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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묵상연구/시편

[시 128:2] 돈, 어떻게 벌고 쓸 것인가?

돈, 어떻게 벌고 쓸 것인가?
- 신자를 위한 경제난 대책

김삼

참고본문 : 시 128'2
 

최악의 경제난 시대에, 우리 신자들은 세상 사람들보다 앞서 가는 경제대책을 마련해야 옳다.
그런데 우리의 경제관은 세상 경제관을 초월하는 것이어야 한다.

크리스천들 중엔 돈을 무조건 멀리 하거나 혐오시 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잘못된 생각이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평소 돈 없이 지내지 못한다. 무인도에 살지 않는 이상. 
놀랍게도, 복음서에 자주 나오는 주님의 비유들 중 과반수는 돈과 경제에 관한 것이다!  

돈 관리엔, 벌기와 쓰기, 사고 팔기, 쌓기 내지 모으기(저축/예금) 등이 포함된다. 그것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법칙이다. 물론 신자는, 이 모두를 올바로 해야 한다.


그러나, 신자는 세상 사람들이 하지 않는 한 가지를 더 한다. 그것은 바로..받.기.다.

신자는 돈을 벌고 쓰기 전, 위로부터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한다! 복을 받되 잘 받아야 한다. 그 분이 바로 복의 원천이시기에.

세상 사람들도 '복'을 말하고, 복 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들의 복은 근원과 뿌리 자체가 막연하며..실상 복 아닌 저주이며 거짓 복이다. 그들은 심지어 돼지 대가리를 놓아 두고 존재가 확인되지도 않는 '용왕님'이나 '천지신명님' 앞에 절하면서 복을 구한다. 서낭당에 돌을 던져 쌓기도 하고, 사람 손으로 만든 부처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에게 빌기도 하고, 새해초 서로 '만복'을 빌며 '지신밟기' 따위도 한다. 액운 몰아내기, 복 들이기를 위해 무당을 데려다 굿도 하고 등등..할 수 있는 온갖 몸짓을 다 한다.

그들의 문제는 복을 비는 대상에 있다.


복은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만 온다.

성경은 하나님 이외의 어떤 복의 원천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아브라함의 영/혼/육/물(物)에 걸친 모든 복이 예수 크리스토님을 통하여 신자들에게 흘러 내려진다.

그럼, 세상엔 왜 상대적으로 백만장자, 천만..억만장자들이 많은가? 이상한가, 부러운가?
하지만 그들이 누리는 것은 창세 때 내려진 일반은총의 한계 안에서다. 선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태초에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물이 번성하도록 복 주셨고, 그 분의 선한 뜻을 따라 악인/비신자들에게도 비를 내리시고 햇빛을 주시고, 부도 허용하신다(창세기 1장 참조).
그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땅에선 설령 한껏 부를 누려도, 죽으면 그 엄청난 돈을 한 푼도 싸 가지 못하고 죄다 남겨 놓은 채 예수 크리스토를 선택하지 않는 이상, 영원한 형벌이 기다리는 지옥엘 간다. 부자나 명사라고 해서 천국에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란, 낙타가 바늘 귀 통과하기보다 어렵다.
 

자, 그렇다면..크리스천들은 어떤가?
크리스천들은 아예 부자가 되거나 풍요롭기를 포기해야 하는가? 간혹 크리스천 부자들이 있다. 또 그런 사람들이 있어야 교회의 굵직굵직한 재정 문제가 해결된다. After all, 돈없이 어떻게 사역/구호/선교를 할 수 있는가?
그런 부자들은 벌 줄도 알지만 적극 쓸 줄 아는 부자들이다.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렇지 않은 크리스천 부자들이 더 많다.
하나님보다는 돈의 힘에 더 당겨지고 끌려서다. 그들은, 자신이 돈을 끌어당기는 마력의 자석인 양 착각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하나님 아닌 맘몬 신의 지남철과 컴패스에 되레 끌려가고 있다. 맘몬 신은 뱃사람을 꾀던 아름다운 요정 사이렌들 같은 고운 목소리로 어리석은 부자들을 코를 꿰듯 낚시질하여, 유혹과 파멸의 황금바다로 이끌어 들인다. 겉 보기엔 화려해 뵈지만 실은 지옥 아가리로 몰아 가는 소용돌이가 도사리고 있다. 
 
