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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별과 검증/제임즈왕역(KJV) 성경

나는 왜 KJV를 번역하지 않나?




나는 왜 KJV를 번역하지 않나?


김삼



요즘은 가히 KJV(제임즈왕성경) 한글판의 춘추전국 및 제자백가 시대가 됐다. 

걸핏하면 너도나도, 저마다 KJV 번역의 '대가(大家)'로 나서서 기어이 또 다른 한글판을 내고 만다. 그렇게 해서 벌써 수많은 한글판들이 나왔다. 다양한 KJV 한글판들 가운데서 소비자의 눈길과 손길이 가는 대로, 또는 입맛 따라서 "골라잡아" 구입하고 읽을 수 있게 됐다. KJV 한글판 수집 취미도 생길 법 하다. 

 

이런 상황은 오래 전 예견되었다. 성경을 원문에서 옮기려면, 히브리어와 아람어, 그리스어 등을 거의 섭렵해야 하므로 한 두 사람이 하기 어려운 작업인 반면, 영문 성경 번역쯤이야 요즘은 국제상용어가 되어버린 영어만 잘 하면 무난히 할 수 있다고 생각되어, 그만큼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연 이게 바람직한가?



어찌 보면, 필자인 나도 웬만큼 KJV를 잘 번역할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신학을 전공했고, 취미이자 둘째 전공인 음악 때문에 히브리 음악 등 고대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구약학 쪽에 중점을 두었으며, 수십 년간 영어 번역을 해 온 데다 영어권에서 다년간 생활하면서 고전 영어를 포함한 다양한 영문을 접했기 때문이다. 특히 교계 미디어 면에서 그렇다. 


젊을 적 음악사를 공부할 때도 르네상스 이후의 노래에 사용된 영어 고문들을 심층적으로 접하였고, 중세 캐럴 등 고전 영어로 된 수많은 노래 가사를 직접 번역해 보았다. 보통 으레 원문으로 불리기 때문에 구태여 번역이 필요치 않은 벤저민 브리튼의 Ceremony of Carols(캐럴의 제전)까지도 까다롭고 난해한 고전 영어에 골치 아파 하면서 그 전체를 직접 한글로 옮겨 본 적이 있다. 


더구나 KJV는 신학교에서 주석학(성경해석학)을 배울 때 으레 대하던 것은 물론, 나의 결혼 때 친구에게서 선물로 받은 한 권을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 들고 가 늘 가까이 대했다. 다년간 다니던 미국인 교회마저도 주로 KJV를 애용했다. 젊은 층에서는 NIV도 물론 사용했지만. 인터넽이 제대로 발달한 뒤에는 1611년 초판도 자주 접할 수 있었고 물론 해독도 가능하다. 이런 나를 갖고 "당신은 KJV를 몰라." 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나도 한때는 KJV의 고전적 묘미에 푹 빠져 젖어들었다. 특히나 미국인교회에서 영언(=영적인 언어 곧 한글성경의 '방언')이 해석(통역)될 때면, "Thus saith(said) the Lord!"라는 힘차고 멋있는 선언이 앞뒤에 곁들여지곤 해서, 흡사 KJV 성구 중 하나 같이 들릴 때가 많았다. 그 고전미와 장중미가 은혜롭다고 생각했다. KJV가 최고의 성경으로 느껴졌고, 같은 교회 내에서 젊은 세대 상대로 NIV를 보급하고 가르치는 주일학교 교사들을 가끔 좀 열등하게 보기도 했다. NIV가 훨씬 눈/귀/입에 더 잘 붙는 나의 자식들에게도 KJV를 강조하여 그들마저도 익히고 해석할 수 있게 했다. 



나의 이런 배경을 아는 몇몇 지인들은 "왜 새 KJV 번역판을 하나 내시지 그러냐?"고 진담 반 농담 반으로 말을 걸곤 한다. 그러나 그 누구보다 내가 KJV 번역의 '적격자'라고 자임하거나 속으로 느껴본 적도 없다. 

한 마디로 그런 생각 자체가 필요 없고 부질 없었기 때문이다!


