신 그 분이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님을 위해 피를 흘려 주신 것이고요.
그래서 그 분의 의의 옷을 입게 된 거고요.

성령님께서 상처 받고 충격 받은 님을 믿음 가운데 이끄시고 위로하시고 도우시길 빌어 마지 않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혼의 닻처럼 단단히 붙잡고 오직 확신 속에 거하시길!

님을 축복하며, 은총과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