예수님의 아우이기도 한 사도 야코보-야코보서 저자-는 믿음에 걸맞는 신자들의 언행을 권고/교훈하면서 당대의 신자 부자들을 엄히 경고했다(얔 1'10; 2'1-6; 5'1-4). 벌어서 나누는, 잘 쓰는 사람들이 되라고.
그러므로 하나님은 크리스천 부자들을 허락하시되, 잘 벌기보다 잘 쓰기를 더 바라신다.


관건은..신자가 위로부터 받는 복에 돈 잘/바로 벌기 및 잘/바로 쓰기와 더불어 필히 하늘로부터의 슬기가 동반된다는 점이다.

이 다중 복을 받으려면, 신자는 먼저 하나님을 최우위에 모셔야 한다. 그 분이 삶의 우선 순위여야 한다. 그 분을 나의 재정의 주인으로, 왕으로, 궁극적인 주권자/통치자로, 그리고 크리스토님/성령님을 최고의 경제 전문가로 받들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경제를 배워야 한다. 성경 말씀으로부터, 성령의 감동으로부터 하나님의 재정전략을 배워야 한다. 예수님의 다양한 경제 관련 비유에서 재물의 청지기로서의 예결산/회계의 비결을 배워야 옳다. 파울(바울)의 장막 깁기와 거액의 헌금 다루기 등 사도들의 경제원리들을 익혀야 한다. 
  

어렵게 들리는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경제를 배우려 하기보다는 먼저 세상 경제전략을 익히려 든다. 순서가 거꾸로다! 특히나 요즘 같은 경제난 시대에 신자들은 돈 문제에 "빠삭~"해 뵈는 세상 사람들과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을 향해 허둥지둥 손짓하며 거기서 해결책을 찾으려 아등바등거린다. 하나님의 얼굴을 먼저 바라기보다는.

신자들의 그런 성향을 이용한 것이 오늘날 미국의 복음주의 '경제 해결사'들이다. 세상 경제 '비책'을 성경에다 두드려 때려 맞추면서도, 자신이 하나님께 영감 받은 것인 양 그럴 듯이 가장한다. 그렇게 해서 재정자문과 조언을 해 주거나 책을 팔아 엄청난 돈을 챙긴다. 또한 그것이 마치 모두 하나님이 주신 풍요인 양 자랑한다. 자신들이 나눌 줄 모르거나 적당히 '나눔 제스처'를 하거나 반짝 쇼를 벌이는 거부가 된다. 교회에서 나누기보다 사회에 기부하여, 도움을 주거나 연계된 비밀집단 사람들에게 아부하는 한편 '기독교 자선가'로 이름을 낸다. 그렇게 해서 떨치는 명성으로 추가로 돈을 벌어들인다.

그들은 돈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다 보니 하나님 왕국이 세상 시스템 속에 이뤄지는 양 '킹덤 나우!'하고 큰 소리를 치고 다닌다.


그러나 뚜껑만이 아니라 속까지 바른 크리스천들이라면, 풍요와 함께 슬기를 복으로 받아 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을 경제의 최우위에 모시고 그 분의 말씀과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신자의 경제적 불행은 어디서 오는가?
바로 하나님을 최우위에 모시고 있지 않음에서다.
그러므로 신자는, 삶의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내 경제 생활에서도 하나님은 나의 주인, 왕이시다"고 고백하고, 그렇게 모실 수 있어야 한다. 일단 그렇게 하고 나면, 하나님은 말씀과 성령을 통해 필요한 지혜와 영감을 주시기 시작하신다.