신학대학원에서 성경 원어와 구약학/신약학, 해석학 등을 배우면서 나는 으레 성경은 당연히 고대 원문에서 번역돼야 옳고 바람직하다고 늘 생각했다. 수많은 외국어 성경 및 영문 번역판들, 관련 글들을 접해 왔지만, 그런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구태여 근대어/현대어 언어 번역판의 하나일 뿐인 영문 성경에서 한글 성경으로 옮길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고대 원문이 아닌 영문 성경에서 굳이 한글로 옮겨 또 다른 한글 성경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뭔가 별나다. 필시 성경 원어를 거의 모르든지, 아니면 영어나 그 영문 성경 자체에 특별한 무엇이 있다는 편향적인 발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제 아무리 잘난 그 어떤 영문 성경도 원문 성경보다 더 우수할 수는 없다. 번역은 어디까지나 번역일 뿐이다. 영문 성경이나 한글 성경이나 다 번역판의 하나이다. 

그냥 번역판일 뿐인 영문 성경과 한글 성경을 놓고 어느 쪽이 더 우수하냐고 따진다는 것도 좀 우습다. 한 번역판이 딴 번역판 보다 "더" 우수하다고 판정 받으려면, 역사성보다는 원문에 얼마나 더 가깝게, 그리고 문학적/신학적/교리적/문화적 컨텍스트 상으로 잘 번역됐나 여부를 따져 보아야 알 수 있다. 


오늘날, 유독 17세기에 초판이 나온 KJV를 끼고서 이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식의 주장을 하며 자꾸만 이 판 저 판 내놓는 교계 인사들을 이해하려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또 그들이 낸 성경을 추종하는 교계 인사들과 교인들도 더구나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익히 알고 지내온 한 신학계 명사도 근래 KJV 우월주의에 빠져, 나를 놀라게 그리고 가슴 아프게 한다. 그 누구보다 이런 데 밝아야 할 분인데 말이다. 



그들의 이런 상황은 정확히 말해서 우선 자체모순이다! 

그들 다수는 KJV의 1611년 초판이 유일하게 하나님이 보존하신 말씀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KJV 한글 성경을 처음 낸 모씨가 대표하는 소위 '말보회'(=말씀보존학회)라는 단체도 있다. 

자, 그렇다면 1611년 영문 초판으로 '말씀 보존'을 하고 그냥 놔둘 일이지 왜 후판을 내는 것이며, 한글판은 왜 또 만드는 것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1611년판도 하나님이 보존한 유일무이한 성경이고, 현대의 한글판도 하나님이 보존하신 유일한 성경이란 말인가? 무슨 근거로 그렇게 주장들을 하느냐는 말이다. 

'유일(唯一)'이 뭔가? 도대체 뭐가 유일하고 우월하다는 것인가? 이미 다양한 KJV와 근() KJV,변() KJV판, 신() KJV들이 나왔는데, 어떻게 여전히 유일하다는 겐가? 또 그 많은 KJV 판들 중에 누구의 어느 것이 우월하다는 것인가? 현대인에게는 현대적인 성경이 필요한데, 1611년판은 NKJV(새제임즈왕역)보다 현대성에 있어 물론 열등하다! 

그래서 모순이라는 것이다. 특정 번역자가 낸 고유하고 특이한 번역판이어서 유일하다는 뜻이라면, 말이 되지만.  


또 다른 성경 번역판을 내겠다면, 과거의 번역판들보다 어떤 면에서라도 더 나아야 할 것이며(이전 것보다 더 낫지 못할 것이라면 왜 내는가??), 고대 원문학과 사본학을 전공하고 한글 문법과 문학과 한글 문서에 정통하며 늘 지속적으로 연구하는 신앙적이고 영적인 학자들이 함께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야 바람직하다. 기초 영문법과 한글 맞춤법도 안 되는 사람, 한국문학도 이해하지 못 하는 사람, 더구나 영적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KJV 번역을 논해 봤자이다. 


자기가 영어를 좀 한다고, 번역에 취미가 좀 있다고 해서, "감동 먹었다"고 해서 저마다 성경 번역판을 낸다면, 그야말로 카오스 와중이 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KJV 한글판 세계가 바로(exactly) 그런 상황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KJV 한글판을 만들어낼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에, 한국은 조만간 'KJV 잡탕 국가'가 될 것이다. 또 초기 한글판을 낸 사람들에게만 '번역권' 따위가 있는 것도 아니니, 문제는 더 많아진다. 결국 공해일 뿐이다. 좁은 강토 안에 무려 100 가지 이상의 KJV 한글판들이 나와 교계에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을 야기하기 전에, 교통정리와 '신호등'이 필요한 때라고 사려된다. 