다른 영/혼/몸의 풍요와 함께 하나님의 경제적 풍요를 누리려는 사람들은 이제 구체적으로, 다음 원칙들을 유의하자.


  1. 하나님을 내 경제 생활의 주인/왕/주권자로 모신다.

여기 대해선 이미 충분히 다루었다. 

   2. 풍요롭기를 열망해야 옳다.
이것은 부자가 되려는 열망과는 다르다. 가난이 아닌 풍요가 하나님의 뜻임을 맘에 새겨야 한다. 소위 '청빈'사상은 카톨맄교/불교의 것일지언정 기독교의 것은 아니다. 가난하길 바란다면 늘 가난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가난의 신이 아니시다! 크리스토는 우리의 풍요를 위해 스스로 가난해지셨다. 그러나 그 분의 가난은 지상 차원의 가난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때로 신자의 단련/연단을 위해 가난을 허용하신다. 파울이 빈/부에 모두 처할 줄 알았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이다.

   3. 우리는 돈의 주인이 아닌 청지기/관리자
청지기는 주인의 말을 수행하는 일꾼에 불과하다. 금도 하나님의 것, 은도 하나님의 것이다. 우리는 그 분에 받은 것을 맡아 관리할 뿐이다. 돈을 내 것으로 생각할 때 불행은 시작된다. 돈이 아닌 돈사랑이 만 가지 악의 근원이다.

   4. 돈은 세상에서만 쓰이지만, 그 가치는 영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주님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권고하신다. 가령 성도의 십일조는 교회에서 받아 관리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늘 대사제(대제사장) 예수 크리스토께서 받으신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행방은 유한과 무한, 시공과 영원-이중적이다.

돈이 영원한 가치로 이어지려면, 크리스천의 바르고 슬기로운 행동이 필수적이다.

   5. 세상에서 교회로 돈을 끌어 들여야
불행히도 오늘날 많은 "잘 난" 교인들, "잘 나가는" 교인들이 이와 반대 되는 행각을 벌인다. 교회의 돈을 갖다가 세상에 마구 뿌려대는 것. 특히 소위 기독교 구호단체, 패러처치라는 단체 등이 주로 그러고들 있다.
그러나 그래야 할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초기교회는 늘 교우들을 우선 구호 대상으로 삼았다. 교회의 빈민/고아/과부들을 일차 대상으로 삼았다는 말이다.
세상을 향해 돈을 써야 할 때는 반드시 복음이 결부돼야 한다. 몸 살리기도 중요하지만 영혼 구원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께 돈을 바라더라도 하늘에서 현금이 떨어질 리는 만무하다. 하늘나라엔 조폐공사가 없다. 그러므로 세상 대인관계를 통해 돈을 벌어 들이기 마련이다. 크리스천들은 때때로 마귀가 신자/교회로부터 앗아간 돈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되찾을 합법적 권리가 있다. 

   6. 누손을 막아야 
세상 창고는 허술하여 돈이 새 나가기 일쑤이며, 녹과 좀이 판 친다. 값 비싼 의상도 온기와 습기만 알맞으면 좀구멍이 나듯, 쌓아 둔 돈에 난데 없이 구멍이 나거나 든든히 믿었던 재정이 하루아침에 망가지기 일쑤다. 
크리스천들은 복을 적절히 흘려 보내고 나눠야지, 숨은 구멍으로 새어 나가게 해선 안 된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비단 돈만이 아닌 다양한 방법으로 돈이 새 나가기 쉽다. 병원비도 그렇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크리스천들은 돈과 함께 시간과 건강 등 하나님이 주신 다른 자원도 잘 챙겨, 아껴 쓰고 절제해야 옳다. 

   7. 씨 심기, 거두기의 법칙
자연 법칙이나 인간 삶 속에서나 자고로, 심지 않은 것을 거둘 수가 없다. 씨도 안 뿌린 맨 밭에서 수확을 하려 드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돈을 많이 벌려면 그만큼 심는 것도 있어야 한다.
온전한 십일조는 온전한 수익의 지름길이 된다. 미국에서 점점 발견하게 되는 현대 교회의 가난은 온전한 십일조가 사라져가는 현상과 정비례하고 있다.

   8. 나눔 법칙
지나치게 아끼고 모으고 쌓아 두기만 하고 인색해도 실상 가난해 지는 법이다. 크리스천이라면 흩어 뿌려 나눌 줄도 알아야 한다. 인색은, 세상적으로도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안 된다.
한 유대계 미국인 할머니는 여름철 에어컨을 쓰지 않을 정도로 돈을 아끼다 더위를 먹고 숨졌는데, 그녀의 침대 아래서 100만 달러가 넘는 현금이 발견됐다! 그 돈은 고스란히 국고에 들어갔다.

 
번 것을 적절히 나누고 뿌릴 줄 알아야 한다. 신자들은 특히 교회 안에서 그렇다. 바벨탑처럼 안으로만 쌓는 대형교회라도 주님이 보시기엔 라오디케아 교회처럼 실상 가난한 모습이다.
나눔을 위주로 한 초기교회의 초기 삶은 그래서 이상적이었다.

   9. 창의성을 발휘한다
현대는 아이디어 시대다. 머리 "굴리기", 발상의 전환을 잘 해야 돈도 잘 번다.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의 영감과 슬기..파울의 기도 등의 실천을 통하여 통찰력을 지니고 돈 벌기/쓰기에 있어, 신자만의 특유한 지혜와 기지를 발휘하고 신선한 아이디어 창출에 힘쓴다. 구태의연한 전통이 곧 진리나 정석이 아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머리를 쓴다. 주로 기도와 말씀으로써.
믿고 간구한 후에는 메모부터 하라. 뭔가가 떠오를 것이다. 나열하고 선택하고 시도하고 실천하라.
 
아브라함은 본래 우르의 도시인으로서 우상제작공의 아들이었지만, 새 땅에서 유목민으로 전환했고, 그의 아들 이짜크는 농장주로서 창업, 성공했다. 그런가 하면 야콥은 다시 할아버지의 직종으로 창업했다. 모두 하나님의 은총 안에서다.

   10. 검약과 절제
사치나 '청빈'의 양 극단이 아닌 절제와 검소는 풍요의 한 방편이다. 미국의 한 미디어는 매년 이맘 때 국내 10대 재벌을 발표하곤 하는데, 이들의 중요한 공통점 하나는 생활의 단순화, 검약 생활이다.
풍요는 사치를 뜻하지 않는다. 슐로모(솔로몬)처럼 있는 것, 가진 것을 다 누리려 들다간 전도서 교훈의 경고 대상처럼 "헛되구나!"란 결론만 내리게 돼 버린다.

   11. 부지런해야
게으름은 가난과 패망을 몰고 온다는 것- 정상의 법칙이다. 부지런을 떨어야 할 곳은 돈 벌기 뿐만은 아니다. 복을 간구함, 믿음으로(!), 예수 이름으로(!) 복과 풍요를 선언함에도 부지런해야 한다.

   12. 입을 조심하라
돈을 잘 벌기 위해선 말을 잘 해야 한다. 세 치 혀,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다. 반대로 잘못 떠벌인 말은 물동이를 땅에다 엎은 양 되담을 수가 없다. 또 자신의 경제 이슈에 관한 한, 늘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 부정적인 말은 부정적인 결과를 몰고 온다.
그렇다고, 노먼 빈슨 필 식으로 비평 없는 "무조건 긍정" 철학을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성경 말씀대로 시인/고백하고 선언하라.


끝으로..우리는 세상과 함께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이 결국 세상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님 말씀처럼(마태 5'1), 심령으로는 늘 가난해야 옳다. 그것이 참된 영적 풍요이다.
라오디케아 교인들처럼 가진 것은 풍요로워도 영적으로 헐벗으면, 비참하다(요한계시록 3'17,18).  

하나님보다 사랑하는 그 어떤 것이든 우상에 불과하며..돈도 그렇다.