성경 번역 프로젴트가 웹에 흔해 빠진 무슨 블로그도 아니고, 누구나 한다고 나서서 권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도, KJV 한글 번역 작업은 그렇게 군침이 돌고 만만하게 보이는 대상인 모양이다. 국제 판권도 살 필요가 없으니 잘만 내면 떼돈 벌이가 된다고 생각하나 보다. 그런 게 무슨 영적 권위라고 할 수나 있겠는가. 자기 입으로만 갖다붙인 자작 권위일 뿐.

 

한글판 KJV들의 또 하나의 모순은, 자기네 입이 닳고 혀가 마르도록 상찬(賞讚)해 가며 그토록 존숭하여 받들어 마지 않는 그 1611년 초판은 당대 영국 최고의 학자들이 47명이나 동원되고 왕이 적극 개입하여 막대한 지원을 해서 만들어진 무게 있고 권위 있는 성경인데도, 한국에서는 한 두 명이 자기 머리로 대강 적당히 번역하여 감히 각각 '성경'이라고 내 놓는다는 것이다. 이건 뭐 장난도 아니고 뭐란 말인가?


또 다른 모순이라면, 제 아무리 원문학과 인문학과 교회 학문을 두루 연마하고 섭렵한 학식을 갖춘 훌륭한 학자들이라지만 인간의 온갖 추악한 면모도 함께 골고루 갖춘 그들이었기에, 왕인 KJ부터가 비밀집단 육성자에다 동성애 의혹자인 데다 청교도들과 분리파들, 침례교도들을 학대하여 심지어 일부는 국외로 내쫓기까지 했는데도, 한글판 번역자들은 이 KJV와 왕과 편집팀의 위대성(?)과 거룩함(?)과 그 깊은 영성(?)에 감탄하다 못해 도취하고 만취하여 온갖 칭송을 마다 하지 않으면서 번역에 임한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러닠한 일대 모순인가?!


그리고는 자신들이 거의 혼자서 만든 그 KJV 한글 번역이 마치 1611년 영문 원판의 47명 편집 팀의 영감을 대물림하여 간직하기라도 한 양, 자신이 성경기자들의 바로 그 영감과 영성을 고스란히 물려받기라도 한 양 착각(?)하면서, "유일하게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재포장하여 시중에 떡 하니 내 놓고는, 추종자들에게 세상에서 유일한 성경인 것처럼 그것의 '신성' 같은 것을 믿게 한다. 자기 번역물을 팔아 먹기 위해 말이다. 그 번역을 중심으로 추종자들을 불러모아 자기 교세도 유지하고.  

알고 보면 위선도 이런 위선은 드물 터이다. 


물론 그 누구도 아닌 자기가 번역했으니, 그런 번역이 세상에 하나 뿐인(=유일한) 것은 맞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보존해 주신 유일한 성경이 되는 것인가?



이런 의미에서 이 번역가들은 일종의 컬트적인 마인드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런 '성경'을 어느 권위 있는 공적인 교계 단체가 인정해 주겠는가? 현재까지 나온 그 어느 한글판 KJV도 공인된 적이 없다. 그냥 자기네들 주장대로 책이 팔리니까 이럭저럭 대중에게 '공인'된 셈이며, 그냥 자기 추종자들에게만 '왔다!'로 떠받들려질 뿐이다. 


그들처럼 그렇게라면 나도 KJV를 얼마든지 혼자서 번역할 수 있건만 전혀 할 생각이 없을 뿐더러, 그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 죄스런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좋은 성경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며, 그래서 최대한 성경 원문에 가깝게 나름대로 옮겨보는 작업은 지금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성경은 영문이 아닌 원문에서 번역돼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영문 성경을 참조한다는 것은 말이 된다. 하지만 영문 성경을 주 원본으로 삼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영문 성경은 우선적으로 영어권 사람들을 위한 것이고, 다음으로 성경으로 영어 공부를 하려거나 하나님 말씀을 영어로나마 좀 더 깊이 이해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한글 성경은 당연히 초기 원문인 히브리어/아람어/그리스어에서 직접 번역되어야 맞다. 물론 대한성서공회 등을 통해 반포되고 공인돼온 여러 한글 성경들은 그렇다.   


한국인인 우리네 신앙이 왜 17세기 영국의 자국민들을 위한 영문 성경에 종속되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